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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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나 유명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책이 뉴욕판으로 다시 나왔다. 예전에는 조금 싼 편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비싸졌다. 사실 예전판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터라 정확한 비교를 하긴 어렵지만 요번 것은 한영대역으로 나온 것이라 조금 색다르다면 색다르다. 그런데 내가 특히 마음에 든 것은 표지로 나온 멍~해 보이는 아가의 얼굴이다. ㅋㅋ 아마도 나를 위해 나온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 내 스타일이다. 전에 어떤 출판사에서 표지를 고르라고 하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이쁜 아가를 골랐으나 아쉽게도 그 표지가 낙찰되지 못했던 아픔이 있는 나로서는 이 표지만으로도 반은 합격이다. ㅋㅋㅋ
 
정말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는 정말 기인이다. 대학 중퇴밖에 안 되는 학력을 가지고도 세상을 발 밑에 둔 것 같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사실 나에겐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그가 내 바로 앞에 앉아서 바로 이야기해줘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 그래서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한 번쯤 봐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는 느끼지만 그 책이 정말 좋은 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그런 현상에서 찾아보고 싶다. 사실 사람들이 누구나 다카하시처럼 대학을 뛰쳐나오고 자기 글을 출판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출판사를 차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고도 그 책이 대박이 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감과 운을 타고 난 그의 일생이 왠지 부럽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지. 그의 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의 인생이 부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99.9%인 행동을 함으로써 보란듯이 성공한 그의 인생이 아마 그의 책에 후광을 더해 준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이 정말 읽기가 짜증날 정도로 조잡스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 이런 자기 낙서같은 여행 에세이 책이 많이 나오는 것이 왜 일까 하는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에 나온 사진마다 열광하며 보았고, 그의 글을 읽으며 왜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없을까 하는 한탄도 해보았다. 그만큼 기발하고 신선한 관점이 압권인 책이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아주 평범하다 못해 평범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내 인생에서 볼 때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와 같은 생각은 꿈도 못 꾸고 - 난데없이 출판사를 차리라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 - 전세계를 돌아다니기 보단 집에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로도 족하고, 더더군다나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잘 다니던 대학교를 때려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비록 내가 가고 싶지 않았던 대학일지라도, 정말 평범의 극치인(人) 답게 가기만 하면 적응은 잘 한다, 나라는 인간은.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조금은 신선했고, 유쾌했고, 기발했고, 부러웠으며 새로운 별종의 인간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나라는 인간이 평생을 가도 이런 별종의 인간을 만날 수 없을 테니 이렇게 재미난 책을 통해서나마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2년이란 시간을 세계를 여행하면서 구석구석 어디를 갔는지, 얼마가 들었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사용했는지를 알려주었다면 더 자세히 상상할 수 있을 진데 아쉽게도 그런 평범한 여행서의 모습을 전면 거부하는 저자답게 전혀 정보를 알 수 없다. 정녕 아쉽게도 말이다. 평생을 걸려도 나는 이런 여행 한 번 안 할 텐데 말이다. 정말 아쉽당~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네가 내려준 정답'이 아닌 거 같아.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도움'을 줬으면 하는 것뿐이지.
 
그녀의 눈동자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Thank you for really listening to me.
But, it seems I wasn't looking for "your answer".
I probably just wanted you to "help me think".
 
Her eyes, said so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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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시네 -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이수원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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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7년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칸 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세계 영화계의 '황제' 질 자콥이 프랑스 대표 작가 르 클레지오에게 자유로운 형식의 집필을 부탁한 에세이집이다. 그 유명한 질 자콥이 서문을 썼다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책은,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르 클레지오가 쓴 한국어판 서문도 실려 있다. 그런데 내가 르 클레지오가 자유롭게 쓴 영화 에세이보다도 질 자콥의 서문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면 이상한 일일까. 상당히 개인적인 사연과 감상이 숨어들어간 이 영화 에세이는 1980년대 태어나 그가 본 영화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겐 너무 어렵고 모호했다. 하긴 빛을 만나야만 그제서야 살아움직이는 영화를 단순히 종이에 나열된 글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시네필이라면, 요즘에 나오는 현란한 영상이 돋보이는 영화에서부터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흘러간 옛 영화까지 모든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은 에세이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런 이야기에도 나와 같은 감성이 스며들어가 있는 부분이 있기에 찾아볼 수 있는 은신처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나의 영화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영화를 처음 접했던 것이 언제일까. 극장에서 영화와 처음 조우하기도 전에 나는 금요일인가 토요일쯤 했던 주말의 명화로 영화를 처음 대면했을 것이다. 주말 밤이면 어김없이 울렸던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기대 반 흥분 반으로 화장실에 후다닥 뛰어갔다 오곤 했다. 그 때 나왔던 수많은 영화를 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정말 현실을 잊고 영화에 빠져들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돌아가야 할 현실이 어찌나 암담하게 느껴지던지... 아직 다 못했던 숙제들과 시험을 피해 영화 속에 몰입했던 시간이었다. 그 때 보았던 [카사블랑카]라던지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는 언제봐도 멋졌다.

 

처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것은 동생이 열렬히 사랑했던 [우뢰매] 덕분이었다. 처음 [우뢰매]를 보러 극장에 간 이후에도 더러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보았던 것은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쯤에 내가 살던 곳에 극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그 전에는 영화를 보러 갈라치면 시내에 들어서야 했는데 그 후엔 우리 동네에도 극장이 생겼으니깐. 처음 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영화를 자주 보러가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데에서 영화를 항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대신 만들어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통로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소망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았을 때부터 더욱 강해졌다. 책을 보면서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마음껏 상상했던 영상을 실제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다 늦은 시간에 틀었던 TV에서 흘러나오는 예술 영화나 흑백 영화보다는 나는 현실에 없는 것을 이뤄내주는 마법 상자 같은 영화의 모습을 많이 즐긴다.

 

책의 말미에는 작가가 박찬욱, 이창동, 이정향 감독과 한 인터뷰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서 참 흥미롭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세 영화 감독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 사실은 나도 그들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하나라도 보지 않을 순 없을 거라는 말에는 확신이 든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나 [오아시스]로 유명한 - 나는 배우도 좋아하는데 배우 문소리 씨의 팬이다 - 이창동 감독, [집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 - 이 두 영화가 같은 감독의 것인 줄은 몰랐었던 내 무지를 용서하길^^ - 으로 유명한 이정향 감독은 한국 영화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르 클레지오가 그들을 만나 물었던 내용 중에는 이것이 있었다. 왜 문학이 아니라 영화였나고. 왜 자신의 생각하는 것을 문학으로 표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영화를 선택했냐는 말이다. 그것에 대한 감독 자신의 나름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마도 앞으로 더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영화도, 예술적인 영화도 많이 나올테지만 영화의 인생은 쭉~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영화는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테고, 많은 이들이 또 이 영화를 가지고 꿈을 이루겠지. 영화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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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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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 여기선 '나'도 - 동화를 좋아한다. 동화엔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남자다운 용기와 재치를 보여주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맘 편하게 동화를 읽지만, 동화라고 해서 모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항상 나쁜 사람들은 끝에 가서는 상당히 고통스럽게 죽어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실수를 한다. 실수나 나쁜 선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서 살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런데 아이들의 동화엔 나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은 눈꼽만치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인생엔 흑과 백 이외의 것이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다보면 나쁜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고 인생이 있다는 걸, 그들도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직 아이들의 눈높이로는 그 이면의 것을 볼 수가 없었던 탓에 유독 아이들은 나쁜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

 

주인공 데이빗도 자기만을 생각했던 어린 때가 아니라 조금 성장했을 때에 왕자를 기만한 하인이야기를 듣고 하인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기 보다는 왕자가 당했던 고통만큼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조금은 인생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고 나면 새로이 동생이 생겼다거나 옆집 남자친구가 자기를 놀린 것에 대해 그렇게 심한 질투심을 느끼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반대로 그런 시행착오가 없는 아이들을 어디 '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이니까 그런 분노와 질투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

 

데이빗은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아빠가 새엄마랑 결혼한 것에 대해, 또 새엄마의 사이에서 조지를 낳은 것에 대해 심한 분노와 질투심을 느꼈다. 아빠가 새엄마를 다정스레 바라본다거나 조지를 이뻐하는 모습만 보이라치면 데이빗의 마음 속에서는 증오가 부글부글 끓어넘쳐 흘렸다. 사실 새엄마도 고군분투하며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 전부인의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 전쟁이 일어나는 통에 살기가 어렵다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정말 깜깜하게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그에게 지하 정원에서 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었던 엄마가 되살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를 잃었다는 크나큰 상실감에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했던 데이빗은 엄마를 찾으러 지하 정원의 구멍을 넘어간다.

 

지하 정원의 안 쪽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은 이쪽 세계에서 넘어간 아이들의 악몽까지도 따라와서 현실이 되는 동화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곳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늑대와 인간의 변종인 루프가 인간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루프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데이빗은 숲사람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루프를 다스리고 있는 자는 르로이라 불리는 데 본성은 늑대이지만 점차적으로 생김새가 인간으로 진화해가는데 인간과 늑대의 나쁜 점만 빼다박은 생물체였다. 그는 모든 늑대들을 불러들여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을 전복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했다. 현 왕은 이제 너무 늙어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 그에겐 [잃어버린 것들의 책]이란 신비한 마법 책이 있다는 소문만으로 데이빗은 자신의 엄마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왕에게 가기로 했다.

 

그런 그를 인도해주는 사람은 단 둘!! 처음에 만났던 숲사람과 중간에 만났던 롤랜드라는 투사. 그들의 도움을 받아 데이빗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분노와 질투심을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자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조차 자신을 믿으면서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그는 이제 여느 어린 아이가 아니였다. 자신을 통제하고 용기를 가지며 자신의 악몽인 괴물도 효과적으로 처치하고, 많은 기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마녀도 죽이고, 마지막으로 꼬부라진 남자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모험은 한 어린 아이의 질투심과 분노에 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에서부터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그는 성장할 수가 있었다.

 

이야기는 누군가가 읽어줄 때 살아나는 것이다.

큰 소리로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없다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램프 불빛 아래서 이야기를 쫓는 커다란 두 눈동자가 없다면, 이야기는 결코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다.

이야기는 새의 부리에 물린 채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한 알의 씨앗이고,

악기가 연주해주기를 기다리는 음표였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 읽어주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사람의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야기는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난다고 한 데이빗의 엄마의 말처럼, 데이빗이 그쪽 세계에서의 삶이 정말 진실인지 긴가민가 하고 있을 때 아픔을 느끼고 욕망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실존하는 것이라고 말한 롤랜드의 말처럼 그쪽 세계의 일들은 정말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 놀랄 만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 중간중간에 숲사람과 롤랜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잔인함에도 그것이 매혹적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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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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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도 다케루의 책은 먼저 [나이팅게일의 침묵]으로 만나보았다. 청각과 시각의 공감각적인 효과를 중심에 놓고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이용해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던 그 작품을 보다가 이번의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이란 책을 보니 참 화통했다. 약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물론 있었지만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라 전혀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제까지 나왔던 출판사에서 나오지도 않고, 표지 디자인이나 종이 재질이 다르게 나와서 좀 아쉽다고 여겼었는데 그 유명한 도조대학병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서 변화를 준 것이 오히려 좋았다. 일부러 이렇게 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나오는 가이도 다케루의 책은 다 은행나무에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의 시도는 좋았단 생각이 든다.

 

먼저 이 책을 잘 보려면 제목을 음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서평을 쓰려고 옆에다 갖다 두고 멍~하니 표지를 보고 있으려니까 떠오르는 것인데, 제목에 결말이 나타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말을 다 알려주진 않겠지만, '마리아 불임 클리닉'이 산시 마리아 원장님의 병으로 문을 닫아야 했는데 나중에 극적인 사건으로 '부활'되는 것만은 알려줄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생각까지 든다. '부활'이란 말을 쓰기 위해 불임 클리닉의 이름을 '마리아'로 설정하고, 그 원장님의 이름도 '마리아'로 한 것은 아닌지. 뭐, 중간 제목에 <수태고지>란 말까지 나왔으니 분명 의도적이었을게다. 흐~음 그러니까 작가는 마리아를 아는 인물이로군.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난 서평을 쓸 땐 책을 참고하지 않아도 꼭 옆에 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게 글이 잘 써진다. 이건 왜 그러는 걸까?

 

어쨌거나 여기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불의를 참지못하는 여전사이다. 여기서는 '얼음 마녀'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대단한 여성이다. 불임치료의 전문가 소네자키 리에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도쿄의 잘나가는 데이카 대학병원에서 조그만 강의를 맡고 있으면서 별도로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 다니며 원장님이 계시지 않는 자리를 열심히 메워가려고 있다. 사실 이곳은 기요카와 고로 부교수도 같이 아르바이트로 나왔던 곳인데, 새롭게 시행된 여러 정책 때문에 그는 나오지 않고 리에만 독립투사같이 홀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학병원 월급쟁이 의사의 박봉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묵인해주었던 것이 대학이 독립 행정법인화되면서 파기된 것이 키요카와가 안 나오게 된 이유다. 데이카 대학의 부교수나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가 윗선에서 노하시기라도 하면 큰일나니까.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문제, 즉 지방에 있는 의료현장이 다 무너지게 된 것은 신 의사 임상연수제도의 도입 때문인데, 이것 때문에 지방에 있던 중견 의사들이 대거 대학병원으로만 몰려갔기에 지방에는 더 이상 진료를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이것을 고발하기 위해 다케루는 움직였던 거다.

 

리에는 자신을 키워주었던 마리아의 은덕을 저버릴 수 없어 폐원할 때까지, 그러니까 마지막 네 명의 임부들이 출산을 할 때까지만 마리아 불임 클리닉을 운영하는데 그것을 하는 중간 중간 무너져가는 의료 현장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곳을 찔러댔다. 우선 손글씨로 쓴 편지로 공무원들에게 투서를 하기도 하고, 정원의 20% 이하밖에 나오지 않는 수업에서도 열정적으로 의사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라는 말을 외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윗선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한번 기요카라 고로에 대해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실력좋은 의사인 그는 여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로서 문제가 될 만한 자질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과 잘 지내는 터라 상황을 잘 처리한다. 사실 대쪽같은 리에 옆에는 유들유들하게 상황에 따라 요리조리 잘 피하는 이런 사람이 한 명은 꼭 있어야 할 법하다. 그래서 리에에게는 조직의 편을 들거라곤 했지만 때에 따라 그녀를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막판에 가서는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생겨서 그러냐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대리모 출산의 의혹을 리에가 받아서 그렇다. 이런 중요한 사건도 철통같은 리에 앞에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무사히 상황 종료되는가 싶더니만 결국 대쪽같은 우리의 리에가 일을 낸다. 공식석상에서 공무원과의 전면돌파를 선언한 것!! 소비자를 위해서 마리아 불임 클리닉은 폐원하지 않고 적극 도와주겠다고 선언하면서 그것을 24시간 밀착 취재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저 당돌함은...! 정말 속이 시원했다. 저출산 때문에 일을 벌이고 싶다면 정부에서 불임에 보조를 해줄 일이지, 그런 실질적인 일은 하지 않고 쓸데없는 설문조사를 하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이상 조사를 하는 작태를 보이는 공무원들은 당해도 싸다!! 의료 개혁이니 뭐니 하고 떠들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지 않는 정부가 무슨 정부이고, 무슨 공무원이란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바르게 서야 나라가 잘 되는 법이다.

 

정말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대는 이 소설은. 우리나라도 일본과 꼭 같지는 않아도 지방엔 갑자기 병이 났을 때 찾아갈 병원이 없다는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아프지 않을 때는 병원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응급 상황일 때 가야 하는 곳이 바로 병원 아닌가. 그런데 정작 아플 때 찾아갈 수 없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현 대통령 이하 모든 공무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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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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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

 

띠지에 적혀있던 말, 주인공 타에코가 누구에게, 왜 저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던 때에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포장할 여지가 남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누구한테 변명을 하는 거야~라는. 남편과 두 딸이라는 가족에게 평생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던 타에코에게 자신의 삶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포포를 데리고 도피행을 선택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생각해낸 말일 거다. 변명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옮길 뿐... 이제 이 소설을 다 본 후에 드는 생각은 공허 뿐이다. 평생을 그렇게 두 딸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희생했던 - 말 그대로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완전한 희생이다!! - 타에코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은 남편과 두 딸의 잘못일까. 아니, '잘못'이란 말 자체가 가당치도 않나.

 

으~음, 나는 여기에 나온 있을법한 인물들, 즉 무감각하고 비수 꽂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편,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만 우선인 첫째 딸, 평소에는 애교를 피우면서 엄마에게 맞춰주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는, 자신이 손해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하는 둘째 딸, 이 인물들은 모두 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여기에는 '나'가 있다. 가만보니 이기적인 첫째 딸과 애교로 이익을 도모하는 둘째 딸이 바로 나 같다. 물론 소설 속의 인물처럼 정나미가 없지는 않다고 나 나름대로 자위도 해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따름일 테고. 어쨌거나 엄마가 한참동안 우울증에, 그리고 무기력증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실 때 내가 과연 이 딸들처럼 냉정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타에코도 자기가 어디만 아프면 "엄마, 그거 갱년기 장애야~" 하는 딸들의 말이 듣기 싫었다고 하는데, 나도 무심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전에 한 번 그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엄마가 이상한 표정, 아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도 이제 '갱년기'라는 말이 나올 때라는 것이 정말 의외인 것처럼... 아마 내가 낼모레면 서른이란 생각을 할 때마다 신기해하던 것과 비슷하겠지... 내가 서른이라니...+ㅁ+

 

여자에게서 마흔에서 쉰까지는 어떤 의미일까. 남자에게는 한창 열심히 닦아놓은 경력으로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가 될 나이이고, 그만큼 능숙하고 중후한 멋이 풍길 그 때에 여자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기라니 어디 뭔가 참 이상하다. 어쨌거나 성공했으면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집안을 이끌어온 아내에 대해 고맙고 미안함을 가져야 할 텐데 여기 이 남자는 아니다. 아내가 마흔이 넘었을 때 부하직원 앞에서 "아내는 이제 여자로서 끝났으니까"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 남자는. 미친 거 아냐~ 이쒸~ 그 남자도 아마 연애시절 때는 타에코에게 자상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만 정말 이렇게 남자보는 눈이 없는지 타에코에게 묻고 싶다. 하긴 사람이 사람을 알 때 어찌 완벽하게 알 수가 있겠나. 살다보면 자기가 몰랐던 부분도 보이고 하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면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애절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헤어진 연인을 더 잊지 못하지 않을까. 혹여 마음 주고 몸까지 다 준 뒤에도 버림받은 것만을 비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에코의 말처럼 결혼이 비참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어찌 단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타에코가 그 비참함의 산 증인인데...

 

사건의 발단은 이것이다. 교배를 통해 공격성은 제거되고 덩치만 커진 골든 레트리버 포포가 옆집 중학생을 물어 죽여버렸다는 것. 이런 상황만 알고선 텔레비전에서 크게 한 보도를 봤다면 나도 어떻게 사람을 물어 죽일 수가 있냐고, 제 2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런 개는 당장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방방 날뛰지 않았을까. 하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집에서 가정교육은 어떻게 받았는지 학교도 안가고 집에서 쉬면서 포포에게 이상한 것을 먹이거나 때리거나 혹은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약점을 알고 폭죽을 터뜨리는 장난을 즐기는 그 아이를 보았다면 덩치가 큰 포포가 그리 큰 위험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포가 공격본능이 있어서 공격했던 것이 아니라 폭죽 소리에 놀라 공황 상태에 빠져서 저지른 일이니 사실상 민사나 형사상에서도 전혀 책임은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마당에서 키우는 것 같이 보여도 마당 골목에 가두어놓고 키웠기 때문에 주위에 그들을 알던 주민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 쯤은 다 알았다. 하지만 크게 보도가 된 마당에 인심이 날로 사나워지고, 더구나 믿었던 둘째 딸마저도 포포를 안락사시키는데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을 보고 타에코는 결심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도피행 뿐이라고...

 

그녀의 도피행을 보면서 그 원인이 포포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타인들과 같이 살아주는 데 진력이 나버린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다. 그녀의 삶 마지막 한 자락까지 헛되이 보낼 것이 아니라 도심지와 격리된 철저한 자연 속에서 온전히 자신과 포포만이 살아 숨쉬는, 완전한 해방 속에서 살아보고팠던 그녀의 마지막 소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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