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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혼자 사는 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
띠지에 적혀있던 말, 주인공 타에코가 누구에게, 왜 저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던 때에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포장할 여지가 남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누구한테 변명을 하는 거야~라는. 남편과 두 딸이라는 가족에게 평생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던 타에코에게 자신의 삶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포포를 데리고 도피행을 선택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생각해낸 말일 거다. 변명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옮길 뿐... 이제 이 소설을 다 본 후에 드는 생각은 공허 뿐이다. 평생을 그렇게 두 딸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희생했던 - 말 그대로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완전한 희생이다!! - 타에코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은 남편과 두 딸의 잘못일까. 아니, '잘못'이란 말 자체가 가당치도 않나.
으~음, 나는 여기에 나온 있을법한 인물들, 즉 무감각하고 비수 꽂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편,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만 우선인 첫째 딸, 평소에는 애교를 피우면서 엄마에게 맞춰주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는, 자신이 손해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하는 둘째 딸, 이 인물들은 모두 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여기에는 '나'가 있다. 가만보니 이기적인 첫째 딸과 애교로 이익을 도모하는 둘째 딸이 바로 나 같다. 물론 소설 속의 인물처럼 정나미가 없지는 않다고 나 나름대로 자위도 해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따름일 테고. 어쨌거나 엄마가 한참동안 우울증에, 그리고 무기력증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실 때 내가 과연 이 딸들처럼 냉정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타에코도 자기가 어디만 아프면 "엄마, 그거 갱년기 장애야~" 하는 딸들의 말이 듣기 싫었다고 하는데, 나도 무심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전에 한 번 그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엄마가 이상한 표정, 아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도 이제 '갱년기'라는 말이 나올 때라는 것이 정말 의외인 것처럼... 아마 내가 낼모레면 서른이란 생각을 할 때마다 신기해하던 것과 비슷하겠지... 내가 서른이라니...+ㅁ+
여자에게서 마흔에서 쉰까지는 어떤 의미일까. 남자에게는 한창 열심히 닦아놓은 경력으로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가 될 나이이고, 그만큼 능숙하고 중후한 멋이 풍길 그 때에 여자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기라니 어디 뭔가 참 이상하다. 어쨌거나 성공했으면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집안을 이끌어온 아내에 대해 고맙고 미안함을 가져야 할 텐데 여기 이 남자는 아니다. 아내가 마흔이 넘었을 때 부하직원 앞에서 "아내는 이제 여자로서 끝났으니까"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 남자는. 미친 거 아냐~ 이쒸~ 그 남자도 아마 연애시절 때는 타에코에게 자상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만 정말 이렇게 남자보는 눈이 없는지 타에코에게 묻고 싶다. 하긴 사람이 사람을 알 때 어찌 완벽하게 알 수가 있겠나. 살다보면 자기가 몰랐던 부분도 보이고 하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면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애절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헤어진 연인을 더 잊지 못하지 않을까. 혹여 마음 주고 몸까지 다 준 뒤에도 버림받은 것만을 비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에코의 말처럼 결혼이 비참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어찌 단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타에코가 그 비참함의 산 증인인데...
사건의 발단은 이것이다. 교배를 통해 공격성은 제거되고 덩치만 커진 골든 레트리버 포포가 옆집 중학생을 물어 죽여버렸다는 것. 이런 상황만 알고선 텔레비전에서 크게 한 보도를 봤다면 나도 어떻게 사람을 물어 죽일 수가 있냐고, 제 2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런 개는 당장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방방 날뛰지 않았을까. 하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집에서 가정교육은 어떻게 받았는지 학교도 안가고 집에서 쉬면서 포포에게 이상한 것을 먹이거나 때리거나 혹은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약점을 알고 폭죽을 터뜨리는 장난을 즐기는 그 아이를 보았다면 덩치가 큰 포포가 그리 큰 위험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포가 공격본능이 있어서 공격했던 것이 아니라 폭죽 소리에 놀라 공황 상태에 빠져서 저지른 일이니 사실상 민사나 형사상에서도 전혀 책임은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마당에서 키우는 것 같이 보여도 마당 골목에 가두어놓고 키웠기 때문에 주위에 그들을 알던 주민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 쯤은 다 알았다. 하지만 크게 보도가 된 마당에 인심이 날로 사나워지고, 더구나 믿었던 둘째 딸마저도 포포를 안락사시키는데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을 보고 타에코는 결심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도피행 뿐이라고...
그녀의 도피행을 보면서 그 원인이 포포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타인들과 같이 살아주는 데 진력이 나버린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다. 그녀의 삶 마지막 한 자락까지 헛되이 보낼 것이 아니라 도심지와 격리된 철저한 자연 속에서 온전히 자신과 포포만이 살아 숨쉬는, 완전한 해방 속에서 살아보고팠던 그녀의 마지막 소망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