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버트 스윈델스의 작품은 이것으로 두 번째이다. 먼저 읽었던 작품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도 역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그의 작품에는 커다란 특징이 있는데, 주인공이 두 명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명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비중이 비등비등한 두 인물이 주인공인데, 두 주인공의 생각을 한 쳅터씩 교차해서 쓰는 것 또한 이 작가의 특기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을 만치 두 주인공의 심리를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아마도 정신이 쏙 빨리는 것처럼.

 

여주인공의 이름은 마사이지만, 집에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탓에 아이들에게 '누더기 앤'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당한다. 아이들은 꽤 잔인한 데가 있어서 자기와 다르고, 이상해 보이라치면 일단 놀리고보는 습성이 있기에 마사가 당하는 괴롭힘은 꽤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 때 짜~짠 등장해준 우리의 남주인공, 스콧. 첫눈에 반한 것처럼 마사는 스콧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 전학 온 첫날, 단순히 자기를 놀리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 두 번째 날부터 놀리자 실망을 하고 만다. 스콧만은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랐는데.

 

이제 다시 스콧의 이야기. 스콧은 여기와서 처음 사귄 사이먼 때문에 마사를 놀린 것이었다. 물론 집에서 만든 옷을 입는 마사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모두 놀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으로 선한 청년, 아니 소년이었다. 후후~ 그래, 스콧! 넌 우리의 남주가 될 자질이 충분해. 흐흐흐. 그래서 나중에는 마사를 옹호해주다가 집단 폭행을 당한다. 아암, 이런 시련이 있어야 사랑이 더욱 돈독해지지 않겠어? 그 사건으로 마사는 무조건적으로 스콧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스콧은 이상야릇하게, 실은 반한 것도 아닌데 - 자꾸만 보고 싶고, 그 아이만 생각나고.. 에이~ 내가 보니 넌 딱 반한 거 맞는 걸? - 마사가 좋아진다.

 

마사네 집에는 소위 '의로운 사람들'이라 불리는 교회에 다니는 부모님 때문에 문명의 이기라곤 찾아볼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TV나 컴퓨터는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아늑하고 쾌적하게라도 꾸며놓을 수 있지 않은가. 색감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무시못하는데~~ 그런데 전혀 없는.. 아무 것도 없는, 휑한 모습의 집에서 마사는 살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집에는 놀러가더라도 집에는 절대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집에서 사니 마사에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나 같았으면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다행히 딱 하나 있다. 하나밖에 없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쨌거나 그것은 열여섯 쯤 쫓겨난 언니에서 오는, 주소도 없는 엽서다. 물론 부모님이 빡빡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마사는 오물이 묻어있는 그 엽서를 꼼꼼히 붙여서 보물로 간직한다. 그것만이 마사가 이 땅에서의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에.

 

이젠 마사에겐 스콧이라는 좀 더 넓은 통로가 생겼다. 그로 인해 생전 처음 친구와 함께 노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모험을 감수하게 만들었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트레이시에게 말로 꼼짝못하게 만들어 준 것을 봐야 하는데...으흐흐..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구나!! 쉿~ 그런데 마사에겐, 아니 마사네 집엔 아주 끔찍한 무언가가 산다. '혐오'라는 부르는 그것.. 그것은 무엇이길래 집에 아무도 데려와선 안되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지.. 그 숨막히는 비밀도 스콧 덕분에 풀게 된다. 그로써 마사는 힘을 되찾았다!!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다시 부모에게서 돌려받았다. 한 번도 자신이지 못했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는 권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모든 족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마사를 봐야 한다. 정말.. 정신차리고 봐야 한다. 눈 깜박 할 새에 지나가버리니까!!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문 외우는 파랑새
방민지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네 살 아이가 쓴 소설이라니, 우와~ 세상 참 좋아졌다. 내가 저 나이일 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부러움 반, 시기심 반인 마음으로 이 소설을 냉정하게 보기로 했다. 도입부터 우드둑~ 금이 간다. 앞부분에서 설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데에 구차하게 주저리 주저리 묘사한 꼬락서니하고는. 도입은 주인공 예린이가 패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상대 편 학교인 대성고등학생과 자기 학교인 성수고등학교의 수준 차이를 비교하는 장면에서 여자아이의 머리를 고데기로 말든 꼬챙이로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즘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여간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부터는 호기심이 들었고, 우리의 주인공 예린이의 인생을 예린이의 시선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진짜' 나라는 말 때문에 홀려서 예린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과연 예린이의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왜 이 아이가 소위 말하는 날라리가 되어 버린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돈 잘 벌어오는 치과의사 아버지에다,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런데 이 가정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또한 예린이가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은 걸로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예린이에게는 최근 들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예린이의 자아가 둘로 나뉘었는데 '진짜' 자아가 상처를 받았을 때 '병적인' 자아가 나타나고 그땐 '진짜'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주의를 기울여주셔야 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땐 울던 엄마가 이젠 맘을 고쳐먹고 잘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히스테리만 더 늘고 아이에게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은 똑같은 게 아닌가. 정말 이 가정은 문제가 있었다.

 

매일같이 폭력적인 소리만 들고 살던 아빠가 보다못해 이혼을 결심하고 예린이를 맡아 키우기로 했다. 엄마는 예린이가 당연히 자기에게 올 거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예린인 이제껏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를 터트리면서 엄마와 절연을 해버렸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울며 비는 엄마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오는 예린이를 보았을 때, 고놈 쌤통이다~ 엄마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불리면 안되지~ 하며 자축하던 나와는 달리, 예린이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허참... 시간이 지나면 행복해질거야~

 

새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살다가 예린이가 유괴를 당했다. 정말 이런 일이!! 완전 극적이잖아~ 어쨌거나 유괴를 당해서 그 상황을 가만 지켜보는 예린이는 궁금했다. 새엄마가 울며 불며 자신을 찾을까, 아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잘 살아갈까. 자신을 찾으면 진짜 엄마로 삼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새엄마로 남을 거라고 다짐했던 예린이에게 새엄마는 그저 새엄마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거기에서 새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을까? 그저 새엄마는 유괴당한 줄 몰랐던 것뿐이라며 오히려 합리화까지 시켜주다니... 아마도 예린이는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뻔한 것도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한동안 날라리였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새엄마의 딸 채아에겐 극성맞을 정도로 챙기지만, 예린이가 일진에 들어갔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도 없이 돈만 달라는 대로 줘버리는 새엄마를 보면서도, 왜 예린이는 그것이 무관심이고, 방치인지,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할 사랑을 찾지 못하는지, 왜 그리 멍청한지, 왜 그리 바보같은지 몰랐다. 왜 좀더 약게 굴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기대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왜 자신을 그리도 버려두는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장면, 패싸움으로 돌아온다. 아! 내가 얘기를 안 했다. 패싸움에서 예린이가 칼을 맞았었는데...

왜 칼을 맞았을 때에서야 진짜 엄마가 울면서 소리지르며 뛰어오는지가 보이고, 새엄마는 전혀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 게 보이는 건지...

그야 어떻게 알겠어? 처음부터 사랑을 받아야 할 때,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는데, 그래서 사랑이 뭔지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아이가 그런 지경으로 갈 때까지 무엇을 했을까, 부모라는 작자는. 나도 중고등학교 때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봤다. 그들과 친해본 적이 없어 그들의 가정사까지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을 못 받았다거나 잘못된 사랑의 표현만 알고 지낸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낳으려고 준비했건 안 했건간에 부모가 된다면 모든 부분에서 좀더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사랑을 못받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상처주는 걸 합리화해선 안되는 거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평생 가슴 속에 허전함이 있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대물림되면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봐라~ 한 생명이 안타깝게도 꺼져버렸다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난부 야스히로 지음, 아이하라 코지 그림, 한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정신없이 보고 있으면 아아~ 하고 이해는 가는데,

책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난부가 말한 것처럼,

철학은 답을 찾아내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미 주인공 히로시와 돼지 씨는 수많은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깨달은 반면,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던 나는 무언가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찾아가기보다

히로시와 돼지 씨의 만담을 읽으면서 뭔가 결론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을 뿐이니 당연히 내 머릿속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 밖에.

그나마 철학은 답이 있지 않고,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진리가 내가 겨우 찾아낸 무언가이다.

 

이제껏 철학책을 보면서 여러 사조들이 머릿속에 정확하게 정돈되어 있길 원하고 그것을 추구했던 나는,

요렇게 스스로 생각하길 기다려주고 문답식으로 잘못된, 아니 모순된 생각을 집어주는 책을 만나지는 못했더랬다.

철학을 일반 범인들은 범접할 수 없이 드높고 고결한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였을테지만

그런 책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라면 이유다.

그래서 몇 번을 읽었음에도 이 책의 본질은 잘 꿰뚫지는 못하였다.

허나 히로시와 돼지 씨의 많은 문답 중엔 내가 했을 법한 질문과 답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겐 히로시처럼 자신의 말에 반대를 해줄 돼지 씨같은 존재가 없어서 혼자 헤매야 될 시간들이 많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길잡이를 찾아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그 유명한 헤겔의 변증법을 아시는지.

이 만화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틀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 즉 정과 반 사이에서 합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화만 반복적으로 보고 있으면 헤겔의 변증법은 완벽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히로시가 자신이 사는 이유에 대해 말하면 바로 돼지 씨가 히로시의 의견을 반박한다.

그러면 다시 히로시는 돼지 씨가 말해준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재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다가 실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에 빗대어 설명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정반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다만 내가 일본 가수들을 몰랐던 게 문제라 된다면 되겠지만.

 

또 가만 보고 있으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또는 산파술이라는 게 연상되는데,

질문을 통해 그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걸 깨우쳐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히로시가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면,

돼지 씨는 "확실히 행복을 꿈꾸고 좇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것은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 버리지.

왜냐하면 행복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다시 히로시가 "절대적인 행복을 위해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면 

돼지 씨는 절대적인 행복은 없다고, 그것은 그냥 뇌 속에 마약 물질이 넘쳐나서 해롱거리는 것뿐이라고 잔인하게 통보해준다.

이런 과정이 꼭 만담처럼 보여 상당히 재미도 있지만,

그 자체가 철학적인 논조를 띠고 있기에 읽고 있다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도 좋을 것 같다.

앞서 서문에서도 나와있듯이 먼저 만화만 읽고 나서 나중에 글과 만화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는 데 더 낫다.

나는 꼼꼼하게 만화와 글을 먼저 봤더니 해설에 의지하려고 하는 나약한 인간의 습성 때문에 내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윤리 시간에 부교재로 쓴다고 하니 앞으로 철학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연예인 자살 사건이나 온갖 패륜적인 범죄 사건이 넘쳐나

아이들에게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 터인데

우리의 실정을 담은 4컷 만화 윤리 부교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바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이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
셔먼 알렉시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다분히 성장소설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소설은, 시간여행이란 장치를 가지고 모든 것을 풀어가는데 미국 내 인디언의 위치나 정체성에 대해서 가만히 묻고 있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다. 최초의 아메리카 노예였던, 자기 땅에서 자신들이 감금당해 살아왔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짓밟았던 미국의 잔혹함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상하라고 울부짖는 것도 아니지만, 가만히 무엇부터가 잘못되었었는지를 소근소근 알려주고 있다.

 

주인공은 진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며, 자신을 여드름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는 그는 반은 인디언이고, 반은 아일랜드인이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는 인디언도, 아일랜드인도 될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는 작자는 자신이 태어난 지 2분만에 도망가고, 어머니는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여러 입양 가정을 전전하며 다니는 그는 항상 문제가 일으키고 말썽만 부리고 다녔다. 아무 희망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

 

그 날도 어김없이 입양가정에서 말썽을 부리고 보호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자신을 '저스티스'라 부르라는 백인 소년을 만나 혁명을 부르짖는 그에게 반하고 만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상처받았던 '여드름'은 진정한 혁명가는 자신을 불태우는 거야~란 '저스티스'의 말에 완전히 홀려서 물감 총과 진짜 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고 은행을 털러 갔다. 물론 '여드름' 혼자서만. 그리곤 은행에서 난사사건을 벌이는데....

 

어! 이게 웬걸? 갑자기 자신이 1975년에 있었던 인디언 레드리버 전투에서 인디언 정부와 한 패가 된 백인 FBI요원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백인으로서 인디언 소년에 총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그는 그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곤 자신이 보살피고 있는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자이기도 하면서 인디언에겐 살인자가 되는 그의 정체성을 경험한다. 그 다음엔 백인에게 목소리를 잃어버린 10살 정도 된 인디언 소년이 되어 자신을 그렇게 만든 복수를 하라고 강요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가 '여드름'이었을 때 은행에 사람들을 죽이러 들어왔지만 계속적으로 사람을 '죽일' 상황을 강요받게 되자, 오히려 점점 살인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몇 번에 걸쳐 순간 이동을 하는 그가 살인보다는 생명을 아끼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다가 한 늙은 인디언이 되었다. 이미 너무 많이 상해버린 몸뚱아리 때문에 계속해서 구토만 해대는... 그런 그가 흐느적 흐느적 걸어가다 한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강요를 하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여드름'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바로 그 늙은 인디언이 바로 자신의 아빠였던 것...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까지 그의 탓으로 돌리는 그가, 바로 그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분노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겪은 과거의 상처를 보곤 그의 분노도 녹아버리고 그는 다시 은행에서 '여드름'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시나마 경험을 하고는 그러면서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 남아있는 해묵은 원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에 관계없이 생명을 보호하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그의 안에 있었던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아픔과 거절, 사랑받지 못한다는 깨달음 등이 사라져 버리고 조금은 다른 사람을 믿어볼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난 후에야 자신의 진짜 이름인 '마이클'을 말해주는데 그는 이젠 괜찮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그깟 인종쯤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정말 인생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뜻한 목욕물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잠자리도, 따스한 음식도... 이런 모든 것들은 다 수고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인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책은 바로 <홈리스 중학생>이다. 말 그대로 중학교 2학년 때 집이 없어져 버린 한 아이의 인생이야기를 보노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틀면 바로 나오는 따뜻한 목욕물이나 추울 때 덮을 수 있는 이불, 밖에는 비가 와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이 이야기를 눈물을 글썽이다가 웃다가 노하다가 하면서 읽어내려갔다.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집에는 압류 테이프가 붙어있고, 집안의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내버려져 있었다. 다섯 살 많은 형과 그보다 한 살 어린 누나와 함께 아버지가 오시길 기다렸는데 아버지는 "해산"이란 단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종료해버렸다. 각자 자기 갈 길을 가라고 하면서 홀로 어디론가 떠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형과 누나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친구집에서 잘 거라고 하고는 도망치듯 벗어난 것이 우리의 주인공 타무라의 홈리스 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그러나 평소 성격이 명랑 쾌활해서 친구가 많아도 대뜸 집에서 재워 줘! 라고 할 수가 없었던 타무라는 정처없이 걷다가 똥처럼 생긴 미끄럼틀이 있는 마키훈 공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있던 돈으로 빵을 사먹었지만 그 다음엔 먹을 것이 없어서 자판기에서 동전을 줍거나 도서관에서 물을 먹거나 공원에 있는 풀을 뜯어 먹었다. 그래도 배고픔이 가시질 않자, 박스를 물에 불려 먹어보기까지 했으나 당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배고픔에 찌들어 가던 어느 날, 학교에서 단짝이던 요시야를 만나 밥을 구걸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전전긍긍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배고픔에 부끄러움을 잊고 부탁을 했던 그에게 요시야는 선뜻 집으로 데리고 가서 어머니께 소개해주었다. 정말 한 가족처럼 밥을 주시는 것은 물론 목욕을 하라고 속옷까지 준비해주시는 그 모습에 주뼛하던 그는 마음 편히 그에게 제공된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수건이나 비누도 없이 샤워를 하곤 했던 그에게 따스한 목욕물은 그야말로 천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요시야네의 호의를 받아들여 내막을 알게 된 어머니 덕분에 그 집에 눌러 살 수 있었다. 나중에는 세 남매가 같이 살 수 있도록 적은 돈이나마 보태고 정부보조금을 받아서 집을 한 칸 마련해주셨다. 그래서 세 남매는 감격적인 재회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중학교 2학년을 다니고 농구부를 계속 할 수가 있었다.

 

여기서 잠깐, 타무라의 아버지에 대해서 한 번 볼까? 자식들을 그렇게 방치해버린 그에게 손가락질할 사람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 역시 처음에 타무라 이야기를 읽었을 때, '세상엔 정말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많지~' 했었으니까. 그러나 타무라는 그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타무라가 5학년 때 어머니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배려만 해주고 양보하던 모습만 보아왔던 - 특히, 아버지에겐 절대적이었다 - 그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어머니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을 보곤 아버지가 표현을 잘 못하는 분일 뿐,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버지에게도 큰 충격이었는지 아버지도 같은 병을 얻고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면서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치료비에다가 큰 형의 대학 등록금, 누나의 대학 입시준비를 척척 준비하다가 압류라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이었다. 한 번도 힘들다, 어떻다 말씀을 안 하셔서 알지는 못했지만 타무라의 아버지도 죽을 만큼 노력했으나 결과가 없어서 아이들을 그렇게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타무라는 이제까지 아버지가 자기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오셨으니까 이젠 자신들의 효도를 받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돌아오셔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얼마나 따스한 이야기인지, 사실은 13살짜리가 혼자서 살려고만 한다면 음식을 훔치고 삥이나 뜯고 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 법적인 제재를 받긴 하겠지만 그게 뭐 대순가. 지금 굶어죽게 생겼는데. 타무라도 편의점에서 빵을 훔칠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가 엄마가 하늘에서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겨우 참았었는데 그런 양심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배가 고프다면 사람은 또 모르는 일이다. 칼이라도 집어 들고 강도짓을 하게 될런지도... 그런데 그가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그에게 양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어머니나 선뜻 아들의 친구를 받아들여주고 나중엔 집까지 마련해준 요시야의 부모님, 학교에서 타무라의 사정을 알고 봐준 여러 선생님들까지... 그가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고 하는 거겠지. 이렇게 추운 겨울날, 우리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들 중 힘든 사람이 없는지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