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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외우는 파랑새
방민지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평점 :
열네 살 아이가 쓴 소설이라니, 우와~ 세상 참 좋아졌다. 내가 저 나이일 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부러움 반, 시기심 반인 마음으로 이 소설을 냉정하게 보기로 했다. 도입부터 우드둑~ 금이 간다. 앞부분에서 설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데에 구차하게 주저리 주저리 묘사한 꼬락서니하고는. 도입은 주인공 예린이가 패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상대 편 학교인 대성고등학생과 자기 학교인 성수고등학교의 수준 차이를 비교하는 장면에서 여자아이의 머리를 고데기로 말든 꼬챙이로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즘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여간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부터는 호기심이 들었고, 우리의 주인공 예린이의 인생을 예린이의 시선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진짜' 나라는 말 때문에 홀려서 예린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과연 예린이의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왜 이 아이가 소위 말하는 날라리가 되어 버린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돈 잘 벌어오는 치과의사 아버지에다,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런데 이 가정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또한 예린이가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은 걸로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예린이에게는 최근 들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예린이의 자아가 둘로 나뉘었는데 '진짜' 자아가 상처를 받았을 때 '병적인' 자아가 나타나고 그땐 '진짜'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주의를 기울여주셔야 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땐 울던 엄마가 이젠 맘을 고쳐먹고 잘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히스테리만 더 늘고 아이에게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은 똑같은 게 아닌가. 정말 이 가정은 문제가 있었다.
매일같이 폭력적인 소리만 들고 살던 아빠가 보다못해 이혼을 결심하고 예린이를 맡아 키우기로 했다. 엄마는 예린이가 당연히 자기에게 올 거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예린인 이제껏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를 터트리면서 엄마와 절연을 해버렸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울며 비는 엄마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오는 예린이를 보았을 때, 고놈 쌤통이다~ 엄마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불리면 안되지~ 하며 자축하던 나와는 달리, 예린이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허참... 시간이 지나면 행복해질거야~
새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살다가 예린이가 유괴를 당했다. 정말 이런 일이!! 완전 극적이잖아~ 어쨌거나 유괴를 당해서 그 상황을 가만 지켜보는 예린이는 궁금했다. 새엄마가 울며 불며 자신을 찾을까, 아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잘 살아갈까. 자신을 찾으면 진짜 엄마로 삼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새엄마로 남을 거라고 다짐했던 예린이에게 새엄마는 그저 새엄마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거기에서 새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을까? 그저 새엄마는 유괴당한 줄 몰랐던 것뿐이라며 오히려 합리화까지 시켜주다니... 아마도 예린이는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뻔한 것도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한동안 날라리였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새엄마의 딸 채아에겐 극성맞을 정도로 챙기지만, 예린이가 일진에 들어갔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도 없이 돈만 달라는 대로 줘버리는 새엄마를 보면서도, 왜 예린이는 그것이 무관심이고, 방치인지,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할 사랑을 찾지 못하는지, 왜 그리 멍청한지, 왜 그리 바보같은지 몰랐다. 왜 좀더 약게 굴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기대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왜 자신을 그리도 버려두는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장면, 패싸움으로 돌아온다. 아! 내가 얘기를 안 했다. 패싸움에서 예린이가 칼을 맞았었는데...
왜 칼을 맞았을 때에서야 진짜 엄마가 울면서 소리지르며 뛰어오는지가 보이고, 새엄마는 전혀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 게 보이는 건지...
그야 어떻게 알겠어? 처음부터 사랑을 받아야 할 때,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는데, 그래서 사랑이 뭔지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아이가 그런 지경으로 갈 때까지 무엇을 했을까, 부모라는 작자는. 나도 중고등학교 때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봤다. 그들과 친해본 적이 없어 그들의 가정사까지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을 못 받았다거나 잘못된 사랑의 표현만 알고 지낸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낳으려고 준비했건 안 했건간에 부모가 된다면 모든 부분에서 좀더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사랑을 못받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상처주는 걸 합리화해선 안되는 거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평생 가슴 속에 허전함이 있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대물림되면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봐라~ 한 생명이 안타깝게도 꺼져버렸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