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난부 야스히로 지음, 아이하라 코지 그림, 한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정신없이 보고 있으면 아아~ 하고 이해는 가는데,

책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난부가 말한 것처럼,

철학은 답을 찾아내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미 주인공 히로시와 돼지 씨는 수많은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깨달은 반면,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던 나는 무언가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찾아가기보다

히로시와 돼지 씨의 만담을 읽으면서 뭔가 결론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을 뿐이니 당연히 내 머릿속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 밖에.

그나마 철학은 답이 있지 않고,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진리가 내가 겨우 찾아낸 무언가이다.

 

이제껏 철학책을 보면서 여러 사조들이 머릿속에 정확하게 정돈되어 있길 원하고 그것을 추구했던 나는,

요렇게 스스로 생각하길 기다려주고 문답식으로 잘못된, 아니 모순된 생각을 집어주는 책을 만나지는 못했더랬다.

철학을 일반 범인들은 범접할 수 없이 드높고 고결한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였을테지만

그런 책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라면 이유다.

그래서 몇 번을 읽었음에도 이 책의 본질은 잘 꿰뚫지는 못하였다.

허나 히로시와 돼지 씨의 많은 문답 중엔 내가 했을 법한 질문과 답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겐 히로시처럼 자신의 말에 반대를 해줄 돼지 씨같은 존재가 없어서 혼자 헤매야 될 시간들이 많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길잡이를 찾아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그 유명한 헤겔의 변증법을 아시는지.

이 만화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틀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 즉 정과 반 사이에서 합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화만 반복적으로 보고 있으면 헤겔의 변증법은 완벽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히로시가 자신이 사는 이유에 대해 말하면 바로 돼지 씨가 히로시의 의견을 반박한다.

그러면 다시 히로시는 돼지 씨가 말해준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재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다가 실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에 빗대어 설명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정반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다만 내가 일본 가수들을 몰랐던 게 문제라 된다면 되겠지만.

 

또 가만 보고 있으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또는 산파술이라는 게 연상되는데,

질문을 통해 그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걸 깨우쳐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히로시가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면,

돼지 씨는 "확실히 행복을 꿈꾸고 좇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것은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 버리지.

왜냐하면 행복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다시 히로시가 "절대적인 행복을 위해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면 

돼지 씨는 절대적인 행복은 없다고, 그것은 그냥 뇌 속에 마약 물질이 넘쳐나서 해롱거리는 것뿐이라고 잔인하게 통보해준다.

이런 과정이 꼭 만담처럼 보여 상당히 재미도 있지만,

그 자체가 철학적인 논조를 띠고 있기에 읽고 있다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도 좋을 것 같다.

앞서 서문에서도 나와있듯이 먼저 만화만 읽고 나서 나중에 글과 만화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는 데 더 낫다.

나는 꼼꼼하게 만화와 글을 먼저 봤더니 해설에 의지하려고 하는 나약한 인간의 습성 때문에 내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윤리 시간에 부교재로 쓴다고 하니 앞으로 철학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연예인 자살 사건이나 온갖 패륜적인 범죄 사건이 넘쳐나

아이들에게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 터인데

우리의 실정을 담은 4컷 만화 윤리 부교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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