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알아야 할 청소년기의 뇌 이야기 - 교육과 미래 2 아로리총서 2
S. 페인스타인 지음, 황매향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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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청소년기’하면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를 말할 텐데 나는 중학생 때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서인지 심하게 사춘기를 겪진 않았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완전히 개망나니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참을 수 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짜증을 내는 날, 끊임없이 참아주셨기에.


실례를 들어보면, 한번은 학교선생님한테 열 받는 일이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일장연설을 하면서 막 흥분을 했었다. 어떻게 선생님이 그럴 수가 있냐면서... 열심히 들어주시던 우리 엄마, 마지막에 딱 한 마디를 했다. “얘, 그래도 선생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셨을 거야. 너무 열 내지 말고 참으렴.” 그 말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다 꺼져들어가는 흥분을 한순간에 되살리면서 어떻게 엄마는 선생님 편만 드냐는 둥, 엄마가 이러면 안 된다는 둥 정말 호되게 엄마를 몰아댔다. 얼마 후에, 이와 똑같이 선생님의 험담을 했을 때는 엄마가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내 반응은 또 달랐다. 어떻게 선생님의 험담을 할 수가 있느냐는 둥, 엄마는 사람이 왜 그러냐는 둥...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아마 내 모습을 녹화해서 보여주었다면 나도 나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변명을 하자면, 그 땐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청소년의 뇌를 들여다보면, 그 당시 내가 한 말이 맞다. 성인들은 정보를 파악할 때 논리적이고 반성적인 영역인 전두엽을 사용하는 반면, 청소년들은 감정의 중추인 편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내용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파악한다. 그러니까 아까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선생님의 험담에 동조하거나 아이를 훈계하기 보다는 그저 아이의 감정에 공감을 표시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인정하고 있다는, 그것 하나만 바라기 때문이라니까 과도한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 것이 낫겠다.


청소년은 자칫 잘못하면 깨져버리는 유리컵처럼 아주 예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아기 때 만지고 물고 빨고 하는 모든 물건으로 사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청소년기에 행하는 비이성적인 행동들은 모두 두뇌를 사용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도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기에는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영아기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발끈 화를 낸다거나, 눈물을 글썽거린다거나, 극단적으로 생각해버리는 통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그렇기에 방긋방긋 웃거나 울기만 하는 영아기 때와는 극단적으로 다르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거쳐야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더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부모님들은 미리 포기를 해버리고 무조건 참아주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청소년들을 대하고 방법이라고 하는 게 “참아주라”는 아주 수동적인 방법 말고는 없기에 책을 보고나서도 암담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사춘기’라는 병에 걸렸다는 생각을 미리 해버리면 다른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이 그나마 줄어들 테니 그렇게 조심스레 지나가야겠다. 하긴 내가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난 정말 할 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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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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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TBWA KOREA라고 하는 광고회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을 향합니다>, <현대생활백서>, <생각이 에너지다> 등등의 세상에 화젯거리를 던지는 광고회사이다.

그 광고회사의 신입사원 일곱 명이 똘똘 뭉쳐 “청바지를 읽어라”는 박웅현 ECD의 요구에

부응해 제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신입사원들의 열정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펴냈다는데, ‘청바지’라는 소재 하나로 세상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까무러칠 거다. 그만큼 신선하고 역사 깊은 청바지 보고서, 아니 청바지의 세상 점령기라 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옷장 속에서 청바지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힙합에서 프리미엄진, 롤업진 등 여러 종류의 청바지가 구비되어 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은 청바지가 입고 싶어서 용을 쓸 때가 있었다. 20대 초중반이 되니, 청바지가 어찌나 섹시하던지,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보다 나는 딱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내주면서도 간지가 살아나는 부츠컷 청바지가 더 섹시해보였다.

 여기에는 당근 하이힐이 빠질 수 없다. 부츠컷 청바지에 하이힐을 신고 나가는 날에는 왠지 자신감이 넘치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나에겐 청바지는 무슨 일이든지 잘 되기를 비는 주문 같은 것이 아닐까. 

 

섹시해보이게도, 자신 있어 보이게도 만들어주는 현대인이 필수품인 청바지는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이 서부 개척시대 때 작업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내용은 얼핏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색은 청색이 아니라는 이야기나, 누가 만들기 시작했고 무엇이 더 보완되었는지는 몰랐는데 정말 자세히, 그리고 감각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더 이상 책이 아니라 광고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먼저 청바지의 기원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청바지는 천막에서부터 시작한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 금광을 캐기 위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은 천막이 필요했다.

그래서 천막을 공급했던 한 상인이 해어진 바지를 기우는 노동자와 물이 새는 천막천을 보고선

 그 천으로 바지를 만들면 튼튼하고 좋겠구나 생각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청바지의 시초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지금의 청색의 청바지가 아니라 천막천이 흰색이거나 흐린 갈색천이었기에

바지도 백바지나 갈색바지밖에 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때가 타는 걸 보완하기 위해 값싼 인디고 블루라는 염료를 가지고 염색을 시작해서

점차 사람들은 노동자의 색이 청색이라고 인식하게 되며, 청바지는 노동자의 옷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트 집단을 화이트 칼라라고 말하고, 노동자 계급을 블루 칼라라고 말하나보다.

그것이 작업복의 색깔이었으니까.

 

잘 해어지지 않기에 옷으로 만들었던 실용성의 대명사, 청바지는 미국의 역사와 함께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단순히 튼튼한 옷을 위해서 만들었다가 그것이 대량생산이 가능하자 미국의 실용주의를 대표하게도 되었고,

미국이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부를 생산한 후에는 전세계에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도 사용되었다.

잘 살고 많은 나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미국이 즐겨 입는 청바지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른 나라에게 매력적이었으리라.

그리고 또 있다. 반항의 대표 아이콘인 제임스 딘 같은 스타들이 입은 모습만으로 청바지에는 ‘반항’이라는 상징도 가진다.

 

그러다가 보헤미안과 부르주아를 섞은 개념인 ‘보보스’라는 세력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이들은 돈은 많으면서도 돈을 추구하진 않고, 엘리트이면서도 엘리트를 비판하는 아주 모순적인 세력이다.

나도 처음 들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 뜨고 있는 분야인 IT산업을 본다면 ‘보보스’라는 계급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열정을 투자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따라온 계급들,

그렇기에 체면이나 교양을 보여주기 보단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데 돈을 쓴다.

그들이 즐겨입는 옷이 바로 청바지인데, 그래서 청바지를 공식석상에서도 입기 시작했다.

큰 무대에서 청바지를 입은 빌 게이츠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듯이

‘보보스’ 덕분에 이제 청바지는 공식적인 행사에도 올라갈 수 있는 옷이 되어버린 것이다.

 

노동자의 옷으로, 실용의 대명사로, 미국의 아이콘으로, 반항을 상징하는 옷으로,

공식석상이나 섹시한 옷차림으로도 마음껏 바뀌는 옷,

청바지는 아마도 앞으로 천 년이 지난 이후에도 지구에서 살아남아 존속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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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금나나 외 지음 / 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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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언젠가 TV에서 '금나나'란 인물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본 것이라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과학고를 나왔고, 경북대 의예과에 들어갔는데, 살을 좀 빼니까 이쁘다며 아빠가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고 하셔서
얼결에 나갔다가 '진'이 되었고, 그래서 내친 김에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준비하던 차에
세계 무대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개월만 준비해서
하버드에 들어간 이야기정도를 알게 되었다.
 
우리 인생살이가 공평하려면, 공부를 잘 하면 얼굴이 못 생겼던가, 얼굴이 예쁘면 공부를 못하던가
좀 이런 균형이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금나나 씨는 참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많이 살 수 밖에 없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천재여서 아무런 노력없이 그 자리에 올랐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학고 시절 때부터 생겨난 폭식 습관이나 초콜릿 중독은 공부에 대한 엄청난 압박에 대한 부작용이니,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녀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많은 찬사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매년 미스코리아를 유심히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과학고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녀를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다만 이런 텔레비전에 간혹 나오거나 이렇게 책을 좀 내줘야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책에는 앞서 내가 소개한 이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에서 공포스러웠던 첫 시험 결과는 올 A였고, 졸업을 할 땐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쿰라우데'를 받았으며,
한동안 미국 시민권자가 되지 않고서는 의사의 길을 갈 수 없는 미국의 현실에 부딪쳐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그 시련을 이겨내고 컬럼비아대학원으로 다시 도전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 몇 개월 공부하지 않고 하버드대에 붙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내공을 지닌 사람, 대단한 기본기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니 하버드엘 다 가지~ 하며, 아주 당연한 기정사실로 생각했었던 게 내 첫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주 지옥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좀 신기했다.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에 나보다 조금만 잘 해도 대단해보이는데 그런 사람이 힘들다고 하다니~~
듣는 영어 때문에 큰 고생을 했고, 이과 계열이다보니 에세이쓰는 숙제와 시험이 거의 공포물이었다고.
그런 것을 룸메이트에게, 담당 조교에게, 교수에게 매일같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사생결단으로 매달렸단다.
그러니 그녀가 동아리 생활을 제대로 했겠나, 봉사활동을 제대로 할 수나 있나, 심지어 한국인 유학생 모임조차 갈 수가 없었다.
남들은 두세 시간이면 뚝딱 써내는 에세이를 그녀는 한달에 걸쳐서 했으니까.
처음엔 관련 참고문헌을 단어를 찾아 읽고, 어느 정도 파악했으면 다시 비판적으로 읽고, 그 다음에 띄엄띄엄 쓰다가,
그것을 친구들에게 문법 오류를 지적받은 다음, 그제서야 조교에게 가서 다시 헛점을 지적을 받은 식으로 한 문단씩 진행해 나갔단다.
절대 그녀가 겉모습처럼 우아하게 갔다가 우아하게 졸업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하버드 유학은 그런 삽질정신으로 만들어간 그녀의 생존기였으니.
 
'은근'과 '끈기', 한국인을 설명할 때 많이 붙이는 수식어이다.
끈기라...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땐 그렇겠지만, 금나나, 그녀에겐 한계가 없다.
은근이라...에너지의 소비가 심한 뜨겁고 열렬한 열정보다는 꾸준히 노력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은근'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
어렸을 적부터 목표가 살아온 낙이었던 금나나 씨에게 이번 하버드 생존기는 아마도 '은근'을 배울 수 있게 하지 않았나 한다.
자신의 목표에 무작정 달려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목표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박한지 재조정할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니까. 
그녀가 의과대학원에서 제일 처음 면접을 봤던 보스턴 의대 면접관이 말한,
"당신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네요~" 이 말은 나도 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하고 다짐을 하더라도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을 살려서만은 아니라
그 어떤 직업을 가질 때도 그것에 대한 자신감, 그것에 대한 광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라고는 자신감과 기쁨, 그것을 찾았다는 벅한 희열이 아니라
빨리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봐야 겠다는 도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한 달만에 무리하게 써써 낸 70개의 에세이도 그렇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준비된 학생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을 그것에 올인했으니, 아쉬움이 클 수도 있지만, 지금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실패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이런 기회를 맞아 금나나, 그녀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인재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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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과식하는가 - 무의식적으로 많이 먹게 하는 환경, 습관을 바꾸는 다이어트
브라이언 완싱크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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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반적인 다이어트 책이라기보다는 주도면밀하게 세운 가설을 증명해가는 실험 결과를 모아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많다.

누구나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다이어트 방법을 추천하기보다 여러 증명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하는 책이다 보니, 마치 자체적으로 세뇌를 당한 것처럼 수긍이 가고 이 정도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럴려면 주도면밀하게 내 주위 식환경을 파악해야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음식에 대한 결정을 200번이나 내린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대화나 좀 더 중요한 사건들 때문에 충분히 식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기에 우리는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그릇에다 먹었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이런 부분에 다이어트 방법이 숨어있으니 꼭 눈을 크게 뜨고 볼 일이다.

 

몇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칼로리를 대신 양으로 식사량을 조절한다.

우리는 음식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먹는다.

우리는 좀 더 큰 포장에 들어간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유명한 라벨이 붙은 와인, 비싼 가격표가 붙은 와인이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얼만큼의 양을 먹었는지 안 보이기에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배가 차는 것과 같이 내적인 요소로 먹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릇에 담아져 있는 양 같이 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먹기를 멈춘다. 

우리는 길고 가는 유리잔보다 낮고 뚱뚱한 유리잔이 더 적게 들어간 걸로 보인다.

우리는 큰 그릇에 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더 많은 음식을 담는다.

우리는 다양해 보이는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캐비넷에 올려놓은 초콜릿보다 책상 옆에 있는 초콜릿을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그 음식을 먹는데 수고를 적게 할수록 많이 먹는다.

우리는 식사할 때 다른 사람을 기다려주면서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는 좀 더 오래 머물러 디저트를 더 많이 먹는다.

우리는 멋진 이름이 붙은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낀다.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의 기억으로 그 음식의 맛을 평가한다.

우리는 '저지방', '라이트'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더 많이 먹는다.

 

대충 이 정도인데, 가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한 이야기다. 난 보면서부터 그렇다고 수긍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주위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걸 인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는지 같은 내용에 관련된 실험을 몇 번이나 해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많다. 영화를 볼 때도 무의식적으로 먹게 되는 팝콘도 큰 사이즈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걸 보면 식욕을 참기란 정말 어려운 듯 싶다. 역시 옛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견물생심!!

 

그런데 저자는 이 실험 결과를 가지고 응용을 하면 쉽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무리하게 안 먹거나 운동을 많이 해도 살이 빠지긴 하겠지만 그것을 오래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루 먹는 양에서 100칼로리만 덜어내는 식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앞서 나온 실험 결과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보이면 많이 먹게 되는 것이지, 양이 안 차서 많이 먹게 되지 않았다. 그러면 매번 식사를 할 때 평소의 양보다 10분의 1 정도만 덜어내는 식으로 먹으면 공복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살이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큰 그릇에다가 담지 말고 작은 그릇에 넘치듯 담으면 무의식중에 많이 먹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배가 안 고프게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이나 초콜릿은 아예 사지 말던가 사더라도 작은 사이즈로 사고 지하 창고나 찬장 깊숙이 집어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게다.

 

액체는 긴 유리잔에 담아서 많아 보이게 만들면 조금 먹게 되니까 그것도 좋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 나보다 천천히 먹고 적게 먹는 사람 옆에 앉아서 그 사람과 속도를 맞추는 노력도 한다면 빨리 먹어 많이 먹게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닭다리를 먹을 때는 다 먹고 남은 뼈를 통에 담지 말고 식탁 위에 보이게끔 쌓아두면 많이 먹었다고 생각해서 멈출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위 환경을 조금만 바꿔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니까 지금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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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 -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학교, 키노쿠니
호리 신이치로 지음, 김은산 옮김 / 민들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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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수업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 실패할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하는 학교가 일본에 있다. 바로 키노쿠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이런 창의적인 학교가 일본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질투나게 여겨졌었는데, 

일본의 학교교육이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한 걸 놓고 본다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싶다.

요즘 한국 학교교욱도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키노쿠니어린이마을 같은 학교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키노쿠니어린이마을은 서머힐학교을 창시한 니일의 사상에 깊이 매료된 호리 신이치로가 설립한 학교다.

'서머힐'이란 말은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종의 대안학교다.

처음에는 마음에 병이 있는 아이들만 받은, 작은 학교로 시작한 서머힐은 지금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하나의 시범학교가 되었다.

일본인 중에서도 서머힐을 졸업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서머힐'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대학 2년 때였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과제물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띄인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내 눈에도 완전히 별천지로 보였었다.

물론 심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니일이었기에 가능한 시도였겠지만, 그런 내용을 보고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거길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다.

 

이번에 본 키노쿠니는 니일의 사상에 듀이의 사상을 좀 더 가미했던 야심작이다.

아이들이 출결의 자유를 보장받고, 체벌이 없도록 한 니일의 사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업을 주입식으로 받지 말고

놀이 위주로 하면서 그 속에서 배움이 자라도록 하자는 게 그 주요 골자이다.

그래서 탄생한 학교가 바로 키노쿠니이다.

니일의 살아생전에 몇 차례 서머힐에서 가서 그를 만났던 호리 신이치로는,

"자네도 학교를 만들어야지?" 라고 물었던 니일의 질문에, 얼떨결에 "네, 그래야지요~" 라고 대답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니일의 사상을 접한 순간부터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온 것이 아닌가 한다.

먼저 니일의 사상을 많이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모아 4년에 걸쳐 학교를 설립했다고 하는데,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처럼, 학교 부지가 들어설 마을 이장님부터 문공부까지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단다.

 

이제는 중학교와 국제고등전수학교를 잇달아 열었으며,

키노쿠니를 본따서 만든 카츠야마어린이마을초등학교도 설립되었다고 하니, 그 위세가 많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부모와의 마찰로 그만 둔 아이들이 많았단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그만 두면서도 어이없는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숙사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아서, 구구단을 못 외워서, 기초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에

많이들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많이들 보러 오시고 많이 이해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그런 점은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또 모른다. 누가 또 어떤 말로 트집을 잡으며 그들의 고귀한 일들을 망칠지 말이다.

호리 신이치로가 말하기를, 부모가 사랑을 많이 받고 컸는지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대하는 게 다르다고 한다.

부모가 먼저 사랑을 많이 받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숙한 점을 자신의 것으로 투영시켜서 아이들의 미숙함을 참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통계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일본 초등학생들이 스스로에게 갖는 부정적인 생각은 거의 반 이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하니까 정말 심각하다.

그런 부모도 이런 키노쿠니에서 아이들의 생기넘치는 모습을 보고 변화하길 바란다.

이 학교는 중간 방학을 활용을 많이 하기 위해 국경일은 쉬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업 모습을 부모가 참관할 수 있게 한다는데 정말 획기적인 방안인 것 같다.

 

학년 구분이 없고, '선생님'이란 호칭이 없고, 기초학문보다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놓고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처음에는 정신 산만할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상당히 잘 짜여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의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어른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수업이나

프로젝트를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회의가 열린다. 처음에는 의견도 충분히 나오지 않았는데

다수결로 해서 이기고 진 것에만 신경을 썼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진지하게 논의해보고 생각을 하는 모습을 바뀌었다니 정말 부럽다.

그리고 모든 프로젝트와 자신의 수업을 점검하는 것도 아이들 스스로 한다.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면 그것을 다시 고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의기소침해지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를 하고, 나중에는 그 결과물을 잡지로 만들어 판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더욱 열심히 한단다.

워드를 치는 것, 인쇄를 하는 것, 편집을 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 스스로 하고,

박물관을 짓는다거나 미끄럼틀을 세운다거나 노천목욕탕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도

모두 회의를 거쳐 결정되고 원하는 아이들이 하나씩 프로젝트를 맡아서 만들기 때문에 의욕도 좋고 아주 능숙하다고.

 

키노쿠니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상당히 성숙하다는 말이다. 특히 활동도 많고 위험한 기구를 사용하는데도

다치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조작을 한다고 하니 인상 깊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칠까 봐 아예 처음부터 못 만지게 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키노쿠니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할 자유를 주고, 책임은 대신 지어준다.

호리 상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를 갖되, 그 결과에도 책임져~" 란 말은 위협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

아이들은 실패할 기회를 갖되, 어른들은 그것에 탓하거나 훈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시 고쳐보겠단 의욕을 갖게 된다.

정말 아이들을 잘 파악한 것 같다. 어떨 때는 실패한 것을 보여주러 올 때도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없어야 실패도 많이 하고, 그래서 성공에 더 가까워지니까...

 

이런 긍정적인 면에 반해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기초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하지만 기초라고 하는 개념이 부정확한데다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선 주요과목을 전반적으로 잘하는 것은

사실상 아이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호리 상의 신념에 따라 그런 우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게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그런데 그런 호기심이 학습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 것은 학습이 단조롭고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키노쿠니는 활동을 통해 예를 들어, 미끄럼틀을 만든다고 하면, 합판은 몇 미터가 있어야 하고 받침대는 얼마큼의 폭으로 하며,

며칠이 걸릴 까 하는 것도 모두 계산을 하게끔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공부를 재미있게 알아간다.

깊이 있는 공부는 어차피 대학에서 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의 기본 호기심을 유지해주면 많은 활동을 스스로 하게끔만 해준다면 더 이상은 필요없을 것 같다.

독일의 영재를 낳은 칼 비테 목사도 아이를 공부시킬 때는 하루 세 시간을 넘지 않고, 한 번에 30분을 꼭 지키게 했다고 한 것처럼,

과도한 실내 교육은 문제가 많다. 우리 공립학교도 이러면 좋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일단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담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일단 사립학교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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