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장을 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까지 결코 책을 놓을 수 없다던 이어령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차인표의 소설은 참 읽기가 쉬웠다. '~했습니다'로 끝나는 터라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해서 나 나름대로 어떻게 바꿔볼까 고민도 했더랬지만, 읽고 있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그의 소설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군데군데 몰입하지 못하기도 했다. 차례(3. 조선인 여자 인력 동원 명령서)에서 느껴지는 비극의 예감 때문에 그 내용의 결말이 몹시 궁금해서 이 모든 이야기의 서술자 역할을 하는 아기 제비에게 좀 신경을 덜 쓴 탓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제비를 '물 찬 제비'라 부르고, 하늘을 담은 천지에는 봉우리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는 서정적인 향취에 푹 빠지지 못한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잘가요 언덕'이 왜 '잘가요 언덕'인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으니까~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중략)...

"모르겠어. 용서를 ...... 어떻게 하는 건지. ...(중략)...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용이의 얼굴은 깊은 외로움을 머금고 있습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p.178)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순이와 용이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구나,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단어, 엄마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이 책은 엄마가 아니라 용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용서를 하는 이유는 용서를 빌 대상이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그가 빌지 않아도,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른 나아쁜 놈이 전혀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안해도, 내가 엄마를 보고 싶으니까, 내게 엄마가 소중하니까 하는 거라는 그 말. 그 말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용서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나름 자기위안을 하며 살아왔었는데, 그게 아니였다니~ 내가 용서를 하지 못하면 잘못을 저지른 그 사람보다 내가 엄마별을 볼 수가 없는 것이라니. 모든 엄마들이 모여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별을, 당분간 직접 안아줄 수 없어서 따뜻한 별빛으로 대신 안아주는 엄마별을,  나중에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엄마별을(p. 60) 말이다.

 

예상했다시피 이 이야기는 일제 시대에 일본군들에게 끌려가 강제로 성노예로 살았던 우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까지도 용서와 보상이라는 말은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분노와 서글품을 느낀 차인표 작가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훈 할머니를 보고 우리 나라가 가장 형편 없었던 시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단다. 그 때가 1997년, 초고가 나왔을 때가 2001년. 그러다가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던 원고가 소실되어 버린 채로 잊고 지내다가 2006년 봄에 다시 쓰기 시작해서 2008년 여름에 탈고한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몹쓸 짓을 한 파렴치한 사람들의 범죄를 낱낱이 고발해 죄인들을 골탕 먹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썼었는데, 초고가 유실되는 바람에 10년이나 지나고 나니까 이젠 할머니들이 그들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고~ 구원은 용서에서 온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1151860_12"> 

물론 그들의 짓거리는 천인공노할 일이긴 하지만, 그러고도 덮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억눌려 지내지 않기 위해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 규명을 해서 그들의 과거를 후손들에게 낱낱이 고하고 사실 인정은 별도로 해야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일에다가 감정을 붉히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 엄마별을 위해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정확한 표현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몹쓸 일을 당하신 우리 할머니를 가리켜 흔히 정신대라도고 많이 부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네이버 사전을 보니,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시대 노동인력으로 징발되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혼용되어 쓰이는 용어가 종군위안부()인데, 이는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위안부라는 의미로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감추려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라 현재는 쓰지 않고,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로는 한국,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UN 등 국제기구를 포함한 영어권에서는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이다. 사실 규명은 사실 규명대로 해야 하지만 일단 인간으로서는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 나라가 더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차인표 작가는 그 점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우리에게도 잊혀져 가는 불쌍한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은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이 작가로서 첫 번째 소설이지만 앞으로는 또 무슨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내심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의가 전하는 건강 이야기 - 현대인을 위한 눈높이 한의학
김이현 지음 / 가치창조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명의가 전하는 건강이라고라~~~ 명의라고 해서 한의사, 양의사인지 갸웃했으나(표지의 한약 달이는 기구가 안보였다^^;) 읽어보니 바로 한의사인 것을 알았다. 정말 주~욱 훑어보니 이런 책 하나쯤은 각 가정에 비치해놓고 때에 따라 처방해서 사용하면 용이할 듯 싶다. 나도 한약을 몇 번 복용을 해보았는데, 한의사에게 미처 못 물어봤던 것이 있을 땐 정말 난감했었다. 한약을 먹을 땐 무와 돼지고기는 먹으면 안된다던지 하는 금기 사항은 또 왜 그리 많은지... 한약을 잘못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다는 악성 루머 때문에라도 한약은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까 바르게 알아서 근거없는 두려움에 떨지 말아야 겠다. ㅋㅋ

 

내가 고등학생 쯤에 진맥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손목 하나 잡았을 뿐인데, 배가 차다는 거, 몸이 허하다는 거 등등 내 안 좋은 점을 쏙쏙 뽑아주는 게 너무 신기했었다. 그래서 그에 맞게 한약을 지어가지고 와서 먹고 났더니 그 당시에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생겼던 증상이 없어졌던 걸 기억한다. 그런 이유로 침이라든지 한약이라든지 하는 것은 내겐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예전엔 먹기 싫어서 도망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엔 몸에 좋은 것이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 시늉을 할 정도라 한약은 없어서 못 먹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민간요법 중에서는 바르지 않은 내용도 많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약을 먹을 땐 녹두를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 난 들어본 적도 없는 루머이지만 어쨌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단다. 그래서 명의가 바르게 추천하는 방법을 알아두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나 이 책에는 한약 복용법, 한약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 한약 중독 증상 판별법, 명현 증상 판별법 등.. 한약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귤껍질의 이용법, 마늘의 효능, 녹두의 효능, 인삼의 효능 등..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해 바르게 알 수가 있고, 지방간 대처법, 당뇨병 대처법, 설사 대처법, 변비 대처법 등.. 온갖 병에 대해서도 쉽게 관리할 수 있게 해주기까지 하니 얼마나 기특한 책인지 모른다.

 

우리 집 가족들에게 해당하는 것을 책갈피로 붙이면서 책을 봤더니 5분의 1도 못 가서 다닥다닥 붙어버렸다. 아예 통째로 책을 다 외워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지방간은 인진 쑥과 돌미나리에다가 시호와 감초를 약간 넣어서 물을 붓고 한 시간 정도 달여서 아침 저녁으로 식후에 먹으면 좋고, 인삼은 조금 먹으면 혈압이 올라가지만 많이 먹으면 혈압이 내려간다는 것, 성장기 어린이에게 녹용은 만병통치약 만큼 효과가 좋다는 것(호흡기 질환의 예방, 체력 강화, 머리 활성화), 호박은 칼륨이 있어서 치매 예방에는 좋으나 몸이 찬 사람에겐 안 좋아서 난 먹으면 안 되고, 굴은 철분이 많아서 봄철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좋고, 마늘을 배꼽에 붙이면 대소변이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는 것 등~ 정말 하나같이 우리 집 이야기다. 당뇨에, 고지혈증에, 고혈압에, 변비에... 이런 모든 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듯 싶다. ㅋㅋ 아주 땡~ 잡았는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 델피누스 - 아틀란티스의 돌고래 인간
마를리제 아롤드 지음, 김태성 옮김 / 지양어린이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틀란티스의 돌고래 인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바다에 가라앉은 신비의 섬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모태로 한다. 사실은 전설로만 존재하는 줄 알고 있었던 트로이를 나중에는 실제로 발굴했던 것처럼 아틀란티스의 전설도 실제로 있을 거라고 믿는 나로선 상당히 솔깃했다. 물론 이 소설의 내용상 아틀란티스가 현실에 있을 가능성은 완전 제로에 가깝게 되었지만 그래도 실상 있을법하지 않은가. 그 섬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기에 지금으로선 깊은 바닷속을 탐사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만약 기술이 발달해서 해저 2만리도 거뜬히 왔다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진보가 되면 정말 모를 일이 아닌지~
 
어쨌거나 이 소설은 제목처럼 돌고래로 변신할 수 있는 인간이 나온다.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은 모두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돌고래에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꼭 아틀란티스의 후예끼리만 결혼하지 않더라도 유전 법칙에 의해서 그런 재능을 물려받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으로 나뉘는데 여기의 주인공 마리오와 세일라는 모두 그런 재능을 물려받았다. 아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세일라는 항상 돌고래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열세 살 생일이 되는 자정에 바다에 나갔다가 자신에게 돌고래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울할 일이 있어 기분은 별로였는데, 정말 꿈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가 한 마리의 돌고래를 구해주는데 그게 바로 마리오였다. 마법으로 된 덫에 걸려서 꼼짝을 못하는 돌고래 인간 마리오와 같이 그들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약속하고 나선 바로 마리오의 엄마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게 된다.
 
세일라는 자신이 돌고래 인간인 줄 몰랐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지만 마리오의 경우는 엄마가 돌고래로 변하는 걸 보여줬기에 자신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인간인 아빠한테서도 내침을 당했다. 순식간에 돌고래로 변한 엄마를 보고선 '괴물'이라며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오는 엄마를 괴물이라고 부른 아빠를 어린 세 살부터 미워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마리오는 한 번도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세일라에 비해서는 좀 나은 경우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돌고래 인간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점차적으로 많은 돌고래 인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데, 마리오와 엄마도 주위에서 감시의 손길을 뻗어오는 터라 마음 놓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추적자에게서 도망온 터였다. 그런데 심약한 엄마는 그들을 협박하는 차이돈에게 스스로 가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에~ 강인하지 못한 탓에 마리오에게도 그저 쪽지 하나만을 두고 그냥 와버린 것이다.
 
세상에 엄마 하나밖에 모르고 살았던 마리오는 엄마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 세일라에게 부탁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어허~ 나도 새처럼 마음껏 날아보고 싶고, 물고기처럼 아무런 거리낌없이 바닷속을 유영하고 싶었는데, 정말 부러웠다. 그들이 돌고래로 변해서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은... 엄마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자신을 몰라주는 엄마에 대한 야속함으로 가는 세일라와, 엄마를 위해 목숨까지 거는 마리오의 모험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특히나 아틀란티스라는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런 비슷한 책을 본 게 있는데, 바로 [인어소녀 에밀리 피쉬걸]이다. 그것도 인간이 인어로 변하는 건데 정말 신기하고 부러웠다. 역시 자유롭게 어디론가 가는 것은 정말 부럽다. 워낙에 수영하고는 아무 인연이 없는 인간인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소설은 별로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 중국의 견책 소설이라는 걸 읽었다. 처음 들어보는 견책 소설이란 단어를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다. 견책 소설이란 청나라 말기에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는데, 아편전쟁(1839~1842) 이후 연이은 외세의 침입과 내부가 혼란에 빠지자, 중국 소설은 국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루쉰(迅)은 이러한 소설을 견책소설이라고 불렀다는데, 일부 소설은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특히 시정 폐단의 폭로와 그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의 경향이 두드러진 소설이라고 한다. 저자인 류어는 청일전쟁 시기에 있었던 사람인데, 배운 것은 많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불운한 인물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쇄국 정책이 한창이었던 흥선대원군 시절처럼 말이다. 그 시대에 개화 정책을 지지했던 김옥균, 박영효와 같은 인물이라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는데,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1876년 남경의 향시에 응시했다가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본명은 멍펑(孟鵬)으로, 향시에 낙방하고 난 뒤에 이학(學), 불학(佛學), 금석문(金石文), 의술(醫術), 점복(占卜) 등을 공부하였고, 1880년부터는 태주학파(泰州學派)의 사상에 심취하여 양주(揚州)의 리룽촨(川)을 찾아 사사하면서 그의 사상 체계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그의 소설, [라오찬 여행기]에서 태주학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라오찬 여행기]는 그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던 통로가 아니였다 싶다. 사실은 입맛에 맞는 쉬운 소설만을 읽다가 이번에 조금 어려운 투로 쓰여진 이 책을 읽으니까, 중간 중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장면도 적지 않다. 아쉽게도 말이다. 하지만 루어의 유일한 소설이라는데도 그 내용만큼은 어색함이 없이 잘 전달해준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소설이 가지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일 게다. 시대를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말이다.

 

이 소설은 [라오찬 여행기]라는 제목처럼 라오찬이라는 떠돌이 의사가 여러 동네를 유람하고 다니다가 보고 듣고 겪은 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우리도 객관적인 시선을 각각의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라오찬은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서민들을 많이 구제하기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를 나름 만족시켜 주었다. 라오찬이 근본적인 병폐나 가혹한 혹리들를 좀 더 때려부수는 이야기가 많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일이 관리가 아닌 라오찬이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늙고 힘없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라오찬(老殘)이란 이름을 주인공에게 붙여주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왕조가 망해갈 때쯤에는 인심이 흉흉해지고,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도 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21세기라 부르는 요즘에도 생계형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갓난쟁이 우유값이 없어 도둑질을 하는 아기 아빠나 아기 엄마를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동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애끓는 부정, 모정으로 어찌 갓난쟁이가 굶는 모습을 손 놓고 그저 바라볼 수가 있단 말인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일단 자식의 입에 뭔가를 넣어줘야 한다는 것은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청렴결백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계형 범죄자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혹리들이 있다. 바로 위센과 깡삐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관리들인데, 그들은 청렴결백하다는 자부심만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혹독하게 백성들을 탄압한다. 실제 '혹리'란 뜻은,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법술만을 신봉하여 모든 일을 법령에 의거하여 혹독하고 무자비하게 시행한 관료을 말하는데, 백성을 사랑과 온정으로 통치하던 관료를 지칭하는 순리()에 대응하는 말이다. 순리가 유가()의 온정주의()에 입각하여 통치한 관료라면 만사를 법령에 의거해서 통치한 혹리는 법가사상에 의지하고 있어서 범죄가 일어났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 그것이 끔찍한 고문일지라도, 어떤 조그만 꼬투리만 있으면 덮어씌울지라도 -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형틀에 죄인들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정치를 잘 한다고 나름 생각하고 위에서도 인정을 해준다니 정말 대단한 철판들이다.

 

이런 소설은 정말이지 우리같은 서민들도 봐야겠지만 관리들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시나 관리가 정치를 잘못하면 죽어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같은 서민들이니. 정말 100년도 더 된 소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건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쩜 그리 변할 게 없을까란 한탄뿐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데, 이 소설을 보면 누가 말했듯이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아이구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한 밥상 이야기 - 거친 밥과 슴슴한 나물이 주는 행복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의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이 착한 밥상일 텐데, 난 착한 밥상을 좋아한다. 거친 밥과 슴슴한 나물이 주를 이루는 밥상이야기를 윤혜신 씨가 책으로 펴냈다. 시골에서 <미당>이란 밥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윤혜신 씨는 40년 동안 도시 생활하면서 마음 놓고 살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그렇게나 알차게,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게는 없었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겨나는 듯도 하고, 내가 어렸을 적 방문했던 외할머니댁에서의 기억들도 새삼스레 모락모락 생각난다. 내 외가는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오히려 더 큰 도시여서, 내겐 소, 돼지, 염소, 닭, 개, 고양이 등의 동물들과 조우하지도 못했었고, 여러 농작물 사이에서 얻는 기쁨도 느끼지 못했지만, 우리가 내려갈 때마다 해주시던 강정만큼은 잊지 못한다. 외가가 도시로 이사만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엄마를 보면 엄마가 어렸을 적 즐겼던 그런 푸르런 들판과 온갖 동물들과의 경험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마다 이, 삼일 정도의 아주 짧은 체류 기간동안 경험했던 외가 생활은 낯설고, 어색하고, 무섭기만 한 특이한 경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별히 볼거리가 없어서 만화책만 잔뜩 빌려서 보기만 하다가 온 것이나,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시는 친지들이 무서워서 주춤했던 기억들이었다. 아~ 나도 시골에 외가가 있어서 한 달동안 시골의 기쁨을 맘껏 누렸던 윤혜신 씨 같은 경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할머니의 행동을 따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윤혜신 씨는 밥집을 하기 전에 평범한 가정 주부였는데, 시어머니에게 본격적으로 요리 수업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별로 특별히 배운 것은 없다고 하니까, 아마 요리는 그에게 천성인가 보다. 천성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러운 마음이 앞서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요리에 손도 못 대는 탓이 클거다. 아무리 입맛이 토속적이면 뭐하나, 내가 그 음식을 만들어낼 줄 모르는데~ 내가 만들어낼 줄 모르면 순전히 사먹어야 할 터인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나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토속 음식을 내 스스로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 책은 일반 요리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수필집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아무래도 요리를 못하는 나로서는 일반 요리책보다는 이렇게 읽을거리가 풍부하고 감성을 일깨워주는 요리책이, 요리하는데 두려움을 줄여주고 마음 편히 요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특히나 그녀는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이야기해준다.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게,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려서 요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보니, 자연히 후각이 발달하게 되어 회접시에 나오는 표백제나 항생제 냄새도 아주 민감하게 맡을 수 있다고 한단다. 정말 대단하다~ 회에 그런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은 몰랐는데, 음식이란 정말 민감하게 점검해야 하는 거로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했다. 요즘은 육식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장이 긴 인간으로서는 육식보다는 채식을 해야 한다는 해부학적인 근거를 대지 않고서도 사실 채식이 마음 편하긴 하다. 우리 집에는 육식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먹게 되는데, 그 횟수를 조금 줄이고 다양한 채식의 맛을 즐기면 좋겠다.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신기한 점은 할아버지의 짜게 드시는 식성 이야기였다. 나도 짜게 먹는 것을 좋아해서 나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조선간장이라고 부르는 국간장만을 모든 음식을 넣어드셨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왜간장은 절대 못 쓰게 하고, 오로지 국간장만 썼다는데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이 하나도 없이 평생을 사시다가 어느 날 정신을 잃어 이, 삼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야말로 노환으로 인해 호상이었다. 그렇게 잘 죽는 게 소원인 나로서는 정말 솔깃한 이야기다. 밥, 국, 찌게, 나물, 고기, 심지어 과일에다가도 국간장을 쳐서 드시곤 여름엔 그냥 국간장만 입에 넣곤 맛있다~ 하셨던 분이라니까 정말 솔깃하다. 나도 짜게 먹는 대신에 소금이나 맛소금은 제외하고 오로지 된장과 국간장으로만 간을 내면 병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식이요법을 한다고 모든 음식을 싱겁게 먹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먹는 걸 좋아하고 먹기 위해 사는 나로선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집 식탁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이 방법을 접수했야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반해, 반할 만큼 멋진 그의 요리법은 거의 없다는 거다. 각각의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 한 두개의 요리법이 딸려나오는데 그렇게하면 요리법이 필요할 때 찾아보는 것이 불편해질 듯 하여 불만이다. 그리고 그 양이 너무 적다. 또한 앞서 나온 이야기에서 한 번 언급된 요리들의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연관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엮이기도 했다. 물론 하나같이 그 요리법이 참신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쉽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나물을 좋아하는 나는 먹기만 할 줄 알지, 나물을 구별할 줄 모른다. 봄에 나물을 뜯어놓고 한 해동안 내내 먹어야 한다고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더니만, 산나물을 구별하는 법이라든가, 모양새를 알려주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사진은 있으나 사진에 설명이 붙어있질 않으니, 그것을 어찌 파악하느냐 말이다. 아이구~ 이 책은 나물 고수들만 보아야 하는 걸까나.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아련하게 하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진짜 음식다운 음식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