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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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은 별로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 중국의 견책 소설이라는 걸 읽었다. 처음 들어보는 견책 소설이란 단어를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다. 견책 소설이란 청나라 말기에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는데, 아편전쟁(1839~1842) 이후 연이은 외세의 침입과 내부가 혼란에 빠지자, 중국 소설은 국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루쉰(迅)은 이러한 소설을 견책소설이라고 불렀다는데, 일부 소설은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특히 시정 폐단의 폭로와 그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의 경향이 두드러진 소설이라고 한다. 저자인 류어는 청일전쟁 시기에 있었던 사람인데, 배운 것은 많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불운한 인물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쇄국 정책이 한창이었던 흥선대원군 시절처럼 말이다. 그 시대에 개화 정책을 지지했던 김옥균, 박영효와 같은 인물이라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는데,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1876년 남경의 향시에 응시했다가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본명은 멍펑(孟鵬)으로, 향시에 낙방하고 난 뒤에 이학(學), 불학(佛學), 금석문(金石文), 의술(醫術), 점복(占卜) 등을 공부하였고, 1880년부터는 태주학파(泰州學派)의 사상에 심취하여 양주(揚州)의 리룽촨(川)을 찾아 사사하면서 그의 사상 체계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그의 소설, [라오찬 여행기]에서 태주학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라오찬 여행기]는 그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던 통로가 아니였다 싶다. 사실은 입맛에 맞는 쉬운 소설만을 읽다가 이번에 조금 어려운 투로 쓰여진 이 책을 읽으니까, 중간 중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장면도 적지 않다. 아쉽게도 말이다. 하지만 루어의 유일한 소설이라는데도 그 내용만큼은 어색함이 없이 잘 전달해준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소설이 가지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일 게다. 시대를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말이다.

 

이 소설은 [라오찬 여행기]라는 제목처럼 라오찬이라는 떠돌이 의사가 여러 동네를 유람하고 다니다가 보고 듣고 겪은 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우리도 객관적인 시선을 각각의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라오찬은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서민들을 많이 구제하기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를 나름 만족시켜 주었다. 라오찬이 근본적인 병폐나 가혹한 혹리들를 좀 더 때려부수는 이야기가 많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일이 관리가 아닌 라오찬이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늙고 힘없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라오찬(老殘)이란 이름을 주인공에게 붙여주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왕조가 망해갈 때쯤에는 인심이 흉흉해지고,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도 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21세기라 부르는 요즘에도 생계형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갓난쟁이 우유값이 없어 도둑질을 하는 아기 아빠나 아기 엄마를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동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애끓는 부정, 모정으로 어찌 갓난쟁이가 굶는 모습을 손 놓고 그저 바라볼 수가 있단 말인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일단 자식의 입에 뭔가를 넣어줘야 한다는 것은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청렴결백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계형 범죄자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혹리들이 있다. 바로 위센과 깡삐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관리들인데, 그들은 청렴결백하다는 자부심만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혹독하게 백성들을 탄압한다. 실제 '혹리'란 뜻은,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법술만을 신봉하여 모든 일을 법령에 의거하여 혹독하고 무자비하게 시행한 관료을 말하는데, 백성을 사랑과 온정으로 통치하던 관료를 지칭하는 순리()에 대응하는 말이다. 순리가 유가()의 온정주의()에 입각하여 통치한 관료라면 만사를 법령에 의거해서 통치한 혹리는 법가사상에 의지하고 있어서 범죄가 일어났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 그것이 끔찍한 고문일지라도, 어떤 조그만 꼬투리만 있으면 덮어씌울지라도 -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형틀에 죄인들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정치를 잘 한다고 나름 생각하고 위에서도 인정을 해준다니 정말 대단한 철판들이다.

 

이런 소설은 정말이지 우리같은 서민들도 봐야겠지만 관리들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시나 관리가 정치를 잘못하면 죽어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같은 서민들이니. 정말 100년도 더 된 소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건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쩜 그리 변할 게 없을까란 한탄뿐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데, 이 소설을 보면 누가 말했듯이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아이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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