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장을 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까지 결코 책을 놓을 수 없다던 이어령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차인표의 소설은 참 읽기가 쉬웠다. '~했습니다'로 끝나는 터라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해서 나 나름대로 어떻게 바꿔볼까 고민도 했더랬지만, 읽고 있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그의 소설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군데군데 몰입하지 못하기도 했다. 차례(3. 조선인 여자 인력 동원 명령서)에서 느껴지는 비극의 예감 때문에 그 내용의 결말이 몹시 궁금해서 이 모든 이야기의 서술자 역할을 하는 아기 제비에게 좀 신경을 덜 쓴 탓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제비를 '물 찬 제비'라 부르고, 하늘을 담은 천지에는 봉우리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는 서정적인 향취에 푹 빠지지 못한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잘가요 언덕'이 왜 '잘가요 언덕'인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으니까~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중략)...

"모르겠어. 용서를 ...... 어떻게 하는 건지. ...(중략)...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용이의 얼굴은 깊은 외로움을 머금고 있습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p.178)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순이와 용이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구나,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단어, 엄마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이 책은 엄마가 아니라 용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용서를 하는 이유는 용서를 빌 대상이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그가 빌지 않아도,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른 나아쁜 놈이 전혀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안해도, 내가 엄마를 보고 싶으니까, 내게 엄마가 소중하니까 하는 거라는 그 말. 그 말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용서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나름 자기위안을 하며 살아왔었는데, 그게 아니였다니~ 내가 용서를 하지 못하면 잘못을 저지른 그 사람보다 내가 엄마별을 볼 수가 없는 것이라니. 모든 엄마들이 모여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별을, 당분간 직접 안아줄 수 없어서 따뜻한 별빛으로 대신 안아주는 엄마별을,  나중에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엄마별을(p. 60) 말이다.

 

예상했다시피 이 이야기는 일제 시대에 일본군들에게 끌려가 강제로 성노예로 살았던 우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까지도 용서와 보상이라는 말은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분노와 서글품을 느낀 차인표 작가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훈 할머니를 보고 우리 나라가 가장 형편 없었던 시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단다. 그 때가 1997년, 초고가 나왔을 때가 2001년. 그러다가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던 원고가 소실되어 버린 채로 잊고 지내다가 2006년 봄에 다시 쓰기 시작해서 2008년 여름에 탈고한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몹쓸 짓을 한 파렴치한 사람들의 범죄를 낱낱이 고발해 죄인들을 골탕 먹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썼었는데, 초고가 유실되는 바람에 10년이나 지나고 나니까 이젠 할머니들이 그들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고~ 구원은 용서에서 온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1151860_12"> 

물론 그들의 짓거리는 천인공노할 일이긴 하지만, 그러고도 덮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억눌려 지내지 않기 위해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 규명을 해서 그들의 과거를 후손들에게 낱낱이 고하고 사실 인정은 별도로 해야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일에다가 감정을 붉히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 엄마별을 위해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정확한 표현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몹쓸 일을 당하신 우리 할머니를 가리켜 흔히 정신대라도고 많이 부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네이버 사전을 보니,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시대 노동인력으로 징발되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혼용되어 쓰이는 용어가 종군위안부()인데, 이는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위안부라는 의미로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감추려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라 현재는 쓰지 않고,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로는 한국,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UN 등 국제기구를 포함한 영어권에서는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이다. 사실 규명은 사실 규명대로 해야 하지만 일단 인간으로서는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 나라가 더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차인표 작가는 그 점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우리에게도 잊혀져 가는 불쌍한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은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이 작가로서 첫 번째 소설이지만 앞으로는 또 무슨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내심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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