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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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정말 크게 느낀 것은 천재는 정말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했길래 대학에서 재적을 당하는지도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도 않지만 다시 들어간 대학원에서 그림만 열심히 그리다가 앙데팡당전에 당당히 입상하고 나서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정말 나로서는 오리무중이었다. 제8회 파리 비엔날레에 국가대표로 출품할 사람으로 뽑혔다는데, 조금만 참으면(혹은 현실에 순응하면?) 온갖 부와 영화가 죄다 제 것이 될 것인데 왜 그곳을 박차고 나와야 했던 것인지... 또한 미국문화원에서 그림 전시를 했던 일로 알게 된 미국 대사부인 덕에 세계로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도 그만 박차버리고 나와버렸던 것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사상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속물인 나로서는 내 일도 아닌데 괜히 그 부와 명성이 아깝기만 하다. 앙데팡당전에 당선되었을 때는 자신의 실력으로 뽑힌 것인지, 아니 그 그림이 자신의 욕구와 실력으로 그린 것인지 회의가 들었고, - 진정한 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이니까 주제를 정해줘서 그리는 그런 그림은 자신 본연의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 프랑스의 권위만 높여주는 데에 앞잡이처럼 사용되는 것이 역겨워서 박차버렸고, 실험영화와 그림으로 알게 되어 그림을 처음으로 팔게 해준 미국 대사부인이 누군가를 소개해주었을 때 이 세상을 힘 안 들이고 살아가는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서 관계를 끊어버렸다. 일제 시대 때는 일본말 잘 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자기 배를 불렸다면, 이제는 미국놈 시대이기에 미국말 잘 하는 사람들이 앞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냐구~ 정말 범상치 않은 분이었다. 김점선 선생님은...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김점선 선생님을 나는 이렇게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알게 되다니 내 무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암에 걸려 정신이 파도치듯이 들락거리는 와중에도 <옥단춘뎐>, <숙영낭자뎐>처럼 자신의 책에다가도 '뎐'을 붙여서 출판하길 원했던 김점선 선생님은 이 책을 자신의 전기라고 하셨다. 이제까지 냈던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완전히 다른 특별한 책~~~! 그런 특별한 책을 이렇게나마 일별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책에 중간 중간에는 그림도 삽입되어 있는데 식견이 짧아 내가 좋아할 만한 그림보다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법한 그림이 더 많다. 총 42점의 그림 중에서 14점 정도만 딱 내 마음에 든다. 그림을 좋아하나 특별한 안목은 없는 일반적인 내 눈으로는 아이들이 크레파스를 들고 직직 그린 그림보다도 너 못해뵈는 그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어렵기만 한 추상화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이다. 딱히 김선생님의 그림을 추상화로 분류하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런데 추상화를 어려워하는 나를 옹호해주는 화가가 있어 반가웠다. 김선생님이 만나본 변종하 선생님이 바로 그 분이신데, 추상화에 대해서 한 말씀을 해주셨다.

 

"추상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거야.

글씨를 많이많이 쓰면 초서가 되듯이, 팔십에 이른 운보 김기창이 추상으로 접어드는 것같이,

난 추상 그 자체가 이즘, 즉 어떤 운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추상으로 출발하는 건 머리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대는 일이지."(p. 258)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김점선 선생님이 존경하는 변종하 선생님의 말씀이시니까 바로 김점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외에도 김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는 아주 좋은 게 더 많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려고 한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나아갈 길이 아니다. (...)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안데르센 동화>, p. 99

 

악마는, 악은, 마귀는 엉킨 에너지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버려진 에너지다.

갈고 닦고 보살피면 예술가가 될 힘으로 바뀔 수도 있다.

- <세상엔 왜 악마가 있는가>, p. 96

 

내 몸에 '앎'이 생겨난 것은 내 몸이 정신과 일치한다는 증표다.

이제야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오랜 수양의 결과로 환갑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 <나는 저항한다. 그리고 작업한다>, p. 226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김점선 선생님, 그 분은 정말 싸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내는 투사이셨다. 그런 투사 기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개화(?)시키시고, 쓸데없이 끌어안고 있는 껍데기에서 벗어나라고 해주시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화가는 없겠지만 김점선 선생님만큼 기존의 습성을 과감히 깨뜨려주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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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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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라고 하면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으로 활약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솔직히 나도 그런 유명세에 혹해서 보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도 못 본 채로 말이다. 그런데 어엇! 이거 잘못 선택했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도대체 이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으니 어떻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 있을런지.

 

외양적인 모습부터 먼저 설명을 하자면,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녀와 도마뱀], [외도], [다른 남자], [청완두], [아들], [주유소와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단편의 중심 사건에는 항상 '사랑'이 존재한다. 그게 과연 사랑인지 아닌지는 아직 삶에 대한 경험이 짧은 나로서는 판단하기에 모호하지만 그래도 형태는 어떠하던간에 '사랑'이 존재한다. 노란색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이 단편들을 묘사하는데 근접하다고 느껴진다.

"어느 곳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사랑, 때로는 구원이지만 때로는 영혼을 옥죄는 감옥 같은 사랑"

어느 곳에나 있지만 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기같은 사랑이라니, 구원이었다가 바로 감옥이 되어버리는 사랑이라니... 아니,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어? 그게 어떻게 사랑이야? 사랑은 무엇보다도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아늑한 것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여기에 나온 단편들 속의 사랑은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허전한 그런 덤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엔 단편들 속의 등장하는 남주인공은 남을 사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의 표제작인 [다른 남자]는 아내의 외도 이야기이다. 하긴 대부분의 단편에 한 번쯤 다 등장할 정도로 외도는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외도 이야기도 내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암으로 죽은 아내에게서 낯선 남자의 편지가 오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의 편지 속에서 보게 되어 주인공이 겪게 되는 낯설음과 분노와 질투를 예상했건만, 소설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작가가 아니고 베른하르트가 작가인 것이 틀림없겠지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아내의 남자를 정탐하러 몰래 갔다가 아내의 외도 상대가 허영덩어리이지만 그래도 성실했던 주인공보다는 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고 꼭 뭐에 홀린 것처럼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대주는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고야 만다. 정말 나로선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의 소설을 보면 무미건조한,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보이니... 아직 결혼도 못 해본 나 같은 순진한 여성은 절대 읽지 말아야 할 금서로 지정해놔야 하지 않을까. 이건, 그의 소설만 보면 사랑이 정말 하잘것없어 보이니~~~ 누가 사랑 같은 쓰잘데없는 데에 신경이나 쓰고 싶댔어?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이, '감정의 고고학자'같이 사랑이 무(無)가 될 때까지 파고들어가는 그의 소설은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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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딛고 세상을 향해 뛰어올라라 - 아버지의 인생 수업
송길원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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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먼저 읽고 밑줄 그어 자녀에게 전하는 책'이라는 뜻의 <밑줄북>이란 명칭을 가진 이 책은 말 그대로 인생의 선배이고 항상 강한 남자이고 싶은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픈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낙심할 때, 불안할 때, 실망하고 자신이 부끄러울 때 보호자로서 아버지가 한 마디 조언해줄 만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자인 송길원 목사님이 아주 훌륭하고 완벽한 아버지의 역할을 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신도 미숙한 아버지였기에 그 당시에 미처 말해주지 못하고 솔직하게 개방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공개해주어 이제 아버지로서 첫 발을 내딛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조언을 해준다. 급변하는 이 사회에서 아이들의 양육 방향을 잡지 못했던 아버지들이라면 이런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아마 반색을 할 듯 싶다. 평생을 살아도 '아버지'라는 존재가 되지는 못하는 나로선 조금 거리감이 있긴 했었지만 말이다.

 

과거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아버지들은 마냥 무섭고 어려운 존재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받아온 교육과 풍습과 사회 통념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게 만들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남자는 바깥 일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남자는 아픈 내색을 보이거나 울면 안 된다고... 그러나 남녀의 성역할이 그리 엄격하지 않은 21세기라는 지금의 모습도 우리 아버지를 가족과 가깝게 만들어주진 못하고 있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저 돈이나 벌어오는 기계이거나 휴일엔 낮잠만 자거나 TV만 보는 존재이여서 내 인생에 아무런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과거엔 모든 결정을 가부장인 아버지가 내렸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인생에 대해 결정권조차 찾기가 어렵다. 이런 세태 속에서 아버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사회를 먼저 살아간 선배로서의 귀중한 충고가 아닐까...?

 

[01 꿈에 대하여] [02 성장에 대하여] [03 도전에 대하여] [04 좌절에 대하여] [05 소통에 대하여] [06 행복에 대하여] [07 사랑에 대하여] 등 총 일곱 가지의 주제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 내용을 모조리 쓸어담았다. 제목만 봐도 솔깃할 내용들로 구성해서...  그 중에서 [03 도전]의 "반대세력을 두려워하지 말라" 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아서 슐레진저의 말을 인용하면서 뚜렷한 주관을 세우라고 충고했다. '반대세력을 만들라'는 말은 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신념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빠른 두뇌 회전이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능력 면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자기 절제가 약한 것과 반대세력을 만드는 데 실패한 점 때문에 케네디에 비견될 만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분신이다. 그래서 아마도 자신이 못했던 것을 더욱 잘 해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과거 자신이 못했던 것을 아이들이 똑같이 못하면 어떨까? 자신도 못했으니 못할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줄까, 아니면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될까.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과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을 되돌아보면 후자가 더 많은 것 같다. 못하니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니까 못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필히 아이도 아버지도 모두 다 서로에게 실망만 주고 상처만 받고 만다. 그럴 땐 아무 말 없이 밑줄 그은 이 책을 살며시 건네주는 게 어떨까. 좀 더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책 속 메모란에 살포시 적어서 수줍게 건네주면 아이도, 아버지도 훨씬 행복하게 중요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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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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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서가란 출판사는 사실 잘 몰랐는데, 요런 고전류를 많이 내는 출판사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연암서가에서 나온 [라오찬 여행기]를 읽었었는데, 그 책도 나온 지 100년 정도는 된 책이다보니 쉽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전류를 읽다보면 마음이 참 맑아지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시끄럽고 들썩거리는 버스 안에서 요런 책을 한 장씩 읽다보면 입가엔 항상 미소가 걸리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선비가 쓴 것은 대부분 시가 많아서 이제껏 이덕무, 정약용, 성대중, 이황의 시만 읽어봤는데, 정말 맑고 청아하다.

 

퇴계 이황 선생이 쓴 시를 이장우 & 장세후 교수님께서 아주 쉽게 풀어쓰신 이 책은 [도산잡영]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다. 40대 중반이 되신 퇴계 선생이 이전까지 살던 온혜 마을을 떠나 토계(지금의 도산면 토계동)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라고 짓으셨는데, 그 토계마을에서만 지은 시를 손수 모아 필사해둔 것을 번역한 책이 바로 [퇴계잡영]이라면, [도산잡영]은 도산서당을 짓고서, 그 서당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를 모아둔 자작시 선집이다. [퇴계잡영]과 [도산잡영]을 합하여 [계산잡영]이라고도 하는데, 이 책들은 좀 특별하다. 번역을 맡으신 이장우 & 장세후 교수님께서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 뒤에 다시 산문으로 내용을 풀어놓았기 때문인데, 산문으로 풀어놓은 글이 어렵지 않도록 장세후 교수님의 누이인 동화작가 장세련 씨가 다시 한번 걸려주셨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나온 [도산잡영]도 이런 체제로 번역을 하였다고 하니, 그 책도 꼭 봐야할 성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시리즈물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지 않고 여기 저기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터라 같은 분의 책이 디자인이나 판형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곳에서 나오면 책장에 꽂았을 때 얼마나 멋지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아주 멋스런 양장본인데...

 

[퇴계잡영]이라고 하는 시집의 이름은 퇴계 선생이 지으신 것인데, '잡영'이라는 뜻을 한 번 짚고 넘어가자. 사전을 찾아보고 '잡시'의 뜻에 비추어봤을 때, '잡영'은 "이러저러한 흥취가 생겨날 때 즉흥적으로 읊조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시의 제목을 보면 '~잡흥(雜興, 섞일 잡/일어날 흥)', '~서사(書事, 글 서/일 사)', '~우흥(偶興, 짝 우/일어날 흥)', '~감사(感事, 느낄 감/일 사)', '~즉사(卽事, 곧 즉/일 사)', '~우감(寓感, 살 우/느낄 감)', '~흥(興, 일어날)', '~영(詠, 읊을)', '~음(吟, 읊을)', '~우성(偶成, 짝 우/이룰 성)', '~득(得, 얻을)'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제목에 붙은 한자는 음이 안 달아져 있어서 얼마나 대충 읽었는지 모른다. 한자에 약한 내가 참 많이 고생한다~~ㅋㅋ

 

벼슬을 내려줘도 고사하고 은거했던 퇴계 선생은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더욱 깊이 닦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기에 이렇게 자연을 보고 절로 흘러나는 즉흥시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시가 다 즉흥시인 것만은 아닌 게 20여 수까지 이어서 쓴 연작시도 있기 때문인데, 생활의 여유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모아둔 사유시로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또 그의 시에는 도연명이나 두보, 소동파, 주자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는데, 이 시집에는 도연명이나 두보의 시에 화답하거나 각운을 차용해서 쓴 시까지 있으니 정말 신기했다. 문인이든 화가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성장하는 것이 正道임에도 내가 대단하게 여긴 사람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으니... 나와 같이 착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이 책의 서문에서는 퇴계 선생이 많이 화답한 도연명의 시와 퇴계의 시를 나름 비교해놓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보니 내용을 이해하기에 참 신선하고 좋았다. 

 

삭막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나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삶의 시름을 잊기 위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니 살아간 퇴계 선생을 그리면서 이 시를 읊노라면, 몸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은 저 멀리 우리의 고향으로 표상되는 어느 한적한 시골집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런 망상인지 몽상인지 모를 꿈을 품고 오늘도 나는 도시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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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중동의 역사
무타구치 요시로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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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라고 하는 지역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많은 민족과 많은 종교의 분쟁지역으로, 내겐 속을 알 수 없는 지역이란 인상이 강했다. 그렇기에 중동이라고 하는 지역에 대해 알지도 못할 뿐더러 너무 복잡해서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중동이라고 하면 세계 대표적인 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곳이니까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중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과정이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해주니까 물 흐르듯이 역사가 쏙쏙 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마호메드나 살라딘 같은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내겐, 딱 알맞는 책이라고나 할까. 다만 워낙에 살고 있는 환경이 사막이랑 거리가 멀기도 하고, 아랍 문화권이나 이슬람 문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보니, 이야기 식으로 전달해준다고는 해도 그 시대의 풍습이나 집안 풍경, 여자의 권리 등에 관한 이미지를 형성하긴 어려웠다. 그것은 아마도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이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아랍권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전혀 본 적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런 역사 개론서를 하나 읽고 나서 이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소설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랍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아라비안 나이트]를 제외하곤 뭐가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내가 어릴 때 만화영화나 동화책으로 얼핏 접했던 지명이나 인명이 아주 자세히 나온다는 것이다.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아랍을 배경으로 만든 만화영화에서 나온 수도 '바그다드'나 [신밧드의 모험]에서의 '신밧드'라는 인물이나 영국의 사자왕과의 대결로 유명한 '살라딘'이란 인물은 딱 그 이름만 들어봤지,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었는데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본격적인 역사가 무함마드 또는 이슬람 시대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시대적 구분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죽은 뒤 약 30년에 이르는 정통 칼리프의 시대,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시대, 아바스 왕조 새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우마이야 왕조 때 다마스쿠스에 있었던 수도를, 근대 세계사에서 가장 깊은 발자취를 남긴 아바스 왕조 때는 바로 바그다드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 바그다드는 1917년에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세계대전 이후에 1921년에 이라크 왕국이 독립하자 다시 이라크의 수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밧드의 모험]으로 유명한 '신밧드'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제19대 황제 카바드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인물로 실존인물이라고 하니까 정말 신기했다. 바다 여행의 모험을 즐겼던 인물이라니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신밧드'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가 된다. '살라딘'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재통일한 인물이었는데 넓은 도량, 깊은 인간미, 광신으로 빠지지 않는 신앙, 자유와 예절의 꽃을 피운 고매한 인격은 가진 자로서, 그가 죽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국왕의 죽음 중에 가장 슬픈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부(富)는 성전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란 신념을 고수한 그는 죽은 후 남은 개인 재산이 겨우 금화 1개, 은화 47개밖에 안돼 일반 서민들조차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라니까 얼마나 검소하고 목적이 확실한 지도자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인물을 알게 되어 참 영광이다. 크리스트교 세계에서도 이런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이상하게도 무슬림 중에는 이런 금욕적인 느낌이 드는 인재들이 많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속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이슬람교도들은 비이슬람교도들에게 강압적으로, "칼을 받을래? 코란을 믿을래?"라고 물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였다는 속설이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무슬림들에게는 같은 무슬림에게는 평등하게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 때문에 비아랍인들은 이슬람교도가 되기보다는 공물을 바치는 것을 좋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칼을 받을래? 코란을 믿을래?"가 아니라, "칼을 받을래? 공물을 바칠래? 코란을 믿을래?"라는 것이다. 강압적으로 포교한다고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했던 것이 너무 어이없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이슬람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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