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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면서 정말 크게 느낀 것은 천재는 정말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했길래 대학에서 재적을 당하는지도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도 않지만 다시 들어간 대학원에서 그림만 열심히 그리다가 앙데팡당전에 당당히 입상하고 나서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정말 나로서는 오리무중이었다. 제8회 파리 비엔날레에 국가대표로 출품할 사람으로 뽑혔다는데, 조금만 참으면(혹은 현실에 순응하면?) 온갖 부와 영화가 죄다 제 것이 될 것인데 왜 그곳을 박차고 나와야 했던 것인지... 또한 미국문화원에서 그림 전시를 했던 일로 알게 된 미국 대사부인 덕에 세계로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도 그만 박차버리고 나와버렸던 것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사상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속물인 나로서는 내 일도 아닌데 괜히 그 부와 명성이 아깝기만 하다. 앙데팡당전에 당선되었을 때는 자신의 실력으로 뽑힌 것인지, 아니 그 그림이 자신의 욕구와 실력으로 그린 것인지 회의가 들었고, - 진정한 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이니까 주제를 정해줘서 그리는 그런 그림은 자신 본연의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 프랑스의 권위만 높여주는 데에 앞잡이처럼 사용되는 것이 역겨워서 박차버렸고, 실험영화와 그림으로 알게 되어 그림을 처음으로 팔게 해준 미국 대사부인이 누군가를 소개해주었을 때 이 세상을 힘 안 들이고 살아가는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서 관계를 끊어버렸다. 일제 시대 때는 일본말 잘 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자기 배를 불렸다면, 이제는 미국놈 시대이기에 미국말 잘 하는 사람들이 앞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냐구~ 정말 범상치 않은 분이었다. 김점선 선생님은...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김점선 선생님을 나는 이렇게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알게 되다니 내 무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암에 걸려 정신이 파도치듯이 들락거리는 와중에도 <옥단춘뎐>, <숙영낭자뎐>처럼 자신의 책에다가도 '뎐'을 붙여서 출판하길 원했던 김점선 선생님은 이 책을 자신의 전기라고 하셨다. 이제까지 냈던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완전히 다른 특별한 책~~~! 그런 특별한 책을 이렇게나마 일별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책에 중간 중간에는 그림도 삽입되어 있는데 식견이 짧아 내가 좋아할 만한 그림보다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법한 그림이 더 많다. 총 42점의 그림 중에서 14점 정도만 딱 내 마음에 든다. 그림을 좋아하나 특별한 안목은 없는 일반적인 내 눈으로는 아이들이 크레파스를 들고 직직 그린 그림보다도 너 못해뵈는 그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어렵기만 한 추상화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이다. 딱히 김선생님의 그림을 추상화로 분류하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런데 추상화를 어려워하는 나를 옹호해주는 화가가 있어 반가웠다. 김선생님이 만나본 변종하 선생님이 바로 그 분이신데, 추상화에 대해서 한 말씀을 해주셨다.
"추상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거야.
글씨를 많이많이 쓰면 초서가 되듯이, 팔십에 이른 운보 김기창이 추상으로 접어드는 것같이,
난 추상 그 자체가 이즘, 즉 어떤 운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추상으로 출발하는 건 머리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대는 일이지."(p. 258)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김점선 선생님이 존경하는 변종하 선생님의 말씀이시니까 바로 김점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외에도 김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는 아주 좋은 게 더 많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려고 한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나아갈 길이 아니다. (...)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안데르센 동화>, p. 99
악마는, 악은, 마귀는 엉킨 에너지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버려진 에너지다.
갈고 닦고 보살피면 예술가가 될 힘으로 바뀔 수도 있다.
- <세상엔 왜 악마가 있는가>, p. 96
내 몸에 '앎'이 생겨난 것은 내 몸이 정신과 일치한다는 증표다.
이제야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오랜 수양의 결과로 환갑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 <나는 저항한다. 그리고 작업한다>, p. 226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김점선 선생님, 그 분은 정말 싸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내는 투사이셨다. 그런 투사 기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개화(?)시키시고, 쓸데없이 끌어안고 있는 껍데기에서 벗어나라고 해주시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화가는 없겠지만 김점선 선생님만큼 기존의 습성을 과감히 깨뜨려주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