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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포도원 품꾼 이야기 ㅣ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3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7월
평점 :
성경에는 다양한 비유가 나온다. 솔직히 성경을 보더라도 그 의미를 다 알고 이해하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참 간단해보이면서도 뜻풀이가 간단하지 않고 심지어는 앞뒤가 반대되는 것처럼 보여 곤욕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류모세 목사님께서 책으로 엮어내신 <열린다 비유>를 보면 간단해 보이던 하나의 비유가 실은 단행본 한 권의 분량으로 엮어져 나올 만큼 그 내용이 방대했다는 사실이 우리가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단 것을 알려준다. 사실상 유대인들의 문화나 풍습,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생겨난 민족들의 사고방식을 우리가 알게 무엇이랴. 게다가 기후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데 같으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생각되여지는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을 때가 많다. 나도 이 <열린다 비유> 시리즈를 두 번째 보는 것인데, 사고 방식 그 근본을 바꾸고 토대를 다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아는 길도 물어 가고, 의심스러우면 다시 들여다보며 성경을 묵상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열린다 비유> 시리즈에 중독되어 가면 걱정스러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수님의 비유에는 아주 짧지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것도 많은데 그것은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어져 나올 만한 것들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류모세 목사님께서 여러 개의 짧은 비유를 묶어서 한 권으로 모아 책을 내실 생각이라고 하셨다. 이 내용이 세 번째 출간되는 <포도원 품꾼 이야기> 비유의 서문에 등장하니, 읽다가 내심 걱정이었던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미리 편안하게 해주신 듯 하다. 아무래도 비유 시리즈는 분량의 문제가 많이 걸려서 나도 이 다음에 나올 만한 비유가 뭐가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마음껏 보고 싶은 비유를 다 찾아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럽다.
사실 굵직굵직한 비유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 이야기>, 그리고 바로 이번에 출간된 <포도원 품꾼 이야기>로 다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런 비유 이야기는 유명하긴 하나 성경에서 바로 찾아보진 않아서 이것보다는 성경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비유가 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가복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새 부대와 새 포도주 비유를 그냥 넘겨다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럴 때는 아주 굵직한 우리의 세 비유에 대한 책보단 짧은 소책자라도 이 작은 비유의 풀이가 더 다급할 것이다. 바로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막혔던 비유는 어떤 것인지 잊었지만, 앞서 인용한 마가복음의 새 부대와 새 포도주 비유는 동생이 물어봐서 기억해두었던 비유였다. 그 부분은 평소엔 나도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그나마 <열린다 비유> 시리즈를 두 권이나 봤다고 동생이 물어봤을 때는 앞뒤 상황을 연결해서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이 동생도 수긍했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꼭 많은 비유 시리즈가 나와야 하겠다. 저번 책에서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탕자보다도 불의한 첫째 형을 들어 바리새인들을 비유한 것임을 제대로 알았지만 그보다도 나는 그 안의 장자에 대한 의무가 더 새롭게 다가왔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빨리 죽어달라는 의미의 유산 상속을 청했을 때 가만히 있었던 것은 장자로서,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으면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 대리 아버지로서 직무유기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자는 동생이 분할 상속해달라고 요구했던 불효막심한 행동을 방임함으로써 자신도 유산 상속이라는 이득을 챙기고 겉으로만 경건한 척 하며 동생이 방탕하다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이런 비유는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말씀하셨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교회 안에 있다고 경건한 척하며 불신자들을 몰아붙이는 가증을 떠는 신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가장 더러운 탕자는 차남이 아니라 장자였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번 책에서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보다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부분에 더 강하게 깨달음이 있었다. 원래 비유에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예수님의 고난에 같이 참여하기 위해 복잡하고도 여러 관습이 뒤섞여서 얼핏 보면 불의해 보이는 포도원 주인을 통해 전달해주신 비유였다면 나는 마태복음 20장 15절 말씀에 등장하는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의 ‘악하게’란 부분을 설명할 때 등장했던 ‘질투’와 ‘시기’란 개념이 아주 새로웠다. 이 책을 보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계속 이 부분을 설명하고 다닐 정도로 새로웠던 유대인들의 ‘질투’란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기’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우리에겐 같은 의미를 가진 부정적인 뜻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질투’는 자기의 소유물을 지키는 의로운 행위이고 ‘시기’는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할 때 그가 죽어서 그의 소유물이 자기 것으로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하는 아주 악독한, 살인에 가까운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까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표현의 정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생겨나는 저차원적인 감정이 아닌 원래 자기의 소유였던 것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정당한 행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질투하는”이란 표현을 쓰셨던 것이다. 가장 풀리지 않았던 어휘 하나가 이 책을 통해 풀려서 너무 감사했다. 이런 지식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풀리지 않는 어휘 하나를 해독하여 좀 더 하나님을 잘 이해하는 것을 필요한 일이니, 이번의 책은 진짜 내게 필요했던 내용이었다. 어딜 가서 ‘질투’란 단어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볼 생각도 안했을 것 아니겠나. 앞으로도 계속 출간해주길 바라는 책 중의 단연 으뜸인 책이겠다.
(이 서평은 두란노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