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스똘리삔 차량에 있었을 때 모스끄바 까잔 역의 확성기에서 한국 전쟁이 발발한 것을 알았다. 전쟁 첫날오전 중에 남한 측의 강력한 방위선을 돌파하고 10킬로미터나 적진 깊숙이 침입하면서도, 북한 측은 남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물리를 모르고 전투 경험이 없는 군인이라 할지라도 첫날에 진격한 쪽이 먼저 습격했다는것쯤은 알고 있다.
이 한국 전쟁은 우리를 흥분시켰다. 소동을 좋아하는 우리는 폭풍이 불기를 바랐다! 폭풍이 불어야 했다. 폭풍이 없다면, 만일 폭풍이 없다면, 우리는 천천히 죽어 가야 했다.
- P6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1-01-0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소설에 한국전쟁이 언급되는군요. ^^

청아 2021-01-06 12:51   좋아요 0 | URL
네!아주 드물게 언급되는데 조금 길게 나온 편이라 올렸어요^^*
 

1943년 1월에 북까프까스에서 주민들이 대거 도망쳤던 일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는가? 그것은 세계 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특히 농촌의 주민들은 승리를 한 자기 나라에 남고 싶지가 않아, 패주하는 이방인의 적병들과함께 무리가 되어 도망쳐 갔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1월의 엄동 속에 짐마차의 길고 긴 행렬이 계속되었다!
- P45

부띠르끼 형무소의<역>에서 우리는 1949년에 투옥된 신참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의 형기는 전부 달랐다 ㅡ통상적인<10루블짜리>가 아니라< 25>루블짜리였다. 여러 번 거듭되는 점호 때 그들이 자신의 형기 만료가 되는 시기를 대답하는 것이 마치 잔인한 농담같이 들렸다.<1974년 10월!><1975년 2월!>

*역ㅡ기차역이 아니라 호송 죄수의 집결 감방 - P61

한 시골 노파가 닫힌 우리의 창문앞에 멈춰서, 창문에 낀 밖의 철창과 중간 철창 너머로 열차침대 상단에 비좁게 있는 우리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는 우리 러시아 국민이 언제나 <불행한 자>를 바라볼 때의그 동정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노파의 뺨으로 이따금 눈물이 흘렀다. 이 허리가 굽은 노파는 한자리에 선 채, 우리 중에서 당신 자식을 찾기라도 한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보면 안 돼요." 호송병이 그녀에게 부드럽게 주의를주었다. 그러나 노파는 듣지 못한 체했다. 그녀 곁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 있고, 그 머리에는 흰 리본이 묶여있었다. 이 소녀는 아주 진지한 눈초리로 그 나이에 비해 비탄에 젖어 크게 뜬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너무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어서 아마 우리의 모습이일생 동안 그녀의 망막에 새겨졌으리라.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파는 때 묻은 손을 들어 마음을 다해, 서둘지 않고 우리에게 성호를 그었다.
- P63

그리고 또 이런 작업도 있었다! 매일 110명에서 120명이묘혈을 파려고 나갔다. 두 대의 미제 자동차 스튜드베이커에골조만 있는 관으로 시체를 운반하는데 그 관에서 손발이 삐져나왔다. 1949년 여름에 날씨가 좋은 시기에도 매일 60명에서 70명이 죽었고, 겨울이 되면 1백 명씩 죽었던 것이다(시체안치소에서 일하는 에스토니아인들이 세어 본 숫자다).
(다른 특수 수용소에서는 이렇게 많은 주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곳은 식량 사정은 좋았지만, 작업은 훨씬 어려웠다.
역시 폐병 환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 알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1949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 10월 혁명이 일어난 지 32 년째에, 2차 대전이 끝나고, 전시의 여러 가지엄격한 제도가 종지부를 찍은 지 4년 후, 뉘른베르크 재판이끝나 인류가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있었던 야만 행위를 알고, 이런 일이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겠지! 하고 안심하며 3년이 지난 때의 일이다.
- P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월 혁명이 도형을 폐지한 26년 후에, 스딸린은 다시 그것을 도입했다. 그것은 스딸린이 자신의 내리막길이 끝난 것 같다고 느낀 1943년 4월의 일이었다. 스딸린그라뜨에서의 국민적 승리가 가져온 최초의 국민적 결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ㅡ철도의 군사화에 관한 정령 (소년과 여자를 군법 회의에 회부한다), 그리고 하루 지나서 (4월 17일)도형과 교수형의 도입에 관한 정령. (교수대도 역시 훌륭한고대의 장치이며 권총으로 총살하는 것과는 다르다. 교수대는 죽는 과정을 시간적으로 길게 하고, 모여 있는 군중에게자세히 보여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승리가 계속되면서, 도형지나 교수대로 죽음이 선고된 사람들이 보내졌다.  - P16

북부에서는 통상 가로 7미터 세로 20미터 크기의 <천막>에서 살았다.널빤지로 싸고, 톱밥에 싸인 그 천막은, 마치 간이막사와 같았다. 이러한 천막의 정원은, 바곤까(조립 침상)일경우는 80명이고, 침상을 빽빽이 좁히면 1백 명이었다. 그러나 도형수의 경우에는 2백 명을 넣었다.
- P17

주거구역에서는 한 번도 환기시킨 일이 없는 천막, 즉 창문이 없는 막사에 감금된다. 겨울에는 악취가 풍기고, 눅눅하고 시큼한 공기가 농축된다. 이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단 2분도 참을수 없는 공기였다. 도형수에게는 주거 구역이 작업 구역보다.
더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들은 변소에도, 식당에도, 위생부에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모든 용무는 변기통이나 음식 차입구에서 했다.  - P17

(귀가윙윙거리는 듯 몽롱한 그들의 머릿속에서 예전 사회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고, 이 암흑의 북극의 밤 속에서, 자기들의노동과 막사 이외의 모든 것은 사라져야 했다).
그리하여 도형수들은 점점 쇠약해졌고, 이내 죽어 갔다.
최초의 보르꾸따 수용소의 <알파벳>– 28자인데 각 문자에는 1에서 1천까지 번호가 붙었다 — 은, 즉 보르꾸따 수용소 최초의 2만 8천 명의 도형수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불과 1년 사이에 모두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 기간이 1개월이 아닌 것이 놀라울 뿐이다.
- P19

노릴스끄시의 제25 코발트 채굴장으로, 코발트 광석을 싣기 위하여 화물 열차가 출입하고 있었다. 도형수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에서 해방되려고 그 열차에 깔렸다. 절망한 나머지 24명 정도의 도형수들이 툰드라 지대로 도주했다. 그들은 비행기에 발각되고 사살되어, 그 시체는 작업 출장 나가는곳 가까이에 쌓아 놓았다.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의 짧은 에피소드를 99가지 문체로 변주하다.˝
목차가 재밌어서 쭉 읽어보는데 한곳에
‘이북 사람입네다‘라고 나와 있다.
이북? 여기 위쪽 ?읽어보니 맞다. 검증이 제대로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제법 느낌이 온다.

이 책의 저자는 ‘레몽크노‘ 프랑스 초현실주의자,언어학자,작사가,수학자,번역가,갈리마르출판사 편집자 ( 20세기부터 지금까지 문학에 있어 프랑스 출판사 가운데 영향력 있는 출판사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 2011년 36명의 공쿠르상 수상 작가, 38명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10명의 퓰리쳐상 수상 작가를 배급?배출일듯ㅡ위키백과)
등등 화려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페이지에는 역시 같은 이야기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어떤 식인지 짐작이 간다. 이런 식으로 99가지다. 난 벌써부터 너무 재밌는데 후기를 보니 호불호가 갈린다.

우리는 긴 세월을 (아까워서 이 생각만 하면 ㅠ..ㅠ)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요즘은 이런저런 다양한 학습방법도 만들어지고 과제도 그룹으로 하고 발표도 토론도 하는등 달라지고 있지만
근간을 흔들만한 획기적인 변화는 부재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백년지대계는..흠..)

그런데 만일 한번이라도 이런 식의 글쓰기를 배웠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생각만 해도 갖가지 아이디어가 솟아난다.
저자는 반복되는 문체실험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감이란 미끼를 가지가지 수도 없이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북 사람입네다.

어느 날 낮뒤 해쪼임량이 맨마루에 올랐을 무렵에, 사람들이 모박이로 들어차 있는 어느 시내뻐스 차간에서, 나는 목이 아주 가늘죽하고 그 우로 댕기를 돌라따는 대신 줄이 가굴가굴한 둥글모자를 치레거리로 착용한 료해가 어려운, 설둥하고 무슴슴하게 생긴 얼빤히 촌바우를 발견했지 멉디까. 무중에 그는 만문하였는지 곰상한 곁사람이 그의 발을 경박하게 밟았다고 머리 꼬리 없이 볼먹은 소리로 나루히 괴풍망설을 늘어놓으며, 배껏 남잡이를 하고 밸풀이를 하는 것이었습네다. 그러다 호상간에 마음다툼을 피하려고 그랬는지, 그는로력도 리유도 없이, 자신심도 량심도 없이, 기쁨슬픔병 환자처럼, 인제 어둥지둥 빈자리로 날레날레 내뺀 교활자, 고니 주의자, 노죽쟁이, 동요분자에 지나지 않았습네다.
나주막에 어방 잡아 두 시간쯤, 방촌을 떠나온 나는 쌩라라자르역 앞, 로마광장에서 어기나지 않고 그를 다시 보았는데그는 세타 우에 입은 외투의 달롱한 가름선을 줄여볼 료량으로 단추 하나 더 억벌로 달라고 그에게 간참을 하고 있는 어떤 버방한 인물과 함께 있었는 것이었습네다.
- P105

수학적으로

y" + TCRP (r).y‘ + S = 84

위의 이계미분방정식 二階微分方程式을 적분하여 얻은 해解가 그리는 선 안에서 가로로 움직이는 직육면체 안에서, 두개의 사람꼴 (그중 사람꼴 A에만 길이 L>N인 원기둥 부분이 나타나며, 주기 周期 차이가 T/2인 두 개의 사인 곡선이 이원기둥의 구형球形 모자에 둘러싸여 있다)은 반드시 첨점을가진 상태에서만 바닥에서 접점을 가질 수 있다. 이 궤적에서두 개의 사람꼴이 수평하게 진동할 때, 사람꼴 A의 흉부 정중앙선의 상부에 수직하는 길이 / <L인 선분과 접하는 미소반경微小半徑을 가진 전구체全球體의 미소 평행이동 小平行移動 이 유도된다.
- P135

싹수가 노랗게

나는 버스에 오른다.
ㅡ포르트샹페레 방향 맞아요?
ㅡ쓰여 있는 거 보면 몰라요?
ㅡ실례.
그가 내 승차권을 제 배에 대고 찍는다.
ㅡ여기.
ㅡ고맙습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ㅡ이봐요, 아저씨.
그는 끈 비슷한 걸 단 모자를 쓰고 있다.
ㅡ조심하면 어디가 덧나요?
그는 아주 긴 목의 소유자다.
ㅡ아니, 이 아저씨가 증말.
그러더니 그는 빈자리로 내뺀다.
ㅡ이거 참.
나는 속으로 말한다.
- P72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04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번역이 ㅎㅎ[가굴가굴한 둥글모자 설둥하고 무슴슴하게 생긴 얼빤히 촌바우] 이거 평안 북도 말인데 ㅋㅋㅋ미미님 말씀처럼 학교에서 특정 문단을 이렇게 한반도 방언으로 써보는것도 한글 어휘를 풍부하게 익히는데 재미 붙었을것 같아요.^.^

청아 2021-01-04 23:16   좋아요 2 | URL
오! 평안북도 말이군요! 처음들어본 어휘들이라 낯설지만 소리가 재밌어요!
이것들만 봐도 사람들마다 여러가지 방법들이
마구마구 떠오를듯해요(ㅋ0 ㅋ)

바람돌이 2021-01-05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 시간마다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키는데 좋아하는 애들은 극소수고 대부분의 애들은 죽을라고해요. ㅎㅎ

청아 2021-01-05 09:28   좋아요 0 | URL
오 현장에 계시군요?!♡경험은 흔적을 남기니 잘하고 계신거라 생각해요!👍

cyrus 2021-01-05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을 보면서 예사롭지 않은 책이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난해한 책을 좋아해요. 그 난해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고, 직접 확인하고 싶어지거든요. ^^;;

청아 2021-01-05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사이러스님보다는 훨 부족하지만요^^;알 만한 내용만 쓱쓱 즐겨보고 있어요ㅋ
 

소비에뜨 정권은 이 투쟁을 열심히 은폐했는데,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가한 고문과 박멸 행위를 은폐할 때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공산주의 정권은 자신을 향한 투쟁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공산주의 역사의 여러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암암리에 일어난, 엄청난 정신적 힘에 의한 투쟁 말이다. 상황이 가장 절망적일 때, 체제가가장 잔혹하고 파괴적일 때 투사들의 정신력과 긴장감은 가장 높아진다.
공산주의 정권은 6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내부에서 투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사람들이 고분고분하게 굴복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이 서방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없는 수준으로,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수용소의 세계는 소비에뜨 체제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부패해 있었고, 투쟁은 테러 행위와 함께 시작되었다 - P5

테러는비난받아 마땅한 수단이지만, 이 경우에 테러는 40년 동안 미증유의 소비에뜨 국가 테러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악이 악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선명한 예이다. 
이것은 악이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차원으로 몰아넣으면, 결국 사람들은 그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중에 영웅적인 봉기들로 발전하는1950년대 수용소에서의 테러는 오늘날 서방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극좌> 테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서방 세계의 젊은 테러리스트들은 무제한적인 자유에 흠뻑 젖어, 불확실한목표 혹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다. 1950년대 소비에뜨 수용소의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숨 쉴 권리를 찾기 위해 배신자와 밀고자들을 죽였다.
- P6

제5부 도형

제1장 죽을 운명인 사람들
제2장 혁명의 미풍
제3장 쇠사슬, 또 쇠사슬……
제4장 어찌하여 참았나?
제5장 돌 밑의 시, 돌 밑의 진실
제6장 확신에 찬 탈옥수
제7장 하얀 고양이
제8장 도덕적인 탈출과 기술적인 탈출
제9장 자동소총을 가진 청년들
제10장 구내에서 땅이 뜨거워질 때
제11장 사슬을 부수다.
제12장 껜기르의 40일 - P7

쇠고랑을 찬, 도형의 시베리아를
소비에뜨 사회주의의 시베리아로 만들자!

- 스딸린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