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독자는 다만 인간 정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묘사만을 보게 될것이다. 지금 당장은 여기에 그 어떤 형이상학도, 그 어떤 믿음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이 책의 한계이며 유일한선택이다.
- P14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의,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우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철학자가 존경받으려면 마땅히 자신의 주장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결정적인행동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도록 하려면그것들을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 P15

지구와 태양 중 어느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요컨대 그건 하찮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나는 많은 사람이 인생이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죽는 것을 본다. 그런가 하면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 살아갈이유를 부여해 주는 이념 혹은 환상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이른바 살아갈 이유라는 것은 동시에 목숨을 버릴 훌륭한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 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인 것이다.  - P16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동시에 분명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자명함과 감정의 고양 사이의 균형뿐이다.  - P17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정신적 침식으로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시작 단계에 있어서 사회는 별 관련이 없다. 벌레는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박혀있다. 바로 거기서 벌레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삶을 직시하는명철한 의식에서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로 인도하는 이 치명적 유희, 바로 이 유희를 추적하고 이해해야 한다.
- P18

자살에는 수많은 동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표면적인 이유들이 가장 유력한 이유들은 아니었다.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하는 일은 (그렇다고 이 가설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 신문에서는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이니 운운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친구 하나가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자가 죄인이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그때까지유예 상태에 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 P18

자살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멜로드라마에서처럼 하나의 고백이다. 그것은 삶을 감당할 길이 없음을 혹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 P19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잠마저 이루지 못하게 하는 이 측량할 길 없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사 시원찮은 이유를 대고서라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낯익은 세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돌연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낯선 세계로의 유배에는 구원이 없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된 땅의 희망도 다 빼앗기고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그의 삶, 배우와 무대 장치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 P19

명확한 말로 제시할 경우 이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풀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가 단순하면 그답도 그에 못지않게 단순하며, 자명한 것은 자명함을 전제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선험적으로, 그리고 문제의 항을 뒤바꿔서 생각해 보면 사람에겐 자살을 하든가 하지 않든가 두 가지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철학적 해결에도 긍정과 부정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여전히 의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동시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행동하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니체의 기준을 따른다면 실상 그들은 이런 식으로건 저런 식으로건 긍정적으로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삶의 의미를 굳게 믿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언제나 이와 같은 모순은 흔히 볼 수 있다. - P21

모든 것을 걷어 버리고 문제의 진정한 핵심으로 곧바로 나아가야 한다.  - P23

논리적으로 되기는 언제나 쉽다. 그러나 끝까지 논리적으로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P23

카를 야스퍼스는 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구성하는것이 불가능함을 밝히면서 이렇게 외친다. "이러한 제한으로인하여 나는 나 자신에게로 인도된다. 즉 나 자신이 기껏해야대표하는 것이 고작인 하나의 객관적 관점 뒤로 더 이상 물러나 있을 수 없는 곳, 나 자신도 그 어떤 타자의 존재도 내게는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는 곳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이때 여러 사람에 뒤이어 그가 가리켜 보이는 것은 사유가 극한에 도달하는, 물 한 모금 없이 황량한 장소들이다. 그렇다. 그에 앞서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가리켜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그들 역시 얼마나 성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오고자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사유가 비틀대는 그 마지막 전환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지닌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즉 자신의목숨을 포기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 정신의 왕자(王者)들역시 포기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행한 것은 가장 순수한반항의 형태인 사유의 자살이었다.

(사유의 자살이라니!!!)

🐷🐷🐷🐷🐷 - P24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응수하며 벌이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특권적 관객들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신은 기본적인 동시에미묘한 그 춤의 갖가지 모습들을 예증하고 또 그것들을 스스로 체험적으로 살아 내기에 앞서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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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04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으려고 했더니 이미 담겨있네요 🤦‍♂️

미미 2022-01-04 14: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새파랑님 이 책 좋아하실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