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할머니는 하느님께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물었다. 어째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인생에서 겪어 볼 만한 고통인 사랑을알지 못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한 뒤 밭에 나가 일하고, 그 따분하기 짝이 없는 수예 교실에 나가고, 머리에 물동이를이고 샘까지 가서 마실 물을 길어 오고, 열흘에 한 번씩 빵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우물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고, 닭에게 모이를 줘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하느님이 사랑한 번 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할머니의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님은 이런 생각들이아주 큰 죄이고 세상에는 다른 일도 많다고 말했지만, 할머니에게 사랑 외에 중요한 일은 없었다. - P11
칼리아리 사람들은 그 어떤 일에도 노여워하지 않고 폐 끼치는 행동도 하지않았다. 바닷바람이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든 듯했다. - P17
세상일에 관심 없는 할머니 말고는 다들 라디오 런던을 들었다. 1944년 봄 이탈리아 북부에서 600만 명이 파업을 하고 로마에서 독일인 32명이 살해됐으며, 독일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이탈리아인 320명을 색출해 총살했다. 제8군(Eighth Army, 1941년제2차 세계대전 중에 창설된 영국의 아전군, 1945년 전쟁 종결과 함께 해체되었다. 옮긴이)은 또 다른 도발에 대비하는 중이었고, 6월 6일 첫새벽에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 P18
남편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라 러시아를 응원했다. 러시아군은1945년 1월 17일 바르샤바를 정복하고 28일은 베를린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진격했다. 연합군은 3월 초에 쾰른을 짐령했다. 처칠은 이제 연합군의 진격과 독일군의 퇴각은 그리 큰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했다. 3월 말 패튼과 몽고메리 장군이 패주하는 독일군을 뒤쫓으며 라인강을 넘었다. - P21
할머니는 도시 사람들답지 않게 매사에 심각해하지 않는 이웃들이 좋았다. 술리스 이웃들은 일이 잘 안 풀려도 "뭐 됐어!" 하며 넘어가고, 무척 가난한 살림살이에 접시를 깨뜨려도 어깨나한번 들썩이며 깨진 조각을 주웠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운을 만들어 부를 쌓기보다 차라리 가난한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었다. 칼리아리 같은 도시는 검은 돈을 챙기거나 전쟁으로집을 잃은 불쌍한 사람들이 그나마 쓸 만한 물건이 있나 찾으러오기 전에 폐허를 뒤져서 도둑질하는 사람이 많았다. 술리스 이웃들은 굳이 말 안 해도 알지!‘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할머니는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기센 바람이 부는 바스티오니 성벽에서바라다보이는 거대한 풍경이 보잘것없는 작은 삶일지라도 멈출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 P22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시적인 속내를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내뱉으면 할머니더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붉은 테두리를 두른 조그만 검은색노트에 모든 생각을 적어서 식비‘ 약값‘ ‘임대료‘라고 적힌 돈봉투들과 함께 비밀스런 물건을 넣어두는 서랍에 숨겨 놓았다. - P23
할머니는사랑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스스로 원하지않으면 잠자리를 함께 하거나 친절하게 대하고 착한 행동을 해도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 다가오게 만들도리가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 P26
방에 들어서자 창문 아래 책상이 보였다. 할아버지가 노발대발 화를 내더라도 다시 역으로가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건 순전히 그 책상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책상이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없었고 탁자에 앉아서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언제나 남몰래 무릎에 노트를 놓고 쓰다가 누가 오는 기척을 느끼면 얼른 감추곤 했다.
책상에는 호텔 이름을 새긴 종이가 가득 든 가죽 파일과 잉크병, 펜촉을 끼운 펜 그리고 압지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책상의 가죽 파일에 넣은 것이었다. 혹시 누가 갑자기 들어와 노트에 적은걸 보기라도 할까 봐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나서야 커다란 더블침대에 앉아 저녁 먹을 시간을 기다렸다. - P28
그 재향군인은 허름한 가방을 들었지만 차림새는 매우 세련되었으며 한쪽 다리를 목발에 의지했어도 아주 잘생긴 사내였다.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재향군인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다. 호텔에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훤칠한 키에 짙고 깊은 눈동자, 부드러운 피부, 가느다란 목, 강하고 긴 팔, 크지만 어린아이처럼 순박해 보이는 손, 약간 곱슬거리는 짧은 수염, 선명하고 도톰한 입그리고 살짝 구부러진 코. 그날 이후 할머니는 식당이나 베란다에서 그를 훔쳐보았다. 남자는 필터 없는 나지오날레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고, 할머니는 식탁용 매트에 지루해 죽을 때까지 수를 놓으러 베란다에 나가곤 했다. 할머니는 남자 조금 뒤쪽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남자의 이맛살과 날렵한 코, 무방비 상태로 튀어나온 목젖, 흰 머리가나기 시작한 곱슬머리, 소매를 걷어 올린 풀 먹인 새하얀 셔츠 안의 바싹 마른 몸, 힘센 팔, 고운 손, 바지 속에 감춰진 탄탄한 다리한쪽, 낡았지만 완벽하게 광을 낸 구두까지, 무엇인가에 홀린 듯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장애가 있는데도여전히 강하고 아름다운 몸에서 풍기는 위엄 때문에 눈물이 날것 같았다. - P30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 너머 언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할머니를 향해 투명한미소를 지어 보이면, 할머니는 너무 좋아서 가슴앓이를 하며 온종일 흥분에 휩싸였다. - P30
어릴 때부터 에밀리오 살가리의 모험소설을 읽다가 해군에 자원했는데, 원래 바다와 독서를 좋아했다. 아주 힘든 시기에 위안이 된 시들을 특히 좋아했다. 전쟁이 끝난 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제노바에서 밀라노로 이사해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데 어떻게든 제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금은 과거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통 하얗게 칠한 방 두 개짜리 반지하 연립에서 살았다. 1939년에 결혼하여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도 있었다. - P31
부모님은 어떤 식으로든 딸을 계속 공부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지는 게 두려워 집에 붙잡아 두었다. 선생님에게는 자기들 사정을 모르니 다시는찾아오지 말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읽고 쓰는 법은 배워서 평생 동안 남몰래 글을 썼다. 할머니의 글은 시였다. 아마도할머니의 생각이 담겼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살짝 꾸며서 적은 시들이었다. 할머니는 글 쓴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까 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향군인에게는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털어놓았다. 그만큼 믿음이 갔던 것이다. - P32
할머니도 그에게 손을 가져갔다. 며칠 동안 베란다에 앉아 관찰한 그 남자의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목덜미, 셔츠의 천, 탄탄한두 필과 어린아이처럼 고운 손, 방금 닦아 윤기 나는 구두 속에 들어 있는 한쪽 다리와 나무 의족을 위대한 예술가의 조각품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 P35
"우리의 미소에 입 맞출까요.?" 그가 할머니에게 제안했고, 두 사람은 촉촉한 키스를 끝없이나누었다. 잠시 후 재향군인이 이 미소 입맞춤은 단테가 《신곡》의 〈지옥편) 5곡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위해 생각해 낸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 P36
할머니는 새로 짓는 집은 정말 아름다울 거라 믿었다. 집 안에 볕이 가득 들어오고, 방마다 창밖으로 배가 떠다니는 바다 풍경과 함께 오렌지색과 보라색 석양, 아프리카로 떠나는 제비 떼가 보일 것이다. 아래층에는 파티룸과 오랑주리 (orangery, 유럽 북부 한랭지에서 오렌지 등의 과수를재배하는 건물-옮긴이)가 있으며, 계단에는 붉은 카펫을 깔고, 베란다에는 물을 뿜는 분수까지 만들 것이다. - P37
이제 할머니의 공허함은 만노거리의 집과 피아노가 채워 줄 것이다. 재향군인은 할머니를 품에 안고 귓가에 콘트라베이스와 트럼펫, 바이올린, 플루트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는 모든 오케스트라 소리를 낼 줄 알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시간 눈밭 행군을 할 때나 수용소 들판에서 독일군들을 즐겁게해 주느라 개들과 음식 쟁탈전을 벌일 때, 머릿속의 오케스트라악기 소리와 시로 버틸 수 있었다. - P40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조용히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의 모든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싸늘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도좋았다. 아빠는 언제나 스웨터를 뒤집어 입고 나타났으며 계절이바뀌는 것도 몰라서 기관지염이 올 때까지 여름 티셔츠를 입고다녔다. 다들 정신 나갔다고 아빠를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미남인데도 이런 모습 때문에 여자들이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빠의 음악에 대한 광기가 유행에 맞지 않았는데, 아빠가 천재성을 보인 고전 음악도 여자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빠가 기절하도록 좋았다. - P44
내가 태어난날 아빠는 뉴욕에서 라벨의 〈콘체르토 인 솔〉을 연주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흥분해서 연주를 망칠까 봐 아빠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 자랐다 싶자 엄마는 박스와 보행기, 카시트, 유아용 그릇을 하나씩 더 사서이곳 만노거리에 갖다 두었다. 그 후 아기 용품을 급하게 챙길 필요 없이 할머니에게 나를 맡긴 뒤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아빠에게 날아갈 수 있었다. - P44
할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할머니가 쇼팽이나 드뷔시, 베토벤의 음악에 흠뻑 빠져오페라를 듣고, 나비부인》과 《라 트라비아타 때문에 훌쩍이거나, 전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포에토 해변에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돌로레타 부인, 판니 부인과 커피를 마시는 모양이라고 넘겨짚었다. - P48
피아노가 집으로 오는 날 할머니는 너무 행복해서 메렐로거리에서 만노거리까지 트럭을 앞질러 뛰어왔다. 머릿속으로는 재향군인이 할머니를 위해 쓴 시의 앞부분을 점점 빨리,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단숨에 읊었다.
"당신이 스쳐 가는 인생에 가느다란 신호를 남겼다면, 당신이스쳐 가는 인생에 가느다란 신호를 남겼다면, 당신이 스쳐가는인생에 가느다란 신호를 남겼다면, - P49
빈 화분에 들어가서 머리에 나뭇가지를 붙이고 숨은 적도 있었다. 그다음 날도 똑같은 소동을 벌였다. 인형이나 장난감을 집에 가져가려 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더 커서는 책도 가져가지 않았다.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집에 있어야 하는데, 특히 사전을 들고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핑계를 댔다. 친구들을 초대할 때도 할머니 집이 테라스가 있어서 더 좋았다. 무엇이든 다 할머니 집이 좋았다. - P51
지지부진한 농업 개혁이 농부들을 파산시켜 삶터를떠나게 만들었다. 여자들은 남편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하녀 일을 다니고, 남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도 못하며 보호 장비조차 없이 유독성 산업 물질을 마셔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사르데냐 출신임을 보여 주는 ‘우(u)‘ 발음이 들어가는 성을 부끄러워했다. - P72
이주자들이 사는 아파트가 벌집처럼 모여 있는데, 전에 살던 옥상방과달리 화장실과 주방도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있었다. 그리고 이주민도 밀라노 주민으로 받아들여져 이주민을 두고 수군대지 않았다. 이제 남북 간의 싸움은 뒷전이 되고 산바빌라성당을 둘러싼적색분자(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와 흑색분자(네오파시스트)의 분쟁이화두가 되면서 남부 사람들을 ‘테룬‘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 P73
사촌들은 아빠가 정치에 무심한 것과 부자를 미워하지 않는 것, 파시스트를 때려 본 적도 맞아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못했다. 사촌들은 아직 어린데도 카파나(Capanna, 도시 빈민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학생 운동 - 옮긴이) 집회를 따라다녔다. 1969년 5월에는 밀라노에서 시가 행렬에 참가하고, 1971년에는 국도 점령 시위에동참했다. 몇 번 다투긴 했지만 아빠와 사촌들은 서로 좋아하고매번 화해했다. 심지어 그 유명한 1963년 11월, 부모님 몰래 창문으로 빠져 나와 지붕을 돌아다니며 놀던 시절 다락방에서 의형제까지 맺었다. - P74
할머니는 전화를 끊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사랑을 쫓아 버리는 광기 같은 걸 물려준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었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아무에게도, 그 어디에서도 초대받지 못해 항상 혼자였으며, 어쩌다 시도한 애정 표현도 유치하고 서툴러서 그 누구도 함께 하려 하지 않았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조금 나아졌지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세상엔 다른 일도 많다는 것을 알려 주려 했고 할아버지도 설득해 봤지만, 아빠는 그저 웃고 말 뿐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969년 7월21일 밤 암스트롱이 달에 상륙했을 때도 아들이 졸업 연주회 때문에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35-1>을 끝없이연주하던 모습을 잊지 못했다. - P75
같은 단어의 중복 사용 같은 실수를 찾아낼 때마다 할머니 엉덩이를 한 대씩 살짝 때리거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나중에 다시 쓰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아." 재향군인이 제노바와 밀라노 억양으로 지적해도 할머니는 불쾌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 즐거웠다. - P82
재향군인이나 그의 친구 조르지오 카프로니 혹은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가여운 시인 디노 캄파나의 묘사를 보면, 칼리아리도제노바처럼 어둡고 미로 같고 신비롭고 습하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하게 눈부신 지중해의 빛이 쏟아지는 길이 나타나는 곳이다. 그런 곳에 이르면 바쁘게 지나다가도 낮은 담이나 철제 난간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그토록 ‘풍요로운‘ 하늘과 바다, 태양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 P82
할머니는 칼리아리와 바다 그리고 나무와 벽난로, 말똥, 비누, 밀, 토마토, 따끈한 빵 냄새가 뒤섞인 고향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그 남자, 재향군인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세상그 무엇보다 그 남자가 좋았다. - P84
그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 결석을 배출하느라 함께 소변을 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았다.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 P84
아버지의 돌 사진에는 할머니가 없다. 사람들이 "생일축하합니다."를 외치며 축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감정이 북받친나머지 방으로 도망쳐 울고 말았던 것이다. - P86
엄마 말에 의하면 한 집안에서 누군가는 혼란을 짊어져야 한단다. 인생이란 원래 둘 사이의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상이 굳어지고 언젠가는 멈춰 버린단다. 밤에 악몽 없이 편안하게 잠들고, 엄마 아빠의 결혼생활이 별다른 충돌 없이 유지되고, 내가 첫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우리 가족에게 큰 위기가 닥치지 않고, 우리 중 자살을 기도하거나 쓰레기통에 뛰어들거나 몸에 자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할머니가 그값을 치러 준 덕분이었다. 모든 가정에는 희생을 치르는 사람이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질서와 무질서의 균형이 지켜지고 세상도멈추지 않는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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