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치의「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는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지점들이 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간중간 메모를 해두며 읽고 있다. 「백래시」도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팔루디의 책은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낯설지가 않다. 왜 그런지 계속 물음표를 쥐고 읽어나간다. 갈수록 독후감 쓰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 좋은 책을 읽을수록 더 그런 편이다. 예전에는 어떻게 한 번 읽고 써 냈던 건지 의아하다. 지금보다 내가 좀 더 단순했던 걸까?  공부할수록 말문이 막히는 지점들이 생겨난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어설픈 표현으로 그 의미가 퇴색될까 봐 주저하게 되는 순간들. 전달하는 방식도 좀 더 정돈하고 싶어진다. 결국 내 표현의 한계를 실감하는 과정이다. 나쁘지만은 않다. 누군가 내어준 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숙제를 만들어 가는 거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는 것은 적어도 희망적이다. 




여성을 '마녀'로 지목하고 박해하는 것은 유럽 여성을 무급 가사노동에 구속하는 길을 닦았고, 가족 안팎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 정당화되었다. 마녀사냥은 국가에 여성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고 새로운 노동자 세대의 생성을 보장했다. 이런 식으로 마녀사냥은 하나의 구체적인 질서 즉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를 구성하였다. -93,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실비아 페데리치






   



어떤 불의는 노골적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당연한 것들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나이가 좀 더 많다고, 직위가 더 높다고, 전문가라고, 돈을 지불한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장애가 없다고, 더 배웠다고, 더 경험했다고 ,더 힘이 세다고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영역을 침해하는 순간들. 그런 차원에서 오염수가 버려지려 하고 참사 책임자가 탄핵을 면하고 과거에는 여성의 몸이 불태워졌을거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다수라는 권위로 질서라는 명분으로. 거기서 개인은 목소리가 없다. 




  

 


「박하경 여행기」속초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터미널에 하경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마주한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어르신이 TV에서 노동자들의 시위 영상이 나오자 비난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 '복지는 무슨 복지냐'고 '그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말한다. 옆에서 듣던 장사꾼이 '요즘이랑 과거랑 다르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분위기는 좀 더 고조된다. 아니 이것 참 별거 아닌데 점점 재밌어진다. 뻘쭘하게 앉아 있던 하경이 여기에 몇 마디 가세하고 불쾌해진 어르신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하경이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자 말문이 막힌 어르신은 여자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결국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얼굴을 붉히게 되었는데 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고 각자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런데 하필 어르신 부부와 하경은 같은 차량에 올라탄다. 내가 다 민망해진다. 하...어뜩해...버스에서 약간의 반전이 일어난다. 엔딩이 훈훈해졌지만 그냥 뻔한 레퍼토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힘도 영향력도 없는 시민들끼리의 논쟁과 한탄. 입장이 크게 갈려 다투게 됐지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 서로 비슷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보편적 공공 서비스를 통해 사회주의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있다. 의료와 교육, 그리고 감염병 대응 같은 것조차 완전히 사기업에 맡겨진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를 떠올려 보라. 당신은 과연 그러한 사회를 원하는가? 대다수 국민이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심지어 그러한 복지 시스템이 더 확대되기를 바라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09.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임승수.




박인환 배우가 반가웠고. 뭔가 해탈한 듯한 표정의 부인의 모습도 재밌었다. 그녀는 몇 마디 안 했는데 딱 한 번 남편을 말리면서 "당신이나 잘해"라고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보시길. 다 보고 나면 김부각이 무척 먹고 싶어진다. 8월의 팟빵 '정희진의 공부'에서 언니가 한 사이트에 대해 이야기해 줬는데 궁금해서 검색해 찾아냈다. 메인 화면은 이런 장면이고 그동안의 어록들이 보란 듯이 잘 나와있다. 



  






링크   https://yoontime.kr/?p=9



너무 주옥같아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그의 어록들. 모바일 버전은 친절하게도 저 얼굴 보기 싫어할 사람들을 위한 모자이크 기능이 있음!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또 하나의 반면교사가 될 역사가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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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14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늘 박하경 여행기 박인환 편 봐야겠어요. 훗.

그나저나 마지막 링크는 시계속 얼굴을 보면서 심히 기분이 나빠지는군요? 아 진짜 너무 싫어요. 싫다는 단어가 아까울 정도로 싫어요 ㅠㅠ

미미 2023-08-14 10:50   좋아요 0 | URL
참고로 4회 입니다. ^^
아 정말 별 장면 없는데 재밌었고 좋았어요!

저도 이 모습 보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집니다ㅠㅠ

잉크냄새 2023-08-14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자이크 기능이 없다면 재앙입니다.

미미 2023-08-14 12:55   좋아요 0 | URL
게시자의 배려에 감사했습니다 ^^

다락방 2023-08-14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 님, 저 점심 먹으면서 박인환 편 봤어요. 다 보고나자 알라딘에 김부각을 파는지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후훗.

미미 2023-08-14 14:1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벌써 보셨군요!! >.< 거기 나온 그런 김부각. 알라딘이 판다면 저도 당장 사먹고 싶어요.

다락방 2023-08-14 14:31   좋아요 1 | URL
검색해봤는데 없네요. 시무룩..

미미 2023-08-14 14:45   좋아요 0 | URL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락방님이 시무룩해 하셔서 알라딘 ‘제안하기‘에 사진 첨부해 보냈습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23-08-14 15:09   좋아요 1 | URL
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8-14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에 친정 가서 김부각 맛있게 먹고 왔어요, 제주도 땅콩술이랑요.
지금도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고
저는 아직도 무급으로 땀 뻘뻘 흘리며 집안일 하고 있어요.
유튜브 짤로 박하경여행기 보고 있는데 4회때 이나영이 또박또박 말해주는 씬, 넘 좋아요.
그 옆의 아저씨도 좋구요.
그나저나 이나영은 왜 안 늙을까요.

미미 2023-08-14 17:15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친정 다녀오셨군요! 안되겠습니다. 저도 이따가 나가면 김부각을 사와야겠어요.
땅콩술이란게 있군요? 담금주에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가 귤술이 맛있다고 해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땅콩술 이야기 하시니 이제야 그게 생각납니다.^^;;
무급 노동. 참 많은 노동과 그 결과물들을 이뤄내는 것 같습니다. 그것 없이는
하루도 세상이 돌아가기 힘들거잖아요?
<박하경 여행기>줄거리도, 분위기도 힐링이죠! ㅎㅎㅎ


은오 2023-08-16 0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도 백래시 읽고계시는군요!! 저도 어제 시작했어요. 😀 제2의 성보다 술술 읽히더라고요!
그리고 독후감에 관한 말씀 공감해요. 정말 한 번 읽고 쓰기엔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독후감 쓰자고 두 번 읽기엔 읽고 싶은 다른 책이 너무 많다....

미미 2023-08-16 05:07   좋아요 0 | URL
은오님 이시간에? >.< 제2의 성은 정말 난이도가 있죠! 읽던 중에 예쁜 책이 출간되어서 <을유>.처음부터 다시 읽으니 그제서야 잘 읽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두 세번 읽고 독후감 쓰고 싶은데 다른 책 욕심에 늘 뭔가 쫒기는 기분이에요😭
백래시 두꺼운데 잘 읽어져 다행입니다~♡

독서괭 2023-08-1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하경 여행기 재밌단 얘긴 들었는데~ 참 현실적인 장면이네요 ㅎㅎ 김부각, 시엄니가 애써 만들어주신 게 집에 있지만 저는 안 좋아하여;;
<백래시> 열심히 읽고 계시군요! 저도 어제 1장을 마쳤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 좀 해둬야겠어요.

미미 2023-08-16 13:57   좋아요 0 | URL
아이쿠 괭님 옆에 살면 가서 얻어 먹었을텐데 아쉽네요ㅋㅋㅋㅋ
이나영은 맥주와 함께 찹살 김부각을 먹었는데 군침이 돌더라고요.
마트에서 새우맛 김부각 사먹었는데 짰어요ㅋ
<백래시>분량 나누어 읽고 있어요. 책은 역시 함께 읽어야 맛 >.<

그레이스 2023-08-17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기 저만 힘든게 아니었군요

미미 2023-08-18 08:2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이 힘드시다면 저 같은 사람은 말 다했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