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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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갔다 왔으니까. 아마 천국도 어디 있겠죠. 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디다."p.349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뉴스에서 범죄자들이 포토라인에 서기 무섭게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분노한 시민들의 정확한 워딩은 알 수 없는 외침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의 피의자일수록 더 많은 조명을 받고 과거사, 개인사도 속속 까발려진다. 마치 영화 대사를 읊듯 자뻑에 취해 지껄이던 조주빈의 모습은 유감스럽게도 꽤 오래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 굉장히 자세하게 범인의 여러 정보가 노출되기도 하는데 때로 그 가족들의 신상까지 털리는 경우도 있다. 성폭행이 미수에 그치고 심지어 재력가 집안의 아들인 경우도 그랬다. 부러웠다. 거기도 유전무죄지만 금수저도 죄를 저지르면 명예훼손 따윈 없다는 사실이. 살인, 성폭행, 스토킹처럼 육체와 영혼을 죽이는 범죄는 신상 공개가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사형제도에는 반대다. 어떤 경우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기모순에 빠진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사형 집행자는 무슨 죄란 말인가? 





예를 들면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돼지들을 목격하는 공무원들의 트라우마가 심각하다. 구제역은 이제는 거의 정기적이라고 할 만큼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처우도 좋지 않다. 청소, 간호, 소방, 방역 등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이런 고된 업종은 사회적인 존경은 받지만 그만큼의 금전적 대가는 받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이 되었다가 토사구팽 당했다." 무려 19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한 보건 의료노조의 한 참여자의 말이었다. 희생은 마땅한 듯 요구받으면서 권리는 없다. 숭고한 직업이라는 과도한 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마치 공혈견처럼 쪽쪽 빨리며 대의를 위한 직업인으로써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대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형제도는 해당 범죄와 행위자를 동일시해야만 가능하다. 즉 그가 저지른 범죄 이외의 인간다운 모습을 철저히 외면해야만 정당화된다. 하지만 범죄 행위 그것만이 그 사람의 전부인 그런 경우가 있을까? 위험인물이라고 결론이 나면 최대한 오래오래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를 마주하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는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런 개인적인 사실들이 그의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저런 생각을할 수 밖에 없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논픽션은 트루먼 커포티가 6년간 취재 끝에 완성했다.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으며 여러 논란을 낳았고 또 논란 자체로도 인간본성의 여러 측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 자체만으로는 훌륭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했는데 아무래도 편견을 가지고 읽을 우려가 있으니 되도록 사전 정보 없이 소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1950년대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미국 중부 캔자스의 조용한 마을 홀컴에서 일가족이 살해당한다. 기독교가 지역의 가장 강력한 기반인 이곳에서 교회 활동은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여러 모임의 리더를 성공적으로 도맡아 존경받는 클러터씨가 가족들과 함께 살해당한다. 활동적인 그와는 달리 아내인 키드웰 부인은 몇 년째 자기 방에서 누워 지냈다. 이들 부부는 각방을 쓴 지 오래였다. 도리스 레싱의 비극적인 소설 속 주인공 같은 그녀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무기력해졌고 신경 쇠약에 힘겨워했다. 남편과 달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뒤 유령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 반면 아이들은 밝게 자라 위의 둘은 타지에서 살고 어린 둘은 이 부부와 함께 지내다 함께 희생 당한다. 부인이 무척 불행해 보이는 것 빼곤 나머지 가족들은 모범시민. 그 자체였다. 엄마라는 존재가 저렇게 불행한데 이게 실제로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고 사랑받는 그런 아이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의 그림은 이런 정도로 마무리된다. 






한쪽에는 이 평화로운 가족을 향해 죽음의 사자처럼 다가오는 두 남자 딕과 페리가 있다. 비상한 두뇌를 가졌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함몰된 백인 남성 딕과 인디언, 아일랜드인 혼혈로 가무잡잡한 피부에 한쪽 다리를 저는 작은 키의 페리는 둘 다 감옥에서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수표로 사기를 쳐 돈을 좀 모은 뒤 한 건 올리기 위해 가든시티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스타킹을 사야 한다 아니다'와 같은 사소한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각자의 불행한 과거가 쌓여 너무 다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런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들이 과연 일가족을 살인하러 가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딘지 어설프고 너무나 평범하고 미숙하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페리는 형제들과 달리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평생을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외롭게 살았다. 수녀에게 학대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 반복되는 꿈. 그의 바람은 그저 딕과 한 건 올리고 나면 그 자금으로 바다에 가라앉은 금화를 찾아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거였다. 372페이지는 꽤 충격이었다. 진득하게 이야기를 따라 가던 독자에게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체험해 보시길. 그 외에도 수감되었을 때 아들의 아버지가 판사에게 보낸 편지, 그의 누나가 그에게 보낸 답장, 군 시절 불과 몇 달간 알고 지낸 동기의 ㅡ전혀 예상치 못한ㅡ 우정 어린 편지는 이들도 그저 나처럼 소망하는 것들이 있고 이해받고 싶지만 때로 갈등을 빚고 아파하기도 하는 불완전한사람임을 절절하게 느끼게 했다. 앎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커포티는 가장 알고 싶지 않은 앎에 대해 자신이 믿는 진실에 대해 사진 같은 글을 펼쳐놓고 질문한다. 




딕은 페리가 한때 생각한 것처럼 "강한 놈"도 아니었고, "현실적"이거나 "남자답다"거나, "진짜 철면피"도 못되었다. 딕은 결국 자기는 "아주 약하고 수가 얕으며" , "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누구보다도 그 순간 페리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딕이었다. 적어도 두 사람은 같은 종족이고, 카인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였으며, 딕과 떨어져서 페리는 "세상에 자기 혼자뿐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치 온몸에 부스럼이 난 사람처럼.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치광이나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인 것처럼." ㅡp.396



그 친구는 모든 범죄는 단지 '절도의 변형'일 뿐이라고 말하고는 했었어. 살인도 포함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건 그 사람의 삶을 빼앗는 거지. p.440





"왜? 군인들이 잠을 설치는 것도 아니잖아. 군인들은 살인을 하고 훈장을 받아. 캔자스의 착한 사람들은 나를 살해하고 싶어 하겠지. 그리고 교수형 집행인들은 기꺼이 그 일을 맡을 거고,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 부도수표를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지. 이것만 기억해. 나는 클러터씨 가족을 1시간 정도 알았을 뿐이야.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알았더라면 다른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르지. 이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방식대로라면, 사격장에서 표적을 고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야."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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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7-1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겨있던 책이지만 미미님 글을 읽으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보게 될 것 같아서 읽기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요...

미미 2023-07-13 14:29   좋아요 0 | URL
읽어본 바로는 수하님 두려워하진 않으셔도 돼요.ㅋㅋㅋㅋ 이 책을 읽은 자체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잠자냥 2023-07-13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품에서 카포티가 심정적으로 페리라는 인물한테 거리두기를 실패했던 거 같아요(동일시에서 비롯된 연민, 그러다 우정 또는 사랑의 감정까지 등등)- 그런데 그 실패한 거리두기 때문에 희대의 명작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카포티 참 알수록 연민이 드는 사람입니다.

미미 2023-07-13 14:32   좋아요 1 | URL
‘실패한 거리두기 때문에 명작이 되었다.‘는 잠자냥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영화 <카포티>도 빨리 보고 싶어요.

물감 2023-07-13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책 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리뷰를 너무 잘 써주셔서 나는 이만큼 쓸 수 있을까 싶네요 ㅎㅎㅎ

미미 2023-07-13 14:39   좋아요 1 | URL
제가 진부한 편이라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데(머리카락을 뜯으며...)
잘 안되네요.ㅎㅎ 저는 물감님처럼 개성 있게 쓰는 분들이 늘 부러워요. 참고로 30페이지까지는 지루했는데
그 뒤로 사로잡혀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7-13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전이 뭔지 궁금하네요.
범죄자를 있는 그대로 보면 안되고 그 사람이 살아 온 과정도 봐야하는데
그래도 나쁜 사람이 너무 많으니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무리인것도 같고~~
그렇다고 그것을 또 무시할수도 없고요.
참 어려워요~~
사형제도는 좀 그렇지만 형량을 늘여 피해자를 보호했음 좋겠어요^^

미미 2023-07-13 17:05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마 이렇게 까지는) 처음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계속 그럴 수는 없겠죠. 그럴 수 있는 자료도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최근에 협의를 통해 전반적으로 형량을 더 늘린 것으로 아는데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느낍니다.

책읽는나무 2023-07-13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딸이랑 사형 제도에 대해 얘기한 적 있었는데 딸은 흥분해서 사형 제도에 대해 완전 찬성하고 있었고, 그런 딸을 달랜다고 전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했네요.
극한의 죄에 해당된다면 무기징역이란 것도 있다고 하긴 했는데 무기징역도 형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으니....이것도 참!!
구제역도 참....ㅜㅜ
울 큰동생은 소방 공무원이고 큰 올케는 군청 공무원인데 이 둘은 늘 주말에도 잘 못 쉬거든요. 정말 바빠요. 그렇다고 월급은 그리 많지도 않다더군요.
한 번은 올케가 조류독감에 걸린 닭을 폐사시켜야 하는 지시를 받고 집집마다 돌며...암튼 경황을 듣다 보면 공무원들도 참 수고가 이루 말할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올케한테 나라는 군인이 지키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지키는 것 같다! 라고 말했더니 올케가 깜놀해서 손사래를..ㅋㅋㅋ
공무원들 얘기가 있어서 읊어봅니다.^^

미미 2023-07-13 19:24   좋아요 1 | URL
나무님 자녀분들과의 그런 이야기 재밌어요ㅋㅋㅋㅋㅋ
제 친구 중에도 사형 제도에 적극 찬성하는 애가 있어요.
우리 나라는 실질적으로 사형집행은 안하지만 선고는 내리고 있어서
논란도 많고 재부활을 바라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집행할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형량을 더 늘리는게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무님 집안에 공무원들이 있으시군요.
닭 폐사...ㅜ.ㅜ 그것도 너무 힘든 일일텐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죠. 파업을 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들을랑 말랑이니 보면서도 답답합니다.

새파랑 2023-07-14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보관함에만 있는데 읽어봐야 겠습니다 ㅋ 표지가 안땡겨서 가만히 놔뒀는데 ㅎㅎ

역시 리뷰 천재 독서 천재 미미님~!!

미미 2023-07-14 10:57   좋아요 1 | URL
역시 소설 천재 새파랑님
보관함에 담아두셨군요ㅎㅎㅎ
중간중간 여러명의 편지도 있어서 좋아하실거예요.

서곡 2023-07-14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카포티에 친구 하퍼 리가 나오는데 한글자막이 서로 존대말이라 보는 내내 거슬리더라는...ㅋ 영화는 아무래도 호프먼의 연기 위주로 보게 되었는데 너무 기대하고 봐서 그런 것도 있겠고 또 다른 작품에서 워낙 연기를 잘했으니까 비교해서 이 영화 속 호프먼이 특별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실제 카포티란 인물의 아우라가 세서 그런 것도 있겠고요

2023-07-15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5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5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3-07-15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제가 전에 읽은 책에 카포티 회고담 나온 게 있어서요 방금 페이퍼로 올렸어요 ㅎㅎ 그럼 즐주말하시길요!

2023-07-15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