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말단에는 여성이 있습니다.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도
반복되는 전시상황에서도
60년대 시민운동에서도
흑인인권운동에서도
프랑스대혁명에서도
그리스로마 전쟁에서도
신화에서도
종교서사에서도
여성은 가장 말단에 있었습니다.
인종차별내부에서도 여성은 차별받고
장애인내부에서도 여성은 성범죄에 희생되고
인권운동에서도 여성의 문제는 뒤로 밀리고
혁명후에도 여성의 교육권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문제는 항상 뒤로 밀립니다.
"우선 이것만 해결되면"
"이게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절반인 여성을. 너무도 많은 여성을. 너무도 가까이에 있는 여성을
차별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수천년에 걸친 차별과 배제가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어
또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불공정'의 개선이 우선이다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 '구조적인 불공정의 핵심'에 인구 절반인 여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더욱 차별받던 세대의 여성들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원인이 항상 뒤로 밀리기 때문에 뒤이은 불평등은 늘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의 근본은 젠더불평등입니다.
젠더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도 영원히 반복될것입니다.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을 돈으로 살 수 있는것만큼 불평등하고 부정의하고 그릇된 행위가 용인되는 한
어떤 불의도 가능하다.
*'이정도면 남녀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이터는 찾아볼 여력도 없으며 그만큼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여성우위인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곳도! "이정도면 충분히 평등한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이점이 전혀 이상하지 않냐고 묻고싶다. 그들은 '남성우위'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한국사회에서 공정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능력주의'를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은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은 의식하지 않으려하고 애써 '결과'에만 집중해 그것이 공정이라 단정짓는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아스팔트를 딛고 서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채로.
"인간은 어차피 죽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죽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서 죽는 것이다." 오리아나 팔라치가 정치에 묻는다 권력은 누구의 편인가? p.144
"모든 것은 밥그릇(정치권력) 싸움이다. 여성은 밥그릇 싸움의 테이블에 아직 앉지도 못햇다."
"여성문제를 배제한 공정과 정의는 무너질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