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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친구들 - 세기의 걸작을 만든 은밀하고 매혹적인 만남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평점 :
소설가의 모든 작품은 자기 생의 변주이며, 화가의 모든 그림에는 자신이 들어 있다. p.136
렘브란트 판레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
이들은 해부대 위의 창백한 시신을 둘러 싸고 있지만, 누구도 거기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시신의 발치에 놓인 책이나 튈프 박사 혹은 그림 밖의 관람객이다. 튈프 박사가 해부하고 있는 시신은 교수형을 당한 아드리안 아드리안스존이라는 인물이다. 소설가 W.G.제발트는 '토성의 고리'에서 렘브란트가 그림 속의 등장인물 누구도 아닌, 해부대 위의 시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견해대로라면 더이상 말할 수 없게 된 화가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그림 그리는 손을 해부하도록 내맡기고 있다. 지극한 성공의 순간, 렘브란트는 이미 사람들의 환호 그 너머에 있는 심연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P.136
에드바르 뭉크.마돈나.1894
뭉크의 추도사는 당시 언론이 전혀 다루지 않았던 그녀의 일면을 알려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었으며 무수한 작품에 영감을 준 모델이었으나, 그에 그치지 않았다. 잘못된 결혼으로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나 그것 말고도 기억해야 할 점이 많았다. 다그니 유엘은 '인형의 집'의 노라가 깨어난 시대를 살았던 여성이다. 남자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똑같은 자유를 누리고자 했던 페미니스트였다. (중략)보헤미안들이 추구하던, 구속받지 않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다. 매혹적이고 강인하면서 평온한 존재, 그녀는 뭉크의 이상형이었다. P.57
윌리엄 터너.눈폭풍: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1810~1812
그는 빠르게 구름을 스케치해 호크워스에게 보여주며, "2년 후에 이걸 다시 보게 될 거란다.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한니발이라고 부를 거야"라고 말했다. 터너의 말대로 , 이날의 스케치는 '눈폭풍: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라는 폭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판리홀을 드나들며 관찰한 요크셔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로 거듭난 것이다. P.190
에밀 졸라와 절교한 세잔, 세잔이 '신처럼 너그럽다'고 말한 카미유 피사로,에두아르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풀밭위의 점심식사', 빈대학 강당에 천장화를 그리고 난 뒤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모욕적인 비난을 들은 클림트등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곳곳에 있다. 인연은 때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불타는 열정을 꺼뜨리기도 했다. 소소한 에피소드만 보면 때로 너무나 유치해서 과연 위대한 그 화가의 실제 이야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지만 사람사는게 거장이라고 다를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칭찬에 마음 약해지고 비판에 타오르던 의욕이 꺾인다. 다만 그들의 뒷이야기는 세월에 모래바람처럼 흩어지고 영혼을 담아낸 작품만이 상징으로 남아 불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