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흰 눈송이들이 끝없는 장막처럼 지상을 향해 펼쳐지며 펄럭거렸다. 이 눈의 장막이 세상의 형상을 지우고 사물마다 얼음 거품을 덮어씌웠다. 겨울에 감싸여 가라앉은 이 도시의 광활한 적막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나부대는 소리, 어떤 것이라고 표현할 말이 없는 그 희미한 바스락거림이 전부였다. p.18


모파상은 에밀졸라와 함께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 책에 담긴<비곗덩어리>는 <보바리 부인>으로 잘 알려진 스승 플로베르에게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 개의 단편중 <비곗덩어리>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줄거리는 보불전쟁의 프랑스가 처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승합마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다. 먼 여정을 시작하고 얼마안가 모두 몹시 배가 고파진다. 허기를 잊으려 가져온 술을 마시고 복선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승객들.


"그래도 좋네요, 몸을 데워 주고 허기도 잊을 수 있으니." 술기운이 돌자 기분이 나아진 루아조가 농담이랍시고 노랫말 속의 작은 배에서처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노랫말은 승객 가운데 제일 살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돌려서 한 말이긴 하지만, '비곗덩어리'를 암시하는 그 농담은 교양 있는 양반네들을 질색하게 했다. p.29 


'비곗덩어리'는 아름답고 통통한 승객인 엘리자베트를 의미했다 유일하게 음식을 싸온 사람은 매춘부인 엘리자베트 뿐이었다. 그녀의 신분 때문에 깔보고 눈총을 보내던 사람들은 엘리자베트가 준비해온 푸짐한 음식을 나누어먹자 태도가 돌변, 상냥해진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침략자인 프로이센군을 비판한다. 곧이어 도착한 첫번째 숙소에서 적군인 프로이센 장교가 엘리자베트와 하룻밤을 함께 하고 싶어하고 그녀가 거절하자 승합차가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게 저 여자의 직업인데, 누구는 받고 다른 누구는 마다하는 건 대체 무슨 이유랍니까?"p.64


적군을 함께 비난하고 음식을 나누어 준 엘리자베트를 칭찬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그녀를 비난한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볼모로 잡힌것에 볼멘소리를 하며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요구한다. 나중에는 일행 중 수녀까지 적군의 장교에게 숭고하게 자신을 희생시키는 애국자가 될 것을 엘리자베트에게 요구한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인용되고, 이어서 아무 맥락 없는 루크레티아와 섹스투스가 거론되더니, 클레오파트라까지 적의 장군들 모두와 잠자리를 해서 그들을 노예처럼 복종하게 했다는 설명이 붙어 끌려 나왔다.p.65


군중심리와 집단적 이기주의를 떠올렸다. 약한 소수에게 다수는 때로 그 힘을 이용해 매우 냉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약자의 희생은 불가피한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소수의견을 존중할 때 진정 인간성이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개인 사이가 그렇듯이 모두가 평화롭고 만족스러울때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을 것같다. 하지만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다수의 희생과 소수의 희생이 저울의 양쪽에 올라 있을 때, 판단은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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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28 2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인간의 이기심과 희생양을 보았습니다. 분개하기도 했구요. 어쩌면 아무것도 안하는 태도는 무정함과 무자비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미 2022-02-28 21:06   좋아요 5 | URL
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조난당했던 배에서 어린아이의 인육을 먹던일이 떠오르더군요. 그런 문제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토론하고 고민해봐야 시민들의 의식이 더 성숙해질것 같아요.^^*

새파랑 2022-02-28 2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시 열린책들 시리즈 시작하시는군요 ^^ 그 스승의 그 제쟈 같아요 ㅋ 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 잘 그린 작품인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ㅜㅜ

미미 2022-02-28 21:10   좋아요 4 | URL
이 문제를 소설로 표현했다는게 대단하고 또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봐르 부인>아직 안읽었는데 궁금해요ㅋㅋ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

새파랑 2022-02-28 21:11   좋아요 4 | URL
보바리부인 초초강추 입니다~!!

mini74 2022-02-28 2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마차 안과 달라지지 않은 거 같아요. ㅠㅠ 목적이 달성되자마자 모른척 하고 무시하는 이들을 보면서 저도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들은 합밥적 사랑이라면서 세 부인이 여주인공 무시할때 얼마나 그 위선이 꼴보기 싫던지요 ㅠㅠ

미미 2022-02-28 21:36   좋아요 5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양만 다르지 오늘 날에도 분명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있죠.ㅠㅠ 소설의 보편적 가치,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네요^^*

페넬로페 2022-02-28 22: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군중심리와 집단 이기심을 정말 잘 표현한 소설같아요~~
앙앙~~
이럴때 인간들이 너무 미워요~~
그리고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요^^

미미 2022-02-28 22:48   좋아요 4 | URL
재개발지역이라던지, 파업에 대한 시선, 임대아파트나 공공주택거주자차별,장애학생차별등 곳곳에 있죠. 그리고 인지하기 힘든 소소한 일들까지..늘 배우고 깨어있어야 볼 수 있는듯 해요. 결코 쉽지않은!^^*

scott 2022-02-28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딩 때 모파상 단편 읽고 충격을 ㅜ.ㅜ
몇일 동안 잠 못이뤘어요

프랑스 자연주의 사실 주의 작품 모두
플로베르에게 영향!
프루스트 옹도 ^^

미미 2022-02-28 23:48   좋아요 3 | URL
프루스트!! 프랑스 작가들 다 너무 좋아요 스콧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다 만나고싶어요ㅎㅎ

스콧님은 정말👍
과거로 회귀하고싶네요ㅠ

독서괭 2022-03-01 00:01   좋아요 3 | URL
초딩 때 모파상을 읽은 스콧님 와우👍

독서괭 2022-03-01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넘 재밌었어요~^^ 마담 보바리도 벨아미도 재밌었지만 이 짧은 단편에 담긴 날카로움이 유독 인상적이더라구요.
저도 이 시리즈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미미 2022-03-01 00:04   좋아요 1 | URL
짧은데도 강렬해서 더 깜짝 놀랐어요ㅎㅎ 보바리 빨리 읽고 싶어서 두근두근입니다~♡ 독재자들이 왜 사람들이 소설읽는걸 두려워했는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