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가장 필요치 않은 것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일이다.  - P373



여성들이 상당히 공감할만한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내용이다. 읽으면서 화도 나고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중간중간 공유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글을 써 올렸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전체 내용을 정리하기가 버거웠다. 언젠가 좀 더 아는 것이 많아지고 이 책과 연결할 수 있을 때쯤, 그 때 재독하고 좀 더 나은 리뷰를 써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이 책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생각의 가지가 많이 뻗어나가가게 하는 그런 사유가 담겨서 그런 것 같다. 



미용성형수술 산업은 건강한 것과 병든 것의 정의를 조작해 날로번창하고 있다. 지금 미용성형외과 의사들이 하는 것에는 분명한 역사적 선례가 있다. 수전 손택 Susan Sontag 이 <은유로서의 질병llness asMetaphor》에서 말했듯이 "건강하다"와 "병들었다"는 대개 사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내리는 주관적 판단이다. 사회는 오래전부터 여성을 통제할 목적으로 여성을 병든 존재로 정의했다. 지금 성형수술 시대가 여성에게 가하는 것은 19세기에 의학이 건강한 여성을 병들게 하고 능동적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의 공공연한 재연이다. 미용성형수술 산업은 정상인 건강한 여성의 심리와 욕망, 충동을 병적인것으로 정의하는 고대의 의학적 태도를 넘겨받았다.  - P352



미용, 다이어트, 성형,...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세계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가꾸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물론 나도 어느정도는 꾸미는 걸 좋아한다. 잘 갖춰입고 매력적으로 화장하고 스타일을 완성한 여성을 보면 감탄한다. 도전 슈퍼모델도 초기에 즐겨봤었다. 나는 168인데 170이 넘었더라면 모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스타일이 있다. 직장에 다닐때는 최대한 그런 쪽으로, 나만의 스타일대로 입고,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 전에 글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음반가게에서, 서점에서 내 스타일이 좋다며 한마디 건내고 지나가는 여성들도 있었다. 거리에서 잡지사 기자에게 잡혀 인터뷰한적도 있고(그 잡지를 보고 동창들이 전화도 했다) 패션학과 학생들이 내 스타일을 찍고 싶다고 해 명동거리에서 사진찍으며 똥폼을 잡은 일도 있다. 



그러다 한 남자를 사귀고 나는 달라졌다. 그는 송승헌을 닮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꾸며주는 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런점이 결코 싫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그는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 남자들도 때로 그렇겠지만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단점도 장점으로 본다. 일명 콩깍지. 콩깍지에도 등급이 있다면 나는 콩깍지 1급쯤 될꺼다- 예쁜 원피스도 사주고, 구두도 사주고, 악세서리는 물론 내 돈으로는 결코 사지 않을 스타킹도 사줬다. 허허......게다가 명품 가방도 사주니 친구들은 부럽다고 난리였다. 그렇게 사주다보니 스타일이 점점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진도 잔뜩 찍어줬는데 헤어지고 나서 그 때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결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차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난날도 그가 원하는 스타일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나는 그가 사준 고데기로 열심히 머리를 말고 최대한 갖춰입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그가 내게 같이 미용실에 가자고 했다. 내 스타일이 마음에 안든다며 자기가 예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안그래도 사귀는 동안 그런점이 점점 힘들어서 친구에게 내가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것이다 장담하던 나는 그날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예기간을 갖자고 선언했지만 사실 나는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에게 정리할 시간을 준 거였다. 그 뒤로 나는 악세서리며 진한 화장, 정장 스타일의 여성복, 굽 높은 구두와도 이별했다. 


남성이 여성의 성 자체보다 성을 상징하는 것에 더 흥분할 때 그 사람은 페티즘 fetishism(이성 몸의 일부나 옷, 소지품 등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의 하나 옮긴이)에 빠진 것이다. 페티시즘은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름다움"에 근거해서만 선택하는 남성은 여성을 페티시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녀의 일부, 그녀의 시각적이미지, 심지어는 그녀의 살갗도 아닌 것을 그녀의 성적 자아인 양 취급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페티시가 성적 욕망을 달성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부적이라고 보았다. 여성이 페티시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 덕분에 다른 사람들 눈에 그가 지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이 고유한 아름다움이 아닌 객관적 아름다움만을 이유로 선택한 여성과 섹스를 할 때, 방에는 그와 함께 많은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 P282


당시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MLB모자를 쓰고 있어도 나를 좋아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그 이전까지는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것 같다. 그래서 벌을 받은 걸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으니 썩 나쁜 경험은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친구들의 연애상담사가 되었다. 나쁜 연애 감별사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으려나 (이 얘기는 굳이...ㅋ)그래서 그런지 나오미 울프의 책을 읽으며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 더 많이 여성들은 (그리고 나도)'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에 중독이 되어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평생 늘지 않는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것만큼 세상의 여성들은 평생 빠지지 않는 살과의 전쟁속에 살아간다. 문학작품속에도 미디어에도 늘 여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관해 고민한다. 이것들은 사실 어떤 분야보다 큰 돈이 되는 사업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비난할때 외모를 들먹이며 수치심을 주려 하는데 이건 거의 늘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꿈꾸는 모습을 위해 다이어트하고 우리를 가꾼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온전히 우리의 필요 때문인지 이 책은 질문하게 한다.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끝이 없고 때로 아프지만 온전히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름다움의 신화에 직면했을 때 물어야 할 것은 여성의 얼굴과 몸이 아니라 그 상황의 권력관계다. 이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누가 말하지? 이것은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어떤 맥락에서 그럴까? 누가 면전에서 여성의 외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이렇게 자문해볼수 있다. 이게 이 사람이 상관할 일일까? 그런 권력관계는 평등할까? 나도 상대에게 똑같이 그런 사적인 언급을 하면 마음이 편할까? 대개 여성에게 외모를 환기시킬 때는 진정한 끌림이나 욕망에서 그러기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그럴 때가 많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잘 구별하는 것도 배울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을 해방하는 기술이다. - P442








읽어볼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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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22 23: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떤 하나의 문제를 생각하고 거기에 들어가다 보면 문제점들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미미님께서 여러번 올려주신 글들로 저 역시 많은 각성을 합니다.
감사하고요, 책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청아 2022-02-22 23:48   좋아요 6 | URL
때마다 공감해주셔서 페넬로페님과 함께 읽은 기분이예요^^* 아프지만 깨닫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시야가 열리는건 늘 기분이 좋네요. 감사해요~♡

새파랑 2022-02-23 0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맨끝줄 소녀인 미미님은 장신이셨군요 ^^ 내면의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미미님 1등임~!

청아 2022-02-23 10:01   좋아요 4 | URL
헤헷 덕분에 오늘 비타민 안먹어도 되겠어요^^* 아름다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는 계기였어요.저보다 새파랑님이 1등입니다~♡

mini74 2022-02-23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형놀이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더라고요. 예전 어느 부자가 혼전계약서애 몸무게가 늘 경우 생활비를 줄인다는 내용이 있었단
기사를 본 작이 있어요 ㅠㅠ 여성의 마음까진 몰라도 껍데기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세상?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있지요 미미님덕분에 ㅎㅎ

청아 2022-02-23 15:16   좋아요 3 | URL
이 책 읽으면서 그때 일이 떠올라서 더 분노했어요!ㅠㅜ 당시에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느라 스스로의 감정도 속였던것 같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쭉 변화할꺼라 믿어요.ㅎㅎ 미니님처럼 함께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요~♡.♡

책읽는나무 2022-02-23 15: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이 좀 그런면이 있긴 한 것 같아요.
제 남편도 연애시절 치마 좀 입으라고~입으라고~ 그래서 입고 나가서 칠렐레 팔렐레~~간수를 못하는 걸 보고 뜨악!!! 이제부터 함부로 치마 입지 말라고ㅜㅜ
근데 저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어 이 옷 입어라~저 옷 입어라~잔소리 했더니...ㅋㅋㅋ
근데 미미님은 완전 모델이시군요???
왜 미미님인줄 알았어요. 인형!!!ㅋㅋㅋ
어릴 때 내가 가지고 놀던 인형 이름이 미미란 걸 이제 알았어요^^
인형같은 미미님♡

청아 2022-02-23 16:23   좋아요 6 | URL
모델에 관한 제 의견은 아쉽게도 지극히 주관적이예요ㅋㅋㅋ;
당시에 여성학을 공부했더라면, 알라딘을 했더라면 전혀 대응이 달랐을텐데 좀 아쉬워요ㅋㅋㅋ어쩜 제 외모가 아닌 그사람의 생각을 바꾸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ㅋㅋㅋ저도 미미 있었어요 나무님♡ 바비였나? 머리땋아주는 기계도 있었고요ㅋ 남자아이들은 이런거 가지고 놀지못해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더랬죠ㅋ

다락방 2022-02-26 19: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너무 좋습니다. 뭐랄까, 미미님이 쭉쭉 앞으로 나가고 계시는게 보인달까요. 그런데 그게 비단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미미님은 계속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 같아요. 멈추지 않고 저 앞을 보면서 계속 성큼성큼 걷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좋은 책이나 좋은 사람은 아주 좋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하게 돼요. 미미님이 알라딘에서 다른 많은 분들과 교류하고 이렇게 책을 많이 읽고 계시다면 미미님의 미래는 또 어떻게 펼쳐질까요? 아무쪼록 미미님의 미래도 이곳에서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미님의 생각과 삶을 앞으로도 계속 나눠주세요.

함께 책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님.
:)

청아 2022-02-26 19:53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을 이곳에서 만났기에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안그랬다면 갈피를 못잡고 헤매는 시간이 길었을텐데 그런 면에서 귀한 인연이구나, 감사하다고 복이라고 느낍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가 많더라구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물음은 가지고 있는데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거요. 그래서 엉뚱한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까지는 하는. 다락방님은 <델마와 루이스>영화같은 분이예요. ‘한 번 경험하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각성을 하게 하게 해주셔서 늘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2-02-26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페티시즘, 권력관계...!
완전 공감!!!

청아 2022-02-26 20:04   좋아요 2 | URL
놀라운 책이었어요! 발췌문들만 읽어봐도 정신이 번쩍듭니다. 최근 어떤 방송에서 10대 한국소녀들의 거식증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출연한 의사 두분이 그 원인에 관심없다고 느꼈어요. 안타깝다는 말만 반복이더라구요. 이 책이 30년전 미국의 이야기지만 지금의 한국의 상황이 되었구나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