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때
남녀차별에 관한 여성의 목소리는 금기시 되어 있었다. 남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그 많던 여자 선생님들도 다른 많은 사회적 규칙들, 개인적으로 중요시하는 문제들에 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단 한번도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고 남성들이 이 세계의 주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ㅡ아니 그 사실은 은근하게 다른 방식으로 우리사이에 교육되고 학습되었다ㅡ아마 못했던 거겠지. 35년간 일제에 의해 주권을 상실했던건 가르쳐 주었지만 수 세기동안 주권을 상실한 여성의 위치는 누구도 교육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인 차별적 의식이 출처도없이 암암리에 전달되었다.
예를 들면 6학년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젊고 커트머리에 아주 지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선생님은 유독 우리가 시끄러운걸 참지 못했고 우리반만 그로인해 퇴근이 종종 늦어졌다. 하필이면 담임은 우리가 수업이 끝나 퇴근할무렵 종일 학급이 떠든것에 대한 벌로 가만히 앉아있기 벌을 30분에서 어쩔땐 1시간가까이 주었기 때문이다. 움직여도 혼이났다. 그래서 앞자리에 앉은 친구 머리에 이가 기어가는것도 보일때가 있었다. 담임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때 그걸 발견하곤 내가 짝꿍에게 싸인을 주어 둘다 웃음이 터지는걸 참으면서 이중고초를 겪었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한번씩 퇴근이 늦어지자 볼멘목소리가 우리 사이에 퍼져나갔고 누군가가 ˝담임이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거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다들 그걸 ‘화장실에 홍콩할매가 있다‘는 유언비어 만큼이나 아무렇지않게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 오래전 일이 이리가레의 책을 읽는 수십년이 지난 이시점에 떠오르며 나는 의아해진다. 퇴근이 늦는건 짜증나고 고통스러웠지만 선생님이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그런 생각은 과연 누구 머리에서 나왔으며 그 당사자는 또 누구의 생각을 머금고 그런 판단을 하게 됐을까를. 여성에 대한 그런식의 단정적인 의식이 그 어린 나이에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우리들의 관념으로,사고방식으로 ㅡ지금 판단에서야 ㅡ무섭게 파고들었다.
이리가레는 반사경. ‘여성으로서의 타자에 대하여‘, 『성차의 윤리학』, 『성들과 친족들』, 『차이의 시간(Le tempsde la différence)등 여러 저서에서 안티고네를 언급하고있다. 이 짧은 한 편의 비극은 자연과 문화의 대립, 개인과 공동체, 가족과 국가의 관계, 두 영역 사이에서 분할된여성과 남성의 역할, 여성적 질서에 대한 남성적 질서의 승리, 남성 권력에 대항하는 여성 주체 등 다양한 주제를 품고 있다. - P65
헤겔이 『안티고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비극에 정신적인 보편성을 가진 인륜 공동체로서 국가와 자연적인 인륜 공동체로서 가족 간의 대립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 두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 행위는 윤리적존재를 실현하게 된다고 보았다(헤겔, 2010:926). - P66
난 가족이 인륜적 실체일 수 있는 것은 개별자로서 가족 구성원을 넘어 그보다 더 보편적인 공동선에 이바지할 때다. 가족은 유덕한 남성 시민을 길러 냄으로써 국가 공동체에간접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가족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보편성을 회득한다. 죽음은 가장 보편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연적인 사태다. 가족은 죽은 가족 구성원을 위하여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죽음을 자연에 내맡겨진 비이성적인 일로 방치하지 않고, 인간 행위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서 보편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 P67
헤겔에 의하면 국가는 의식적인 현실인 반면, 가족은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자연적인 인륜 공동체다. 국가가 인간의 법에 따라 운영된다면, 가족이 따르는 것은 신적인 법이다. - P67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저지른 죄(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의 의미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반면, 안티고네는 "인륜적 의식이 자기와 대립하는 법칙과권력의 진상을 미리 알아차려서 이를 폭력과 불법으로...간주하여 범죄임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헤겔, 2006:47 ~ 48).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거두는 행위가 범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과 신적인 법을 수호하기로 작정함으로써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각오하고 스스로 국가에 대립하고 크레온에게 저항한다. 그러나 헤겔이 이렇게 안티고네를 높이 평가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에게 안티고네는 여전히 윤리적 주체로서는부족하다.
가족이 따르는 법은 암묵적이고 의식에 밝혀지지 않은 내적 본질이며 내적 감정과 신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의무를 수행하는 여성 역시 자신의 행위에대해 무의식적이게 되기 때문이다(Chanter, 1995:88 ~ 89).
그런데 이것은 안티고네만의 한계는 아니다. 헤겔은 가족과 국가 간의 분열과 대립을 성별화한다. 남성은 장성하면 가족을 떠나 국가로 나아가지만 여성은 가정에 남아 신의 법 수호하고 가족 구성원을 돌본다. 즉 헤겔에게 시민은 오로지 남성일 뿐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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