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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영화 특별 한정판, 양장)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그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나와는 반대쪽, 대각선 방향 구석에 앉아 있었다. 6대6 정도의 미팅이었는데 특히 내 앞에 앉은 수다쟁이 남자아이와 달리 말이 없고 조용해서 누구보다 눈에 띄었다. 하얀 셔츠는 예쁜 내 친구와 커플이 되었고 나 때문에 술을 제법 마시고 뻗은 수다쟁이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한번씩 넷이서 만나고 셋이서 만났다. 예쁜 내 친구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정도가 그랬다. 하얀 셔츠는 씹던 껌처럼 예쁜 친구의 관심 밖에 있었다. 또다른 미팅에서 만난 기타남을 좋아하게 된 나에게 친구가 된 하얀셔츠가 전화를 걸었고 기타남 때문에 내가 울자 하얀셔츠는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 했다. 예쁜 친구의 허락을 받고 하얀 셔츠와 난 사귀게 됐고 그는 나에게 향수와 전람회 CD를 사줬다. 그는 목소리와 셔츠향이 근사했고 김동률을 조금 닮았으며 우리 연애는 전람회 가사 같았다.
P.25 이렇게 경이롭고 마음이 훈훈해질 정도로 특별한 사람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의식이 강해 마치 전기를 띤 입자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몸짓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이 흘러나와 뻔히 다 들여다보이는 듯한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나의 과거를 소환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다.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을 줍듯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그림자처럼 뒤에는 내 이야기가 줄기차게 따라나온다. 살면서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지들을 생각한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삶은 너무 달랐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은 함께 하기로 선택하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너무 어렸다. 어른의 옷을 입은 두 어린 아이들이었다. 성장소설인데 성장하지 못한 소설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진 않으니까. 과거는 늘 쿨하지 못하다. 뒤돌아 보면 지금보다 더 어린 내가 있다.
P.150 그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늘 새롭게 굽이치는 파도나 물결과 같은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었고, 바로 지금 그런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