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탕과 대조되는 평범한 까만 머리에 얼굴도 없이 수염하나 턱 무심히 그려졌을 뿐인데 우리는 누구나 이 그림을 보면 단 한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그가 역사에 남긴 핏자국은 너무나 강렬하고 의미심장했다. 파시즘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발생지가 이탈리아라는 것과 히틀러가 무솔리니보다 이 개념을 상황에 맞춰 잘 써먹었다는 정도다.ㅡ 거기에 호응한 대중의 심리는 에리히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역사적 맥락과 함께 잘 설명되어 있다.ㅡ 작가는 이른바 파시즘의 원산지인 이탈리아 출신으로 나름의 문학적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쉽게도 국내 출간된 작품은 이 책이 유일하지만 (아직) 그녀는 소설뿐 아니라 노동자의 현실,안락사에 관한 민감한 문제도 책으로 풀어냈다. (조지오웰의 향기가 폴폴)
어지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람도 "파시스트 같은 인간아!" 라는 말이 악담이라는 것 쯤은 알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식속에 파시스트는 질 나쁘고 우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고가 어느정도 자리잡은 것 같다.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파시스트는 오래된 유령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책으로 누군가는 악담으로 아직까지 곱씹고 있지만 그 실체는 이제는 없다고. 잠재력만 인정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스트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때로 우리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도.
P.15 이념적 편견을 버리고 일단 파시스트 방법대로 해보면,누구라도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포레스트 검프의 말처럼, 파시스트는 파시스트로 행동해서 파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읽는내내 지루함을 못느끼고 여러지점에서 웃으며 집중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쓴 피에르 바야르가 자주 떠올랐다. 그런식의 위트가 있고 통찰과 풍자가 가득이다. 차이가 있다면 어느 순간순간 등꼴이 오싹한 느낌이 종종 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논리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 든다.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공포로 조장하고 어떤 존재들을 혐오해 그들 그룹을 '충'을 붙여 묘사하고 지역감정을 일으키고 논리보다는 차별로 맞서는 것, 말보다는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떠올랐다.
파시스트는 내가 파시스트라고 인정해야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파시스트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누구나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
사이코패스트 테스트를 해볼 때의 두려운 반 호기심 반의 감정으로 책의 후반부 '파시스트 자가진단법'을 해봤는데 다행히 최하단계인 희망자 등급을 받았다. 그래도 뭔가 안심하기엔 찜찜했다. 여기 그 설명을 조금 옮겨본다.
P.114 <0~15 희망자>
점수가 이 범위에 든다면 당신의 현재 파시즘 수준은 아직 배아 단계이고, 조용하고 온건한 파시스트보다는 성난 민주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구나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라. 당신의 부족함이 당신의 출발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파시스트가 정도 차이는 있어도 결국 민주주의자로 출발했고 당신은 그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당신은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설명하려는 목소리들에 쓸데 없이 귀 기울이지 말고, 오직 하나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을 따르면, 혼란과 불안을 줄이고 수령에게 의지하는 논리를 탄탄히 할 수 있다.
오늘의 포인트: 웃음은 힘이 세다. <장미의 이름> 속 호르헤 수사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