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메르켈 총리가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 언젠가 여성대통령이 나오더라도 그녀는 '최초'라는 타이틀은 거머쥘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한 변화다. 여성들에게 이 시대는 울프턴크래프트(1759~1797) 때와도 다르고, 보부아르(1908~1986)가 경험한 차원보다도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동등한 자격이나 기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현실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경계밖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캐롤 페이트먼은 영국의 정치학자로 이 책은 그녀의 논문을 모아 엮었다. 그녀는 근대 정치이론이 발전하던 17세기 부터 루소,로크,헤겔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배제해온 정치,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실체를 파헤친다. 왜 이전과는 변화된 21세기의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곳곳에서 배제되고 구분되어지는지 그 뿌리깊은 구조를 정치이론적 관점에서 되짚는 과정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근대 시기에 그들은 예컨대 노예와 시종에 대해 주인이,가난한 자들에 대해 부유층이,시민에 대해 정부가, 노동자에 대해 자본가가, 대중에 대해 엘리트층이,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전위정당이,비전문가들에 대해 기술관료와 과학자들이 갖는 권력의 적법성과 정당화에 대한 논쟁에 참여해 왔다.p.12


이런 의식은 지금도 이 세계의 뿌리안에 깊숙히 내재되어 있다. 예를들면 모성에 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의무로써 당연시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계속해서 발생하는 보육시설의 아동학대를 살펴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ㅡ 아동학대는 여성에 대한 학대,성범죄와 마찬가지로 개인의문제,일탈로 치부하기에는 피해규모가 상당하다. 아이들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고 부모의 정신적 충격도 마찬가지다.ㅡ주요 학대자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며 주의를 좀 더 기울이면 보육시설에는 다른 직업과 달리 남성교사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초등학교도 여성교사가 압도적이다.)


여성,혹은ㅡ자연,개인적인 것,감정,사랑,사적인 것,직관,도덕성,귀속,특수한 것,종속

남성,혹은ㅡ문화,정치적인 것,이성,정의,공적인 것,철학,권력,성취,보편적인 것,자유.P.200


여자들의 생물학과 신체가 그들을 남자들보다 자연에 가깝게 위치시키기 때문이고, 또한 사회화되지 않은 유아들을 다루고 날 재료를 다루는 양육과 가정의 일들이 그들을 자연과 보다 가깝게 접촉시키기 때문이다.따라서 여자들과 가정 영역은 문화적 영역과 남성 활동들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보이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필연적으로 종속적인 것으로 여겨진다.P202


게다가 여성들조차 돌봄노동이나 보육을 여성고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ㅡ 초등보육교사 남성교사 할당제의 논란도 그런 면에서 납득할 수 있다ㅡ관련직종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시설별로 약간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보육교사들의 노동시간과 업무량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원인을 분석한 많지 않은 뉴스를 찾아봐도 한 명의 보육교사에게 할당된 나이대별 인원비율과 공간적인 여건은 물론 배변치우기등의 어려움,점심도 제대로 먹기 힘든 실상은 참담하기까지하다. 자격요건의 부실함도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미약한 수준이며 보육시설에서의 학대로 인해 법정으로 가더라도 그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몇 개월의 정직처분에는 '휴가 보낸 거냐'는 비아냥도 있을 정도다. 피해자는 이런 실정으로인해 두번 상처받는다.


본인의 아이를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남의 아이를 동시에 여럿 돌보는 일은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인내력이 소모되는 데도 보조교사 채용은 미흡한 실정이고 남자보육교사는 채용초자 거의 하지 않는다.특히 미취학 아동의 경우 여러가지 특성으로 인해 통제가 쉽지 않음에도 이런 여러 상황들은 믿기힘들 정도로 사회적 관심에서 배제되어 있다. 관련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의미없는 비난만 무성할 뿐이다. 건물이 계속 무너지면 공사 업체와 공사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언론들도 하나같이 인부들만 잡는데 열을 올린다. 


출산률에도 이런 사회적 문제는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해마다 출산장려정책이 업그레이드 되고 지방마다 인구정책으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왜 정치이슈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효과는 미비한가. 이유는 보육및 돌봄노동이 사실상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육아,보육문제는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때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적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현실에서는 형식적으로만 공적 영역에 포함되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실상 관심밖에 있다. 이른바 '공적인' 입법에 관여하는 정치인 다수가 남성이고 사법부의 대다수도 남성인 상황에서 문제의식은 물론 개선의 여지는 아직도 희박하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접근이 늘 피상적이며 금전적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 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이다.이유는,부분적으로는 이런 집단이 교육제도와 학교,교회,언론,극장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그리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인구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P.123


같은 맥락에서 캐롤 페이트먼은 여성들의 '동의'에 대한 정치이론가들의 사회적, 가부장적 해석과 개인의 '정치적 권리 양도'의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경계가 뚜렷이 보이지만 경계안에서는 배제된 비참함을 모른다. 다만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견고하게 그 형태를 지킬 뿐이다.

우리는 이 모순되고 견고한 형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공과 사의 뿌리깊은 이분법적 구조는 성차별의 구조이며 인류적인 낭비이고 헛된 소모다. 구분되어진 이 영역들이 실제로는 상호 의존적이라는 모두의 수용이 시급하다. 여성에게 있어 여성주의 역사 인식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대처 방식에 따라 우리는 계속해서 피해자이자 상속자로 남을 수도 있고 남성들과 동등한 주권자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인류는 남성이며 남자는 여자를 그 자체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교해서 정의한다.여자는 자율적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다.남자는 주체이자 절대아다. 여자는 타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P.15<보이지 않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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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15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현재 1등 달리고 계신것 같습니다, 미미님!! 저도 열심히 읽고 쓰도록 할게요. 의욕 뿜뿜!!

청아 2021-02-15 20:35   좋아요 1 | URL
제대로 이해를 다 못한 상태라 좀 많이 창피한데 고쳐고쳐 그냥 올렸어요.
( ཀ ʖ̯ ཀ)ᕗ 다락방님 리뷰 기대됩니다!👍홧띵!!

다락방 2021-02-16 07:55   좋아요 1 | URL
저는 2장 읽는 중인데 왜케 어려운가요 😭

청아 2021-02-16 08:03   좋아요 0 | URL
번역자가 훌륭한 논문을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저 너무 답답해서 어제 원서 주문ㅋㅋㅋ해리포터도 낑낑대는 중인 제가 오죽함 이책을 ㅜㅠ
최대한 이해되는 글 위주로 보세요~♡

다락방 2021-02-16 08:51   좋아요 1 | URL
아 미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님 댓글 읽자마자 원서 구매 충동이 일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2-16 09:00   좋아요 1 | URL
앜ㅋㅋㅋㅋㅋ다른 원서에 비해 가격도 좀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 주문해버렸어요🙄😳

붕붕툐툐 2021-02-15 2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엮어 읽기까지~ 미미님, 정말 대단~👍👍👍
페미니즘 책은 왤케 눈에 안들어올까요? 이렇게 씹어주신 미미님 페이퍼 덕분에 편히 얻어 갑니당~😘

청아 2021-02-15 23:10   좋아요 3 | URL
오~툐툐님 나중에 기회되시면 정희진님 책 읽어보심 생각이 달라지실수도 있어요!
아님 <보이지 않는 여자들>도 흥미로워요!
응원 감사해요. 😁😍

붕붕툐툐 2021-02-15 23:32   좋아요 2 | URL
넵넵! 뜨겁게 만나는 날을 기대합니다! 추천 감사해욤~😍

scott 2021-02-15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북플계에 샛별~。✩*:゚・⑅*॰¨̮♡ ✩
떠오르는 혜성 (。✩*:゚・⑅*॰¨̮♡✩
이페이퍼 최고네요 ^ㅎ^

청아 2021-02-15 23:14   좋아요 2 | URL
아 스콧님!!(´∇ノ`*)ノ
이 책 읽고 제가 뱁새란걸 느꼈어요~다락방님(황새)
뒤에서 다리가 아프네요. 점점 나아지겠죠?!샛별,혜성 꿈에 나오겠네요~캄솨♡

바람돌이 2021-02-16 0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독서에 박수를...👏 👏 👏 👏 👏 👏 👏
보육교사의 조건은 강화해야하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댓가는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을 계속 몇몇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사적인 노동으로 치부하는 지금의 현실이ㅠ계속된다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화할수 있는 구조의 미비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미미님 페이퍼 보고 제가 오늘 내린 결론입니다.

청아 2021-02-16 06:11   좋아요 0 | URL
오 바람돌이님♡ 요점정리가 완벽한걸요?!👍👍
부족한 내용에 응원해주시니 더 노력해야겠어요! 고맙습니다!٩(๑❛ワ❛๑)

행복한책읽기 2021-02-16 0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이 리뷰 넘 멋져요. 저 이 책 흥미가 안 당겼었는데 님 글 보고 급 당김이요.^^ 저자의 문제의식을 우리 현실에도 접목해 인식 확대로 이끌다니. 👏 👏 👏 👏 👏 가 절로 쳐졌어요. 좋다요 진~~~짜 좋다요^^

청아 2021-02-16 06:22   좋아요 1 | URL
굵직한 이슈들이 담겨있어 놀랍고 훌륭한 내용이예요!다만 번역이 좀 많이 아쉬워서ㅠㅇㅠ
추천드리기가 애매해요ㅋㅋ.새로 번역이 다른분으로 바뀐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여러모로 부족한데 감사해요♡( •⌄• ू )✧

수이 2021-02-16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다 읽으신 겁니까??!!!!! 저는 머리를 싸매고 한 글자 한 글자 정독중인데 과연 완독할 수 있을지.......-.- 미미님 리뷰 감동인데 책은..........

청아 2021-02-16 18:51   좋아요 0 | URL
그쵸?♡(╯•﹏•╰)
전에 찜or페이퍼 올려주신 조셉 윌리엄스의 <Style>읽어보니 이 책 번역이 왜 어떻게 잘못됬는지 쫌 보이더라구요~훌륭한 책인데 번역자가....하..저도 머리에 쥐날뻔했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