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문성원 지음 / 알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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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박태원이 발표했던 소설가 '구보 씨'가 2013년에는 '철학자 구보 씨'로 돌아왔다. 철학자 구보 씨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여러 번 소설가로 돌아온 경력이 있는 구보씨다. 사실 철학 관련 책을 읽을라치면 용어가 낯설기도 하지만 일단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어야 하는 내용이라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철학과 무관한 일반인이라면 보통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소설가 구보 씨'를 다시 불러와서 철학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 책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Y'라는 여성은 일반인이 철학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대변하고 있다. 철학자 구보 씨가 이야기하면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모습이 자못 귀엽기까지 하다. Y의 등장으로 우리는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철학자 구보 씨의 관점과 일반인 Y씨의 관점, 이렇게 두 가지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구보 씨는 누드모델을 꿈꾸기도 하고, 엉뚱하게 뱀파이어가 되기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냥 쉽게 넘길 수 있는 소재에도 심오한 철학과 생각이 담겨있다. 역시 철학자인가 싶다. 하지만 이렇게 심오한 구보 씨의 생각을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렵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영화나 사회적 이슈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서 접근하기 쉽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뱀파이어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할 때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유명한 영화 '박쥐' 와 '렛미인' 등과 함께 이야기한다. 구보 씨가 알고 있는 내가 몰랐던 영화의 숨은 이야기도 함께 알 수 있어서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아마 처음부터 '악의 반향(反響)' 이라든지 '내적인 것으로 삼투(渗透)' 라는 말을 했다면 바로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이 담긴 책인 만큼 항상 쉽지만은 않다. 가끔 구보 씨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난해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Y' 가 등장해서 내가 생각했던 의견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철학 관련 책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간 듯하다. 책을 읽다 보면 철학자 구보 씨의 생각은 정말 독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에 대해 구보 씨의 생각을 말할 땐 나야말로 뒷골이 땅기는 것을 느꼈다. 페어플레이란 스포츠가 스포츠일 때, 그러니까 아마추어리즘에 충실할 때나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 요즘의 프로 축구처럼 주목받는 스포츠는 모두 돈과 결부되어 있어 과연 페어플레이 정신이 깃들 수 있겠냐는 구보 씨의 생각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철학은 내게 매우 어렵기도 하며 진지한 내용이었기에, 책장을 넘기기 쉬운 소설이나 인문서에 손이 먼저 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은 기존의 철학서와는 달리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구보 씨가 'Y'와 대화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철학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철학자 구보 씨의 책으로 친해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구보 씨는 강도짓이 성립하기 위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게 총이 있고 당신을 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 즉, 상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강도 노릇조차 하기 어렵다는 구보 씨. 갑자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인민군과 국군이 동막골 주민들을 가운데 두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과 구보 씨의 철학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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