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던 주인공 하시바는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이 생각했던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예상은 멋있게 빗나가고 대학 강의란 것도 고등학교까지의 수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 4학년이 되자 졸업논문 작성을 위해 강좌에 배속되어야 했다. 인기 있는 강좌는 늘 그렇듯 만원이다. 다른 학생들과 상의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조차 귀찮았던 하시바는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 인기 없는 강좌를 선택하기로 한다. 물론 LTE-A급 속도로 1지망에 배속된다. 그 결과, 하시바는 상업적 연구원이라 할 수 있는 모리모토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하시바가 모리모토 교수의 강좌에서 기시마 선생을 만나면서 대학교수로까지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조수 기시마 선생…." 처음 들어본다. 대학 4학년이 될 때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궁금했지만 만나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결국, 졸업논문은 박사 3년 차 대학원생인 나카무라 선배의 도움으로 마칠 수 있었다. 하시바는 취업활동은 머리가 아프고 연구실의 세미나, 그리고 프로그래밍에 재미가 붙어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시험을 본다. 물론 합격이다. 2등이지만. 그리고 드디어 8개월 만에 자그마한 체구에 부스스한 머리. 턱에는 제멋대로 수염이 자란 기시마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기시마 선생은 일반인들과 거의 반나절 정도 틀어진 시차로 생활한다. 그러니까 밤 10시에 학교로 출근해서 대략 낮 3시쯤 퇴근을 한다. 덕분에 늘 자리가 부족한 계산기센터의 단말기 실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작가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개인 PC가 보급되기 전이라고 한다. 그는 컴퓨터의 천재이자 연구를 할 때 왕도의 길을 걷는 스타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괴짜다. 얼굴과 태도로 심정이 드러나지 않고, 연구에 관한 한 냉정하여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차갑다고 느낀다. 하지만 기시마 선생은 훨씬 정열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신념을 실행하는 타입이다. 계산기센터의 사와무라 이야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시마 만난 후로 하시바는 진심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길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건축을 전공한 공대생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았지만, 졸업작품과 논문을 준비할 땐 학교에서 오랜 기간 숙식을 해결했었고, 남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우리는 하교를 했었다. 그때는 몰입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우 좋았다. 하시바보다는 아니었지만 순수했고 열정이 있었다. 지금보다는…. 하시바가 연구실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 대학도 설계실과 연구실이 있었는데, 각 설계실과 연구실에는 담당 교수님과 조교가 있었다. 나는 2학년부터 연구실에 들어가 생활을 했다. 담당 교수님 그리고 조교 형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많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구조 분야에 명성이 있던 교수님은 내게 당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많이 전해주려고 하셨던 같았지만, 당시 나는 연구보다는 술과 게임 그리고 여자를 더 가까이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하시바처럼 열정적으로 순수하게 연구하지 않았던 대학 시절이 조금은 아쉽다고 생각된다. 졸업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1년에 한두 번 찾아뵙고 있는 교수님은 술을 참 좋아하셨다.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기시마 선생의 외형과도 비슷해서일까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교수님이 생각이 났다. 기시마 선생을 통해 지금까지 잠시 잊었던 나의 순수했던 대학 시절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이 책이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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