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숨은 과학
캐스린 하쿠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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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부제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 숨은 과학] 인 것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의 중심에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사실 나는 프랑켄슈타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줄 알고 있었던 만큼 그 소설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소설의 저자 메리 셸리 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 봤다.


저자는 작가 메리 셸리에게 영향을 주고 그녀의 가장 유명한 창작물에 영감을 불어넣은 과학과 과학자들에 대해 살펴보면서, 프랑켄슈타인이 어떻게 괴물로 오해를 받았는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메리 셸리가 살았던 1797~1851 시기는 작가가 태어난 영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갖가지 과학적/비과학적 실험과 추측들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또한, 프랑스혁명 이후 온갖 분야에서의 자유주의가 난무하던 시대였다.

작가 메리 에 대한 추적과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추적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알아야 좀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메리 셸리의 대뷔 소설 프랑켄슈타인 은 괴물 하나를 만든 데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과학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시발점이었다. 과학과 사회가 엄청난 혁명을 이뤄가던 시기에 쓰였던 이 소설은 새로운 발견에 따른 흥분과 공포 그리고 과학의 위력을 포착해냈다. 저자는 이 과학적 위력을 차근차근 되짚어 나간다.


당시 과학적 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 변화를 이끌어 냈다.

첫째, 잘 구성된 논증에 따라 지식을 진전시키는 그리스 전통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실험과 경험이 지식을 생산하는 유효한 방식이 되었다. 둘째, 뉴턴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운동이 수학적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셋째, 당시 계몽주의는 곧 기계장치의 시대였다.

18세기는 과학과 자연철학의 구분이 불분명했고 포괄적이었다. 과학은 당대 유행하는 철학이었고, 강연과 인쇄물을 통해 새로운 발견과 결과가 대중에게 폭넓게 퍼졌다.  과학자 라는 단어는 1833년 농담처럼 만들어진 단어였다. 예술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 라고 하니 과학 하는 사람은 과학자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발언에서 처음 나왔던 단어가 과학자였고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몇년이 지난 후 부터였다.


과학에서 특히 전기의 발견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었는데, 전기와 생명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을 전기적 자극으로 이끌기도 했다. 고대 이후 정체되어 있던 의학은 해부학을 중심으로 급진적 발달을 했는데, 당시 해부는 대중적 쇼로 보여줄 정도로 인기였다.

교육 특히 여성의 교육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메리 셸리는 당시 관습에서도 벗어날 정도로 지적 자극을 충분히 받으며 자란 경우였다.


메리 셸리의 부모는 당시 급진적인 사상의 커플이었는데, 메리의 엄마 울스턴크래프트 는 성공한 작가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라 불릴 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또한 작가이자 당시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교육에 열정적이어서 메리 셸리는 이러한 부모의 영향을 스폰지처럼 흡수한 딸로 자라났다. 하지만 부모가 실천했던 자유연애적 삶을 메리가 행동에 옮겼을때 딸은 내쳐졌다. 메리 셸리는 십대후반부터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메리는 본인과 비슷한 남자를 만나서 작가로서의 삶을 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인 퍼시 셸리는  교육을 잘 받은 귀족이자 작가이자 과학적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메리처럼 집안에 연연해하지 않고 살았다. 둘은 여행하며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사는 커플이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져 있다.

1부 착상 에서는 계몽-발전-가출-발생기 순서로 메리 의 삶을 다루면서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소설에 영향을 미쳤을지 추적한다. 2부 창조 에서는 교육-영감-수집-보존처리-조립-감전-소생 순서로 프랑켄슈타인에 들어가 있는 과학적 정보들이 당시 어땠는지 다양한 과학자들을 통해 과학사로 불러도 좋을 만큼 과학적 흐름을 풀어낸다. 3부 탄생 에서는 생명-죽음 으로 소설 프랑켄슈타인 자체에 대한 해설을 하며 메리의 마지막 삶을 정리한다.


책은 때로는 메리 셸리 라는 작가를 다룬 평전 같기도 하고 때로는 18세기~19세기 과학적 다양성을 다룬 과학사 같기도 하고 소설 프랑켄슈타인 에 대한 분석을 담은 해설 같기도 했다. 하지만 메리 셸리 라는 작가를 몰랐더라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가질법한 호기심들을 풀어낸 책이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과학과 의학적 지식들은 불과 100년도 안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허무맹랑하게 보이고 얼토당토않게 보이는 실험과 믿음들이 당시엔 얼마나 당연했던 것들이었는지 읽다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도 미래에 가서 어떻게 뒤집힐 지 모를 일이다. 과학은 진보하면서 밝혀지는 분야이겠지만, 소설은 시대를 통과하며 이어지는 분야인것 같다. 당시의 과학적 지식들은 지금 전혀 다른 정보들로 새로워졌지만, 당시 과학적 정보들의 모음같았던 프랑켄슈타인은 모습을 바꿔가며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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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위인전 -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보리스 존슨 지음, 이경준.오윤성 옮김 / 마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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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일까 위인전일까 아니면 르포일까 역사서일까

모두다 이기도 하고 모두다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제목처럼 정말 뻔뻔한 주장들에 저절로 납득이 된다. ㅎㅎ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이고, 역사가이자 2008~2016 런던시장이었다.

이책은 저자가 런던시장이던 2011년에 런던을 대놓고 편애하는 입장에서 지성과 애정으로 쓴 런던의 역사이자 런던의 역사를 만든 인물들의 열전이다.


몇년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갔던 도시가 런던이라서인지 유럽도시들 중에서는 런던을 편애하는 나이지만 저자의 편애는 상상초월이다. ㅋ

하지만 읽기에 거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때론 키득거려지고 때론 어머정말 해가면서 읽게되는 것은 저자의 신랄하면서 직설적인 표현들 때문이다.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것이, 저자는 거침없이 써대고 당당하게 내세운다. 런던은 이런도시다 라고.

저자가 풀어내는 17명의 인물들은 런던의 역사에 저마다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들 중에는 듣도보도 못한 인물들이 많아서 새로웠다.


부디카 / 하드리아누스 / 멜리투스 / 앨프리드 대왕 / 정복왕 윌리엄 / 제프리 초서 / 리처드 휘팅턴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로버트 훅 / 새뮤얼 존슨 / 존 윌크스 / 윌리엄 터너 / 라이어널 로스차일드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메리 시콜 / 윌리엄 스테드 / 윈스턴 처칠 / 키스 리처즈


역사순으로 서술하면서 인물들의 일화중심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런던의 역사가 입체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이야기는 런던 브리지 에서 시작한다.

런던을 생각할 때 연상되는 몇가지 상징물들중에 커다란 성처럼 느껴지는 런던브릿지는 노래에도 자주 등장하는 다리이다. 다리는 사람들이 건너는 곳이고 시골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다리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탄생에 중추적 역할을 했고 이 다리를 건설한 것은 로마인이었다. 로마의 세력이 영국까지 펼쳐졌을때 역사상 최초로 런던의 은행을 공격한 인물이 부디카라고 한다. 여왕 부디카가 런던에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역설적으로 로마인에게 런던의 중요성을 로마인의 위신과 연결시키는 사안이 되었다며 자연스럽게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로 넘어간다. 부디카의 반란으로부터 하드리아누스의 행차까지 60년간 런던은 빠르게 로마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의 위세가 꺽이면서 410년부터 런던은 공식적으로 로마제국에서 제외되었다. 그뒤로 로마땅도 아니고 기독교땅도 아닌 상태로 7세기초까지 런던은 다시 야만으로 돌아간다.


멜리투스는 런던에 기독교교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독교적이지 않은 표현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어서 뭔가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예를들어, "대모신 숭배와 기독교의 교집합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큽니다" 라거나 "5세기에 로마로부터 떨어져 나온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종교나 정치를 통합하려는 그 어떤 대단한 범대륙적 계획에도 잠재의식적으로 불신을 느낀다고 말이다" 라거나 "런던 깊은 곳에는 변치 않는 이교 기질과 야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라는 식의 표현은 현재의 영국에 대해 미국과 비슷할거라는 내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앨프리드 대왕은 색슨족 왕가의 번듯한 도련님이었다고 한다. 그는 바이킹을 바다 건너로 돌려보내고 왕국을 통일했을 뿐 아니라 배며 시계며 랜턴 등 굵직한 발명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런던에는 그가 도시에 기여한 바를 적절히 기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기념비적 건축물이 없기 때문일까? 반면에 정복왕 윌리엄은 노르만족이었지만 런던의 왕위를 차지했고 런던타워를 만들어 남겼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영국인들에게 회자되는 왕이라고 한다. 노르만 시대에서야 런던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영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영어가 아닐까? 세계공용어인 영어의 발음은 영국식 발음을 제일 높게 쳐준다. 하지만 영어의 시작은 하층민의 언어였고 속된 언어였고 음란한 언어였다고 한다. 제프리 초서가 영어로 글을 쓰면서 당시 두갈래의 거대한 언어인 독일어와 로망스어를 한데 녹여냈고, 또한 노르만어, 프랑스어, 라틴어를 영어와 적절히 섞어 쓰면서 유머러스 하면서도 활용성 높은 문학언어로 영어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한다.


런던이 도시화 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런던은 은행의 도시가 됐다. 리처드 휘팅턴 은 그 대표적 은행가인데 그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선행때문이었다고 한다. 부자가 베풀면 이름을 남기는법!

경제가 활성화되면 문화도 부흥하기 마련이다. 런던에 돈이 넘칠때 연극도 넘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저자는 상업연극이 다른 어느 나라가 아닌 영국의 아니 런던의 위대한 수출품이라고 주장한다.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에 대한 런던의 효과적인 응수로 자랑스럽게 셰익스피어를 내세우며 잉글랜드의 호메로스 라고 부른다. 하지만 치켜세우기만 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영어로 글을 쓴 가장 위대한 작가였으면서 속물이기도 했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로버트 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대한 발명가로 소개한다. 그는 회화와 건축부터 과학분야의 다양한 혁신과 이론에 이르기까지 관심사의 범위가 다빈치에 버금갈 만큼 넓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많은 영역에 걸쳐 너무 많이 질투심을 느꼈고 그만큼 불화도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뉴턴과의 일화에서 그의 모자란 인성이 안타깝기도 했다.

새뮤얼 존슨은 최초의 언어사전을 단독집필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사람도 부당한 말을 불쑥불쑥 내뱉기 일쑤였고 무례했으며 불평등을 당연히 여기는 보수주의자 였지만 그 속엔 온정이 깔려 있었던 거라고 한다. 반면 필력에서 새뮤얼 존슨 버금가는 사람으로 존 윌크스는 신문이 하원 의사록을 보도할 권리를 쟁취하고 모든 성인남성의 투표권을 최초로 주장하며 윌크스와 자유 라는 구호와 45 자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자유주의자 였다. 하지만 둘다 진정한 서민의 편은 아니었다.

연극에서 런던이 세계를 이끌고 과학에서도 유명세를 날릴때 유독 화가명단에서는 영국인이 드물었다. 그때 윌리엄 터너가 등장한다. 저자는 그가 화가가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니라, 화가에게 무언가가 어떤식을 보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원치을 처음으로 주장한 화가였다며 인상파의 아버지로 지칭한다.

로스차일드는 유럽 전역에 걸친 금융왕국의 영국이라는 지방의 군주라고 표현된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여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는 정치권에 진출한다. 돈과 권력은 역시 뗄수 없는 관계...

고대부터 어느새 중세를 지나 근현대 까지 왔다. 근대현대적 인물들은 역사적 흐름이라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등장한다. 나이팅게일과 메리시콜 은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을 돌보는 양대산맥이었지만 한쪽은 간호학을 세웠고 한쪽은 호텔을 세웠달까. 당시에는 둘 다 칭송받았지만 역사엔 한명만 남은 것을 보며 나이팅게일의 정치력도 새삼 알수 있었다. 윌리엄 스테드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을 창안한 사람으로 시선을 끄는 기사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영국언론의 화제몰이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 은 실패한 정치가이지만 사랑받은 정치가로서 영국인들이 그에 대한 매력을 어디서 찾는지 왜 그가 런던의 상징이 되었는지 를 보며 영국인들의 특성을 생각하게 된다. 키스 리처즈 는 롤링 스톤즈에 대한 저자의 팬심이 가득한 파트 였다.

런던브릿지도 시작한 책은 인물들을 거쳐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로 마무리된다. 흥망성쇠를 거듭한 이 호텔은 2011년 밀레니엄 호텔로 거듭났는데, 20세기 중반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이 잊혀졌던 시기 런던의 부흥도 멈춰있었다. ​저자는 호텔의 재개장 처럼 런던의 부활을 희망한다. 런던은 뉴욕, 상하이와 3자간 대화를 하기 딱 좋은 시간대에 있고 소통하기 딱 좋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며 은근슬쩍 미국과 중국 사이에 영국을 끼워넣으려 한다. 세계의 중심은 이제 런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런던이 변방도시인 것도 아니다. 역사를 가진 만큼 저력을 가진 도시라서 저자의 희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

런던을 위대하게 보면서도 우습게 표현하고, 런던인을 고급지게 표현하면서도 야만성을 드러내며,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도 은근슬쩍 깍아내리는 이책의 재미는 제목그대로 뻔뻔하면서도 납득하게 되는 저자의 필력 때문인것 같다. 다시 런던에 간다면 이 책에 나온 곳들에 가서 런던의 역사를 음미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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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에 핀 꽃 아시아 문학선 21
이대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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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실화의 주인공을 직접 만났다거나 인터뷰했다거나 한 것이 아닌 자료에 근거한 허구의 소설이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한 허구적 소설에 나는 항상 관심이 간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가 그랬고 신경숙 작가의 리진 이 그랬다.

역사이지만 역사서로 읽지 않고 허구가 섞인 소설로 읽을 때 그 역사적 사실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역사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면 안되고, 소설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면 안되지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알려한다면 소설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 그랬고 김탁환 작가의 거짓말이다 가 그랬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이 소설은 평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헤이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단체였다.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의 축약명칭 베헤이렌 이라는 일본어.

베트남 전쟁당시 일본내에 반전평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단체

그 단체가 피신시킨 미군탈영병 중에 한 사람이

미국인이었지만 한국입양아였고,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었지만 베트남전쟁으로 부모를 잃게하고 있었던 한국출신 미군이었다. 냉전시대 그의 선택은 국가가 아닌 인간이었다. 작은인간.

주인공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으로 자랐고 히피문화를 접하며 반전분위기가 확산되던 때 군인이 되었다.

그가 겪은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살육이었고, 부상휴가로 머문 일본내 미군기지에서 탈영하여 쿠바대사관에 망명하였으나 외교문제로 발이 묶였을때 베헤이렌의 도움으로 소련으로 건너갔다가 스웨덴에 정착하게 된다. 50여년 후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통해 잊고 있던 이름 손진호 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시간이 삶에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간에 바쳐지는 날들이라는 주인공이 표현한 노년의 날들은 노년의 권태를 불러올 뻔 했지만,

아들과 함께 하는 추억여행속에서 젊은 시절의 혼란과 방황을 의지와 보은으로 마무리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권태를 물리치게 해주었다.

주인공은 어디에 있든 굳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궁금해하면, 나를 궁금해한다 는 문징은 소설 내내 주인공의 태도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주인공의 삶에 대해 그리고 베헤이렌 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는 '세계시민' '개인' '작은인간' 이었다. 국적을 초월한 세계시만을 추구하는 삶. 그러나 "정신은 늘 국경을 초월하고 있어도 여권이 있어야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에서는 몸이 삶을 놓고 있으며 몸이 죽음을 놓을 땅에다 나의 이름을 두겠다는 선택" 은 자이니치의 국적에 대해 주인공의 국적에 대해 세계시민의 국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냉전시기 일본이 미국과 맺은 불평등한 미일지위협정은 미군 신분이었던 주인공의 행동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고, 베헤이렌 에게는 두 국가간 불평등의 역설이 만들어낸 평화운동의 합법지대 같은 것이 되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군인의 신분에 대한 불평등한 지위보장이 유효한 것이 생각나서 씁쓸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그런 불평등조약에 의한 미군을 유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본경찰은 유령을 처벌할 수 없고 유령을 도와준 일본인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베트남전에 참여하지 말고 탈영하라고 선동하던 베헤이렌 은 탈영한 미군을 제3국으로 피신시키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때 전쟁의 주범이었고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 전쟁광같아 보이던 일본에도 그런 양심 세력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 양심세력이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전쟁반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자는 반성운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의 탈영이라는 선택은 베트남전쟁 반대라는 입장은 다른 미군 탈영병들과 달리 유일한 분단국가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어느나라에서든 선전용으로 써먹기 좋은 조건이었던지라 순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북한도 남한도 미국도 아닌 제3국가를 선택하는 모습에서 한국전쟁 직후 포로수용소에서의 제3국행을 선택했다던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국가라는 경계가 있는 한 평화에도 경계가 생길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고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 탐사하듯 서술해가는 이 소설이 많이 읽혀지길 바라지만, 문체가 조금 아쉬웠다. 근대소설 속 화법 같기도 하고 연극배우들의 대사 같기도 한 대화체들이 어색한 곳이 여러곳 있었다. 예를들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중에

"까마득한 옛날 행적이 정확한 날짜와 함께 등장할 모양인데, 이건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가로등 같은 거구나" 하고 아버지가 말하자

"가로등 따라 맥주로 목을 축이며 걸어갑시다. 이제 초저녁이니 길이야 멀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아들이 답한다. 좀 어색하지 않나?;;;

어린시절 추억담에서 소를 부를때 열살남짓 소년이 '소야 나오너라' 하고, 허세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허장성세 라고 한다.

현대시점에서 쓴 책이니 대화체나 표현이 좀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면 읽으며 좀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약간 아쉬움이 있더라도, 이 소설이 좀 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이유는

한국전쟁과 고아, 입양아들의 외국인으로서의 삶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상흔, 일본과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등 여러 곳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주제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살면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새빨간 바탕에 총한자루 그 총구에 꽃한송이 로 인상적인 표지에서 꽃이 눈에 박히는 것은

우리가 겨누고 있는 총구에서도 언젠가 평화의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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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SOS - 10대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챙김
엘리너 스널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랑 녹음 / 돌배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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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교적 얇은 책이라 쑥 읽히고, 명상 CD 까지 붙어 있어 사은품을 받은 느낌도 들어서 (CD의 사용여부를 떠나) 좋았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심리 치료사로 MBSR 이라고 하는 마음챙김 프로그램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제목에 나오는 SOS 는 사춘기 자녀가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보내는 신호이다.

그래서 부제가 10대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챙김 인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챙김은 요법 같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 그리고 생각과 느낌이 반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을 말한다. 마음챙김이란 긍정적 사고나 긍정적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에 집중한다는 면에서 불교적 수행이 생각나기도 했다.


10대 아이들과 마음을 챙기며 같이 살아가는 첫걸음은 즉시반응하기 를 멈추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일단 멈추어야 조율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10대들은 자기 몸을 느끼기 보다는 몸에 대해 생각 한다. 사실 대부분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몸을 느끼지 않고 생각해서 판단할 경우 자기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챙김을 하면서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파악하고 몸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것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챙김이 있는 알아차림은 도움이 안되는 생각들과 반응패턴을 끊어내가 쉽게 한다고 한다. 생각을 멈출수는 없더라도, 항상 그 생각에 귀기울이기를 멈출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쉬고 있을때의 마음은 스트레스로 지친 마음보다 무엇을 훨씬 더 잘 배우고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갈 때  '숨' 으로 돌아가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고. 감정이 통제가 안됨을 느낄때 일단 멈추고 가만히 숨쉬는데 집중해 보라. 이러한 멈춤은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도움이 된다.


10대 자녀를 기를 때의 도전은 열린 마음(마음챙김)과 따뜻한 가슴(온정)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색유리를 통해 자녀들을 본다. 렌즈 색깔이 우리 자신이 예전에 겪은 아픔, 슬픔, 상처의 경험에 의해 정해지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의 우리 반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에 대한 나의 반응이 내가 자라며 갖게된 색유리를 통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책속에 내가 좋아하는 인디언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짧게 요약하자면,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인생에 대한 교훈을 주는 대화인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두 마리의 늑대이야기를 해준다. 한마리는 말썽쟁이에 사납고 자기중심적이고 한마리는 착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배려심이 많다. 두 마리가 서로 싸우면 누가 이기냐고 손자가 물을때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내가 먹이 주어 키우는 놈이 이기지'

내가 먹이 주어 키우는 바로 그 품성이 자라나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품성은 사그라져 없어지고. 늑대의 품성중 하나를 고르는 데 매일 몇분만 쓰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챙김 시간의 몇분.


책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애벌레 이야기 였다.

'애벌레는 눈에 띄게 노력하지 않고도 늘 탈바꿈을 해낸다.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게 둘 시간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모든 일은 다 잘 될 것이다. 우리의 10대들에게도 성장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참을성이란 시간상의 문제가 아니라 딱 맞는 순간을 찾는 문제라고 한다. 아이를 때때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끔 밀어붙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언젠가 자기가 나비로 탈바꿈할 것임을 아는 애벌레의 참을성도 도움이 된다고. 믿음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느끼는 체험이라고. 고치가 일찍 터져버리지만 않으면 애벌레는 항상 나비로 탈바꿈한다고. 아이의 온전한 잠재력의 고삐를 풀어주는 것이 자녀 양육과 알아차림 기르기의 전 과정의 핵심임을 저자는 강조했다.

어떤 모습의 나비가 되었던 간에, 모든 애벌레는 모두 나비가 된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주는 구절이었다. 모든 아이들은 다 다르고 각자 자신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 믿음으로 아이를 좀더 여유있게 봐줘야 할텐데, 애벌레에게 화려한 나비의 허물부터 입히려고 조바심 내는 건 아닌지...


저자가 요약하는 10대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챙김 요약은 3가지이다.

용기-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

연민-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부모 자신과 아이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것

믿음- 참을성 있게 견디고 부모 자신과 아이를 믿는 것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었지만, 다시금 마음을 내려놓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10대 아이를 키우며 마음에 조바심이 날때 한번쯤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저자의 사춘기딸과의 갈등에 공감하며 선배가 조언해주는 말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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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 구출 류츠신 SF 유니버스 1
류츠신 지음, 김지은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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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티비를 보다가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유랑지구 라는 영화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됐는데 그때 영화의 원작 소설가인 류츠신 의 이름을 처음 들어 알게 됐었다. SF소설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2015년에 수상했다는 SF소설계의 샛별 같은 작가

어른용 SF소설을 써오던 작가는 청소년용 SF소설을 제안받고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한 작품들을 썼고, 시리즈로 출판하게 됐다. 이 책은 그의 SF유니버스 시리즈 의 첫번째 책이다.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모음집으로, 대개 단편모음집은 실려 있는 작품들 중 대표적 작품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니 각각의 작품들에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흐르는 흐름을 제목으로 도출해 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각양 각색의 작품 모음으로 낸 단편집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처럼 통일적인 주제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 더 좋았다. 


위안위안의 비눗방울 은 소녀와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비눗방울을 좋아하던 소녀가 자라서 과학자가 되고 과학자였던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아내의 꿈이 깃든 도시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시장이 된다. 황폐해진 환경 점점 살 수 없어지는 환경속의 도시 그 도시의 끝자락을 잡고 있던 아버지에게 딸의 비눗방울은 한숨이었다가 희망으로 바뀌게 된다.


땅불 은 광산 이야기 이다. 탄광촌에서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은 작가의 어린시절이 투영되 있기도 하다고 한다. 척박한 작업환경 의 광부들을 좀더 나은 여건속에서 일하게 하고 싶었던 주인공은 석탄을 기체화하여 가스로 이동시키는 실험을 구상하고 고향에 와서 실행에 옮긴다. 보이지 않는 땅속 지층에 섞여 있는 석탄 광맥에 불을 붙이고 예상 밖의 땅불은 현실을 처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백여년 후의 결말은 그렇지 않았다.


달밤 은 묘한 구조의 이야기였다. 현재의 나에게 미래의 내가 전화를 건다. 미래사회의 암울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시점은 과거이자 현재인 전화를 받은 주인공의 시대이므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제시한다.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 또다른 미래에서의 내가 전화를 걸어온다. 바뀐 미래또한 다른 문제가 생겼다며... 짧은 시간동안의 통화로 먼 미래의 역사는 자꾸 바뀌게 되고 현재의 나는 결국 그대로인데...


미시 세계의 끝 은 소품 같은 이야기이다. 과학자들이 모여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입자라고 알려진 쿼크를 쪼갤 수 있음을 증명하는 날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순간의 날 티비는 그저 축구중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쿼크를 쪼개는 실험이 시작되고 까맣던 밤하늘은 하얗게 변한다. 변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붕괴 는 영화적 요소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였다. 지구는 우주에 속해있고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팽창하던 우주는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을때 폭발한다. 우주의 폭발은 몇백광년 후에나 지구에 도착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즉시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에 대한 가정이 신선했다.


고래의 노래 는 첨단과 무지가 동시에 보여지는 이야기이다. 고래의 뇌를 전파로 조정해서 배처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한 과학자는 애초에 그러한 기술을 요구했던 국방부에서 떨궈지고 마약상과 손을 잡는다. 피노키오처럼 고래를 타고 가던 마약상을 뒤쫒는 것은 군함도 아니고 잠수함도 아닌 작살을 대포처럼 쏘아대는 포경선이었다.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 아이디어가 새로워서 감탄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최근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는 SF 단편집을 읽었는데 그 책의 작가는 테드 창 이었다. 이 책속의 작품 하나는 영화화 됐었는데 바로 컨택트 라는 영화 였고, 비슷한 제목으로 칼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인 콘택트를 영화화한 콘택트도 있다. 테드 창의 작품들을 보면서 기막히게 대단하다 싶었는데 류츠신의 작품들도 대단했다. 둘 다 굉장히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기존에 알던 약간은 터무니없는 공상과학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잇어 더욱 감탄스러웠다.


류츠신은 1970년 중국 최초 인공위성 둥팡홍1호 발사를 보았고 2013년 달탐사위성 창어3호 발사를 보았고 올해 1월 창어4호가 찍은 달표면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작가가 자라는 동안 중국은 우주에 대한 과학적 발전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그 과학적 성과들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성과들을 보며 자란 새싹들에게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주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SF 작가들의 대열에 중국 출신 작가들이 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영향을 알 수 있는게 아닐까


지구는 우주에 속해 있고 우리는 체감할 수 없지만 우주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 미래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소 냉전시기 경쟁적으로 발달하던 우주산업은 냉전종식과 함께 선진국들의 전유물로만 남았지만, 우리의 미래가 선진국들의 점유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우리도 우주산업을 발달시킨 답시고 벌였던 이소연우주쇼 는 결국 수십억원의 세금을 날린 과학쇼였음이 밝혀졌고 우리나라최초 우주인 이소연씨는 당시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한 후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내동챙이쳐졌다. 삶도 꿈도 잃은 사람이 되어 외국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 전시행정이 아니라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 기초과학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텐데 인공위성 하나라도 우리나라만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무한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SF 소설이라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러한 책들이 얼마나 읽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몹시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경제대국 중국의 힘을 SF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 책과 동시 출간된 '우주탐식자' 도 몹시 궁금해진다. 과학소설은 소설로만 남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로봇 이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시킨 것도 소설이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SF 판타지가 미래에 얼마나 실현될 지 알수 없는 것이다. 그 미래를 우리가 꿈꾸는 데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에 대한 실천으로 SF 소설을 읽으며 무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http://omn.kr/r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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