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 - “내 새끼지만 내 맘대로 안 된다!”
서민수 지음 / SISO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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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지만 내 마음대로 안된다!'

제가 버릇을 좀 가르치겠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쓰레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10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무조건 알아야 할 '요즘 애들' 속사정<<

소외된 청소년들 곁에 이런 경찰분이 계셨다니 놀라웠다. 감탄과 존경을 넘어 감동스런 분이었다.


저자는 누구보다 청소년에게 애정과 관심이 많은 경찰관이다. 사랑하는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 심하게 방황하던 때를 함께 겪으며 그 계기로 수사 업무에서 청소년 업무로 전향했다고 한다. 이후 학교전담경찰관 활동과 청소년경찰학교를 운영했고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새벽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기꺼이 받아 조언해주고, 사비를 털어 주먹밥을 먹인다. 청소년동아리를 운영하며 청소년들의 자생력을 믿고, 대장님 으로 불리며 가정에서도 포기당한 아이들에게 기꺼이 의지처가 되어준다.


>>내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부모 대부분이 '자녀를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 착각을 깰 수 있다면 이 책은 목적을 다한 것이다.<<


저자는 모든 부모를 찾아갈 수 없어서 이 책을 썼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한 스스로 단언컨데 이 책은 학물을 위한 교양서적이 아니라, 그냥 읽기 쉬운 요즘 세대 청소년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기록'이자 결코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은밀한 속사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책은 자녀의 '안전'을 대비한 준비물 이라고 부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유효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지금의 '자녀현상'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안전을 위협하는 범위는 더욱 넓어졌고, 관용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아이들이 부모가 청소년기였던 때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이제는 자녀의 교육만큼이나 자녀의 올바른 성장과 아름다운 삶의 완성을 위해 부득이 '자녀의 안전'이라는 분야를 알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부모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1부 부모는 지구인, 아이는 외계인

지금의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은 부모세대가 봤을때 도저히 이해가 안될 때가 많다. 사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불통은 늘 있어왔던 문제이긴 하다. 오죽하면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상형문자로 요즘 애들은 말을 안듣는다고 써있다지 않은가. 하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불통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느냐가 문제다. 요즘 시대는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학교폭력과 사회범죄로 연결된다. 내아이가 가해자가 아닐지라도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수 있고 따라서 내아이만 잘 간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한계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결국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해진다.


>>공부는 하고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구도 중요한 문제였다. 원래 중학생들에게 또래집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더구나 좀 노는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그 무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또래집단이 한다면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만의 불문율이다. 딱히 누가 정한 것은 없다. 그냥 제외되는 것이다. 그러니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친구들이 불러주면 나가야 한다. 담배를 피우자고 하면 피워야 하고, 여학생들과 놀러 가자고 하면 응해야 한다. 강요도 없다.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싫으면  제외된다. 하지만 제외되면 또 다른 집단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성향이 전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예전보다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절은 친구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나 선생님 말은 안들어도 친구들의 말이라면 넙죽 받아들인다. 그말이 틀렸건 맞았건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친구가 우선이다.


>>아이들의 변화에는 단계가 있고, 앞 단계에서 잘못된 점을 놓쳤다면 다음 단계에서라도 꼭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고치는 과정에도 잘못된 단계만큼의 계단이 있다. 결국 버티고 기다리는 시간을 얼마나 감당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자식이니까 못할 건 없지 않은가?<<


저자는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아쉬움을 아니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냥 현재 시점에서 아이의 잘못만 보고 애를 태운다며. 하지만 문제아의 뒤에는 결국 문제가정이 있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은 참을성이 약하다. 우리 아이만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청소년 대부분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어른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를 인내심이 약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참을성'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깊다.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이 또 한몫을 거든다. 누구보다 청소년들은 '욱'하는 성질머리부터 가정에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대목이다. 집에서 교육할 때도 절대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눈높이'에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싸우게 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일단은 침착하게 대처해야 하며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면 상대방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콕 집어 이야기해줘야 한다.

사건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건 결국 우리네 부모들이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오늘부터라도 콕콕 집어서,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사례까지 들어주면서 아이들에게 충고해야 한다. 진심으로 당부드린다.<<


교실내 폭력은 예상외로 친한사이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주먹다짐으로 가게 되면 주위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그러면 싸움이 더 격해지고, 주변 아이들은 구경만 하다가 누구하나가 피터지고 나서야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다고 한다. 학교폭력은 의외로 순식간이다.


>>청소년들이 쓰는 언어가 이상하게 보여도 그들끼리는 '배려하는 글'이 있고, '정성을 다하는 글'이 있다. 학생들은 의외로 배려를 좋아한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글을 원한다.<<


ㅋ 한 글자의 톡이라도 청소년의 톡은 씹으면 안된다. 정성을 담은 이모티콘 이라도 ㅎ


>>정작 내가 학창 시절일 때는 몰랐는데 지금까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모든 청소년들이 시험을 망친다는 것이다. 여태껏 수천 명의 청소년을 만나봤지만, '시험 잘 쳤니?' 라는 물음에 단 한 명도 '네'라고 답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내 주위에 공부를 잘하는 청소년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학생들의 대답은 대부분 비숫했다. '제발 시험 끝나고 점수 몇 점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부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흔히 청소년들이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고, 특히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로 인해 동조 압력을 많이 받는 집단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 누구보다 방관자적 증후군을 지닌 채 생활하는 사회적 특징이 있어 청소년기야 말로 신뢰가 전제된 의사소통이 실행되지 않으면 그 어떤 아이라도 비행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한편 사춘기 전후로 성장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 자기 세계관이 강하고 잘못을 저질러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잘되면 내탓, 안되면 남탓'을 앞세워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은 청소년들의 일시적인 잘못을 지속적인 행위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청소년 문제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표현을 잘하는 청소년은 안전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하지만 '표현을 하지 않는 청소년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 또한 나의 주장이다.<<

>>부모와 자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 칼 로저스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진정성', '공감', '무편견' 이라는 3가지 요소가 자녀와의 신뢰를 강화해준다고 말했다.<<

>>부모의 허락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그리고 허락의 중요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가 만나본 청소년들 중에서도 다소 어긋난 친구들과 상담할때 언제나 등장하는 변수는 바로 '허락'이었다. 즉 부모의 '허락'이 자녀를 변하게 할 수 있다.

허락을 할 때 매우 중요한 체크 포인트가 있다. 첫째, 부모가 허락해야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곰곰히 따져 물어야 한다. 둘째, 자녀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는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문제는 '작용'의 문제다. 어떤 원인이 더해지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러한 사실들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감정'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물어보면 된다. 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말이다. 그러한 감정적인 조치 때문에 아이를 놓고 실험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그 실험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면 아이가 좀 더 안전해질 가능성으로 생각을 모아야 한다. 적어도 이건 우리 자녀들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자책보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청소년들은 쉽게 분노를 노출하지 않는다. 더구나 집에서 얻은 분노라면 더더욱 쉽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청소년들의 특성이다.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르면 화를 쏟아낼 데를 찾는다. 그것이 청소년들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결국 누구를 괴롭히고, 때리고, 훔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인 부모들을 보면 미워진다.<<


읽을 수록 고개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청소년들의 사연들을 대할 때 부모보다 더 따듯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구절구절들이 읽는 내내 감사할 따름이었다.


3부 이불 밖이 위험한 '요즘 애들'

>>일전에 몸캠과 관련해서 예방 교육을 할 때 SNS에 경로를 모르는 사람, 특히 예쁜 여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절대 말려들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 청소년들은 매우 너그럽고 쉽게 친구요청을 승인한다. 하지만 나는 친구 요청에 대한 허락은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친구요청을 분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친구요청이 들어왔다면 반드시 그 사람의 페이지를 확인할 것. 2. 활동 사항이 언제부터 멈췄는지 아니면 지금도 활성화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것. 3. 나의 친구와 아는 친구라 하더라도 절대 믿지 말건. 4. 활동은 많지만 프로필이 없고 활동 사항이 대부분 '공유' 콘텐츠일 경우에는 조심할 것. 5. 무분별한 친구 관계는 가급적 자제할 것<<

>>번호를 숨기고 전화를 하면 자기 번호가 안뜨니까 당연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지? 번호를 숨겼다고 해도 통화내역을 확인하면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면 발신 내역밖에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건접수를 하면 달라진다.<<

>>나는 '더 치트 www.thecheat.co.kr'라는 사이트를 추천한다. '더치트'는 2006년 1월경 사이버 사기 피해를 당했던 한 여성이 자신과 똑같은 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름, 아이디, 휴대폰 번호, 계좌번호 등 총 10가지의 정보를 조회하여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사이트다. 더욱 획기적인 것은 모든 정보다 일반인들이 사기 피해를 당했거나 의심되는 판매자의 정보를 올려준 자료를 토대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미 가입자 수가 100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현재 가장 공신력 있는 사이버 사기피해 예방 사이트다.<<

>>분명히 말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정에는 학교폭력이 없다. 당연히 사이버 폭력도 없다.<<


청소년들은 덩치가 커서 다 큰것 같지만 판단이 미숙해서 너무나 쉽게 범죄에 노출된다. 폭력적인 아이들, 학교밖 아이들이 아니어도 일반적이고 아주 평범한 환경의 아이들이라도 범죄에 쉽게 노출된 사회이기에 부모가 안전에 대해 더 알아야 할 수밖에 없다. 쉽게 친구수락을 한 친구와 카톡으로 친분을 맺고 나서 친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성범죄에 노출되고, 빠듯한 용돈으로 저렴하게 구입하려 온라인중고매매로 거래하다 돈을 날리기도 쉽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범죄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문제아이들만 범죄에 연관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 있었다. 청소년 이용해먹는 어른들이 참 나쁘다...


4부 내 새끼, 오늘도 수고했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4부는 읽는 내내 울컥울컥 했다. 저자의 노력이 감사했다.

>>이제 그들이 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변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또 그친구들과 밥을 먹을 것이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야단은 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저자가 상담한 모든 청소년들이 다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또하고 또한다. 대장님 하며 연락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맙다 하며 밥을 먹인다. 하루 24시간 대기중이며, 하루 24시간 소통한다. 어떻게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청소년들의 주위에 자리잡고 기다린다. 청소년담당경찰관분들이 저자와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세상엔 청소년을 범죄로 끌어들이고 이용하는 나쁜 어른들도 많지만, 저자처럼 저자와 함께하는 많은 선생님들처럼 청소년들을 품어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니 모두가 다 다른 답을 찾으며 사는 인생이지만, 그 답이 세상에 정담이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오답이 되지 않도록 해주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나부터 그런 어른이 되어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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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전 - 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김영철 엮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 / 창비교육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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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당신에게 '공부'란 무엇입니까?

공부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공부가 사람을 꽃이게 합니다 - 김용택

공부가 곧 인생이지요. 인생은 공부의 연속입니다 - 서재경

여행이야말로 가장 멋진 학습입니다 - 나효우

손자 세대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 - 조정래

민주 공화국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기본 능력을 계발하는 것 - 도정일

공부는 인내심을 기르는 시간이지요 - 이순재

마음대로 하는 공부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지요 - 이수정

평생학습과 일자리는 생명력과 발전의 원천입니다 - 문국현

대접받는 말을 거부하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 정성헌

세상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들로 가득합니다 - 김성수

진실에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을 수 없어요 - 강만길

제목만 보고 학생들에게 도움되는 공부 조언서가 아니라는 것을 표지만 봐도 확실히 알게 해줘서 다행이다. ㅎㅎ​

크게 기대하고 읽은 책은 아니었지만, 읽고 나서 기대 이상으로 좋안던 것은 한국사회에 이렇게 멋진 어르신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한분 한분 짧게 소개된 약력에서 엄청난 사회적 '기' 가 느껴졌다. 알던 분들보다 모르던 분들이 많아서 죄송스러울 정도로 다들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올곧게 존경스러운 삶을 살고 계셨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기획하고 진흥원 원장님이 인터뷰한 11분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으로 시작은 김용택 시인이었다.


솔직히 시작인물로는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인의 책을 읽을땐 몰랐는데, 강연을 들었을때 청중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너무 자기멋대로랄까... 말도 너무 직설적이고...

그런데 그런 시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다.

도시생활이 힘들어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가 말립니다. 그냥 거기 살아라.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의 삶이 행복하고 좋아야 시골에 가서도 즐겁지. 지금 사는 곳에서 힘들면 어딜 가든 거기에도 다 인간이 있어 이런저런 일로 또 힘들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신선끼리 사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나 삶의 고통과 절망이 있다. 시골에서 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으니 그냥 살던 데 살아라, 이렇게 말합니다.

시인의 이력과 시인의 시만 보고 엄청 따듯하고 감성적이고 배려심 있을 거라 기대하면 강연이나 인터뷰를 봤을 때 놀랄 수 있다. 나처럼. 시인은 본인이 인정하고 종종 말하듯이 그냥 좋아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다라고. 힐링이나 위로 위안을 기대하면 큰코 다친다. 그런 기대가 없다면 뭐 soso

지금도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어요. 희망이없어 편해요. 희망이 어쩌고 하면 불안해. 뭔가 이뤄야 되잖아요. 이루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바라는 게 없으니까 편하지. 살다 보면 별일들이 있지만 그런 별일들도 다 지나가지요.


두번째 분부터 슬슬 장난 아니다.


서재경 남도학숙 원장, 아름다운 서당 이사장

이미 예전에 청년취업 문제의 근본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청년들의 기본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아름다운 서당을 만들고 봉사하고 계신 분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모두 1등을 향해 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탓에 학생들은 점수 따는 기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사유할 줄 아느냐, 배려할 줄 아느냐, 자기 성찰할 줄 아느냐 물어보면 꽝입니다. 학교 밖에서는 돈을 향해 질주해 왔습니다. 그럼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느냐, 삶의 가치를 증진시키느냐, 전혀 그렇지 않지요. 이렇게 두 개의 허상을 좇아 오다가 막다른 골목에 탁 걸린 형국입니다. 소위 SKY에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모범적이고, 리더십을 가장 잘 발위하고, 한국이 앞으로 기대를 걸 만한 젋은이의 모습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입니다. 이 잘못된 문화와 방향성을 잡아 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공정여행 이라는 것. 스토리가 있는 여행. 유기농 여행. 가격이 아닌 가치로 경쟁하는 여행상품

사람이 세계 인식을 넓히는 방법에는 독서와 여행이 있지요. 매년 천만 명 이상이 여행을 가는데, 조금만 더 넓게 생각하고 현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 많은 걸 배울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대안여행, 공정여행, 착한여행 같은 것입니다.

조정래

두 말 할 필요 없는 한국의 대표 작가 이긴 하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라는 대하소설 3부작을 완성한 큰 작가 이시다.

나도 태백산맥, 아리랑 을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입해서 뜨겁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몇년 전 2권짜리 소설을 읽었었다. 조정래 작가의 교육소설이라기에 엄청 기대를 품고. '풀꽃도 꽃이다'

이 책은 .. 많이 아쉬웠다. 현실감은 높았으나 교육 문제의 모든 책임이 엄마 때문이라는 결론은 몹시 불편했다. 어려서 읽었을 땐 몰랐는데 나이들어 읽어서인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내용중에 해당 책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사실 그 소설은 학부모들이 제일 좋아할 줄 알고 썼는데, 학부모들이 제일 싫어합디다. 문제가 학부모에게 있다고 썼으니까. 현실이 이렇게 악랄한데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요. 대한민국 독서계는 20~30대 여성 독자를 잡지 못하면 실패하는 건데, 내가 그분들한테 졌어요.

문제가 학부모에게 있다고 쓰지 않았다. 엄마에게 있다고 썼지. 20~30대 여성 독자에게 진 것이 작가에게는 악랄한 현실인건가? 대 작가로 존경했었는데... 물론 지금도 여전히 대하소설 3부작 때문에 존경스럽긴 하지만... 어르신으로 존경하기엔 많이 아쉬워서 안타까웠다...


도정일 인문학자, 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교양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셨던 분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함양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공감의 능력이죠. 인문학의 가장 큰 힘은 타자를 향해 내가 열리고, 내 가슴이타자를 만나 열리는 일, 그래서 타자가 늘 내 사유의 세계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감성과 사고의 체계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은 그래서 민주주의 교육의 요체입니다.

이순재

말이 필요 없는 한국의 대표적 대~ 배우 ^^ 끊임 없이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으신 분. 배우일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셔서 역시~! 싶었다.

내가 정치를 하면서 딱 하나 배운 게 겸손입니다. 정치는 '행세'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라고, 지금도 누누이 말하고 다녀요.

캬~! 겸손하게 선거홍보 하고 당선되는 순간부터 버리는 게 겸손인줄 아는 정치인들이 드글드글 한데... 그래놓고도 행세 만 하는 정치인들이 드글드글 한데... 이순재 선생님 말씀 좀 새겨들었으면.


이수정 범죄심리학자, 경기대학교 교수

큰 사건이 터졌다 싶으면 빠짐없이 보게 되는 얼굴로 여느 연예인 못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계신 분

역시나 직접적이고 분명한 인터뷰 내용들이 팍팍 꽂힌다. 가해자의 인권침해 관련 질문에...

그런 주장에 동의 못 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인권은 누가 지켜줍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은 피해자 인권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형사 사법 제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범죄자다 보니 범죄자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은 피해자는 증인에 불과합니다. 아예 관심에서 멀어졌어요. 지금까지는 경찰에서 피해자분들을 증인으로만 취급하고 방치했어요. 빼먹을 것만 빼먹고 버렸어요. 그렇다 보니 2차피해도 발생하고요. 당연히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훈련받은 전문 요원들이 피해자 조사를 하게 해달라고 저희들이 거듭 요청했지요.

청소년 범죄 관련...이미 검증된 답도 다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정책이나 대책을 집행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그게 확보가 잘 안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저는 새삼 뭘 더 해야 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같은 현장을 아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소년원에 예산을 더 배정해 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미국 FBI에선 심리학 박사 300명이 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이런 박사들, 절대 경찰 못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전문성 가진 인재들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결코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화학박사, 생화학 박사를 뽑아서 투입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되는데, 우리는 순경을 뽑아서 연습시킨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거든요.

오래된 가정폭력으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들... 그런 사건은 제가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지금은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생겨서 재판까지 가서 의견 개진을 해요. 구치소에 있는 배우자 살해범을 만나 면담도 하고 심리 평가도 하고 해서, 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든요. 제발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고요. 하지만 한 건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맨날 불발이긴 한데,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요.

지금 처럼 활발하고 확실하게 오래오래 활동해 주셨으면 좋겠다.


문국현 한솔섬유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로 재직 중 나라 경제상황이 안좋아졌을때, 해고 대신 단축근무와 교양교육을 실천했던 기업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분인데, 평생교육사업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셨다.

중요하게 고민할 문제는 이겁니다. 외국은 평생학습을 자발적으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군대 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평생학습마저도 군대식으로 하려고 해요. 학습과 교육도 경영처럼 소비자, 즉 근로자나 시민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진흥원이나 공무원 교육원, 기업의 큰 연수원들은 자꾸 군인을 만들려고 해요.

평생학습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모두 네 번 감옥살이를 하고 박 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소위 골수 운동권 출신인 그가 박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가장 큰 조직의 수장이 된 사연과 인터뷰 내용들은 새마을운동단체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에 세 가지 공부가 있는데, 제일 쉬운 게 책 공부, 두 번째가 사람 공부, 즉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가 마음 공부 입니다. 진짜 공부를 하려면 안 보이는 걸 봐야 해요. 안 보이는 걸 보는 게 지헤이고, 책으로 공부하는 건 지식입니다. 인터넷 찾아보고 아는 건 정보라고 하고요. 지혜가 많은 사람이 지식이 많으면 좋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정보가 많으면 좋은데, 요즘 사람들은 거꾸로 되서 지식은 없고 정보만 넘치게 알지요. 그러니 우선 책 공부부터 하고, 좋은 사람을 찾아가든지 불러서 사람 공부를 하고, 마지막으로 마음 공부를 하면 돼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결국 평생교육의 힘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처럼 교육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중심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계, 종교계, 언론계가 동시에 나와 줘야 해요. 교육 '개혁'으로는 안 되고 교육 '개벽'이 되어야 교육이 좀 바뀔 겁니다.


김성수 강화도 우리마을 촌장,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인천 강화도 길상면에 있는 '우리마을'에는 발달 장애인 9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냥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교육도 하고 마을내 공장을 만들어서 직업을 갖게 한다. 나이들어 가면서 발달장애인전용요양원을 건립하려고 동분서주 하고 계시다. 이 마을안의 콩나물 공장을 풀무원이 지원한 시설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기업이 다 나쁘기만 한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앞으로 풀무원 콩나물만 사먹어야 겠다!

하나님은 결코  쓸모없는 사람을 세상에 내놓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도 버릴 게 없고 쓸모없는 게 없다. 세상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이런 얘기를,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안 할수가 없어요.

국내 전국 신도를 다 합쳐도 서울 대형 교회 하나의 신도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데서도 하지 않은 일을 나서서 평생을 해오신 종교인들을 뵈면 종교를 떠나서 무척 존경스럽다.


강만길 역사학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배우기까지는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시대에 편승하고 권력에 붙어 진실을 숨기는 학자같지 않은 학자들도 많았지만 이분 처럼 역사를 바로 세우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친일민족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셨던 분... 아직 그 단체에서 할일이 많은 것 같은데...

학문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진실에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을 수 없어요. 특히 역사학은 진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내 글이, 내 학문이 진실을 밝히는 데 가까워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건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얼마만큼 진실된 역사적 사실을 찾아낼 것인가. 그걸 모아 놓은 게 가장 중요한 역사책이 된단 말이에요. 소설은 재밌어야 되겠지만, 역사는 진실에 가까워야 된다, 그런 말이지요. 근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역사적 상상력이 상당히 발달해야 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높이는 방법은 독서를 많이 하는 것밖에 달리 없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학문은 무조건 진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다,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고 굳이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서 쉬엄쉬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감탄스러운 좋은 책이었다. 배울만한 존경스러운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뒷표지 안쪽에 함께 읽으면 좋은 창비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기대 없이 읽었던 이 책이 좋았던지라 다른 책들도 관심이 간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 와 '지혜의 시대' 시리즈 모두 찬찬이 찾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해 본다.

시리즈 중 읽었던 책이 있어서 반가웠다. '김현정,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는 지혜의 시리즈 중 한권인데 시리즈가 얇은 시집 정도의 사이즈라서 짧고 굵은 메시지를 던져 주면서 가독성도 높아서 좋았다. 뉴스란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 책이라 그때도 시리즈를 다 읽어야지 싶었는데 이렇게 또 다시 결심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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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창 - 박물관을 탐探하다
노시훈 지음 / 어문학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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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탐探 하다

'박물관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다!

저자는 박물관을 포함한 지역의 명소를 답사하고, 스토리로 구성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천직처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박물관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사람들은 대체로 박물관에 호의적이지만 박물관을 재미없어서 갈 일이 없다고 말해버리면 자신의 문화적 소양이 낮아 보일까 두려워 하기 때문이니,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니겠냐고 ㅎ 하지만 박물관이란 나는 가기 싫어도 우리 아이들은 보내고 싶은 곳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좋아하는 편이다. 조용하고 깔끔한 실내에서 차분히 무언가를 구경하고 사연을 읽어가는 공간은 나름 힐링의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을 하며 지역과 박물관을 함께 두루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실내의 박물관 만 좋아한다는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ㅎㅎ

저자는 박물관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을 늘 지니고 있었고, 예전에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박물관 이야기' 라는 주간 코너의 게스트로 진행한 경험도 있어서 그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 시점의 내용을 보강하여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종종 언급되는 날씨나 계절의 이야기에서 책 속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곤 한다. 1년의 시간여행을 박물관을 통해서 하는 느낌이랄까


문학에 문학비평가가 있고, 영화에 영화비평가가 있다. 그런데 왜 박물관 전시를 옳게 평가하고 소개하는 전시비평가는 없을까? 박물관 전시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세계 박물관 전시를 돌아보기도 하고, 출판과 방송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소개하기도 한 진짜 전시비평가 노시훈이 소개하는 박물관 세상을 만나보자

라는 추천사가 이 책의 장점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박물관을 직접 가지 못한다면 이 책처럼 박물관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몇 군데만 가봐도 정말 좋을 것 같다. 박물관 시리즈로 몇 권 더 나왔으면 좋겠다. ㅎㅎ


물관의 창

책 속에 길이 있다면 박물관에는 창이 있다.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자.

...... 그런데, 책 속으로 길이 뚫린 게 아니듯 실제 박물관에는 창이 없다.

로  첫 박물관을 소개하는 문구가 왠지 경쾌하게 느껴져서 좋다.


처음 소개되는 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몇번 가본 곳인데 갈때 마다 건물이 너무 이상해서 왜 저렇게 지었지? 우리나라 건물 맞나? 싶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 왜 그렇게 이상해진건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2030년까지 세종시와 파주 헤이리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전할 때는 이렇게 이상하게 말고 제대로 된 건물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는 겉의 건물들 얘기만 했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의 큰 장점은 실내에 있다. 겉 모습은 이상하지만 실내에 들어가보면 최첨단 설비에 인상적인 실내인테리어가 무척 고급스럽다. 휴식공간도 잘 돼있고 전연령층이 관람하기에 가장 적절한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한양도성박물관도 다녀왔던 곳인데 갔을때 건물내부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저자가 알려주는 동선을 알았다면 제대로 보고 오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수도 성곽 중 길이가 가장 길고 성의 역할을 했던 기간도 가장 길다고 한다. 수.도. 였던 도시의 경우에 한해서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정보라고 ㅎㅎ


4대강사업으로 개악된 곳 중에 금강문화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금강문화관 로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과 '강산개조론'이란 제목의 연설문이 소개돼 있다고 한다. 수로처럼 관리되는 강의 개조를 역설한 글이다. 이 글을 로비 중앙에 놓은 것은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민족의 큰 지도자'에서서 찾은 것이라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선견지명을 구현하는 일이 4대강 사업이다' 라는 착안을 한 것 아니겠냐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1919년에 발표된 상황을 100년이 지나서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그때는 무지의 결과로 그런 유토피아적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라도 100년이 지나는 동안 축적된 과학은 그런 무지를 용인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부여의 백제역사문화관 에서 무령왕릉 부분을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무령왕릉 발굴을 역사상 최고의 발굴이자 동시에 최악의 발굴이라고 평하며 아래와 같이 한탄했다.

1500년을 두고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조금만 더 참고계시다 나올 것이지 어쩌자고 하필이면 척박한 그 시절을 택해 세상에 나왔을까?

1971년에 발견된 백제무령왕릉은 일본에게도 도굴꾼에게도 뺏기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나 이틀만에 발굴을 완료한, 발굴이라기 보단 유물을 쓸어담은 우리나라고고학계의 부끄런 과거이기도 하다.

경주의 유적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을 테고, 저자는 백제역사문화관만 소개했는데, 충주에 '고구려비전시관' 이 있다. 충주에서 세계무술공원 이 있는데 매년 큰 무술행사도 하고 공원 즐길거리도 있고 넓고 쾌적하며 작은 무술 박물관도 있고 해서 가족 나들이 하기 좋은 곳인데 여기 가면서 고구려비전시관 까지 보고 오면 좋다.


책을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이 여러 곳이었는데, 그중 한곳이 '청라언덕의 박물관' 이다. 인천의 청라지구 인가 싶었는데, 대구 였다. 대구 와 마산의 청라언덕에 대한 진짜가짜 분쟁이 있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었고, 전국의 수많은 근대문화 거리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이라고 하니 궁금해진다. 대구에 가서 청라언덕을 가게 되면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도 가봐야 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하철 참사가 직접적인 건립 배경이라 안전체험을 다양한 경우에서 할 수 잇는 곳인것 같아서 유익할 것 같다.


또 가보고 싶은 곳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이었다. 저자는 '지붕없는 박물관' 이라 불리는 안동은 실제 가보면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며 그보다 군산을 추천하고 있었다. 사진들을 보니 군산에 꼭 여행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의 '세종이야기' 는 너무 익숙한 곳이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며 비하인드스토리를 읽고 나니 느낌이 또 새롭다.

광화문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한국은행화폐박물관'이 뒤이어 소개되고 있었는데, 이 화폐박물관 대각선편에 중앙우체국 지하에 작은 우체국박물관이 있다. 화폐박물관 간 김에 우체국박물관 까지 다녀오면 좋다. 작은 공간이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바로 찍은 사진으로 우표를 만들어주는 코너가 있는데 비용이 들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우표를 내사진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된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보았다. 인하대학교의 인하 가 인천과 하와이를 합한 말이고, 연희 와 세브란스 를 합쳐 연세대 이름이 된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 이민사는 일제때 시작된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에 갈때 짜장면만 먹고 올것이 아니라 여기도 들러봐야 겠구나 싶다. 인천엔 독특한 박물관들이 여럿인 모양이다. 이어져 소개된 '짜장면 박물관' 과 '인천개항박물관' 도 꼭 가보고 싶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 서울 성산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작은 이 박물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담은 곳이다.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소녀상 이 떠오른다. 일본대사관 건너편의 소녀상을 보고 온적이 있었는데, 이 소녀상을 보러가는 길에 '조세박물관' 이 있다. 이 박물관도 저학년 아이와 함께 가볼 만한 곳이다. 조세박물관 체험하고 소녀상 옆에 천막속에서 소녀상을 지키는 봉사자분들께 음료수를 건네드리고 온 적이 있다. 근처 가볼만한 곳을 엮어서라도 아이와 함께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저자가 몽골을 다녀와서 에세이를 펴낸 적이 있던데, 몽골을 잘 알아서인지 '몽골문화촌'도 소개되고 있었다. 꽤 큰 규모같아 보이고 전시구경과 마상쇼 관람 같은 몽골체험을 할 수 있어서 하루쯤 짧게 나들이 다녀오기 좋을 것 같다. 문화촌을 읽다보니 지인들에게 여러번 추천한 '중남미문화원' 생각이 난다. 경기 고양시에 위치해 있는데, 남미의 민속용품 관람도 괜찮지만 야외 조각공원이 참 좋은 곳이다. 건물도 멋스럽고 넓은 공원이 산책하기 좋다. 식당에서는 이색적인 중남미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그또한 좋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몽고'라는 단어는 몽골에서는 사실상 금지어다. 몽고가 워낙 익숙하다 보니 우리는 간장 상표로까지 사용하고 잇찌만 몽매하고 낡은 족속이라는 의미로서 중국인들이 몽골을 낮춰 부르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몽골도 중국을 싫어한다.

어쩌나... 우리 동네에도 몽고반점 이라는 중국집이 있는데;;;

우리는 몽골을 중국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몽골은 한자를 쓰지 않는 나라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한자를 사용한다. 일본이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비하표현을 하면 기분 나쁘듯이 몽골에 가서 몽고 라고 하면 엄청 기분 나쁜 거다. 조심해야 겠다.

몽골은 중국을 경계하는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높다고 한다. 한국을 코리아가 아니라 솔롱고스 라고 부르는데 솔롱고 는 무지개 라는 뜻이니 한국은 무지개 뜨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몽골인들이 한국에 대한 로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텐데..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도 몽골인이 많다는데 처우가 좋아져서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기했던 곳은 '이태준 기념관' 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은 한국이 아니라 몽골 올란바타르에 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의사일을 했던 이태준 선생님은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는데 한국에선 이름조차 생소하니 그참...

몽골엔 공룡화석이 많다고 한다. 몽골의 공룡 발굴수준은 다른 나라하고 차원이 다른 정도라고 한다. 공룡뻐가 통째로 발굴되는 일도 흔하고, 통째로 정도가 아니라 순간정지화면인 채로 발굴되기도 한다고 한다. 핵폭발 수준의 모래 재앙이 8천만년전의 공룡왕국을 덮쳤고 그렇게 그후로 오랜 세월을 거처 지금의 고비사막이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선 국보급인 공룡알이 입구장식으로 아무렇게나 놓여있다는 몽골자연사박물관 과 몽골공룡박물관이 궁금하다.


'헌정기념관' 도 소개되고 있는데, 이 곳은 국회의사당 경내에 있는 곳이다. 저자는 이곳만 따로 설명하고 있지만, 국회의사당 견학 프로그램과 연계해서 가면 좋다. 국회가 회의가 없는 시기 예약제로 국회의사당 내부에 직접 들어가볼 수  있는데, 해설사 분의 설명을 들으며 국회의사당 견학을 하고 나서 헌정기념관 관람까지 하고 나면 더욱 알차다. 국회의사당 말고도 대부분의 큰정부조직은 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회를 비롯해 청와대, 법원, 견학체험도 훌륭하다. 나라기록관 이라고 국가기록원도 가볼만 하다.


'돌문화전시관'을 소개하면서 포천아트밸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포천은 예로부터 화강암채석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폐채석장은 골친거리가 되기 일쑤인데, 포천의 화강암 폐채석장을 재활용한 곳이 포천아트밸리라고 한다. 지역 혐오시설이 관광 매력물로 탈바꿈한,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성공사례라고 한다. 포천아트밸리에 다녀온적 있는데, 멋있는 절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폐채석장이었다니 또 새로웠다. 포천아트밸리에 가게 된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포천 어메이징파크' 라고 과학체험장 같은 곳인데 아이들 놀거리가 참 많은 곳이었다.


허울뿐인 어린이박물관들을 아쉬어 하면서 '고양어린이박물관'을 반가워하고 있는데, 내가 가본 어린이 박물관 중에서 최고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한 테마로 널찍하게 있어서 알찬 놀이를 하고 올 수 있는데다가 바로 옆에 경기도박물관이 있어서 시간이 된다면 박물관도 슬쩍 다녀올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도산안창호기념관' 은 서울 중심에 있는 공원이라 많이들 다녀와 본 곳일 것이다. 나도 몇번 갔었다. 그런데 도산 의 뜻이 하와이 였는지 몰랐다. 안창호 선생님이 미국으로 가는 뱃길에서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하와이 섬의 웅장한 모습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호를 직접 도산 이라 지었다고 한다. 가긴 갔었는데 제대로 안 읽었나 보다;;;


저자는 자신이 가본 박물관 중 최고의 박물관으로 프랑스에 있는 '깡기념관'을 꼽고 있다. 불어를 직여가면 깡기념관이지만 깡전쟁평화기념관 정도가 적당한 뜻이라고 한다. 깡은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의 섬이름이다. 2차세계대전에 대한 상흔을 담고 있는 박물관 인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관람이 인상적인 곳인 듯 하다.


내게 최고의 박물관은 국립고궁박물관 이다. 경복궁 입구에 있으며 상시 관람인데 무료이다.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이다 보니 기획전시도 꾸준히 바뀌는 성의가 있고 가방보관함 같은 편의시설과 식당카페도 깔끔하고, 고풍스런 유물외에도 고종의 자동차도 전시되고 있어서 관람의 분위기 전환에도 좋다. 그중에서 압권은 자격루 이다. 실물 크기의 자격루는 이곳, 국립고궁박물관 에 딱 하나 있다.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고 시간 맞춰 움직이는 인형들이 귀엽다. 무엇보다 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체험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사전예약만 하면 한방,보물,천문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와 유물을 결합한 체험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박물관 관람도 해설이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잘 듣는다.


박물관도 문화관도 좋지만 홍보관도 잘 이용하면 재미도 있고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서울의 중심이라 불리는 강남역 근처에 '삼성딜라이트'라는 삼성전자 홍보관 이 있는데, 무료이용이고 미래형 가전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장비들이 있어서 강남에 갈 일이 있다면 시간 좀 더 여유를 내서 들르면 괜찮은 곳이다. 직업체험용으로 오는 학생들도 있는데 직업체험이 될런지는 모르겠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무료로 운영하는 곳 중에 또 괜찮은 곳이 수원에 있다.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 이라고 SIM 이라고도 하는데 널찍한 공간에 가전의 역사를 과거부터 미래까지 두루 관람할 수 있고, 사전예약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만들기 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수업도 무료인데 퀄리티가 아주 좋다.


홍보관 중에서 또 좋은 곳이 압구정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가 있다. 다양한 현대차 들을 직접 타고 만져볼 수 있어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이건 어른이건 가볍게 가볼 만한 곳이다. 무료니까~


수원화성도 너무 좋다. 행궁부터 언덕길을 산책하다보면 사시사철 다른 꽃고 나무들이 울창하게 반겨주고, 화성성벽길을 산책하면 그 느낌은 또 다른다. 정조대왕의 화성행궁행차 이벤트 할때 가면 볼거리가 다양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평소에 가도 갑자기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드는 고풍스럽고 아늑하며 참 좋은 곳이다.


'박물관의 창' 책을 읽다보니 전에 갔던 곳들이 새록새로 기억나기도 하고, 가고 싶은 곳도 생기고 참 좋았다. 두껍지만 사진이 많아서 훌훌 넘어가는 데다 저자의 넓은 관심의 폭 만큼 해당 박물관에 대해 다양하게 알게 되니까 재밌기도 하고 집에서 여행하는 것 같고 다른 박물관들에 대해서 또 한권 써주셨으면 싶은 바램이 생기기도 하고 여튼 두루두루 즐거운 기분으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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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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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환장할 '우리' 사회의 가족을 위한 이야기

'우리' 라는 집단으로서의 가족이 아닌 '나'와 '너'의 가족을 말하다

"남편의 암투병으로 가족이 위기게 처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주위의  시선이 우리를 '비정상'가족으로 낙인찍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우리는 '우리' 라는 말이 너무 익숙한 사회다.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가족 ...

우리말로 하면 전혀 이상할게 없는 '우리' 라는 말은 외국어로 표현하게 되면 사실 굉장히 이상해 진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과 가족을 집을 나라를 공유하여 지칭한다는 게 외국인 입장에서 얼마나 생소하고 당황스럽겠는가? 외국인이 처음 만나는 한국인과 가정관련 얘기를 하다가 상대방인 한국인이 '우리와이프'라는 표현을 써서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한국은 스와핑이 자연스러운 나라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


'우리' 라는 말 외에도 이런 공동체적 개념은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하다.

'부부는 일심동체' 라는 말도 그렇다. 생판 남으로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한몸으로 합쳐진다는게 실은 말이 안되는 거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생기는 거다. 한마음한뜻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과거와 달라진 문화와 관계가 바탕이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로 묶인 가족은 이렇게 환장할 관계로 변화되고 있다. 개인의 삶은 확장되고 있는데 개인이 없는 우리 라는 관계는 모든 관계의 발목을 잡는다. 이 책은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를 풀어나갈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는 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가족을 마지막 보루라고 여길까. 혹시 그런 믿음이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가족 탓이 아니라고 자신을 속이면서 가족의 민낯 보기를 외면하거나, 그저 꾹 참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이런 통념과 태도가 전형적인 집단주의적 시각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가족은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족 이라는!

그러나 이런 가족은 가족 구성원을 지켜주는 보루가 아니라 가족(집단)을 위해 구성원(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굴레로 전락한다. 가족이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가족이라는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과 기성 세대를 구분하는 인식의 가장 큰 차이는 개인과 가족에 대한 개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기성 세대들은 기존의 가족 이라는 집단 개념이 익숙한 세대다. 가족으로 묶고 혈연으로 묶고 지연으로 묶어서 '우리'가 되야지만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포괄적 범위와 다르게 실제 '우리'의 적용 범위는 굉장히 배타적이다. 집단대 집단으로 인식하려 하고 개인으로서의 의미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나' 개인이 먼저다. 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가족을 우선시 하는 기성세대와 나 를 우선시 하는 젊은 세대의 소통은 '개인'의 제대로 된 개념 이해 없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에 해당하는 1부는 투병하는 남편 옆에서 내적,외적 고충을 겪으며 발견한 한국 가족의 집단주의적 현상을 설명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2부에서는 전통적 가족관을 대신할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며, '우리'라는 집단으로서 가족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립한, 서로 다른 '개인으로서 '너'와 '나'가 모여 연대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3부에서는 '개인'이 연대한 공동체로서 가족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과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나 부모에게 자신이 해야 할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달라고 구걸 하고, 아내는 자녀에게 자기 꿈을 대신 이뤄달라고 강요한다. 자녀도 부모에게 자기 인생을 대신 책임져 달라고 요구한다. 나 역시 부모에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해달라며 의지했다. '희생'이라는 아름답고 고결한 명칭을 붙여서!

거칠게 표현됐을 수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가? 결혼을 하면 평소 무뚝뚝하던 아들도 자기의 아내만큼은 시부모에게 애교스럽게 대해주길 바라고 평소 까칠하던 딸도 자기의 남편만큼은 살갑게 친정부모를 살펴주기를 바란다. 자식에게는 다 너를 위한 거라면서 부모의 바램을 대신 실현시켜 주기를 강요하고, 자식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부모니까 이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의지하려는 모습을 주변에서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가족 이라는 공동체적 모습을 로망으로 갖고 있기엔 우리 사회가 이미 핵가족을 넘어 개인으로 분화된지 오래다. 전통적 가족관을 유지하고자 하면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가족개념이 더 돈독하게 유지돼 왔던 이유는 경제적 복지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오래 일할수록 급여가 올라간다. 일을 잘하던 못하건, 생산성과 급여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왜 그럴까. 나이를 먹을수록 부양가족이 생기고, 자녀 양육비가 들며, 노부모의 의료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은 선진국이 될수록 사회가 부담하는 부분이 커진다.

한국사회에서는 복지를 사회가 아닌 기업이 책임져 왔다. 주택대출, 학자금, 상여금 등 사회가 지원해주지 못하는 영역들을 회사에서 지원해주면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복지를 제공하는 조직에 들어가야 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이건아닌데아닌데 하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민간(기업,개인)에게 미룬 복지 제공을 국가가 가져가야 하는데, 이 일을 계속 미루면 사회 구성원이 임금을 생산성에 따른 노동의 값이 아니라 복지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점점 커진다.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임금이어야 한다고 믿으면, 고용자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서 각자 입장에 따라 민간끼리 투쟁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사회 구성원의 태도에 따라 국가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보다 민간(고용자)를 압박하는 일을, 그것이 마치 국가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인 양 강화하고 우선하기에 이른다. 국가의 복지 서비스 제공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각자도생만 심화되는 것이다.

이 단락을 읽고 아차 싶었다. 몰랐다. 한국 사회에서 왜 유달리 대기업에 대한 취업 욕망이 높고 왜 유달리 대학진학율이 높으며 왜 유달리 가족을 위한 희생이 당연시 됐었는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복지를 제공해주는 주체가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복지가 달라진다면 경쟁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국가가 복지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70여년 전, 독일과 스웨덴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그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오늘날 한국인이 선망해 마지않는 복지 천국의 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그 핵심에는 국가의 역할이 있었다.

갈등하는 부분에 공권력이 개입해서 기업이나 노동자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여지를 주고 노동자에게는 특정 기업에 소속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경직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책임과 부담을 국가가 나눌 때, 개인은 가족을 서로의 아바타로 삼는 데서 벗어나 자기 행복을 당당하게 느끼며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될 때마다 여전히 자기네 이익을 위해 편가르기만 열심인 정치권의 행태가 답답해진다. 그렇게 편을 가르고 국민을 동요시켜 결국은 자기네만 이익을 취할뿐 국민의 복지는 멀리멀리저멀리;;; 국가의 기능을 강화시키려면 국민이 제대로 인식하고 국가의 편을 들어주고 정치권의 갈등을 제압하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국민들도 여전히 부화뇌동하기 일쑤이니...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게 아니라 일을 시켜야 하는데...


화목한 가족이란 환상이 클수록 그 가족은 서로에게 환장할 가족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인의 '우리'는 연대의 공동체가 아니다. 연대하려면 '너'와 '나'가 있어야 하는데, 구성원이 '우리' 안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동일시하다 보니 그저 한 덩어리 상태에 가깝다. 그 안에서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존중은 커녕 '다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름은 분리를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너'와 '나' 사이 경계가 없는 '우리' 속에서 다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일 뿐만 아니라, '비정상' 이 되기 쉽다. 구성원이 서로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에서는 당연히 같거나 비슷해야 '정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름' 과 '틀림', '비정성' 을 구분하는 일을 서툴고 어려워 할 수밖에 없다. 직장 조직 같은 사회에서 이런데, 하물며 가족은 어떨까. '너'와 '나'로 분리하지 못하고 서로를 동일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까. 가족이야말로 누구도 불경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우리'니까.

개인으로 독립적으로 제대로 바로 서는 일은 무엇보다 '우리' 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가족이 환장할 관계가 아닌 화목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보다 '나'와 '너'가 제대로 존재해야 한다.


존재 의미와 가치를 어떤 역할이나 그 역할 수행 능력,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기여에 두면, 그 역할을 잃거나 집단이나 타인에 기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나 사회적으로 존장 받기 어렵다.

내가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어떤 상황이나 집단에서 맡은 역할과 구분했다면, 상황과 주위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해서 갈팡질팡 하지 않을 수 있다. 저자가 남편을 간호하는 상황에서 며느리인가, 아내인가, 간병인인가 하는 혼란을 느낀 것은 같은 상황도 역할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은 먼저 그냥 '나' 임을 인식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주체로 바로 서면, 내가 포함된 공동체 에서도 내 역할을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누구 때문에 생긴 불안이든, 어떤 상황으로 생긴 두려움이든, 불안과 두려움, 걱정과 염려가 있는 곳은 분명 내 마음이다. 따라서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가족으로 인해 생긴 불안과 두려움 걱정과 염려를 스스로 다루는 건, 엄밀히 말하면 가족과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분리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을 끈저끈적한 '우리' 상태에서 떨어진 '너'와 '나'로 만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진짜 가족에게 다가가는 것일 테다.

가족에 대한 진짜 사랑은 절절한 '우리'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날개를 가진 온전한 '너'로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서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안에서 '너'와 '나'를 만드는 일은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공감가는 문장이 참 많았다. 표지에 부제로 써 있는 '나'와 ----------- '너'의 가족을 위하여 라는 부분에서 ---------- 사이를 줄이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절실한 때다. 저자의 가족에서 개인으로서의 독립 부분 내용들에도 수긍이 많이 갔지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새로웠다.


저출산 현상에서 우려할 건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구수 절댓값에서 2017년 한국은 세계27위이다 OECD에서 단연 1위고, 세계 230여 개국에서 세 번째다. 인구밀도가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대만과 방글라데시뿐인데, 대만은 출생율이 한국보다 낮고, 방글라데시 역시 급속도로 하락하는 추세다. 원인이 무엇이든 인구 감소 자체를 우려하는 건 복작복작한 고밀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그랬다. 저출산이 문제인줄로만 알았지 계속 복닥이며 고밀도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던 것 같다. 아이쿠!


저출산 현상을 우려하는 것은 결국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청년 한 명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 인구가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걱정도 앞으로 한국은 생산성을 향상하지 않고 지금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허걱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기술은 발달하는데 생산성을 인구수에서만 찾는다는 건 너무 구시대적 발상 아닌가?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국가의 필요와 구성원의 필요가 일치하지 않아서다. 과거에는 누구에게나 출산이 중요했다. 사회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출산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은 아니다. 성공과 명예는 신분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으로 달성해야 하고, 조직의 권위는 상위의 어떤 모호한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사회도 어느 가족 구성원의 하나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체제나 구조가 가족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개인 중심 사회에서는 '나', 이번 생의 내 삶이 가족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사회가 제대로 발전하는 신호 같아서 나는 오히려 희망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 현상을 문제라고 본다면, 구시대적이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가족관을 바꾸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전통적인 우리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출생율이 높을 것 같지만,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가족이나 우리보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방적인 사회(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의 출생율이 높다.

이래저래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저자의 관점에 놀라며 읽게 된 책이다. '나' 에 대한, 가족적 '우리' 에 대한 사고의 프레임은 '사회'에 대한, 자녀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을 가져온다.


한국에서 갈등이 가족 간에 언쟁으로, 사회에서는 생사를 건 투쟁으로 악화되기 쉬운 원인은 갈등을 관계의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라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나'와 '너'란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집단 속 개체로 인식하니, 갈등은 관계의 균열을 가져오는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 '개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하는 동안 생긴 문제라도 그것이 자기 문제인지, 타인의 문제인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타인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 가 아니라 '나' 와 '너', 즉 개인이 되는 첫걸음이니까. '개인'이 그저 개별적으로 고립된 존재를 의미하거나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자립의 존재를 지칭한다면, 그것은 자기 내면에서 시작하지만 반드시 타인과 관계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화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전보다 가족간의 갈등이 사건화 되는 경우를 심심치않게 뉴스에서 접하는 것 같다. 가족간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심리서들도 붐을 이루며 팔리곤 한다.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고민이 수면위로 떠오른 게 아닐까. 구시대적 가족 개념이 변화된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적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로 또 같이' 라는 흔한 말을 이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말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고 가족은 가족이다 라는 경계적 구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경계는 높다란 담벼락으로 막힌 게 아니라 얕은 울타리와 개방적인 문이 있는 그러한 구분일 뿐인 것이다. 구분이 제대로 될 때 독립은 이루어 지고 독립이 이루어 질 때 연대가 가능해질 것이다. 단단한 개인의 공동체적 연대는 종속적 집단주의 가족보다 이 사회를 더 살기 좋게 만들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얇고 쉽게 읽히는 책 한 권이 이렇게 큰 생각의 변화점들을 던져주다니...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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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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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저자의 형이 세상을 떠났다 스물네살이었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형은 저자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저자보다 작았고, 저자는 형의 병원 침대맡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닥치기 전, 둘이 함께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저자의 형이 아직 걷고 뛰어놀 수 있던 시절에도 어린 마음에 언젠가는 저자가 형을 돌봐야 한다는 걸 이미 알았다. 저자가 형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저자와 형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음을 알았다. 무거운 의무를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떠안고 저자의 일부로 품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을 전혀 이해 못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써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린 시절에 머릿속으로 그려본 어른이 된 형과 저자의 관계는 부자관계와 굉장히 비슷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다 큰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8년에 나온 책이 CENSUS이고 그 센서스를 2019년에 내가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런데 어떤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껏 접하지 못한 장르이고 어느 장르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는 소설이었다.


책의 제목은 센서스, 인구조사 이다.

화자는 의사였지만 아내가 죽은 후 얼마안되 시한부 판정을 받고나자 의사를 그만두고 인구조사원이 되어 아들과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주체가 불분명한 인구조사는 인구조사원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질문을 하고 답을 기록하고 인구조사에 응했다는 표식으로 갈비뼈 근처에 문신을 새긴다. 센서스에 응했다는 문신을 여럿 가진 사람도 있고 처음 문신을 새기는 사람도 있으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A도시에서 시작한 조사는 Z도시 까지로 이어지며 풍경은 농촌에서 공장지대에서 황무지에서 인적이 드문 기차역으로 이어진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자신마저도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다운증후군 아들과 함께 떠난 여정은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천천히 자신의 무덤으로 가는 여행같았다. 남겨질 아들과 이별하는 방법치고는 독특한 분위기랄까... 슬프다거나 애틋하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아빠의 독백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읽는 내내 뿌연 안개속을 헤메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들은 성장한다. 아빠 옆에만 있다가 인구조사를 직접해보기도 하고 운전을 조금 해보기도 하고 방문할 집을 선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일을 맡을 준비를 도와준 건 아들이었다. 아들은 말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통해 내게 한 가지를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를 가지고 타고나서 매 순간 서로를 잰다는 사실을. 그 애는 태어나자마자 이런 식으로 인구조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내 아들의 인구조사가 우리의 작업을, 우리의 여행을 북쪽으로 이끌었다.

다운증후군 아들은 어릴적 자신의 사진을 보고 그 아이가 자기자신인 것을 모른다. 그 아이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다운증후군 아들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꿈속에서 엄마가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문을 두드렸다며 깨어나 엄마는 어디 있는지 대답하지 않는다.

다운증후군 아들은 아빠가 많이 아프고 곧 없어질 것이라는 말에 함께 기차를 타고 집에 가자고 한다.

다운증후군 아들은 태어난 이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었고 인구조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그 연속선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빠의 자 는 세상을 쟀지만 아들의 자 는 사람을 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여행 내내 무터의 책을 읽는다. 무터는 이름난 시장이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자식과 세 명의 남편을 두고 당대의 극작가로 칭송받은 여자이지만 가마우지에 집착하고 연구하고 책을 펴낸 사람이었다. 그 가마우지 관련 책을 여행 내내 읽는다.

아빠가 처음 가마우지와 맞닥뜨린 것은 어릴 때 읽었던 밀턴의 실낙원 이라는 책속에서 였다. 실낙원에서는 사탄이 가마우지로 분장한다.

무터의 책을 읽으며 아빠는 가마우지 생각을 많이 한다. 사탄은 원래 천사가 아니었던가? 라고도 생각하면서.

표지를 다시 봤다. 무심코 봤을때는 손바닥을 양쪽으로 벌린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빨간색 부리가 있었다.

새였다.

검은색 새.​

가마우지!


손으로 그림자 놀이를 할때 엄지손가락을 서로 걸고 양쪽으로 손을 벌려 새를 표현하곤 한다.

그렇게 날개를 펼친 모양의 그림자는 천사같기도 하다.

표지 속 검은새 뒤에 있는 회색의 형상은 그림자일까 다른 가마우지 일까

화자에게 가마우지는 사탄의 형상이었을 까 천사의 형상이었을까


아내는 광대였다. 그녀의 광대놀음은 흔히 생각하는 광대 짓과는 크게 달랐다. 그녀는 광대라 해도 아주 이상한 광대였다.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는 없다고 느껴지게 하는, 보는이로 하여금 삶 그 자체를 어쩌다가 목도하게 된 느낌을 주는 연기자였다.

(여기 나오는 광대공연은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 라는 단편을 생각나게 했다. 관람객이 없거나 거의 없는 연극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연극 그런데 보다보면 뭔지 알것만 같은 무언의 침묵. 연기를 하지 않는 것이 연기인 연극, 삶을 반추하는 연극 ...)

아들을 낳고 그녀는 영영 무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예전보다 덜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들을 위해 공연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아들을 낳고 키운 덕분에 나는 훨씬 좋은 의사가 되었다. 기본적인 입장을 확고히 다졌기 때문이다. 누구한테도 특별히 기대를 품지 않고 누구라도 얕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자기평가에서 나오는 겸손이 아니라 자신만만하게 가치판단을 내리거나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겸손을 갖게 되었다. 알다시피 나는 그런 입장에서 인구조사 일을 맡게 되었다.


아들, 그리고 나와 함께 전국을 여행하는 게 아내의 바람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내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굳어져 거스를 수 없는 명력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단순한 여행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 여행에서는 선택을 내린다는 게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 이상하지만 인구조사는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아내와 아들, 내가 있었다면, 이제는 나, 아들, 인구조사라는 전혀 다른 삼각조가 있다. 공통의 목표로 연대한 우리는 굳이 경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느낄 수만 있으면 되었다.

인구조사의 모습은 점차 변해 간다.

인구조사원 교육을 받으면서 배웠던 데로 조사하다가

조사항목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여러집을 방문하다가 몇몇 집만 방문하게 되며

이마저도 심장발작으로 점점 어렵게 되어 뒤의 도시들은 패스하고 기차역을 향해 가는 길에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인구조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은 대부분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친절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빠도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아빠와 아들의 그런 여행에서의 경험은 기차역에서 아들 혼자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믿음이 된다.

엄마 아빠 아들 셋 이었지만 아빠 아들 인구조사 셋 이 되었다가 아들 인구조사 사람들 셋 이 되는 게 아닐까

아들은 사는 내내 인구조사를 하는 걸로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자신만의 자 로 사람들을 세상을 재면서


인구조사라는 낯선 직업은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질 세상에 혼자 남겨질 다운증후군 아들을 위한 세상맞이인 셈인것 같다.

아빠의 불안과 아들의 천진함은 인구조사 여행을 통해 사람들로 채워지고 개인으로서 독립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면서 스스로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빠도 아들도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닌 소설이었음에도 한장한장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시한부삶 아빠의 독백은 내가 놓치고 넘긴 부분은 없는 건지 신중하게 책장을 넘기게 했다.

그 생각의 흐름은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을 소환하고 예상을 추측하며 현실인듯 현실같지 않은 인구조사와 도시들을 배경으로 세우고 담담히 죽음을 수용한다.


저자의 다운증후군 형에 대한 추억은 소설속에 스며들어 책뒷편에 실린 사진들의 소년은 소설속 아들인듯 저자의 형인듯 둘다인듯 여기게 한다.

화자는 아빠이지만 저자의 독백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하는 사진들이다.

다운증후군 당사자의 생각은 알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꼈을지 알수 없다. 아빠도 저자도.

그래서 더욱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헤깔리기도 한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않고 그렇다고 현실이랄 수는 없는데 판타지도 아닌...왜 다운증후군 형의 죽음이 아닌 다운증후군 아들의 죽음이 아닌 보호자인 부모의 죽음을 그렸을까

저자가 다운증후군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쓴 이 작품은 왜 아빠의 죽음인지 왜 가마우지인지 온전히 이해될때 그 바람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먹한 소설이었다. 연극을 보는데 연극을 하지 않는 연극배우를 보듯이. 연기를 보고있을 뿐인데 삶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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