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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해줄게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5월
평점 :
눈물 한바가지 쏟을 생각하고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평범한데 너무나 평범한데 특별하지 않은 그 평범함이 가슴 찡...하게 짠...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장면하나 없이 비속어 한마디 없이 착하디 착한 소설이 시작부터 울컥 하기는 또 처음인것 같다.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어느 드라마에서 봤음직한, 통속이적이다 할만한 내용인데 식상하다고 말하기엔 미안한 그런 맘이 들게 한달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돈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있다. 어린 딸과 만삭인 아내를 둔.
6개월째 다니던 공장에서 급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공장에 출근을 하고 밤이면 대리운전을 한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그것도 뺑소니 사고가.
착하게 살았다. 그저 고맙다고 고개 숙이며 살았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사람들은 무지한 탓이라고 쉽게 말한다.
한번도 아닌 두번째 뺑소니를 당하고 보험도 없이 수술까지 받게 된 상황에서 아들은 나이든어미에게 왜 대학공부까지 시켰냐고 투정을 부려본다.
"못 배워서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생각혔었지. 그래서 너희는 그리 살지 말라고 공부시켰던 거여. 그럼 다 잘살 줄 알았지.
무식해서 우리가 이리 사나 보나 생각혀서 열심히 가르쳤는디 그것도 그게 아닌가 벼. 애비랑 에미가 무식헌 게 자식새끼들이 고생만 하는가 벼. 공부시키지 말고 딴 거 시켰어야 하나벼"
손가락 마디 굵어진 어미가 밤잠 한번 길게 자지도 못하고 일을 하여 공부시킨 두 아들은 대학을 나왔지만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다 그나마 급여가 나은 공장을 다닌다. 형은 일찌감치 서울을 접었고 학원을 전전하며 미련을 두고 있는 동생에게 공장을 권유했다.
만삭의 아내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자꾸 눈치가 보인다. 이 형편에 둘째를 낳게 되는 상황이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아이들이 힘이 된다고 하는 얘기는 통하지 않는다.
"우린 그저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충분히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
라고 믿었었다. 정말 그렇게 믿었었다. 차근차근 계획도 세웠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계획이 엇나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는가?
남편은 입원하는 동안 병원비가 걱정이 됐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신고하는 첫 용기를 내어 봤다. 여기저기 이력서도 넣었다. 마음이 바빴다.
아내는 출산예정일이 지난 둘째의 유도분만을 미뤘다. 집에서 마스크팩포장하는 일을 받기 시작했다. 남편이 성치 않은 몸으로 면접을 보고 온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면접에 붙었다고 먹고싶어하던 족발을 사와 입에 넣어주는 남편에게 차마 화도 낼 수 없었다.
세상은 한번도 이들의 편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행복하게 해줄게 라는 남편의 다짐은 슬프기만 했다. 빚은 쌓여 갔고 기댈 곳은 없었다.
회유하려는 사장의 전화를 받으려는 남편에게 아내는 사정했다. 한번만 이겨보자고. 우리도 한번만 이겨보자고.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밀린 급여가 들어왔다. 깍이지 않고 온전히 들어왔다.
그리고
뺑소니범이 잡혔다. 보험도 들었단다. 풀~로.
경찰서에 가면서 부부는 고민스러웠다. 화를 내야 할까?
"다른 누군가 앞에서 호통을 치거나 비난해본 경험이 없었다. 또한, 분명 사과를 받으러 가는 길이건만 낯설었다. 사과를 하는 일에 더 익숙했다. 그런 우리에게 을의 입장이 아닌 갑이란 입장은 어색하고 맞지 않은 옷과 같았다"
부부는 화를 내는 방법을 몰랐다. 용서가 더 편했다.
경찰서에서 갑자기 터진 양수에 어쩔줄 몰라하는 이들에게 경찰들이 도와주고 막힌길에서 임산부가 타고 있다는 안내에 길이 뚫렸다.
이 작은 도움에 부부는 생각했다. 우리는 누굴 도와준 적이 있던가? 우리가 먼저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단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패배자로 살아오지 않았음을, 불합리한 일들을 당한다고 받아들이고 살았던 건 아니었음을, 우리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작게나마 가족만은 지키고 살았음을, 그러니까 불행한 인생으로 낙인찍지는 말아줬으면. 나름대로 희망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가 낙오자란 판단은 미뤄줬으면. 바꾸지 않고 불리한 모든 것에 적응하는 삶을 탓하지 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책임감의 무게를 부디 이해해줬으면.
오늘은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 많았다.
그걸로 족하다. 그걸로 만족한다. 우리에겐 그것만으로도 행복의 조건이 충족됐으니까.
늙은 어미는 산모가 깰까봐 살며시 다녀간다. 그리고 전화통화에서나마 며느리에게 이야기한다. 염치없지만 늙은이가 너무 사랑해서 부탁하는거라며 자신은 곧 죽어도 상관없으니 부부가족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게 어미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아내는 네잎클로버의 행운보다 사방에 널린 세잎클로버의 행복에 만족하며 살자고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한다. 늘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행복하게 해줄 필요 없어. 우린 지금도 행복하니까. 항상 행복했어. 그러니까 그런 말로 지금의 행복을 무시하지 마"
작가는 터널, 소원 같은 영화 극작가로, 이별이 떠났다 는 드라마 작가로 유명세를 치뤘으나, 본인의 본업은 소설가라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싶었다고 이 책을 소설로 낸 이유를 밝혔다. 이미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극본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음에도 소설로 꼭 먼저 내고 싶었다고 한다. 읽으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극으로 만들기 딱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년안에 영화관이나 티비에서 보며 '나 저거 원작소설 읽었는데' 하며 반가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예고편이 나오면 주변에 미리 말해줘야 겠다. 손수건 준비하라고.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