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열쇠 -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지음, 박중서 옮김, 한동일 감수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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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원제 THE IMMORTALITY KEY : THE SECRET HISTORY OF THE RELIGION WITH NO NAME 는 '불멸의 열쇠: 이름 없는 종교의 비밀 역사' 로 번역된다. 책의 제목이 원제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부터 마음에 든 책이었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었지만 의외로 술술 읽히는 책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만, 두괄식 서술에 익숙한 독자라면 아마 나보다 더 쉽게 이해해가며 읽을 것 같은데, 나는 종합적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새록새록 등장하는 자료들을 처음 주제에 매번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살짝 어려웠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저자의 직업은 변호사이지만 (비록 전문교수는 아니라 할지라도)고전학자이기도 하다. 이 방대하고 엄청난 책은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의 고대어부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까지 독해가 가능한 저자였기에 나올 수 있는 책이었다. 이 탁월한 언어적 능력만으로도 왠만한 대학강단의 고전학 교수는 명함도 못내밀 능력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 책의 감수를 맡은 분이 한동일 님이다. 신뢰도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독실한 로마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고 현재의 종교도 가톨릭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가톨릭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 번도 환각제를 경험한 적이 없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환각제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자가 자신의 주관적 요소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무엇보다 학문적으로 탐구한 과정을 이 책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존스홉킨스 연구진이 발표한 [신의 알약]이라는 기사였고, 1954년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지각의 문>이라는 책은 과거에서의 미래를 알아챌 수 있게 했으며, 1978년에 출간된 <엘레우시스로 가는 길 : 신비제의 비밀을 파헤치다> 라는 책은 직접적인 지도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의 주제를 두괄식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서양문명의 근원이자 세계 최대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출발에 고대부터 내려오는 환각제를 통한 비의(秘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여성과 약물탄압의 배경에 대해서 차근차근 밝혀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는 역사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의 바닥까지 한 번에 확실히 도달하기 위해 그리스,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환각의 신비가 필수적이었다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햇빛을 거의 못 보는 귀중한 유물들을 지키는 정부 장관, 큐레이터, 기록 보관원 들과 나란히 앉아보았다. 또 우리 선조들의 의례적 약물 사용에 대한 신선한 증거를 발굴해 최첨단 장비로 분석하는 현장 및 실험실의 발굴자, 고고식물학자, 고고화학자 들을 갖가지 질문으로 괴롭혀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고전학자, 역사학자, 성서학자 들과 시간을 넘나들며 여행해보았다. 이 조사를 통해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만 해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스와 그리도교 신비제의 핵심에는 환각 성분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는 증거뿐 아니라 종교 당국이 이를 억압했다는 증거도 있었다. (P. 61)

종교가 생겨나기 이전의 시대에도 종교는 있었다. 우리가 이름붙이지 않았다해서 그것이 종교가 아닐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이름 없는 종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이름 없는 종교'에서 지금의 종교들이 탄생했음을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저자는 엘레우시스로 향하는 길에서 더 과거의 괴페클리 테페로 올라갔다가 중세의 마녀로 내려오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그 '이름 없는 종교'를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환영과 환각과 기적은 수시로 출몰한다. 하지만 그 환영과 환각과 기적은 굉장히 과학적이었다. 갈래는 크게 두 갈래길이 있었다. 맥주와 포도주. 그리고 그 환각성 맥주와 환각성 포도주를 만든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과 약물.

이 두 가지는 2,000년 동안 교회 입장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지하 묘지에서 목격한 것처럼 양쪽 모두 신앙의 기원에서 몰상식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P. 481)

디오니소스와 예수가 그 경험을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 했지만 그 전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위에서는 그리스 관료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스 신비주의자는 자신들이 속한 '죽은 자의 도시'에 남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의 원래 여사제들이 당한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전혀 존재한 적 없었던 척할 수 있었다. (P. 510)

이 방대하고 오묘한 책은 탄탄한 추적과정과 과학적 증거들을 담고 있으면서 너무나 새로운 내용들이기에 평소 습관대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정리하려던 나의 목표는 이뤄질 수 없었다. 포스트잇을 붙인 곳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내용 정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그저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천할 따름이다. 아주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환각제가 서양 문명을 건립한 계몽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처음에는 엘레우시스 신비제에서 그러했고, 나중에는 디오니소스 신비제에서 그러했다. 또한 초기 그리도교는 이 전통을 고대 그리스인에게서 물려받아 중세와 르네상스의 마녀에게 물려주었다. 바티칸은 그리스도교인에게서 지복직관을 빼앗기 위해 본래 환각성 성만찬을 반복적으로 억압했는데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러했고, 나중에는 가톨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그러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전 지구적인 음모론이었다. (P. 583~584)' 라고 할 수 있겠다. 고대의 맥주와 포도주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런 맥주와 포도주가 아니었다. 약초에 대한 지식은 네안데르탈인때도 있었고 오히려 거대종교 탄생이후 사라져온 셈이었다. 환각제가 주는 무아지경은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영적 경험을 주었고 거대종교는 자신들의 필요성을 위협하는 이 직관적 방법을 원치 않았다. (내가 직접 신을 경험할 수 있다면 신을 대리하는 종교인들이 과연 필요할까?) 그리스도교는 비의에 힘을 입어 짧은 시간내에 확산될 수 있었으나 자리를 잡자마자 이 '이름 없는 종교'와의 전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신비제가 돌아왔다. 존스홉킨스 환각제 연구진의 '실로시빈' 연구를 통해.

농업이 먼저가 아니라 종교가 먼저일 수 있다는 논리를 증명시키는 중인 쾨페클리 테페에서

어떻게 그렇게 짧시간 융성한 문화발달을 이루었는지 신기한 고대그리스의 신전에서

고대 페니키아와 포카이아인들의 발자취가 남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캄파냐 유적에서

예수가 탄생한 마을과 그가 행한 기적들과 바오로의 편지글이 담긴 성경에서

익숙하다고 여겼던 신화와 유물과 유적에서 채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우리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비밀은 놀라웠고 이 책은 그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건네준다.

궁금하다면 어서 이 열쇠를 받아들고 책을 펼쳐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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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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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억을 깨워 줄게"

2057년 서울, 잠든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

가제본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대본집 형태로 읽은 소설인데 서평을 쓰려고 보니 책이 등록되어 있어 작가이름을 알게 됐다. 단요 였구나... 처음 보는 작가 이름이다. 살짝 검색을 해봤는데 다른 작품도 수상이력도 경력도 아무것도 조회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읽은 작품이니 상관없긴 하다. 창비가 소설Y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으로 정한 작품이었고 읽어보니 그럴만한 작품이었다.

선반 사이를 헤매던 선율은 어느 큐브 앞에서 멈춰 섰다. 헬멧이 쏘아내는 주홍빛 조명이 두터운 플라스틱의 결을 따라 흘렀다. 그 너머로 웅크려 앉은 사람의 윤곽이 보이더니 얼굴이 뚜렷해졌다. 흰 티셔츠를 입은 소녀였다. (p. 12~13)

때는 미래시대, 3차대전으로 세계 곳곳은 파괴되었고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전부 녹아버려서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겼다. 산꼭대기나 높은 건물꼭대기처럼 물 위에 드러난 곳에 그나마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물꾼으로 자랐다. 물꾼은 잠수해서 예전에 도시라 불리던 곳들을 뒤져 쓸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선율은 물꾼이었고 어느날 멀쩡하게 보존중인 기계인간을 찾아냈다.

아이콘트롤스의 최첨단 시냅스 스캐닝 기술은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평생 플랜 구독을 통해 당신의 아이를 다시 한 번 품에 안으세요. (p. 15)

상자 안에는 여러 종류의 전선과 팸플릿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기계인간은 아니 이 소녀는 누군가의 딸의 기억을 구현한 누군가의 아이였던 것이다. 이 소녀를 찾아낸 지오와 선율은 살짝 망설였지만 배터리를 연결했다. 옆 산의 물꾼과 한 내기를 이기려면 더 멋진 것을 찾아내기로 한 그 내기를 이기려면 소녀의 구동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누군가의 기억을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몇 달 전에 이 회사에서 상담을 받았던 기억이 나. 2038년 마지막 달에.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머리에 전극을 꽂고 한 달쯤 지내야 한다더라고. 그래서 머리를 다 깎았는데... 일어나 보니까 다시 자라 있네"

소녀는 선율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살짝 웃었다. (p. 27)

현재는 2057년 이었고 소녀의 기억은 2038년에 멈춰 있었다. 세계 곳곳이 물에 잠긴지 15년쯤 됐으니까 소녀도 그때 물에 잠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에 잠기기 전 4년 정도의 기억이 소녀에게 없는 것이었다.

삼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미 끝난 걸 붙잡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게 삼촌의 말버릇이었는데도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댐으로 막아야 하는 도시라면 바다에 잠기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삼촌은 서울에 머물렀다. 물꾼이 서울을 파고드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데도 누군가 기계를 고쳐달라고 하면 선뜻 받아들였다. 죽은 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무덤 앞에 꽃을 올리는 건 언제나 삼촌이었다. 그런 사실을 늘어놓다 보면 삼촌이 바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의아해질 때가 있었다. (p. 37)

선율과 지오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건 삼촌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지오는 삼촌에게서 기계관련한 것들을 배웠고 선율은 이 곳에 하나뿐인 잠수장비를 사용하는 물꾼이었다. 아이들이 허락없이 소녀를 깨운것에 대해 소녀의 기억을 부활시킨 것에 대해 삼촌은 아이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재미있지 않아?"

"뭐가 재미있는데?"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살아 있고, 곧 무너진다던 건물은 멀쩡하게 서 있는 거. 살려 놓은 사람도, 다른 건물도 이젠 없는데" (p. 44)

소녀는 말기암 환자 였다고 했다. 이름은 '채수호'

선율이 갑작스레 깨운것에 대해 그리고 내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수호는 괜찮다면서 한가지 요구사항을 말한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서, 그걸 알 때까진 살아 보려고" (p. 46)

"지금은 2057년이고, 내 마지막 기억은 2038년이지. 그 사이에는 19년이 있고. 그런데 서울이 이렇게 된 게 15년 전이라고 했잖아. 4년이 텅 비네. 왜일까? 나는 4년 동안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p. 47)

"내기에 나갈게. 그러니까 너도, 내 4년을 찾아 줘" (p. 48)

'이윽고 선율은 자신이 플라스틱 큐브에서 꺼내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내기 물품이 아니라, 멀쩡하게 움직이는 기계 인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과거였다. (p. 48)' 이 소설의 핵심이자 내게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과거'. 이 소설은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SF에 가깝지만 과거를 찾아가며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SF적 요소를 까먹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거를 찾아가면서 현재를 읽게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열여덟 살의 수호가 다섯 번째로 장기 입원을 했을 때 맞은편 침대에는 희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직 어린데 어쩌다가, 로 시작된 통성명은 서로의 입원 경력을 읊으면서 끝났다. 희는 먼 예전에 양성 종양을 한 번 떼어 낸 이후로는 몸에 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 나이에, 같 때문에 배를 째게 생겼다며 희는 너스레를 떨었다. 입원 경력으로 따지면 수호가 까마득한 선배인 셈이었다. 희 아주머니가 수호의 이력에 놀라는 동안 수호는 아주머니의 이름에 놀랐다. 자신처럼 병원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사람은 몇 번보았지만 한국에 그런 성씨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던 것이다. 서문희. 서, 문희도 아니고 서문, 희. 수호는 그게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조금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직 모르는 게 세상에 많은 것 같아서, 병원에만 앉아 있을지라도 세상을 넓혀 갈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p. 75~76)

희 아주머니에게 문병오는 가족은 딱 한 사람,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아들 경 이었다. 서문 경. 수호는 병원에서 경으로부터 과외를 받기 시작했고 대화할 사람이 생겨 기뻤다. 수호는 예닐곱살 위인 그를 경이삼촌이라고 불렀다.

경이 삼촌.

기계를 잘 다루는 노고산 삼촌.

그 삼촌의 이름은 서문 경.

수호는 서울에 그렇게 나뉘는 이름이 둘씩이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노고산 삼촌이 예전의 경이 삼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2038년의 서울과 2057년의 서울이 같지 않은 것처럼 스물다섯의 경과 마흔 넷의 경도 같지 않을 테니까. (p. 80)

수호는 경이 삼촌을 알아보았지만 경이삼촌은 수호에게 그 어떤 아는 내식을 하지 않고 있었다.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 4년의 시간 동안 수호와 경이삼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죽음을 원하는 사람과 죽음을 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열어나간다.

그냥, 그런 세상이 있었던 거야. 없어진 것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불러낼 수 있었던 세상이. 그게 너무 당연해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할 필요가 없던 세상이. (p. 143)

예전 사람들이 컴퓨터에만 추억을 맡긴 게 이해 안 된다고 했었지. 이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컴퓨터에 있는 것들은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삭제했다가 복구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진짜 같으니까 그랬던 거야. (p. 145)

어른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추억삼을 것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던 것에 대해 기억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해 선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호는 그때 사람들이 핸드폰에 컴퓨터에 데이터로만 넣어놓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것에 익숙해져서 사진도 그림도 글자도 애써 남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데이터에 전원공급이 끊기고 데이터가 물에 잠기고 데이터가 망가지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는 것임을 그때 그런 일상에선 알지 못했다고...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찾아 헤매곤 한다.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가지도 말라 죽듯이, 그것 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중략) 완전히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이더라도 계속되는 고통이 있다. 새로 생겨나거나, 기억 속에서 선명해지거나, 둘은 완전히 나뉘는 대신 서로 얽힌다. (p. 170)

수호와 경이삼촌의 얽혀 있는 4년, 선율과 삼촌과 우찬 사이에 풀지 못한 매듭, 지오가 받아들이는 현실과 지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모든 문제는 현실도 미래도 아닌 과거에 답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에.

닿지 못할 행복은 생생한 만큼 슬픔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그대로 남아 후회가 된다. 살아가다 보면 지나간 순간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기지만 그 반대의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과거가 오늘을 옭아매는 것이다. (p. 173)

서로를 옭아매고 있는 과거를 이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는 아프지만 따듯한 그들의 시간을 공감하며 읽을 때 그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지만 미워하기 보다 서로를 품어주는 이 착한 소설 속에 풍덩 다이브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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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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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의 시대, 지금 여기의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우리는 단일민족국가, 단일언어 사용이라는 표현등으로 '공통된 하나' 라는 일체감을 너무 깊이 각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공유된 하나가 아니라고 여겨질때면 더욱 가차없이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그런 공통의 일체감이 가리고 있던 균열들을 보여준다. 다름아닌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순수를 위해 거부되고 미끄러지고 있는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자신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를 부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인지하지조차 못한다. 외계인들 입장에서는 사뭇 생경하게 느껴질 풍경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하려는 일은 이런 것이다. 외계인의 눈으로 사회와 언어, 삶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그 '접촉의 순간'들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살펴보는 것.

어쨌든 부디 다른 평행 우주에 있는 내가 여러분과 지구를 구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외계인이 한국어 초급 교재풍으로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이게 책입니까" 네, 책입니다. (p. 6~7)-프롤로그 中-

저자는 사회언어학자로서 아주 적당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대학내 한국어교육원에서 10년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다음 지금은 5.18의 도시에서 전남대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 교수로 있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해 타자로서 생각하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시종일관 타자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익히고 배우고 가르쳐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사투리에 관련된 경험이나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진실되게 다가오고 공감대가 남다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뒤늦게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이 휘둘러온 혐오와 차별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벤져스>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아들에게 우주란 하나의 우주인 유니버스가 아니라 당연히 멀티버스, 곧 다중 우주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우주는 하나였다. 슈퍼맨의 고향 별인 크립톤 행성은 지구로부터 50광년 떨어져 있고, <스타워즈>는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 저 너머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우주는 내가 속한 나의 우주다. 내게 우주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속한 우주의 저 반대편, 그곳에서 산다는 제다이 기사들의 '포스'를 생각하다, 문득 우주의 언어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단일한 우주이기는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 얼마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인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스타워즈에서는 외계인들이 영어가 아닌 온갖 종류의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이를테면 스타워즈의 우주는 다중 언어의 세계다. 이와 달리 <어벤져스>의 우주 '들'에서는 영어라는 단일한 언어가 사용된다. 우주의 끝 타이탄 행성에서 온 최강의 악당 타노스도 영어를 사용하고, 아스가르드 왕국의 왕자 토르도 영어를 사용한다. <어벤져스>의 세계는 다중 우주이지만 단일 언어가 사용되는 곳이다. (p. 22~23)

<스타워즈>의 유니버스 에서는 다종다양한 외계어들이 난무하지만, <어벤져스>의 멀티버스 에서는 단 하나의 언어가 공용된다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왜 여태 없었을까;;;; 저자는 언어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힘과 권력의 관계가 보인다고 이야기 한다. 사투리만 해도 남자들이 사용하면 유대감의 표현이지만 여자들이 사용하면 계몽되지 않은 야생의 존재로 여겨질 뿐이라고, 그래서 여성들이 표준어 구사를 훨씬 빨리 습득한다고. 그러고보면 한국어는 전혀 하나의 한국어가 아니라고 저자는 또한 말한다. 다양한 지역방언들과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와 신세대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의 세계등등, 한국어의 세계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국어는 단 하나의 종류뿐이라고 착각해 왔는가? 어벤져스의 멀티버스 우주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가공품의 '발명'은 이러한 차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 한국어라는 말 속에는 '언어=영토=국민'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구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한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고 균질한 하나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이 환상을 만들어내는 장치는 다름 아닌 표준어 제정이다. 표준어 제정 과정에는 우생학과 위생학이 개입한다. 우생학 처리 과정은 서울말을 우등한 것으로, 지역어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 표준어에서 지역어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음은 위생학적 처리과정. 이 처리과정을 통해 토착어가 아닌 외래어들은 '오염된 말'이 된다. 순수한 언어란 있을 수 없지만 만들자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한다. 어떤 것을 오염된 것으로 지목해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순수한 것이 된다. (p. 34)

유럽이나 미국 처럼 하다못해 가까운 중국처럼 다민족 국가들엔 당연히 다양한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전쟁은 잦았어도 이민이나 이주는 거의 없이 전국 어디를 가나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한국어는 하나의 단일한 언어인 것으로 당연스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역방언은? 특히 제주도 말은? 축약을 하든 뒤집든 기이하게 만들어지는 신조어들은? 해석되지 않는 말은 순수하지 않아서 한국어가 아닌가? 표준어와 서울말을 기준삼아온 것은 결국 차별과 혐오의 토대를 만든 것일수도 있었다. 아니라고? 그런 방언과 조어들도 존중해왔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언어학은 노동하는 인간의 언어에는 관심이 없다. 언어학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언어 자료를 다룰 것 같지만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에서 설마 그럴 리가. 언어학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본을 움직이는 자들의 언어, 자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어, 또는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의 '정상 언어'이다. 본래부터 언어학은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국가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 국가 장치가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 중 하나는 언어를 정상적인 범주와 비정상적인 범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런 범주의 구분은 그 자체로 권력으로 작동된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범주로 분류된 언어들, 다시 말해 순화해야 할 범주의 언어들은 이등 시민의 언어가 된다. 그리하여 노동하는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은 정작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p. 47~48)

노동하는 언어에 대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면 건설현장을 떠올려 보라. 가장 흔히 쓰이는 노가다라는 단어부터 이미 비하의 기운을 풍긴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시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동안 계속 사용되어져 온 단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무엇을 소외시켜 온 것인지 누구를 소외시켜 온 것인지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상범주의 언어라고 말하는 언어들 조차 잘못 사용되곤 한다는 점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을 보라. 죽음을 택한 정치인의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죽음의 책임을 묻고 2차 가해를 하는 행태를 보라.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움직임을 신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모습을 보라. 이것이, 한국의 '교육'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거리낌 없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운다. 이 교육 속에서 소년들은 여성을 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라고 배운다. 이 교육 속에서 상급자는 위력으로 하급자를 유린할 수 있다고 배운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는 이 교육을 통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들에게 말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요컨대, 혐오와 차별의 산맥 사이, 깊은 계속에 갇힌 이들의 목소리는 지층 밑에 묻혀서 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말은 지형을 이루고 풍경을 만들 권리가 없다. (p. 74)

현재 한국의 언어 지형에 대해 저자는 지옥도를 그려낸다. 별것 아니라고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겨왔던 작은 말과 글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엄청난 지옥도가 그려져 버렸다. 뭐 그렇게까지 해석하냐 할수도 있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도 했고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도 했다. 말은 그런 것이다. 사소할수도 있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그런 것. 더구나 인터넷 시대가 된 현대엔 더더욱.

분노가 지금은 인터넷 산업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산품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오늘도 구매자들은 매력적인 분노 상품을 찾아 인터넷 공간을 기웃거린다. 사람들은 기사의 답글에, 자신의 SNS에 방금 쇼핑해 온 따끈따끈한 신상 분노를 전시힌다. 소금의 생산과 유통이 고대 문명의 기반이 되었고, 향신료라는 상품이 근대를 만들었다면, 분노라는 상품은 21세기 사회를 건설(파괴?)중이다. (p. 89~90) 분노라는 포장 안에 싸여 있는 것은 결국 혐오이겠지만 말이다. (p. 92) 분노 산업의 언어는 실재를 왜곡시킨다. 그리고 그 왜곡된 언어는 다시 일그러진 실재를 구축한다. 이 무한 반복의 개미지옥에 빠져 한국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p. 93)

편안하게 읽히는 에세이겠거니 생각했던 내 예상은 첫장부터 찬물을 머리에 뒤집어쓴 듯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문장들로 완전히 벗어났다. 2020년 2월부터 한국일보에 <언어의 서식지>라는 제목으로 기고하고 있는 칼럼을 바탕으로 저자의 글들을 엮은 이 책은 최근의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저자의 날선 비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사회라는 언어의 서식지에서 내가 가장 많이 관찰한 것은 혐오와 차별, 억압의 말들이었다. 이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코로나19가 본격화되던 시기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터이다. (p. 271)' 라고 저자가 설명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비판들은 하나같이 너무 따끔한 주사였고 너무 쓴 약이었다. 하지만 '약'이 되는 지적들임은 분명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를 한국의 식민지라 부르며 근로가 아닌 노동을 강조하는 저자는 한국어교육원에서 자매들의 언어로 자신을 참교육으로 이끌어준 상사에 대한 추모글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한다. 자신의 미끄러진 말들이 누군가에 닿길 바라며.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동안 내 주위에서 미끄러진 말들은 무엇이었나.. 혹여 내가 일부러 미끄럼틀 위에서 밀어내버린 말들은 없었나... 다행히 내 언어의 미끄럼틀의 경사는 무척 낮은 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의 경사도는 확 올라간 느낌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 미끄러지는 말들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계속 그렇게 경사도를 높여가며 기름칠을 해가며 더더 미끄러지게 놔두기만 할 것인지... 부디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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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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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족, 그 징글징글한 시작과 끝에 대한 처절한 애증의 이야기

제목 참 맘에 든다. 제목만 읽어도 고개 끄덕이며 시원함의 위로를 받게 되는 기분인건 나만 그런 걸까...? 뭐...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심리에세이의 제목으로, 그것도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그런 심리서의 제목으로 적당할 것 같은 이 책은 소설이다.

그리고 제목만큼 섬뜩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와 칼에 찔린 채 피 흘리는 아버지, 누가 그들을 죽였나.

갓 빚어놓은 찹쌀떡처럼 뽀얗고 탐스러운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남들이 부러움의 눈길이라도 던질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들한테 나 역시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 (중략) 그런데 자식들이 뒤늦게 뒤통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찰지고 탱글탱글하던 내 자식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발길질에 짓이겨진 찹쌀떡처럼 형편없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충격이고 치욕이었다. 어떻게 내 자식들이... (p. 9)

충격적인 살해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죽어가는 노 부부의 네 자식들의 입장이 한 챕터에 한 명씩 소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의 심정이.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을 따로따로 들여다보면 그때그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에게는 노부부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부부 본인들 스스로에게도.

다른 부모들보다 신식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는 어디로 가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 앞뒤 꽉 막힌 추한 늙은이들만 자기 앞에 있었다. (p. 29) 육체적인 쇠락이 찾아와 이제는 자식이 그들의 보호자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우는 부모가 어처구니 없었다.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 엄마의 상태와 자신이 없으면 밥도 못 찾아 먹는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 기가 찼다. 그런데도 그들의 정신은 자식들을 호령하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p. 32) 김은희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고 신물이 넘어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인내의 고무줄은 이제 실처럼 가늘어져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p. 33)

김은희

셋째이자 둘째딸인 김은희는 4년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다.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왔을때 다른 형제들은 요양원으로 모시자 했지만 극구 거부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신이 모시겠다고 말했었다.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우며 빡빡하게 살던 삶이 부모집으로 들어가면 조금은 안온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어머니의 상태와 그런 병수발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매사에 불평불만인 아버지의 힐난에 상처는 아물사이도 없이 점점 더 벌어지고 커지기만 했다. 게다가 이젠 응급실에 실려간 어머니의 상태를 전화해도 형제 들 중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날 아무도 오지 않던 그날 늦게 4개의 찹쌀떡이 들어있는 팩 하나를 사들고 온 언니의 훈계에 은희의 인내의 고무줄이 끊어져버렸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p. 50)

시댁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자기 가족과 아내 사이에 자신이 벽을 만들어줬다고 믿었는데 아내는 그보다 더 멀리, 자기 앞에까지 벽을 세운 것 같았다. 자신이 그린 '우리 가족' '내 가족'의 벤다이어그램 안에는 아내가 한가운데 있는데, 아내의 벤다이어그램에는 자신이 '우리 가족'이 아닌 '네 가족'에 속한 것 같아 배신감이 밀려왔다. (p. 79)

김현창

둘째이자 장남인 김현창은 부모의 자랑이었다. 일류대학을 나와 의사를 하고 있는 아들이었기에 부모의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며느리에 대한 노골적인 태도를 보며 현창은 아내를 자신의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장남이지만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자책감은 위암 말기의 장모 소식에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처는 아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해버렸다. 생신이었는데 늦은 밤에서야 혼자 찾은 그 집, 폭언을 퍼붓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때의 자기를 생각하면 지금 은희는 무척 좋은 조건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었다. 자신은 시부모님의 집이 아니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두 분을 모셨고, 간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남편과 자신이 충당다. 현창이처럼 다달이 돈을 보내주는 사람도 없었다. (p. 89) 명예훼손범을 찾겠다고 온 하굑를 들쑤셔놨는데, '살인자 가족'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보다 더 먼저 알고 있다는 공포심이 목까지 차오른 절망의 수위를 더 높였다. 김인경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정에 온 거였다. (p. 108)

김인경

첫째이자 맏딸인 김인경은 교사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가르치며 집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직업이 선생님이 됐다. 하지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의 할망구 소리에 폭력교사로 전락했다. 삼수를 하던 아들은 음주사고를 쳤고 조기퇴직해있던 남편은 인경 몰래 집안의 모든 돈을 선배 회사에 투자해놓고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이었다. 변호사는 합의금이 당장 필요하다 했고 그렇게 찾아간 친정에선 동생과 싸움만 한채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들은 동분서주하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엄마라며 가출해 버렸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생각났다. 자식은 선불이고 부모는 후불이라고. 자식은 태어날 때 이미 기쁨과 행복을 다 줘서 자식한테는 베풀기만 해도 억울하지 않는데, 부모한테는 이미 받아먹은 건 기억나지 않고, 내가 내야 할 비용만 남은 것 같아 늘 부담스러운 거라고. 김인경의 지금 심정에 꼭 맞는 말이었다. (p. 119)'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받을 수 없는데,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하는 아버지 때문에 김현기는 괴로웠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불효자식을 저주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문자를 볼 때마다 재밌는 유머라도 읽는 듯 웃음이 났다. 불효자라는 말에 그런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들을 때는 욕 같은데 자주 듣다 보면 '그래, 나 불효잔데 어쩌라고, 배 째!' 하는 심정이 되면서 더 엇나가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함부로 대했다. (p. 128)

김현기

막내이자 둘째 아들인 현기는 공무원 시험에 십년 째 떨어지고 간병하느라 힘들어하는 작은 누나의 불평을 견디다못해 집을 나왔다. 은희 누나가 자신의 동창인 광수와 사귄다는 얘길 들었을 때 화가 솟구쳤다. 하지도 못하는 주먹다짐을 주고받던 사고뭉치 동창은 오히려 자신을 비난했다. 은희누나는, 가족들 다 나쁜 인간들이라고 소리치는 광수의 편을 들었다. 자신의 불평을 들어주고 함께 술을 마셔주던 광수가 낫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찾아 나서며 광수를 혼내주겠다고 자꾸 자신에게 전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현기는 자수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김현기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최 형사는 더 이상 김현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김현기를 조사하면 할수록 사건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령의 부모를 죽이는 자식들은 대부분 직접 병간호를 하다가 지쳤건, 재산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이다.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이어도 그런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김현기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최 형사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p. 159)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시대가 됐다. 나는 대체 왜 장수 사회, 백세 시대를 환영하는 지 이해가 안 간다. 젊고 어린 나이의 병을 치료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의학 연구보다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데 더 돈을 들이는 의료계도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렇게들 오래 살려고 하나? 오래 사는 게 힘들지도 않나? 노인이 노인을 모신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나는 그 어려움을 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곧 내 앞에 닥쳐올 것이라는게 너무나 두렵다. 나는 정말이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오래 사는 건 너무 큰 불행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알고 있는 징글징글한 가족 이야기를 왜 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대신 말해주고 싶어서'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되면 어느 가족이나 거쳐야 하는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 길고 긴 간병의 세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 다른 형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 죄책감, 분노,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치밀어 오르는 피곤과 싫증에 대하여.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당신에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p. 215~216) -작가의 말 中-

작가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 만큼 이 작품은 새드엔딩은 아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내가 깊이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될 장면은 이런 엔딩장면이 아니었다.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p. 194)' 라는 은희의 외침이었다. 이런 공감어린 가족소설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가족 소설이 읽혀져야 할 시대다, 지금 시대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답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은 후 피하지 말고 생각해보길, 지금 내 가족에 대하여, 나와 내 가족의 노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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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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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기율표와 원소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로 배경지식을 넓혀주는 책이에요. 쉽게 읽혀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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