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대한 감각 트리플 12
민병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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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하고 불연속적인 감각만이 유일한 논리로 작용하는 세계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의 세계

이 책은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12번째 책이다. 이 책의 특징상 작고 얇은 책에 3편의 단편, 무엇보다 새로운 작가.

그 새로움이 이번 책만큼 강렬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새롭다 못해 조금은 충격적인,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 이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 책이었다.

너는 잠에서 깨어나 밤새 가라앉았던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낮은 천장과 먹색으로 도배된 벽지를 보며 이곳이 낯선 이국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발코니에 서서 사진과 영상에서나 봤던 양식으로 건축된 시가지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예전 일들을 떠올린다. 누가 곁에 있었고, 주로 무엇을 했으며, 어떤 곳에 있었는지, 떠올리지만, 위상으로 겹쳐진 시공간속에서 너는 희미함을 느낀다. (p. 12)

<겨울에 대한 감각> 中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 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구분되지 않고 도마뱀이 다니는 낯선 이국의 방에서 눈이 너무 많이 내린 이곳까지 모두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작가는 겨울을 이렇게 감각했다는 것일까 겨울로 연상되는 사람관계에서의 의미를 상징한 것일까... 감각은 느껴지지 않지만 서늘한 소설임은 맞다.

한밤중에, 창문을 열었고, 담 너머 세상은 깊은 암흑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입김이 흩어지는 창밖을 긴 시간 바라보는 것으로 갑자기 깨어난 새벽 내 지루함을 견디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뒤 동이 트면, 암흑이 걷힌 산중에서, 요 몇 달간 나를 괴롭히던 여러 소리와 상황들이 다시 담 너머에서 밀려 올 것이다. (p. 41)

<벌목에 대한 감각> 中

'나'에겐 일년전 신문지면에 오를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후 고모 혼자 살던 집에 혼자 살고 있다. 이 집은 산 언저리에 있고 이 산에선 벌목이 진행중이다. 그나마 앞 작품에 비해 객관적 상황배경은 좀 파악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보다는 '나' 가 벌목에 대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서사는 앞 작품의 '겨울' 과도 연결되고 뒤에 나오는 '불안'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트리플' 시리즈 구성에 맞춤한 3작품이긴 하다.

나는 산페르난도 항구 선착장에서 항해에 합류할 요트를 기다리고 있다. 선장은 입국 절차에 대해 미리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p. 70)

잠깐 내려다본 바닷속은, 낮은 암흑으로 일렁였다. 선장과 선원은 보이지 않고, 나는 밤바다에서, 이제 모든 게, 다시 처음처럼 가라앉길 기다린다. (p. 94)

<불안에 대한 감각> 中

이미지적 소설문체다 보니 안그래도 단편에 대한 이해력이 딸리는 나로서는 서사를 알게 해주는 문장을 집착적으로 찾아가며 읽게 되곤 했다. 누가 어디에서 언제 무슨일이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유와 상징을 넘어선 저자의 표현방식은 너무나 생경했다. 단편 3작품 뒤에 실린 [에세이-당신을 통한 감각론] 은 사실 저자 자신에 대한 소개글이다. 일종의 '작가의 말' 이라고 봐도 될법한. 하지만 저자는 '나' 라고 하지 않고 '당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 '당신'이 곧 '나' 저자 인데...

이제,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말을 당신만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서투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당신은 소설에게 당신의 손을 빌려준다. 당신은 감각에게 당신의 입술을 빌려준다. 당신은 모든 것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 대한 감각이 여기로 오고 있다. (p. 107)

<에세이 - 당신을 통한 감각론> 中

저자인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나'의 말을 '나'만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기에 서두르지 않고 '내' 소설을 쓴다. '내' 소설은 '나'의 손으로 쓰여지고 '나'의 감각은 '나'의 입술로 말해진다. '나'의 모든 것에게 '나' 모든 것을 준 셈이다.그렇게 '나'의 감각이 여기 이 소설에 실렸다.

저자에게 소설이란 '나' 만의 이야기인 것일까... 의아해 질 수밖에 없다;;;. 문학평론가의 '해설' 을 이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될 줄이야.

여기 실린 세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좀처럼 읽어내기 힘든 그의 글 앞에서 난감함을 느끼기도 했다. 읽다말다 몇 차례 반복하던 끝에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지금 이 읽기를 방해하는 것들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읽는다는 것은 쓰여진 것을 받아들이는 일대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아니다. (중략) 읽히지 않는 민병훈의 소설은 의식이라는 만들어진 심연이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원초적인 표면을 재현한다.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감각된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현상'하는 가운데 이 소설이 재현하는 것은 독해할 수 없는 표면으로 이루어진 무의식이다. (p. 112~113)

민병훈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지만,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욕망이었음을 이제 안다. (p. 122) 불친절하고 불연속적인 감각이 나를 나 자신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논리로 작용하는 세계,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 멈춘 소설의 세계, 민병훈이 심연을 지배하는 작가의 자리 대신 선택한 것은 모두에게 그들의 자연을 돌려주는 작가의 자리다. (p. 124)

<해설 - 감각을 위한 논리 (박혜진 문학평론가)>

줄거리가 없는 소설이라니 낯설다. 시도 아닌데 줄거리가 없다니.

이미지로 진술하는 소설이라니 낯설다. 시적 상징이나 은유도 아닌 그저 이미지라니.

문학평론가도 좀처럼 읽어내기 힘들었다는 작품에 대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무의식을 유추하며 읽어야 한다는 건 독자에겐 모험이다.

이러한 모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혀지지 않는 글에 대한 방해물을 생각하고 읽고, 읽는 내용에 대해 이해하려는 습관을 돌이켜보고, 소설읽기가 주는 감동에서 멀어져보는 경험이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감각' 이란 애초에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므로 비록 쓰여진 글이라 읽기는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러한 낯선 문장들이 내게 전해오는 서늘하고 외롭고 불안한 감각을 느낀 것으로 이 책은 온전히 읽은 셈이 된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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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필로소피 - 테크네에서 에로스까지, 오늘을 읽는 고전 철학 뿌리어 EBS CLASS ⓔ
김동훈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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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유용하면서도 술술 읽히기도 하고 고전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정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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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필로소피 - 테크네에서 에로스까지, 오늘을 읽는 고전 철학 뿌리어 EBS CLASS ⓔ
김동훈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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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이 고전 그리스오와 라틴어에서 찾은

엉클어진 생각을 매듭짓는 열다섯 뿌리어

서양고전을 읽다보면 어원을 알게 될때가 종종 있는데 그 어원적 의미가 너무나 절묘해서 감탄하게 될 때가 많다. 또한 지금 사용되는 의미와 그옛날의 의미가 달라서 사전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몸젠의 로마사> 번역자들이 만든 번역어사이트가 문득 생각났다. 다시금 조회해보니 이유는 알수 없지만 지금은 막혀 있는 사이트로 나온다. ㅠㅠ <몸젠의 로마사> 를 읽을 때 그 번역어 사전 사이트를 종종 들어가 보곤 했었는데...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이력을 보며 <몸젠의 로마사>를 공역한 학자라는 것을 알고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신뢰도가 백퍼로 차올랐다. 고전을 번역하며 사전을 만들정도로 꼼꼼하게 분석한 학자가 그 어원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풀어내 준다니 이보다 더 좋을수 있겠나.

옛말 중에는 시공간을 넘어 생명과 맥을 유지하는 힘을 지닌 말들이 있기 때문인데, 필자는 이런 힘을 지니고 오늘날까지 전해진 이 옛말을 '뿌리어'라 하겠다. '뿌리어'의 말뜻은 정말 깔끔하고 깨끗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알았다고 자부했던 온갖 것을 내려놓으면 잔물살처럼 맴돌면서 맘속에 스며드는 아스라한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의 명맥을 따지다보면 어느덧 맑은 기운이 솟구친다. 이것이 뿌리어를 익히는 이유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특히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 가운데서 '정갈하다' 느낀 뿌리어로 열다섯 매듭을 지어보았다. (p. 6)

저자가 소개하듯이 이 책에는 15개의 뿌리어에서 시작된 하나의 주제가 역사를 지나쳐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다. 서양고전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들어봤음직한 단어부터 생소하고 낯선 단어까지, 읽기전엔 15개라는 숫자가 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풍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만큼 저자의 뿌리어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고 풍부했다.

키케로는 연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르스(ars)'를 공부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 아르스가 바로 테크네를 라틴어로 번역한 말이다. (p. 15) 키케로는 테크네가 온전히 복원돼야 한다 했는데, 그가 말하는 테크네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바로 '후마니타스',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통해서 아르스, 즉 테크네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p. 18) 테크네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아르스'가 되었는데 이게 영어의 '아트(art)'다. (p. 22)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시간은 촉박하여 그 촉박한 인생에 실수하기 쉽고 인생의 결단은 험난하다. 하지만 필연을 행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환자, 간호인, 그 외부인을 위해서도 갖춰져야만 한다. -히포크라테스, <잠언집>1장 중에서 (p. 28)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유명한 말은 사실 의사들의 선서에 나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고 여기서 예술은 테크네 를 번역한 말이었다. art 라는 예술이 아니라 의학적 기술이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담은 문장이었다. 그런 테크네가 로마시대 아르스를 거쳐 현대시대에는 예술이 되었다. 그 변천사를 보며 주지해야 할 점은 기술적인 테크네도 예술적인 테크네도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갖춰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흔하게 알려진 테크네라는 뿌리어가 인생과 인간성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뿌리어로서의 철학적 의미를 완성하다니, 단어 하나로 이토록 풍성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니, 재밌다!!!

그리스어의 아레테는 라틴어로 번역하면 '비르투스(virtus)'이다. 영어의 벌추라고 하는 말이 이 비르투스에서 온 것이다. 라틴어로 '비르(vir)'는 남자란 뜻이다. 아레테가 라틴어로 비르투스로 번역될 때 남성다움 또는 힘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34) 그럼 그리스어로 아레테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논쟁이 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이 아레테라는 말이 '아레스'라는 신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이다. (중략) 주로 고전문학이나 고전철학 전문가들이 아레테가 나오면 힘과 관련시켜 '용맹성'이라 번역하기도 하고, 그 힘이 잘 발휘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탁월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p. 35)

그리스고전을 읽을 때 알게됐던 '아레테'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그리스 시대의 탁월함이 로마시대로 건너가며 남성적 의미가 더해진 것인줄 알았는데 그 시초부터 이미 아레스 신의 이미지가 갖는 상징성을 갖는 단어였다니... 저자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을 문학 철학 가릴 것 없이 다양하게 활용하며 뿌리어들을 해설한다. 호메로스 시대의 아레테가 플라톤 시대에 와서는 '협업의 능력'이 되고 그렇게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읽다보니 전혀 새로운 아레테를 배운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뿌리어 메타, 미디어, 트랜스, 포르마, 미메시스, 인판티아, 팍툼, 메타포라, 조에, 데쿠스, 로망, 스티그마, 에로스 모두 고전어의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그 함축적 의미 그리고 그 변천사에서 철학적 의미가 현대에 어떤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지 읽다보면 정말이지 새로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게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기록해두자면 너무 많을 것 같아 소개는 이정도만 하고 직접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전에 읽었던 서양고전들도 생각나면서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지만, 그 읽음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나서 저자가 소개한 서양고전책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른 책보다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가 읽고 싶어졌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정말 뜻모르고 소설처럼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나니 '변신'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으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사람을 자극하고, 사람은 그 자극에 따라 변화하여 행동하게 된다. 더군다나 뿌리어에 대한 이해는 자신을 유연하게 만들어 보다 도량이 넓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신케 할 것이다. 아무쪼록 다른 것보다 이제 일독을 마쳤으니 유연함이라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 그 유연함으로의 변신이 이 책이 목표하는 종착점이다. (p. 319)

고전 철학 뿌리어를 통해 삶의 키워드를 다시 생각해보는 philosopher 로 변신?!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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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4
조너선 맨소프 지음, 김동규 옮김 / 미디어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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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호의'는 어떻게 '중국의 권리'가 되고 말았나

누군가의 호의가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경우에 대해 우리는 살다보면 생각보다 쉽게 그 예를 경험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50여년간 캐나다의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중국공산당이 지난 50년동안 캐나다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은 것 같다. 그래서 캐나다 선교사의 호의가 현재는 중국 공산당의 권리가 되었다고 개탄하며 이 책을 써냈다.

나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종주의적 시각에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강조하고자 한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외국에 있는 한 정당, 즉 중국 공산당이 품은 국제적 야심에 관한 것이다. 중국 당국과 그 공작원들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의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p. 15)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도 따로 쓸 정도로 이 책이 한국의 상황에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얽혀온 중국의 정책에 대해 한국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지라 캐나다인으로서 느끼는 심각성과 우리의 느낌은 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해외에서 이토록 활발하게 움직여 왔다는 점은 한국에서도 분명 주지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베이징에 들어선 공산당은 현대판 중화제국 왕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p. 24)

중공과 접촉하면서 이런 풍조를 경험하는 것은 꼭 캐나다만이 아니다 미국, 유럽, 특히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이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호주에 중공의 입김이 스며드는 것은 정확히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일과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호주이 정치인, 학자, 언론, 그리고 대중은 중공이 꾸미는 일에 대해 좀 더 크고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시해왔다는 사실이다. (p. 30~31)

중국의 공작원들은 이미 이곳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그들은 캐나다의 가치를 경멸한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p. 37)

저자는 초반부터 조금은 격렬하게 중국의 '공작'에 대해 비판한다. '이 책은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공상 소설이 아니다. (p. 34)' 라며 독자에게 지금의 현실을 보고 중국의 실체를 파악하기를 강권한다. 이러한 강한 태도는 이 책이 일단 캐나다인들을 향해 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자국민들이 자국의 상황을 좀더 심각하게 판단해야함을 깨닫게 하고 싶어한다.

캐나다가 중공 공작원들이 활개 치는 사냥터가 되다시피 한 이유는 이 나라가 중공을 피해 중화권에서 벗어난 수많은 이주민의 매력적인 종착지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p. 45) 비록 모두는 아니겠지만 중공의 스파이, 비밀경찰, 여론공작원 및 기타 비밀공작원 중 많은 수가 국제엠네스티 보고서에 나오는, 캐나다의 인권 및 정치개혁 단체에 대한 학대와 협박사건에 가담하고 있다. 중공이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기관 및 공작원의 전체적인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자랑하며, 그들의 말대로 움직이는 또 다른 심복들도 캐나다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p. 69)

저자는 이 '공작' 들에 대해 세계대전 이후 부터 차근차근 사건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최근의 일들은 아니라서 너무 옛날이야기 처럼 읽힌다는 점이 저자의 강한 주장에 비하면 그닥 와닿지 않는, 호소력이 약해지는 원인인것 같다. 예를 들어,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반공독후감이나 이승복어린이 등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어간 이승복어린이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냈었다. 책속에서 제시하는 중국공산당의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공작'들은 그 이승복어린이 이야기 같다. 지금은 읽어도 별 감흥이 없는.

중공이 다른 나라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캐나다가 교훈을 얻어야 할 사례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p. 389)

중국공산당은 이제 캐나다의 자유민주 체제를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p. 418)

캐나다의 언론인으로서 중국의 활동에 대핸 위기감은 충분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사례에 대해서는 파이브아이즈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는 파이브아이즈 동맹국가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의 연방체 이므로 크게는 미국와 영국이라고, 간단하게 영미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과 영미권은 좀 다른 듯 싶다. 여하튼,) 미국과 중국은 오랜 경쟁관계이니 중국이 공작을 해야 한다면 영연방국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중국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작년엔가 중국과 호주사이에 있었던 이런저런 뉴스들이었다. 호주는 정치권에 로비자금이 허용된 국가이고 중국이 호주의 정치인들을 많이 포섭해왔는데 중국의 자금을 받은 호주의 부패정치인들이 발각되고 호주의 '다윈항' 관련 중국이 원하는 협정이 호주의 주권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주와 중국은 냉전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중이라고 한다. 뉴질랜드는 작은 국가이긴 하지만 일찌감치 독립적 의견을 주지하고 있었고 영국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강대국이라 이 파이브아이즈 동맹국들 중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살펴보야 할 국가는 캐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있어서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북미대륙을 있는 라인에서 캐나다는 필요한 입지의 국가일테니 중국이 캐나다에 은밀한 '공작'들을 꾸준히 해왔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호주에 비해 캐나다내에 그런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좀더 현대적 쟁점들을 최근의 사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언제적 일화들로 지금 중국의 활동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전반적으로 문체가 너무 옛스럽고 선동적이다. 이러한 낡은 선동으로 과연 얼마나 캐나다내에서 이슈가 되었을지 의아하다. 저자의 논리가 좀 약하긴 해도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문제이기에 기대하고 읽었는데 이정도 내용으로는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여하튼, 중국의 활동이 얼마나 세계적인가는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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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 유니버스 -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
수키 핀 지음, 전혜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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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이 빚어낸 더 나은 삶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이 책은 '물음'이 아닌 '대답'을 모은 책에 가깝다. '좋은 질문과 깊이 있는 대답'은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철학적 질문과 답을 여성철학자들에게 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아니... 다른가??

이 책의 원제는 'women of ideas : interviews from philosophy bites' 인데 구글번역기에 의하면 '아이디어의 여성: 철학 물음에서 인터뷰'라고 한다. 제목이 어째 좀 부자연스럽다;;; 여성 철학자들의 생각도 아니고 여성의 아이디어들도 아니고 아이디어의 여성 은 어떤 의미일까? 철학 물음으로부터의 인터뷰 라는 것도 그렇고;;; 이해할 수 없는 원제 때문일까, 나는 원래 번역서의 원제를 존중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한글판 제목이 더 나은 것도 같다;;;

이 책은 철학자 나이절 워버턴과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철학 한입>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진행한 인터뷰를 모아 엮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철학 한입>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4천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를 통해 <철학 한입> <철학 한입 더> <다시 철학 한입>이라는 총 3권의 시리즈 책이 발간되었다. (중략) 팟캐스트 <철학 한입>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에 달했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주제들이었다. 이 중에서 30편 이내로 고르자니 고난에 가까웠다. (p. 373~374)-감사의 말 中-

이 책은 영국의 두 철학자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인터뷰들 중 29명의 영미권 여성 철학자들 인터뷰를 골라 엮은 책인 것 같다. 두 명의 인터뷰어 중 '나이절 워버턴'은 <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느꼈던바 쉽고 재밌는 철학이야기로 이미 신뢰할 만한 저자였기에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나온 책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필로소피 유니버스> 를 엮은 수키 핀 저자는 '여성 철학자'들만 따로 모으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29명의 여성철학자들에게 '여자로서 철학을 한다는 건?' 이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모은 것들로 책의 서문을 대신한다.

여성철학자가 되기까지 누군가는 '여성'을 그닥 의식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힘들었으나 결국엔 그저 '철학자'로서 그 생각의 깊이를 함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철학자'는 여전히 희소하기에 그들의 생각은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책의 의도에 분명 '여성' 이라는 중심 주제가 있었기에 여자란 누구이며 남녀의 본질은 무엇인지로 시작하는 인터뷰의 주제순서는 이 책의 맥락을 따라가는 데 의미가 있는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은 정치적 운동이에요. 정치적 운동은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 것인지, 누구와 연대하고 연대하지 않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포괄적이지 못한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주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정치적 목적과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대해야 하는지, 다시 말해 가부장제에 맞서 누구와 함께 싸울 것인지를 두고 '여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 싸움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미 싸움터에 있고요. (p. 33~34)

첫 주제가 '여성'관련 질문인만큼 페미니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은 아니다. 여성 철학자가 여성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고 해서 모두 페미니즘 이라고 단언하면 안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기질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진화론적 주장을 전면 거부하고 싶을 거예요. 성 역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과 진화론적 주장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듯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그건 오해에요. 진화론적 입장이 보수파와 같아 보일지라도 이 둘은 서로 결이 다르고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진화론측 과학자들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타고난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야기해요. 남녀는 다르다는 둥 서로 그만의 특징이 있다는 둥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남녀의 타고난 기질과 일반적인 차이에 대해 말할 뿐이에요. 남녀를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에요. 과거 보수파 주장과 현대 진화론적 입장 간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변화가 무엇이든 생물학적 작용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어요. 페미니스트들이 맞서야 하는 건 광범위하게 퍼진 진화론적 주장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왜곡이에요. (p. 49~50)

남녀의 본질을 따지면 신체구조적 차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진화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상반된 주장이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고와 질문은 여성철학자이건 남성철학자이건 상관없이 그저 인간으로서 철학자로서 가능하고 또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여성철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페미니즘적 질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성'구분이 딱히 필요없어 보이는 질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성 역할의 구분에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는 '과학'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철학질문들의 흐름은 엮은이의 편집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의 편집방향을 훑다보면 이 책의 가치가 첫장을 펼칠때와 또다른 기분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과학이 이타성의 필요 여부까지 판단해줄 수 있을까?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어디까지일까?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용인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간의 사회적 교류는 권리일까? 등의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은 진화론을 넘어 과학이 증명해주는 철학적 논리들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다문화주의와 자유주의, 암묵적 편견, 혐오, 취향차이, (의료)사전 동의서 등의 주제들은 여성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갑을의 관계가 약간 바뀐것 같은 입장에서의 철학자들의 대답을 들으며,

언어와 맥락, 욕설, 교양, 신뢰 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각 항목들의 새로운 정의랄까... 현대철학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고,

'안다'는 것, 직관적 앎, 미셀 푸코와 지식, 보부아르의 삶과 업적, 메를로 퐁티와 신체, 흄과 불교, 아프리카 철학, 플라톤과 전쟁 등의 주제에서는 선배?!철학자들의 견해를 현대철학자들이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살펴 보며,

가능세계, 철학자들의 비유법, 철학의 발전, 철학과 대중의 삶 등의 주제에 대해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데

그렇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은 29명의 여성철학자들의 의견들 이라기 보다 그냥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주제들을 흥미롭게 읽고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저자는 여성철학자들을 묶은 것으로 여성철학자들을 강조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철학을 하는데 있어 여성이건 남성이건 그러한 구분은 필요치 않고 중요치도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보다는 세상 모든 고민을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턱을 좀더 낮추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철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덕 발전과 사회 진보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그 시작은 철학적 논쟁이었고요. (p. 360)

철학자만이 삶을 관통하는 철학 문제를 논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인간이라면 내가 왜 그렇게 믿고 행동하며, 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전문가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웠다는 일부 지식인들은 이러한 인간의 핵심 활동이 본인들의 영역이라고 말해요. 타인의 인간성을 깍아내린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이게 플라톤이 창조한 바로 그 분야예요. 즉 철학에 암시되어 있던, 플라톤이 꼬집은 진짜 문제요. 플라톤은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재능 없는 플루트 연주자처럼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를 재배열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발견한 플라톤의 공로만은 인정해야 겠죠.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이 말에 숨은 뜻은 바로 이거에요. (p. 362~363)

마지막 인터뷰는 철학과 대중의 삶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형식적 관행에 얽매여 있는지 안타까워 하는 철학자가 '저는 철학을 이제 대학 강의실보다는 학교 교실에서 가르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p. 372)' 말하는 것으로 끝맺음된다. 현대철학자들의 형식성을 비판하는 이면에는 분명 여성철학자들에 대한 차별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만 읽어보아도 곧 깨달아지는 것이다. 철학을 하는데에는 그러한 성역할도 철학자이냐 아니냐도 사실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모두 철학을 하자.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고민을 반으로 뚝 줄어들게 하는 것이 철학의 힘이니까. 철학은 저마다의 인생고민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그런 거니까. 쓸데 없어보이는 고민들도 계속되고 확장된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하는 것이니까. 그게 바로 철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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