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때로 어떤 예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 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 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인생의 그래프 중
생각해보면 젊은 날의 많은 것들이 오히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 로 주어졌고 지금은 그 값을 치르는 중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은 어쩐지 내 삶에도 통하는 공식 같다. 어쩌면 젊은 시절 이미 많은 걸 선물처럼 받았고 지금은 그에 대한 값을 조금씩, 그리고 조용히 후불제로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