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한열이는 왜 이렇게 오래 기억될까.
그가 다른 누구보다도 열렬히 투쟁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군사독재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수많은 학생 중 하나였고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다.
최루탄이 몇 센티미터만 비켜 나갔더라도 그도 다른 이들처럼 6월의 거리를 누비고, 6.29선언으로 잠깐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좌절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로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같은 것에는 서서히 관심을 잃어버리고, 자기 가족의 안위나 걱정하는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열이 자꾸만 소환되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살아남았다면 그가 살아갔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에 살게 되었다면 우리를 대신해 죽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기린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런 존재. 조용히 기억하고 기리는 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전태일이겠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세월호의 승객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한열이었다. 내가 그였을 수 있고, 그 또한 나였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 친구를 추억하며 소설가 김영하


나는 민주열사가 아닌
21살 경영학과 과티를 입은
시위 때 맨 앞에 서는게 무섭기도 했던
몸살 기운이 있어서 감기약을 가방에 넣어두었던
흰색 타이거 운동화를 신었던 그 어린 청년이
너무나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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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8-01-0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리뷰 기다릴께요~

나와같다면 2018-01-08 23:23   좋아요 0 | URL
책을 읽다가 덮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읽기가 힘드네요..
읽어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