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17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29일 고공 농성을 벌인 김주익 씨(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는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닷새 뒤 10월 22일 당시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하던
故 정은임 아나운서는 당일 방송 오프닝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정 아나운서는 11월 18일 오프닝 멘트에서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언급했다
˝19만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바퀴 달린 운동화)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고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멘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