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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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간들 중에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도깨비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 같은 멀쩡한 얼굴 밑에, 귀신의 본성을 숨기고 있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속이거나 죽인다.

(<가을비 도깨비> 중에서)

<혼조 후쿠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이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귀신의 기이하고 환상적이며 애절한 이야기를 다룬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혼조 후쿠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비해서 미스터리한 느낌은 조금 덜한 것 같네요. 그러니까 미스터리한 어떤 사건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어서 조금 밋밋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누구와 누구는 결국 어떻게 되었고, 그들은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확실한 결말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비중을 두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괴이>는 '꿈속의 자살', '그림자 감독', '이불방', '여자의 머리' 등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귀신이나 도깨비, 흡혈귀(영원히 죽지 않으니 흡혈귀라고 볼 수 있겠죠)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네요. 귀신보다 인간의 사악함이 섬뜩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그림자 감옥'에서 며느리의 시어머니에 대한 행동은 인간의 사악함의 절정을 보여주더군요. 물론 좋은 귀신도 있고, 나쁜 귀신도 있습니다. 나쁜 귀신은 인간을 해하려 하고('여자의 머리'), 좋은 귀신은 인간을 도와주죠. 그리고 인간의 더러움을 먹고 사는 좋은 귀신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온갖 사악함과 더러움을 먹고 귀신은 심성이 착합니다('아다치 가의 도깨비'). 암튼 다양한 귀신들을 구경하실 수 있을거에요. 일본의 괴담이 미야베 미유키와 만나면 어떤 식으로 변주되는지 관찰하는 재미도 나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귀신은 무섭지 않았지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의는 조금 무섭더군요. 암튼 드라마로서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호러나 미스터리 쪽으로는 조금 약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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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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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의 책이다.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다.

정말? 정말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을까? 허풍이나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온통 붉다. 진한 피의 냄새가 풍겨온다. 달콤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기묘하다. 공포소설의 조건은 무엇일까? 잠깐 1분 정도 생각해 본다. 기존 공포에 너무 익숙한 내게는 너무나 뻔 한 몇 가지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굴에 갇히거나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사이코가 등장하고, 뿔 달린 괴물이 등장해서 난도질을 하고, 아니면 <링>의 사다코처럼 관절을 꺾어 볼까? 암튼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기대 이상이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의 흥분을 해서 살짝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오버인가? 암튼 재미있다. 물론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기존의 공포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니까.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섬뜩하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기괴하면서 환상적이고, 무엇보다 신비스럽다. 러브 크래크프의 소설처럼 거대한 환상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세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의 뉴욕시 지하에 창조되어 있는 인육을 먹는 인간들의 조상, <언덕에, 두 도시>에서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 도시, <스케이프고트>에서의 죽은 자들의 섬 등등. 그리고 그다지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괴물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의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돼지, <로레드 렉스>에서의 2미터가 넘는 야들야들한 아기 고기를 좋아하는 괴물("이게 바로 짐승이지", "먹고 먹히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인간의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의 유령들, <스케이프고트>에서의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좀비들, <야터링과 잭>에서의 저급 악마 등등 암튼 귀엽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찌 이런 소설이 재미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관음증에서 오는 쾌락, 그리고 섹스와 공포, 유혈이 낭자한 묘사들. 모든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합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잔인한 장면에서의 실감 나는 묘사가 좋더군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상상력 하나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무척 어려움에도 정말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묘사가 되어 있더군요. <언덕에, 두 도시>의 수천 명(수만 명이었나?)으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이 걸어 다니는 장면 묘사는 정말 황홀하더군요. 근육 부분을 담당하는(?) 인간의 일그러진 표정, 구부러진 몸뚱아리 등등. 인간으로 이루어진 두 도시의 원초적인 싸움(전쟁)은 혹시라도 인간이 걸어온 피로 이루어진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학적인 주제들도 넌지시 던져주고 있습니다. 암튼 재미있습니다. 기존 공포소설에 식상한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국내에 출간된 <피의 책>은 1984년에 출간된 <피의 책 1-3권>에서의 작품을 추려서 수록했다고 하네요. <피의 책 4-6권>도 곧 선보인다고 합니다. 반응이 좋으면 외전 형태로 완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번역자 분께서)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 보이지만 완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피의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과 과연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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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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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12,000엔의 아르바이트? 연령과 성별 불문. 기간은 일주일. 24시간 모두 시급으로 계산. 하는 일은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 만약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아르바이트 면접에 통과해서 선택을 해야 될 상황이 온다면? 과연 당신은 아르바이트를 할 의향이 있습니까?

요네자와 호노부의 <인사이트 밀>은 엔터테인먼트 본격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클로즈드 서클 상황에 인간들을 가둬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은 관찰하는 내용입니다. 목적은 돈일 수도 있고, 장난일 수도 있고, 암튼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비윤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목숨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니까요. 참가인원은 12명. 기간은 7일.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살인 무기. 소설은 현실이 아닙니다. 상상이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독자는 과감하게 이런 재미있는 게임을 포기하세요. 가타부타 따지는 것도 이제는 피곤하니까요. 다시 한 번 거듭 말하자면 이 소설은 돈을 목적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들을 죽고 죽이는 게임입니다.

12명의 초대 받은 사람들은 '암귀관'이라는 지하 실험실에서 7일간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암귀관의 건물 구조는 무척 특이합니다. 그리고 어둡고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과 <암흑관의 살인>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암흑관의 살인>은 건물 전체가 어둡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이 많이 비슷하더군요. '암귀관' 도착한지 4일 후 사람이 죽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알던 사람들이 점차 공포심을 느끼며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각자 개인룸은 잠금 장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각자 개인에는 살인 무기가 주어지고요(물론 자신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되겠죠? 이 살인 무기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믿을 것일까? 사람을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각자에게 주어진 무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기구(이러한 게임을 만든 조직)에서 정해 놓은 복잡한 규칙들. 그러한 것을 모두 이겨내고 과연 살아서 이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클로즈드 서클. 냉정하게 사건을 추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지옥 같은 상황.

12명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살인 무기는 무엇일까요? 이 건물의 주인은 어설픈 미스터리 매니아입니다(물론 아닐 수도 있고요). 그래서 살인의 방법과 무기도 모두 다르게 배치합니다. 구살, 교살, 약살, 독살, 압살, 격살, 박살, 사살, 참살 등등. 그리고 부지깽이, 끈, 니트로벤젠, 니코틴, 공기 피스톨, 보우 건, 만돌린, 손도끼, 얼음 나이프, 슬링 샷 등등.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아마 위의 무기들을 보고 '혹시 그 작품에서 사용된 무기들은 아닐까?' 싶은 무기들도 있을거에요.  친절하게도 각자가 받은 메모랜덤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얼룩 끈>, <비숍 살인 사건>, <이누가미가의 일족>, <X의 비극>, <제3의 총탄> 등등.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열심히 추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 그리고 보너스도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두 배, 범인을 찾으면 탐정 보너스로 3배 등등.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장치들이 이외에도 무척 많습니다. 암튼 본격 미스터리는 설명 자체가 조금 무의미한 것 같아요. 요네자와 호노부의 <인사이트 밀>은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근래에 읽은 본격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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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뫼비우스 서재
최성근 지음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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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성근의 <22일>은 유아(遺兒) 인신매매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동 인신매매와 연쇄살인사건이란 소재는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꽤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도 추리소설의 소재로는 거의 다루어지지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은 인신매매라는 범죄가 뉴스에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들은 말이 바로 인신매매라는 말 같아요. 신문기사나 뉴스에서도 많이 보도되거나 다루어졌고요. 암튼 아동을 다룬 범죄만큼 끔찍하고 잔인한 범죄도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 계열로 분류할 수 있겠네요. 물론 '왜?'(범인은 왜 아이들을 연쇄적으로 죽이고 가슴에 십자가 모양의 상처를 남겨야만 했을까?)에 초점을 두고 사건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범행 동기 뒤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무척 충격적이고 가슴이 아픕니다), 범인이 도대체 누구일까를 추리하는 즐거움(트릭과 반전)도 함께 던져주고 있습니다.


  서울 외곽 지역에서 유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팀장과 정 형사, 그리고 과학수사팀의 윤 형사가 사건을 맡게 되고, 범인의 흔적을 쫒기 시작합니다. 범인의 흔적을 쫒으면서 드러나는 이 팀장과 윤형사의 아픈 과거와 비밀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 생각했던 고아원 원장의 죽음. 의문의 실종으로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수녀. 그리고 죽은 시체에서 발견된 십자가 모양의 상처와 얼굴에 새겨진 '심판'이라는 글자. 암튼 이야기는 추리 스릴러 소설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엽기적인 이야기도 독특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기본에는 무척 충실한 느낌이 들더군요. 군더더기 없는 문장 묘사와 빠른 스토리 전개, 그리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는 독특한 이야기가 아닌 이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 넣습니다. 물론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과 슬픈 결말은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색다르고 독특한 맛은 없지만 기본에는 매우 충실한 장르소설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꽤나 어둡습니다. 범인을 쫒는 이 팀장과 윤 형사의 과거도 그렇고, 범인이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그 동기도 그렇고요. 아픈 상처를 가진 인간들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은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형사가 범인을 잡는 것도, 범인이 형사에게 도망가는 것도 둘 다 결말은 그리 좋지 않으니까요. 버림받은 사실에 대한 슬픔과 아픔, 그에 따른 증오와 분노, 그리고 버렸다는 사실에 따른 미안함과 죄책감 등이 무척 공감이 가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고아원의 실태와 아동 인신매매, 아동 (성)폭행 등 사회적으로 곱씹을 만한 묵직한 화두도 던져주고 있고요. 아동 인신매매와 아동 (성)폭행은 정말 근절되어야 할 최악의 범죄가 아닐까 싶네요. 아동 인신매매와 아동 폭행에 다룬 소설답게 결말은 몹시 씁쓸합니다. 큰 한 방이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지만, 기본에는 매우 충실한 추리 스릴러 소설답게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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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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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클럽 작가들의 세 번째 공포문학 단편선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전편에 비해서 소재가 다양해졌고, 자극적인 요소(잔인한 장면 묘사나 반전, 트릭 등)도 최소화시켰더군요. 사실 자극적인 요소가 나쁘지는 않지만 스토리의 부재를 이런 자극적인 요소로 도배를 하는 공포소설도 많은지라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공포의 원인으로는 괴물도 있고, 귀신도 있고, 뭐 살인자도 있지만 인간 내면의 공포가 두드러져 보이더군요. <나의 식인 룸메이트>도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이 드러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공포인자>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포와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설이고요. <노랗게 물든 기억>, <불>, <은혜> 등의 작품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쁜 엄마를 가진 친구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에게 남은 증오와 분노, 그리고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 같은 인간 등등. 암튼 이번 작품집은 전편에 비해 확실히 공포의 스펙트럼이 좀 더 넓고 더 깊어진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집에서 높게 평가해 주고 싶은 것은 충격과 자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를 하고, '공포'라는 감정 자체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공포소설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다루는 장르죠. 바로 그 기본에 충실한 작품집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옷장 속에 숨은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갑자기 등장한 식인 룸메이트를 위해 집에 거주하는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인간 재물을 바칩니다. 싫어하는 인간을 재물로 바칠 때는 약간의 쾌감을 느끼지만 자신의 부모님이 희생을 당하자 서서히 공포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식인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그는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먹이를 제공하는 먹이의 딜레마. 식인 괴물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가 아닐까 싶어요.

<노랗게 물든 기억>은 어린 아이들의 질투와 시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죽은 친구의 어머니가 실성한 장면에 대한 묘사가 무척 공포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아이들은 순수하다는 선입견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작품입니다. 귀신이라는 비현실적인 공포를 실제 살인이라는 현실적인 공포로 전환되는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처음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귀신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는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한데 실제는 어린 아이의 사소한 질투와 시기심이었다는 당황스러운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은혜>라는 작품에도 조금 보입니다. 귀신 소설인 줄 알았는데, 인간의 악이 드러나는 소설이라는 반전.

<공포인자>는 개인적으로 조금 의문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가족애가 거대한 두려움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암튼 <공포인자>는 공포 바이러스(홉스 증후군)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다룬 소설입니다. 이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가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실제 현실은 아니죠.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무척 좋았습니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공포라는 바이러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공포는 바로 개인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두려움이라는 것. 그러나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의 호흡이 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더군요.

<담쟁이집>은 조금 익숙한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담쟁이로 둘러싸인 집, 그리고 하나 둘 사라지는 아이들, <저주 받은 도시>나 <옥수수밭의 아이들> 등의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사실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분위기가 중요한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담쟁이집, 그리고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누나, 그리고 자기 주변을 서성거리는 듯한 느낌, 그리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공포 사이의 갈등 등 암튼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인간에 대한 짜증과 분노 묘사가 무척 리얼하더군요. 정말 보는 내내 그 여자를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타인에게 분출함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정말 많죠. 특히 그런 인간들의 최고의 먹이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죠. 암튼 그런 인간들을 괴롭힘으로써 쾌락을 얻는 인간을 보니 정말 무섭더군요. 이건 병도 아니고, 또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죠.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암튼 더운 여름에 정말 제대로 짜증나는 소설이었습니다.

<붉은비>는 붉은 비를 맞은 동물들이 죽었다 살아나면서 인간을 공격하는 내용을 그린 소설입니다. 인간에게 친근한 개나 고양이, 비둘기가 한꺼번에 인간을 공격한다면? 그리고 동물들의 공격이 단지 시작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새의 끔찍함은 히치콕의 <새>에서 정말 잘 드러나죠. 무섭기는 했지만 죽었다 살아나는 동물들과 그들의 공격은 조금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선잠>은 조금 슬픈 공포소설입니다. 중반까지 미스터리한 느낌도 잘 살아있고요. 왜 아무도 나의 죽은 여자 친구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까? 사진도 있고, 그녀의 흔적이 분명히 있는데,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모릅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정말 죽었을까? 왜 그들은 그녀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은혜>라는 작품은 우선 작가의 이름을 보고 무척 기대한 작품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고, 그 동안 좋은 작품도 많이 선보여서 말이죠. <은혜>라는 작품은 아무래도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과 계속 비교하면서 읽게 되더군요. 한 여자가 보험금(돈과 명품)을 위해 결혼을 하고 남편을 살해하며, 방화와 청부살인도 하면서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내용인데,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중반부터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현실적인 공포소설로 바뀌더군요. 어떤 새로움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감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얼음 폭풍>은 이민자들이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두려움을 그린 작품입니다. 전작 <벽 곰팡이>와 느낌이 많이 비슷하네요. 생활 밀착형 공포를 주로 다루는 것 같아요. 생활고만큼 무서운 공포도 없잖아요. <벽 곰팡이> 무척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이번 작품 역시 만족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공포소설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상 기후, 외국인들로부터의 고립, 생활고, 인종 차별, 피해망상, 그리고 마지막의 절망적인 선택. '오직 살아있다는 것만이 공포였다.'

<불>이라는 작품은 인간의 불쾌감과 짜증 등을 소재로 깊이 있는 공포소설을 주로 발표한 김종일 씨의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이상하게 아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많더군요. <불>은 인체발화라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아이와 점점 그의 노예(두려움의 노예)가 되어가는 또 다른 아이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그 변화가 무척 흥미롭더군요. '좆삐리'라는 왕따 친구가 어느덧 (그의 존재를 알고부터) 두려운 존재로 바뀌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한 아이의 두려움이 무척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시작과 끝의 돋보기로 개미를 태워 죽이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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