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모두가 피의 책이다.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다.

정말? 정말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을까? 허풍이나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온통 붉다. 진한 피의 냄새가 풍겨온다. 달콤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기묘하다. 공포소설의 조건은 무엇일까? 잠깐 1분 정도 생각해 본다. 기존 공포에 너무 익숙한 내게는 너무나 뻔 한 몇 가지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굴에 갇히거나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사이코가 등장하고, 뿔 달린 괴물이 등장해서 난도질을 하고, 아니면 <링>의 사다코처럼 관절을 꺾어 볼까? 암튼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기대 이상이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의 흥분을 해서 살짝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오버인가? 암튼 재미있다. 물론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기존의 공포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니까.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섬뜩하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기괴하면서 환상적이고, 무엇보다 신비스럽다. 러브 크래크프의 소설처럼 거대한 환상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세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의 뉴욕시 지하에 창조되어 있는 인육을 먹는 인간들의 조상, <언덕에, 두 도시>에서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 도시, <스케이프고트>에서의 죽은 자들의 섬 등등. 그리고 그다지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괴물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의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돼지, <로레드 렉스>에서의 2미터가 넘는 야들야들한 아기 고기를 좋아하는 괴물("이게 바로 짐승이지", "먹고 먹히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인간의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의 유령들, <스케이프고트>에서의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좀비들, <야터링과 잭>에서의 저급 악마 등등 암튼 귀엽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찌 이런 소설이 재미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관음증에서 오는 쾌락, 그리고 섹스와 공포, 유혈이 낭자한 묘사들. 모든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합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잔인한 장면에서의 실감 나는 묘사가 좋더군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상상력 하나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무척 어려움에도 정말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묘사가 되어 있더군요. <언덕에, 두 도시>의 수천 명(수만 명이었나?)으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이 걸어 다니는 장면 묘사는 정말 황홀하더군요. 근육 부분을 담당하는(?) 인간의 일그러진 표정, 구부러진 몸뚱아리 등등. 인간으로 이루어진 두 도시의 원초적인 싸움(전쟁)은 혹시라도 인간이 걸어온 피로 이루어진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학적인 주제들도 넌지시 던져주고 있습니다. 암튼 재미있습니다. 기존 공포소설에 식상한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국내에 출간된 <피의 책>은 1984년에 출간된 <피의 책 1-3권>에서의 작품을 추려서 수록했다고 하네요. <피의 책 4-6권>도 곧 선보인다고 합니다. 반응이 좋으면 외전 형태로 완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번역자 분께서)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 보이지만 완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피의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과 과연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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