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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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한 백가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굿바이 투 로맨스>를 포함하여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소설 한편 한편이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내공 팍팍!! 소설 속 등장인물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상황)까지 정말 두렵고, 소름끼칩니다. 물론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분노 폭발!!

 

 

표제작 <조대리의 트렁크>는 다른 8편의 단편소설을 대표하기에 무척이나 좋은 작품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있습니다. 정상/비정상을 굳이 구분하고 싶지는 않은데, 적당한 표현(언어 표현능력 제로)을 찾지 못해 그냥 표시했으니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하 단칸방에 개(멍멍이)의 위협과 위기관리능력(아이의 엄마가 있을 때는 평소에 귀여운 개처럼 행동하다 엄마가 밖에 나가면 아이를 지배합니다.) 저조로 죽어간 네 살배기 어린아이, 사업 실패로 아내를 죽이고 노모를 트렁크 속에 넣어서 저수지에 유기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은 그냥 자살해 버리는 '장영수'라는 인간, 여자 친구들(단수가 아닌 복수)을 구타하고 감금하고 강간해서 찍은 사진을 부모에게 공개하고 비디오카메라로 섹스장면을 찍어서 협박하는 "사랑하면 너는 내 거야"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 더 할까요? 그냥 여기서 그만두죠. 암튼 <조대리의 트렁크> 속 인물들은 모두가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대리(처음에는 회사조직사회의 '대리'라는 직책인 줄 알았는데, 운전 '대리'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직장인의 애환 뭐 이런 것을 다룬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전혀 아닙니다.)는 어찌 보면 9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우리와 가까운 인물입니다. 나이 서른일곱(스물일곱도 아닌 서른일곱!!), 돈 없음, 결혼 못 했음, 이상적인 여자가 자기와 사겨주면 무척 고마울 것이라 생각함, 병든 노모 간호해야 함, 그리고 말도 더듬습니다. 이상적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이런 노총각? 여성분들 결혼하고 싶습니까? 암튼 어찌 보면 비루한 캐릭터인데, <조대리의 트렁크>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인물입니다. 비루하면 어떻습니까? 노모가 병이 들어서 힘들어 하면 어떻습니까? 결혼 못 하면 어떻습니까? 돈 없으면 뭐 어떻습니까? 그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갑니다. 노모를 매일 간호하고, 노모를 걱정하며, 편의방 아가씨에게 잘 보이려고 무게도 잡고, 열심히 대리운전을 하며 먹고 살아갑니다. 형편없다고요? 그래도 그는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고로 '조대리의 트렁크'라는 단편소설은 <조대리의 트렁크>라는 소설집의 표제작으로는 무척 잘 어울린다는 얘기죠.

 

소설 이야기를 해보죠(줄거리는 뭐 온라인서점에 나와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서 읽어보세요^^). 현실과 소설 속 인물, 사건들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지죠.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는 이야기도 대부분은 뉴스에 한번쯤은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이가 굶어 죽은 이야기? 여자 친구 감금하고 비디오카메라로 찍어서 협박한 이야기? 병든 노모를 버린 이야기? 노숙자 할아버지? 10대 가출 청소년의 비행? 거짓 임신을 위해 아이를 훔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나 읽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니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죠. 끔찍한 이야기, 그리고 끔찍한 현실. 거짓 임신으로 아이를 훔친 아줌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16살에 임신해서 이제는 아이가 거추장스럽게 되어버린 20대 초반의 여성이 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방치해서 죽였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늙은 노인(돈도 집도 가족도 없는 노숙자)을 등쳐먹는 10대 불량청소년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게임 피씨방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런데 뭔 놈의 자식은 그렇게도 많이 생산했는지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버리고 도망가는 젊은 부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사실 비난의 대상입니다. 쓰레기, 기생충, X자식 등등. 사실 인간 말종, 인간쓰레기죠. 그런데 결과만 놓고 그네들을 비난하기에는 조금 그렇죠. 암튼 저는 무척 분노했음에도 비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뭐라 말할 수가 없더군요. 현대사회의 비극, 이제는 뭐가 현실이고 소설인지 구분 자체도 모호하고,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옳은 정치인지 지네들 배 불리는 정치인지 정치인들은 한심하고, 대기업 비리는 터지는데 굶어 죽는 가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토막 내고 찢어 죽이고, 사랑한 건지 이용한 건지 섹스동영상을 유포해서 협박하고,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어린 시절부터의 인성교육? 개뿔은 무신 인성교육. 세상은 점점 흉폭해지고 살벌해지고 무서워지는데 약육강식. 어차피 남의 일, 내 상관할 바 아님. 무서우면 죽으라고, 당신 시체나 팔아먹게. 단편소설 '매일 기다려'의 가진 거 없는 노숙자 할아버지는 쓰레기 주우러 갔다가 임자 있는 쓰레기 훔쳤다고 맞고 돌아옵니다. 쓰레기에도 임자가 있는 세상인데, 뭔 놈의 인성교육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고 이해인지. 나 혼자 잘 살면 되는 세상이 바로 자본주의사회 아닌가? 철저하게 자본주의 인간형이 되던지, 아니면 바보처럼 살던지, 그것도 아니면 목매달고 죽던지, 암튼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요놈의 세상은.

 

 

마지막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은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듣죠. 자극적인 내용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쉽고, 또한 그런 소재로 돈을 버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죠. 예전에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1990년대 중반에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역시나 그런 오해(아니면 진실?) 많이 받았죠. <나쁜 영화>나 <거짓말> 등등. 암튼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니 영화 얘기는 그만 줄이고, 암튼 백가흠 씨의 <조대리의 트렁크>도 그런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조금 자극적이고 강도가 쎄거든요. 뭐 섹스인형('섹스돌'이라고 부르나요?)과 섹스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결과만 놓고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받아들이는 거야 독자 개개인마다 다 다르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 소설도 거부감을 갖는 독자 분들이 분명히 있을거에요. 결코 친절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어떤 해답을 작가가 던져 주지도 않습니다. 답답하고 불편하고, 마주치기 싫은 그런 현실, 그래도 (제가 말하고자 하고 싶은 건) 그런 현실이라도 마주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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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서평단 알림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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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식해서 잘 모르겠다만, 내가 남을 부를 때는 그냥 남만 부르는 게 아니라더라. 남을 통해 나를 부른다는 거야. 남을 부르지 않고 사는 건 결국 나를 부르지 않고 사는 거래. 제 몸 주인이 저를 안 부르는데, 그 몸이 살아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겠냐."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만득이? 처음에는 제목을 자세히 안 봐서 만득이인 줄 알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완득이>입니다. 완득이는 소설 속 주인공 17세 고등학생의 이름입니다.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에서 온 어머니에서 태어난 완득이.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밝게 살아가는 완득이. 이 소설은 완득이의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 또는 가족소설입니다. 처음에 완득이라는 주인공을 보고 그 유명한 이현세의 만화 <까치> 시리즈가 생각나더군요. 까치가 야구를 했다면 우리의 완득이는 킥복싱을 하고, 까치에게 엄지가 있다면 완득이에게는 윤하가 있습니다(당연하게도 윤하의 부모님은 완득이를 만나지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난쟁이, 집은 가난하고, 게다가 완득이는 공부도 못하고 싸움만 합니다. 물론 이유 없이 아무나 때리지는 않습니다.). 암튼 그런데 이현세의 만화 <까치> 시리즈가 스포츠, 우정, 사랑, 희망 암튼 이런 것들을 재미있게 그렸다면 이 소설은 그와 함께 이주노동자 문제라든지,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 차별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벼우면서도 이야기가 조금 무겁습니다. 그러나 완득이, 담임선생 똥주, 앞집 아저씨, 완득이의 삼촌 등 재미있는 캐릭터와 대사, 묘사들이 많아서 무척 웃깁니다. 그러니까 이런 류의(가정환경이 어려운 소년이 등장하는 신파조의 소설)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억지 감동은 없습니다.

 

우선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 이 소설에는 욕을 달고 살면서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라고 하고, 완득이의 옆집에 이사 와서 완득이를 괴롭히면서 거친 행동도 많이 보이고, 소설에서 학생들이 상상하는 딱 조폭의 모습입니다. 행동은 거칠지만 마음은 따듯한 선생이죠. 암튼 이 선생, 이 소설에서 무척 웃깁니다. 그리고 소소한 감동도 주고요. 그리고 차별의 문제도 살짝 건드리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죠?)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편견, 크게는 우리나라 사회제도의 모순과 편견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설픈 희망에 대해 설교하지도 않습니다. 위의 완득이의 생각처럼 그냥 거창하고 대단한 삶을 사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를 그냥 넌지시 던질 뿐. 청소년이 읽을 만한 소설이 없죠. 사회 문제를 건드리는 소설은 어렵고(개인적으로 청소년기에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소설(성장소설)은 다소 지루할 수 있고(그런 소설이나 영화가 너무 많아 식상할 수가 있죠.), 그러면서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소설이 정말 없죠. 특히 청소년을 위한 소설은요. 개인적으로 10대 청소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절대 유치하지 않습니다.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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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1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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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실로 인간의 습성을 잘 이용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호기심이라는 습성, 상자가 있으면 열어보고 싶고, 미로가 있으면 들어가 보고 싶고, 숨겨놓으면 찾아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메이즈>는 그런 독자들의 속성을 아주 잘 이용한 영리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것은 위의 표현처럼 꼭 알고 싶어지죠.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죠. 두부는 글자 그대로 우리가 먹는 두부입니다. 아시아 서쪽 끝 어느 황량한 벌판에 두부처럼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들어가면 사람이 사라집니다. '존재하지 않는 장소', '있을 수 없는 장소'라고 불리는 이상한 장소. 메구미는 그의 중학교 시절 친구 미쓰루에게 거금을 주며 자신의 조수 역할을 부탁합니다. 암튼 무엇보다 사람이 사라지는 장소 두부의 존재가 무척 궁금합니다. 왜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사라질까? 우선 궁금증을 툭 던져 놓고 이야기에 슬슬 빠지도록 미끼를 던집니다. 그리고 마치 소년 같은 메구미와 미쓰루를 등장시켜(처음에 이들의 대화를 보고 중년 남성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학창시절의 묘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캠핑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무언가 들리는 소리, 어두운 밤에 내리는 비 등의 요소들은 공포적인 요소를 자극하고요. 마지막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 미로 같은 공간,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 등 환상적인 요소도 적절하게 가미하여 암튼 몽환적이고 두렵고 미스터리한 그러면서 묘하게 그리운 암튼 그런 요상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메이즈(미로)>라는 제목과 표지를 보고,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온다 리쿠의 소설을 예상하며 읽었는데, 보기 좋게 배신(배반?) 당했네요. 암튼 이야기꾼 온다 리쿠 여사의 재주는 제게는 정말 상상초월입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이렇게 계속 생각해 내는지 놀라워요. 간바라 메구미는 <클레오파트라의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고, 미쓰루도 <코끼리와 귀울음>이라는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요즘 같은 일회용시대에 이렇게 재활용을 열심히 하는 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메구미나 미쓰루를 이번 작품에서만 만나기에는 조금 아쉽죠. 내가 보는 것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인간은 보이는 것은 믿지만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죠. 암튼 존재하는 것, 사라지는 것의 현실과 비현실성의 모호한 경계(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데 '시간'이란 개념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존재하기도 하면서 사라지고,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느끼지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가 정말 잘 표현된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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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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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되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뻔 했네요. 1994년도에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작가분은 1995년에 세상을 떠났더군요. 저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 같은데, 너무나 안타깝네요. 덧붙여 국내 추리소설계에도 큰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지적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제게는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작가의 노력(관련 내용의 조사뿐만 아니라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성력까지 정말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들어간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의 피부로 가슴으로 확 느껴지더군요.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우리는 그들을 '천재' 또는 '사이코'라고 부르죠.) 연쇄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재즈음악을 틀어 놓고, 마취해서 (일반 마취약이 아니라 복독이라고 해서 점차 몸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마취약입니다.) 데려 온 여자들을(이건 꽤 복잡한데, 자신만의 사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럴듯해 보이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궤변으로 여자 일곱 명을 잡아서 죽여야 합니다. 뭔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단순히 옮기는 것도 제게는 무척 벅차네요. 직접 읽어보셔야 압니다.) 죽여서 데스마스크를 뜹니다. 창녀인지, 성녀인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연쇄살인범이 죽인 여자의 질 속에는 메뚜기(정확하게는 아니지만)가 놓여 있고, 재즈음악 '로맨틱한 초상'을 들은 흔적, 암튼 도대체 범인의 살해 동기(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연쇄살인범을 쫒는 이반장과 전형사. 오디오 기기 매니아인 곽원장과 그녀의 애인 박 교수도 연쇄살인범과 엮이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스토리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적 재미가 무척 충만한 추리소설입니다. 연쇄살인범의 궤변도 그리 나쁘지는 않고요. 음악, 종교, 오디오기기, 정신의학, 심리학 등 어려운 내용들이 연쇄살인범을 잡는 추리소설이라는 기둥 줄기에 잘 엮어 들어가면서 더욱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합니다. 앞서 머리말에 작가분이 얘기 했듯이 오디오기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랑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책장을 덮으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결코 잘난 척 하려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그런 지적 궤변은 절대 아닙니다. 암튼 자료 조사도 무척 힘들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무언가에 푹 빠져버린(흔히 매니아라고 부르죠), 그래서 스스로 고독과 외로움을 선택한 (이렇게 작품 하나에 집요하게 빠져서 쓸 이유는 없죠. 자신의 삶이 망가질 수도 있잖아요? 무언가에 대한 집요함을 스스로도 힘드니까요.) 열정 뒤에 숨은 작가의 쓸쓸한 이면이 보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씁쓸하더군요(물론 작가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무엇보다 연쇄살인범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다채로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네요. 책장을 덮은 뒤에도 뇌리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 뒤로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조금만 일찍 왔어도, 조금만 조심했어도, 대체로 공포영화에서 이런 기법을 많이 사용하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모르는데서 오는 그런 안타까움)도 슬그머니 보입니다. 정말 추리(스릴러) 소설의 묘미는 이런 맛이 아닐까 싶어요. 암튼 그런 부분이 무척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암튼 두말하면 잔소리, 이 소설 추천합니다. 물론 (10여 년 전 소설임에도)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방해를 줄 정도는 아닙니다(스스로의 무지를 탓해야죠, 뭐. 이제는 조금 익숙한 용어들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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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2
칼렙 카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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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셜록 홈즈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노년의 홈즈의 삶을 다루고 있다면, 이 번 작품은 현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홈즈와 왓슨의 '유령'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에서는 유령 이야기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다고 하네요. 제 짧은 기억으로도 유령이 등장하는 기이한 이야기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왜? 이번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에서는 이런 유령이 등장하고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을까요? 바로 작가 칼렙 카 때문입니다. 칼렙 카의 추리소설에는 크라이즐러라는 의학적 지식을 갖춘 탐정이 등장합니다. 주로 심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스타일을 홈즈의 이야기와 접목시키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코난 도일의 작품 저작권을 맡고 있는) 욘 렐렌버그의 기획이 잘 맞아 떨어져서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선 작품은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사족이기는 하지만) 욘 렐렌버그의 아이디어처럼 홈즈와 크라이즐러라는 두 명탐정이 함께 등장하는 소설을 더 만나고 싶기는 하네요. 그리고 칼렙 카의 <어둠의 천사>나 <정신과 의사>라는 작품도 무척 읽고 싶고요. 크라이즐러라는 탐정과 그의 파트너 존 슐러 무어의 활약을 보고 싶거든요.

 

에딘버러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서 두 건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비밀임무를 맡고 있는 홈즈의 형의 부탁으로 (여왕 암살 사건의 전조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홈즈와 왓슨은 이 기이한 두 건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으로 향합니다. 300년 전 벌어졌던 <이탈리아인 비서관> 살인사건, 그리고 그 아탈리아인의 유령의 존재, 계속되는 위협, 기존의 홈즈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독한 악당(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개인적으로는 홈즈 시리즈에서 마지막에 무슨 폭포에서 만나는 그 악당이 더 지독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과 잔인한 면에서는 <이탈리아인 비서관>의 악당이 한 수 위네요.)의 등장 등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와 왓슨이 사건을 해결하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좀더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앞에서 언급했던 유령의 존재와 연속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 그 잘난 척 하는 홈즈와 그를 옆에서 열심히 보좌하는 왓슨의 활약은 언제 봐도 즐겁습니다. 불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홈즈와 스스로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보려는 왓슨의 노력 암튼 이런 부분이 홈즈 시리즈가 재미있는 요소죠. 암튼 홈즈 시리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번의 새로운 홈즈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단, 제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조금 시시하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에 악당이 좀 더 끈질기게, 두렵게, 대범하게, 잔인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활약해 주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기존의 홈즈 시리즈처럼 편안하게 결말을 맺네요. 암튼 두 콤비의 활약을 보는 것은 <인디아나 존스>의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리는 것처럼 제게는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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