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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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한 백가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굿바이 투 로맨스>를 포함하여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소설 한편 한편이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내공 팍팍!! 소설 속 등장인물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상황)까지 정말 두렵고, 소름끼칩니다. 물론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분노 폭발!!

 

 

표제작 <조대리의 트렁크>는 다른 8편의 단편소설을 대표하기에 무척이나 좋은 작품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있습니다. 정상/비정상을 굳이 구분하고 싶지는 않은데, 적당한 표현(언어 표현능력 제로)을 찾지 못해 그냥 표시했으니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하 단칸방에 개(멍멍이)의 위협과 위기관리능력(아이의 엄마가 있을 때는 평소에 귀여운 개처럼 행동하다 엄마가 밖에 나가면 아이를 지배합니다.) 저조로 죽어간 네 살배기 어린아이, 사업 실패로 아내를 죽이고 노모를 트렁크 속에 넣어서 저수지에 유기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은 그냥 자살해 버리는 '장영수'라는 인간, 여자 친구들(단수가 아닌 복수)을 구타하고 감금하고 강간해서 찍은 사진을 부모에게 공개하고 비디오카메라로 섹스장면을 찍어서 협박하는 "사랑하면 너는 내 거야"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 더 할까요? 그냥 여기서 그만두죠. 암튼 <조대리의 트렁크> 속 인물들은 모두가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대리(처음에는 회사조직사회의 '대리'라는 직책인 줄 알았는데, 운전 '대리'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직장인의 애환 뭐 이런 것을 다룬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전혀 아닙니다.)는 어찌 보면 9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우리와 가까운 인물입니다. 나이 서른일곱(스물일곱도 아닌 서른일곱!!), 돈 없음, 결혼 못 했음, 이상적인 여자가 자기와 사겨주면 무척 고마울 것이라 생각함, 병든 노모 간호해야 함, 그리고 말도 더듬습니다. 이상적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이런 노총각? 여성분들 결혼하고 싶습니까? 암튼 어찌 보면 비루한 캐릭터인데, <조대리의 트렁크>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인물입니다. 비루하면 어떻습니까? 노모가 병이 들어서 힘들어 하면 어떻습니까? 결혼 못 하면 어떻습니까? 돈 없으면 뭐 어떻습니까? 그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갑니다. 노모를 매일 간호하고, 노모를 걱정하며, 편의방 아가씨에게 잘 보이려고 무게도 잡고, 열심히 대리운전을 하며 먹고 살아갑니다. 형편없다고요? 그래도 그는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고로 '조대리의 트렁크'라는 단편소설은 <조대리의 트렁크>라는 소설집의 표제작으로는 무척 잘 어울린다는 얘기죠.

 

소설 이야기를 해보죠(줄거리는 뭐 온라인서점에 나와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서 읽어보세요^^). 현실과 소설 속 인물, 사건들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지죠.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는 이야기도 대부분은 뉴스에 한번쯤은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이가 굶어 죽은 이야기? 여자 친구 감금하고 비디오카메라로 찍어서 협박한 이야기? 병든 노모를 버린 이야기? 노숙자 할아버지? 10대 가출 청소년의 비행? 거짓 임신을 위해 아이를 훔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나 읽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니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죠. 끔찍한 이야기, 그리고 끔찍한 현실. 거짓 임신으로 아이를 훔친 아줌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16살에 임신해서 이제는 아이가 거추장스럽게 되어버린 20대 초반의 여성이 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방치해서 죽였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늙은 노인(돈도 집도 가족도 없는 노숙자)을 등쳐먹는 10대 불량청소년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게임 피씨방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런데 뭔 놈의 자식은 그렇게도 많이 생산했는지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버리고 도망가는 젊은 부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사실 비난의 대상입니다. 쓰레기, 기생충, X자식 등등. 사실 인간 말종, 인간쓰레기죠. 그런데 결과만 놓고 그네들을 비난하기에는 조금 그렇죠. 암튼 저는 무척 분노했음에도 비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뭐라 말할 수가 없더군요. 현대사회의 비극, 이제는 뭐가 현실이고 소설인지 구분 자체도 모호하고,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옳은 정치인지 지네들 배 불리는 정치인지 정치인들은 한심하고, 대기업 비리는 터지는데 굶어 죽는 가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토막 내고 찢어 죽이고, 사랑한 건지 이용한 건지 섹스동영상을 유포해서 협박하고,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어린 시절부터의 인성교육? 개뿔은 무신 인성교육. 세상은 점점 흉폭해지고 살벌해지고 무서워지는데 약육강식. 어차피 남의 일, 내 상관할 바 아님. 무서우면 죽으라고, 당신 시체나 팔아먹게. 단편소설 '매일 기다려'의 가진 거 없는 노숙자 할아버지는 쓰레기 주우러 갔다가 임자 있는 쓰레기 훔쳤다고 맞고 돌아옵니다. 쓰레기에도 임자가 있는 세상인데, 뭔 놈의 인성교육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고 이해인지. 나 혼자 잘 살면 되는 세상이 바로 자본주의사회 아닌가? 철저하게 자본주의 인간형이 되던지, 아니면 바보처럼 살던지, 그것도 아니면 목매달고 죽던지, 암튼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요놈의 세상은.

 

 

마지막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은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듣죠. 자극적인 내용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쉽고, 또한 그런 소재로 돈을 버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죠. 예전에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1990년대 중반에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역시나 그런 오해(아니면 진실?) 많이 받았죠. <나쁜 영화>나 <거짓말> 등등. 암튼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니 영화 얘기는 그만 줄이고, 암튼 백가흠 씨의 <조대리의 트렁크>도 그런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조금 자극적이고 강도가 쎄거든요. 뭐 섹스인형('섹스돌'이라고 부르나요?)과 섹스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결과만 놓고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받아들이는 거야 독자 개개인마다 다 다르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 소설도 거부감을 갖는 독자 분들이 분명히 있을거에요. 결코 친절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어떤 해답을 작가가 던져 주지도 않습니다. 답답하고 불편하고, 마주치기 싫은 그런 현실, 그래도 (제가 말하고자 하고 싶은 건) 그런 현실이라도 마주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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