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1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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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내 극장에 개봉하여 공포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디센트(The Descent, 2005)>의 동명의 소설이 얼마 전 임프린트 시작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출간되기 전부터 '영화 <디센트>와는 무슨 관계이냐?', '소설과 영화중에서 어떤 작품이 먼저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동굴 탐험이라는 소재만 비슷할 뿐 전혀 성격이 다른 작품입니다. 아마도 제목이 같고 소재가 비슷해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케일도 다르고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영화 <디센트>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Appalachian Mountains)의 고지대 동굴 속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다섯 명의 친구들이 겪는 극한의 공포 심리와 괴생명체와의 사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는 친구들의 나약한 심리를 다룬 반면 소설 《디센트》는 앞의 언급한 영화 <디센트>와는 스케일부터 다릅니다. 우선 작은 동굴이 아닌 전 세계(소설 속에서는 주로 태평양)의 지하동굴(세계)을 다루고 있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도 탐구하며, 과학과 신학, 인류학, 철학 등 온갖 학문들이 거대한 지하세계를 바탕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닌 팩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소설로서 말이죠. 
 

 

폐쇄된 공간에서의 극한 공포와 인간 불신을 다룬 영화 <디센트>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사라를 위해 4명의 친구들이 미국 애팔래치아 산에 있는 동굴 탐험을 계획합니다. 물론 이미 알려진 동굴을 탐험하는 것이었으나 좀 더 스릴있는 모험을 위해 1명의 친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동굴로 친구들을 안내합니다. 그러나 동굴탐험 중 사고로 입구가 막혀 버리고, 구조대를 기대할 수도 없는 그녀들은 출구를 찾아 기나긴 탐험을 시작합니다. 동굴탐험 중 괴생명체를 만나 사투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 사이의 우정은 금이 가고 불신만 쌓이게 됩니다.
 


 

 

 

 

 

 

 

물론 소설 《디센트》에서도 믿음과 배신은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지하 수십 킬로미터의 갇힌 공간, 사방에서는 헤이들(hadal)이라는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노리고 있는, 그곳에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갇힌 공간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괴생명체(?)와의 사투, 인간들의 믿음과 배신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이 내용을 중점적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킨 반면, 소설은 거대한 이야기(지하세계 탐험)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헤이들(hadal)이라 불리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단지 싸워서 죽여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인간의 믿음과 배신보다는 인류의 기원이라는 좀 더 거창한 인류 간의 대립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상세계의 인류(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었겠죠?)와 지하세계의 인류(인류와는 정반대로 진화. 호모 헤이들리스)의 대립, 물론 그 과정은 지배와 침략, 복종 등의 현재까지 되풀이되어 온 식민지 역사가 숨어있겠죠. 지상세계의 인간들이 지하세계를 지배하려는 과정은 아메리카의 식민지 역사와 묘하게 비슷한 면이 많더군요. 그러니까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다릅니다. 
 

 

영화 <디센트>의 스토리는 과감하게 잊어라!!

 

편견과 선입견 없이 사물(작품)을 바라본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 바로 소설 《디센트》가 아닐까 싶네요. 하필이면 공포영화 <디센트>가 개봉된 이후에 동명의 제목으로 소설이 출간되었으니 아무래도 영화와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공포영화입니다. 그런데 (만들어진) 영화 <디센트>는 사실 영상매체에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활자매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요.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목만 같을 뿐 두 작품은 전혀 다릅니다. 소설 《디센트》는 작가의 상상력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반면 영화 <디센트>는 스토리보다는 감독의 연출력과 편집이 뛰어난 작품이고요. 내용은 잔인하게 이야기해서 진부하고 시시합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작품이 동명의 제목과 동굴이라는 소재 하나 때문에 비슷한 작품으로 취급 받는 것은 두 작품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아닐까 싶네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창작품입니다. 영화 <디센트>의 스토리를 기대하고 소설 《디센트》를 읽는다면 저처럼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가 창조한 지하세계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낯선 혼돈의 지하세계로의 초대, 소설 《디센트》

 

서쪽 멕시코의 나스카 시티(갈라파고스제도)에서 동쪽 필리핀 해구까지 태평양 밑바닥으로 이어져 있는 동굴을 탐사하는 헬리오스 주식회사(과학자와 용병단으로 이루어진)의 지하세계 원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그 거리와 수면으로부터의 깊이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깊습니다. 1년에 걸친 원정. 헬리오스는 기업 재벌 쿠퍼가 운영하는 회사로 지하세계의 식민지화를 통한 이윤 추구가 주목적입니다.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도 있겠죠. 과학자들은 미지의 세계 탐험이라는 목적이 있을 테지만, 다른 의도로 참가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회 수사 토마스는 베어울프라는 학회를 조직하여 비밀리에 지하세계를 통치하는 '사탄'의 정체를 추적하고자 앨리라는 여성 언어학자이자 수녀를 침투시킵니다. 암튼 다양한 인간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지하세계 원정대에 참가합니다. 원정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영화 <반지의 제왕>이 생각나더군요. SF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지하세계를 다룬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좀 더 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더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물론 물리시간에 배운 이론으로는 이 역시 뭐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요). 작가의 프로필은 생략하겠습니다. 팩션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경험(아버지는 지질학자였다고 하네요)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세부 묘사에 있어서는 무척 디테일합니다. 또한 작가가 창조한 지하 세계도, 지옥을 방불케 하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두렵고 무섭지만 한 번 가보고는 싶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요? 사실 소설 《디센트》의 장르는 복합적입니다. 미스터리, 호러, SF, 어드벤처, 스릴러 등등. 작가가 창조한 세계도 크고, 온갖 지식들이 한데 어울러져 있어서 설명하기도 사실은 어려워요. 모험소설로서 그 기나긴 지하세계의 모험 여정을 따라가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지하세계를 모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무척 흥미가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언제나 꿈꾸는 로망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둡고 깊은 지하의 끝, 절대악의 심연 속으로의 험난한 여정

 

암흑의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원정대의 이야기와 병행해서 지상세계에서는 베어울프 학회의 사탄 탐구(악의 근원), 인류의 기원에 대한 다각도의 추적이 이루어지고 있어 이야기의 긴장과 이완, 공상과 현실이 조화롭고 균형적입니다. 지하세계 또는 지하세계 존재들(헤이들)과의 사투는 믿을 수 없다가도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된 베어울프 학회의 이론들을 듣다보면 또 그럴 듯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원정대의 심연의 어둠(지하세계 끝) 속으로의 끝없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지치게 되는데, 적절하게 지상세계에서 베어울프 학회의 사탄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서 다루고 있어 가쁜 숨을 고를 수도 있고, 지적 호기심도 충족됩니다. 굉장히 이야기를 영리하게 배치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지하세계 속 탐험만 계속 다루고 있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인류와는 정반대의 진화과정을 거친 이들은 “헤이들(hadal)”, 즉 “호모 헤이들리스”라 불린다. 이들은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세계의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열성 진화를 거듭해온 이들은 칼슘의 증가로 두개골엔 혹이 나 있고, 눈에 생긴 피막으로 약한 빛에도 고통을 호소하며, 심해어처럼 눈부신 백색 피부는 백피증과 피부암으로 뭉크러지고 얼룩이 져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으나 인류의 기원과 함께 지하세계에 공존해왔던 또 다른 존재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원정대와 베어울프 학회 모두인데, 그 중에서도 '아이크'라는 인물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원시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앨리라는 여성과의 러브스토리도 양념으로 들어가 있고요. 절대악이라 불리는 '사탄'이라는 존재에 대한 베어울프 학회의 견해, 지하세계의 문명, 지구의 중심(악의 근원)으로의 기나긴 여정 등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 작가의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된 지하세계 여정에서의 사실적인 묘사도 돋보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호모 헤이들리스(헤이들)라는 인류의 기원, 거대한 지하세계의 문명, 사탄의 존재와 거대 기업의 끔찍한 음모 등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은 정말 기발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고, 인류와 과학에 대한 지적 성찰도 높으며, 공포와 미스터리도 적절하게 가미된 웰메이드 장르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어른들을 위한 모험소설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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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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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다인은 영미권 추리소설 작가 중에서 존 딕슨 카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으로 처음 추리소설에 입문하게 되었지만, 저는 앞의 언급한 두 작가의 작품이 더 좋더군요. 일본 (고전) 추리소설 작가로는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지를 가장 좋아하고요. 개인적으로 정통보다는 이단(異端)을 좋아하고, 정사보다는 야사를 좋아해서인지 애거서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은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더군요(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의 <예고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의 대표작들은 좋아합니다).

반 다인의 추리소설의 매력은 바로 아마추어 탐정 파이로 번스와 뉴욕 지방검사 매컴, 그리고 조금 다혈질의 급한 성격을 가진 히스 형사부장, 번스의 친구이자 화자인 반 다인 이렇게 4명의 캐릭터들이 이루는 환상적이며 유머스러운 앙상블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나 번스와 매컴, 이 둘이 떠드는 것을 보면 정말 배꼽 잡습니다. 매컴 지방검사는 지금 범인의 흔적조차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 죽겠는데, 친구라는 작자(번스)는 시시껄렁한(하게 보이는) 농담이나 하고 있으니. 현학적 취향을 가진 번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참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 사건 자체가 너무나 기이해서 고생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린살인사건>에서도 범인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은 있지만, 결정적인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는) 증거는 없거든요. 살인사건은 연쇄적으로 계속 발생하는데 증거는 없으니, 정말 미치고 답답할 노릇이죠. 증거에 의존해야만 하는 수사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사건을 아마추어 탐정 번스가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이 작품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번스의 현학적인 취미가 궤변으로 여겨질지도 모르는데, 다행스럽게도 사건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기는 합니다.

그린 저택이 등장하는 <그린살인사건>은 여러 추리소설이 떠오릅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가족사가 등장하거든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유명한 <비뚤어진 집>도 생각나고, 요코미조 세이지나 에도가와 란포(<외딴섬 악마>)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암튼 이런 비뚤어진 가족사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언제나 재미있는 것 같아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 격언을 그냥 과감하게 뒤집어 버리거든요. 뭐 살다보면 물이 피보다 진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살해수법은 총살과 독살이 주를 이루는데, 가족들이 서로를 싫어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사건 해결은 더욱 어려움에 빠집니다. 일례로 어머니는 지 자식들이 죽는데 오히려 좋아합니다. 사실 형제들도 별로 관심이 없고요. 증거는 없습니다. 증인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번스의 독특한 심리분석추리가 시작됩니다. 그냥 그린 저택에 거주하는 인간들을 만나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만(물론 심리분석 결과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데 있어 발로 뛰는 수사(?)를 하기는 합니다) 범인을 알아맞힙니다. 사실 이 소설은 '빠뜨린 사실'장에 있는 5페이지 분량의 번스의 사건요약만 있어도 이해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면 소설의 재미는 장담 못합니다. 번스 특유의 현학적인 지껄임이 없으면 이 소설은 정말 재미가 없거든요. 사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와 트릭 자체는 (현 시점에서는) 조금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추리소설에서 너무나 많이 사용한 트릭이라서요). 그러나 번스가 심리분석추리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은 현 시점에서도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존 딕슨 카의 소설과 함께 정말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물론 존 딕슨 카나 반 다인 모두 시시한 작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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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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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미만의 자는 중범죄(살인)를 저지르더라도 처벌하지 않고 보호 및 교화해야 된다는 소년법의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소설로 야쿠마루 가쿠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키피숍을 운영하는 히야마는 4년 전 3인조 강도들에게 아내를 잃습니다. 범인들은 13살 중학생들로 이들은 돈이 필요해서 사람을 죽인 파렴치한이지만 법은 이들을 철저하게 보호합니다(신상 정보 및 수사 정보 등).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죠. 그냥 원한과 분노와 증오를 가슴 속에 죽이며 살아갈 뿐.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과연 소년 범죄자들은 죄를 뉘우칠 것인가? 강력한 처벌이 우선인가? 아니면 교화와 지도가 우선인가? 피해자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들을 그냥 용서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미성년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에 우선하는가? 만약 나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과연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암튼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아픔과 상처, 증오와 분노를 가졌지만 다섯 살의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히야마의 삶을 통해 그런 소년법의 문제점과 모순, 그리고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과 함께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사실 소년법의 문제점과 모순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사건의 내막(보다는 가해자들의 사과와 용서를 받으려는)을 알고자 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무척 평범하면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건 당시 가해자였던 13살의 중학생들이 4년 후 차례대로 살해를 당합니다. 물론 피해자(히야마)의 알리바이는 없습니다. 가장 의심 가는 인물이가는 한데, 소설은 히야마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당연히 서술트릭 그런 것은 아니니 마지막에 '사실은 내가 범인이었어.' 뭐 이런 어이없는 반전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범인이 될 수 없죠. 그렇다면 과연 누가 4년 전 그 사건의 범인들을 죽이는 것일까요? 그리고 뒤이어 드러나는 진실과 거짓들.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 자신은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또한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더군요. 암튼 소설의 후반,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하게(미스터리하게) 전개됩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요코야마 히데오식 휴머니즘 결말까지 좋더군요. 사회문제와 미스터리 서스펜스, 휴머니즘적 감동의 (재미있는 추리소설의)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괜찮은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 또는 본격 미스터리 좋아하시는 분들 모두 만족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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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모형의 밤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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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싫어하는 여자도 있구나. 혼자서 죽는 것도 참지 못하는, 그런 여자도 있구나.

(<싸늘해진 코> 중에서)

상상의 화려함에 비하면 실상은 어차피 퇴색한 현실일 뿐이다.

(<굶주린 귀> 중에서)

여자들은 십만 엔 내면 십만 엔만큼, 백만 엔을 내면 백만 엔만큼의 위안과 안심을 자기 마음속에 사들이는 것이다.

(<뼈 먹는 가락> 중에서)

당신들은 아빠 엄마가 아니야. 악마야. 악마가 두 사람에게 씌여 나한테 더러운 것을 먹이려고 했어. 더러운 시체를 먹이려고 했어.

(<다카코의 위주머니> 중에서)

오늘 밤 나는 무척 간단한 절개 수술을 하기로 했어. 직접 내 미간의 뼈를 절제할 거야. 마취는 하지 않고. 그에 의해서 나는 진정한 천사를 볼 수 있게 되겠지.

(<날개와 성기> 중에서)


사안(邪眼, 사악한 눈), 장님붕장어, 귀신, 유령, 시체, 인면(人面) 종기(큰 부스럼), 피라미드의 원리, 존 레넌의 미 발표곡, 거식증, 강령회, 무성(無性) 등 전혀 연관성 없는 소재들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집니다. IQ 185의 천재 기인 작가답게 이야기는 정말 기괴하고 잔혹하며, 때로는 환상적이고 공포스럽습니다. 당황스럽게도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나카지마 라모의 《인체 모형의 밤》은 인체 기관들이 들려주는 기괴한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수록한 호러단편집입니다. 《인체 모형의 밤》은 ‘어떤 소설이다!’라고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정말 다양한 분위기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장르를 정의하기는 조금 애매한데, 호러소설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호러소설에서 논리를 따지면 재미없습니다. "귀신이 왜 있냐?", "저게 말이 되냐?", "원인은 뭐냐?",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냐?"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호러소설은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원인(동기)과 결과가 중요하지 않고, 현재 눈에 보이는 현실이 중요합니다. 암튼 《인체 모형의 밤》에는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정말 많습니다. 반면, 그 믿지 못할 이야기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가 숨겨져 있습니다(위의 <싸늘해진 코>나 <굶주린 귀>, <뼈 먹는 가락> 문장 참고). 죽어서까지 고독을 싫어하는 여자, 상상 속의 화려함과는 다른 비참한 현실, 그리고 낙태를 한 후 위안과 안심을 삼기 위해 거금을 들려 봉양하는 여자 등 비현실적인 상황임에도 인간들의 행동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가상게임을 하다가 순간 실제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마음 편히 방심할 수가 없더군요.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서의 현실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더욱더 기괴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단편 하나에 다양한 분위기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피라미드의 배꼽>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도인 비슷한 남자가 피라미드의 원리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결코 믿을 수 없는 사기죠. 그런데 듣다 보면 묘하게 끌립니다. 처음에는 비웃다가 나중에는 진지하게 듣고, 마지막에는 뒤통수를 때립니다. '결국 그런 거였어?' 헛웃음이 나오지만 반면 잔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카코의 위주머니>는 홍콩 국민이 개고기를 먹는 뉴스를 본 후 고기를 거부하는 소녀가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도 처음에는 잔잔하게 시작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황당하게 결말을 맺습니다. 이거 진지한 이야기였잖아? '결국 그런 거였어?' 또 속으로 되뇌게 됩니다. <날개와 성기>는 정통호러에 가까우나 마지막에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천사는 꿈에서도 보기 싫어요. <유방>은 가벼운 오컬트로 시작하다 진지하게 끝을 맺고(그래도 당신의 구라를 믿을 수 없습니다), <굶주린 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물론 벽을 통해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인공의 특수한 능력 때문에 관음증적 쾌락도 함께 느끼면서 말이죠).

"온 바다에 녀석들이 멍울지어 너울거리는 모습은 낙원이 아니야. '지옥이야', '지옥'."(<세르피네의 피>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낙원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지옥이고,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자는 정신이상자이며, 천사의 실제 모습은 그토록 혐오하던 자신의 모습이었죠. 결국 인간과 괴물(귀신, 유령), 낙원과 지옥, 현실과 환상, 공포와 쾌락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죠. 두려움이 때로는 희망이 될 수도 있고요. 유(有)의 반대는 무(無)가 아닌 반(反)유인 것처럼. 목적택에 놀러가서 인체 모형의 가슴에 귀를 바싹 대어 보세요. 다른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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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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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 미스터리한 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 정도로 짧게 요약할 수 있는 <네크로폴리스>는 온다 리쿠 판타지의 집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무척 스케일이 큽니다. 대체로 온다 리쿠의 소설이 판타지 성향이 짙기는 한데(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도코노 시리즈가 그렇죠), 이번 작품은 특히 다양한 (판타지) 용어들과 '어나더 힐'이라는 독특한 공간(나라), '히간', '갓치' 등의 독특한 문화들을 창조하고 변형시켜 기존 온다 리쿠의 판타지소설보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 듭니다. 물론 온다 리쿠의 전매특허인 노스탤지어와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살리면서 말이죠. 그러나 소설의 호흡은 무척 길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정체는 조금 싱거우며, 미스터리와 호러/판타지의 장르 혼합은 조금 어지럽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책장을 덮은 뒤에도) 모르겠더군요. 보통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면 아련한 그리움 등이 남는데, 이 소설은 '그래서?'라는 의문이 많이 남더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런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나라 'V.파'(V와 파 사이의 '.'은 왜 넣는지 모르겠더군요. 나라 이름의 무슨 의미가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알 수가 없네요) 도쿄 대학원생 준이 친척의 초대로 방문하게 됩니다(무척 까다로운 나라라 방문이 쉽지 않습니다). 바로 '히간'이라는 축제를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죠. 히간은 '손님'이라 불리는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는 행사로 다른 나라에서는 미신이나 집단 최면 상태 등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축제입니다(축제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축제 자체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거든요. 멀쩡한 모습으로 말이죠). 나름대로 시작은 좋습니다. '피투성이 잭'이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연쇄살인을 저지르거든요. 그러나 여기에서의 살인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손님')가 되살아나 돌아오니까요. 그리고 손님은 거짓말을 못하거든요. "누가 죽였어?" 묻는다면 바로 범인의 정체는 탄로 나게 되죠. 그러니 미치지 않은 이상 살인은 꿈에도 못 꾸는데, '피투성이 잭'이라는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암튼 이야기의 큰 줄기는 연쇄살인범 '피투성이 잭'이라는 범인을 잡는 것입니다.

물론 '피투성이 잭'이라는 범인은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이상하고 신비한 나라에서는 더욱더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히간에 처음 초대받은 대학원생 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국민들이 무척 수다스럽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정열적이며, 시끄럽습니다(개인적으로 이런 잡담 비스 무리한 수다는 재밌더군요). 그러니까 거주하는 주민이나 초대받은 손님이나 모두가 어딘가 모르게 수상합니다. 밀실살인, 시체의 증발, 라인맨이라는 선주민의 정체 등 미스터리한 사건들도 끊이지가 않고, '피투성이 잭'이라는 범인은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균형이 잘 맞는다고 할까요? 문제는 다음부터인데,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인지 조금은 용두사미식 결말로 끝맺는 것 같더군요.

수수께끼는 모두 풀립니다. 그런데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시공간의 초월을 다루는 이야기의 장르는 SF죠? 엄청나게 많은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SF소설식으로 풀어버리다니, 김이 빠지더군요. 심지어 소설 속 등장인물인 하나(준의 친척. 미스터리매니아)는 "그렇다면 너무 시시하잖아"라고까지 말을 합니다. 일부 미스터리한 사건(하나를 예로 들면 밀실트릭)은 시시하고, 일부 미스터리한 사건은 SF 장치가 해결합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한 공간 속에 존재하면, 미스터리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소설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처음 받은 느낌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살인범이 현재로 와서 죽이고 사라지면 완전범죄죠. 절대 범인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암튼 이런 느낌이 무척 많이 들었습니다. SF와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등의 모든 장르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는 힘든 것 같아요.

물론 용두사미식 결말을 조금 아쉽지만, 독특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들이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대화와 갈등은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온다 리쿠가 창조한 'V.파'라는 신비스러운 나라, 동양(일본)과 서양(영국)의 전통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 그리고 'V.파'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스럽고 모호한 분위기, 그리고 온다 리쿠식 세계관 등은 무척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작품은 온다 리쿠 여사가 조금 욕심을 낸 게 아닌가 싶네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은 만큼 몇몇 캐릭터를 등장시킨 연작 형태의 단편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네요(그런데 수다쟁이 여자 하나, 마리코, 린데는 <목요조곡>의 아줌마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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