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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1 ㅣ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2007년 국내 극장에 개봉하여 공포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디센트(The Descent, 2005)>의 동명의 소설이 얼마 전 임프린트 시작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출간되기 전부터 '영화 <디센트>와는 무슨 관계이냐?', '소설과 영화중에서 어떤 작품이 먼저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동굴 탐험이라는 소재만 비슷할 뿐 전혀 성격이 다른 작품입니다. 아마도 제목이 같고 소재가 비슷해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케일도 다르고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영화 <디센트>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Appalachian Mountains)의 고지대 동굴 속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다섯 명의 친구들이 겪는 극한의 공포 심리와 괴생명체와의 사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는 친구들의 나약한 심리를 다룬 반면 소설 《디센트》는 앞의 언급한 영화 <디센트>와는 스케일부터 다릅니다. 우선 작은 동굴이 아닌 전 세계(소설 속에서는 주로 태평양)의 지하동굴(세계)을 다루고 있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도 탐구하며, 과학과 신학, 인류학, 철학 등 온갖 학문들이 거대한 지하세계를 바탕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닌 팩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소설로서 말이죠.
폐쇄된 공간에서의 극한 공포와 인간 불신을 다룬 영화 <디센트>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사라를 위해 4명의 친구들이 미국 애팔래치아 산에 있는 동굴 탐험을 계획합니다. 물론 이미 알려진 동굴을 탐험하는 것이었으나 좀 더 스릴있는 모험을 위해 1명의 친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동굴로 친구들을 안내합니다. 그러나 동굴탐험 중 사고로 입구가 막혀 버리고, 구조대를 기대할 수도 없는 그녀들은 출구를 찾아 기나긴 탐험을 시작합니다. 동굴탐험 중 괴생명체를 만나 사투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 사이의 우정은 금이 가고 불신만 쌓이게 됩니다.


물론 소설 《디센트》에서도 믿음과 배신은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지하 수십 킬로미터의 갇힌 공간, 사방에서는 헤이들(hadal)이라는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노리고 있는, 그곳에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갇힌 공간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괴생명체(?)와의 사투, 인간들의 믿음과 배신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이 내용을 중점적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킨 반면, 소설은 거대한 이야기(지하세계 탐험)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헤이들(hadal)이라 불리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단지 싸워서 죽여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인간의 믿음과 배신보다는 인류의 기원이라는 좀 더 거창한 인류 간의 대립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상세계의 인류(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었겠죠?)와 지하세계의 인류(인류와는 정반대로 진화. 호모 헤이들리스)의 대립, 물론 그 과정은 지배와 침략, 복종 등의 현재까지 되풀이되어 온 식민지 역사가 숨어있겠죠. 지상세계의 인간들이 지하세계를 지배하려는 과정은 아메리카의 식민지 역사와 묘하게 비슷한 면이 많더군요. 그러니까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다릅니다.
영화 <디센트>의 스토리는 과감하게 잊어라!!
편견과 선입견 없이 사물(작품)을 바라본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 바로 소설 《디센트》가 아닐까 싶네요. 하필이면 공포영화 <디센트>가 개봉된 이후에 동명의 제목으로 소설이 출간되었으니 아무래도 영화와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공포영화입니다. 그런데 (만들어진) 영화 <디센트>는 사실 영상매체에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활자매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요.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목만 같을 뿐 두 작품은 전혀 다릅니다. 소설 《디센트》는 작가의 상상력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반면 영화 <디센트>는 스토리보다는 감독의 연출력과 편집이 뛰어난 작품이고요. 내용은 잔인하게 이야기해서 진부하고 시시합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작품이 동명의 제목과 동굴이라는 소재 하나 때문에 비슷한 작품으로 취급 받는 것은 두 작품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아닐까 싶네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설 《디센트》와 영화 <디센트>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창작품입니다. 영화 <디센트>의 스토리를 기대하고 소설 《디센트》를 읽는다면 저처럼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가 창조한 지하세계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낯선 혼돈의 지하세계로의 초대, 소설 《디센트》
서쪽 멕시코의 나스카 시티(갈라파고스제도)에서 동쪽 필리핀 해구까지 태평양 밑바닥으로 이어져 있는 동굴을 탐사하는 헬리오스 주식회사(과학자와 용병단으로 이루어진)의 지하세계 원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그 거리와 수면으로부터의 깊이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깊습니다. 1년에 걸친 원정. 헬리오스는 기업 재벌 쿠퍼가 운영하는 회사로 지하세계의 식민지화를 통한 이윤 추구가 주목적입니다.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도 있겠죠. 과학자들은 미지의 세계 탐험이라는 목적이 있을 테지만, 다른 의도로 참가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회 수사 토마스는 베어울프라는 학회를 조직하여 비밀리에 지하세계를 통치하는 '사탄'의 정체를 추적하고자 앨리라는 여성 언어학자이자 수녀를 침투시킵니다. 암튼 다양한 인간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지하세계 원정대에 참가합니다. 원정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영화 <반지의 제왕>이 생각나더군요. SF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지하세계를 다룬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좀 더 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더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물론 물리시간에 배운 이론으로는 이 역시 뭐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요). 작가의 프로필은 생략하겠습니다. 팩션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경험(아버지는 지질학자였다고 하네요)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세부 묘사에 있어서는 무척 디테일합니다. 또한 작가가 창조한 지하 세계도, 지옥을 방불케 하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두렵고 무섭지만 한 번 가보고는 싶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요? 사실 소설 《디센트》의 장르는 복합적입니다. 미스터리, 호러, SF, 어드벤처, 스릴러 등등. 작가가 창조한 세계도 크고, 온갖 지식들이 한데 어울러져 있어서 설명하기도 사실은 어려워요. 모험소설로서 그 기나긴 지하세계의 모험 여정을 따라가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지하세계를 모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무척 흥미가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언제나 꿈꾸는 로망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둡고 깊은 지하의 끝, 절대악의 심연 속으로의 험난한 여정
암흑의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원정대의 이야기와 병행해서 지상세계에서는 베어울프 학회의 사탄 탐구(악의 근원), 인류의 기원에 대한 다각도의 추적이 이루어지고 있어 이야기의 긴장과 이완, 공상과 현실이 조화롭고 균형적입니다. 지하세계 또는 지하세계 존재들(헤이들)과의 사투는 믿을 수 없다가도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된 베어울프 학회의 이론들을 듣다보면 또 그럴 듯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원정대의 심연의 어둠(지하세계 끝) 속으로의 끝없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지치게 되는데, 적절하게 지상세계에서 베어울프 학회의 사탄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서 다루고 있어 가쁜 숨을 고를 수도 있고, 지적 호기심도 충족됩니다. 굉장히 이야기를 영리하게 배치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지하세계 속 탐험만 계속 다루고 있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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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인류와는 정반대의 진화과정을 거친 이들은 “헤이들(hadal)”, 즉 “호모 헤이들리스”라 불린다. 이들은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세계의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열성 진화를 거듭해온 이들은 칼슘의 증가로 두개골엔 혹이 나 있고, 눈에 생긴 피막으로 약한 빛에도 고통을 호소하며, 심해어처럼 눈부신 백색 피부는 백피증과 피부암으로 뭉크러지고 얼룩이 져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으나 인류의 기원과 함께 지하세계에 공존해왔던 또 다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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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은 원정대와 베어울프 학회 모두인데, 그 중에서도 '아이크'라는 인물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원시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앨리라는 여성과의 러브스토리도 양념으로 들어가 있고요. 절대악이라 불리는 '사탄'이라는 존재에 대한 베어울프 학회의 견해, 지하세계의 문명, 지구의 중심(악의 근원)으로의 기나긴 여정 등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 작가의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된 지하세계 여정에서의 사실적인 묘사도 돋보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호모 헤이들리스(헤이들)라는 인류의 기원, 거대한 지하세계의 문명, 사탄의 존재와 거대 기업의 끔찍한 음모 등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은 정말 기발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고, 인류와 과학에 대한 지적 성찰도 높으며, 공포와 미스터리도 적절하게 가미된 웰메이드 장르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어른들을 위한 모험소설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