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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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한 (몰락한 가문의) 츠바키 자작이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라는 플루트 곡을 부르면서 유령처럼 유유히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한 집 안에 살고 있는 츠바키 가문, 신구 가문, 다마무시 가문 모두 아무리 유령이라고 해도 가족인데 두려워한다면 무슨 이유가 있겠죠?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번에도 일가족에 숨어 있는 두렵고 무시무시한 광기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제1살인. 70세 전후의 노인 주제에 20세 전후의 첩을 데리고 사는, 허울뿐인 귀족의 허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다마무시 백작. 제1살인은 밀실 살인입니다. 이 일족은 가끔 분신사바 비슷한 모래점이라는 행사를 갖는데,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화염북)이 작품의 기괴한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밀실 살인이라고 해도 트릭을 해체하고 나면 무척 단순한 원리에 불과한 그런 트릭이 있는데, 이번 작품이 그렇습니다. 기괴한 분위기 조성에는 무척 공을 들였으나 트릭 자체에는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더군요. 밀실 살인의 트릭이 공개되었을 때 조금 허무했습니다. 과학 원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아니라면 추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척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인간관계나 심리에 초점을 둔) 그런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 좋아하는 시체 전시 장면이 없어서 아쉽더군요. 시체는 죽은 상태 그대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살인의 미학이 없다고 할까요? 《팔묘촌》이나 《이누가미 일족》에서의 그 멋들어진 시체 전시가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도 없더군요. 그 점이 조금 아쉬웠네요.

  반면 이번 작품은 광적인 면에서는 극을 향해 달려가더군요. 소름이 돋고 전율이 올 정도로 정말 충격적입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충격의 연속이더군요. 사실 너무 많이 나가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추리소설에서의 이런 설정을 조금 비겁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인간의 추잡함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광적인 모습 등에 대한 묘사는 역시나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인간들의 광기나 사악함, 추잡함에 대해 추리소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요코미조 세이시만큼 잘 다루는 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에 소개되었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보다는 확실히 공포소설에 가까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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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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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격 미스터리 중에서 꼭 추천을 한다면 바로 이 「가가 형사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네요. 가가 형사의 대학시절 활약을 그린 『졸업』을 시작으로 베테랑 형사로서의 활약을 그린 『붉은 손가락』까지 정말 버릴만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네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내가 그를 죽였다』는 특히나 (이 시리즈 중에서도 유독) 퍼즐 미스터리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400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10페이지 내로 압축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인간관계나 인간 심리, 내용의 깊이 등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용도 충분히 있습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애정이나 치정을 그리고는 있지만 사건의 동기가 단순히 게임적인 요소를 위한 억지 설정은 아닙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능 동기입니다. 물론 내용이 깊지는 않습니다(추리소설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조금 통속적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고요. 몇몇 분들은 어떤 설정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 암튼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작 (자꾸 비교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두 작품의 성격이 무척 비슷합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보다는 추리하기가 조금 수월했습니다(범인 용의자가 늘어났음에 불구하고).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추리 안내서를 읽어도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이번 작품은 가가 형사의 마지막 힌트를 듣고 앞의 사건들을 다시 되짚어보니 대충 범인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추리 안내서를 읽고 확실해졌고요. 사실 이번 작품의 트릭은 다른 작품을 통해서 익히 보아오던 것이라 추리하기가 조금 쉬웠는지도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용의자 세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유리한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겠지요. 그러니까 무척 중요한 힌트인데, 그렇지 않은 듯 술렁술렁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몇몇 중요한 부분은 기록을 하면서 읽었는데, 그 점이 사건 추리에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네요(『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어떤 스타일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그냥 가볍게 읽었거든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확실히 추리소설 잘 쓰는 작가 같아요. 기존에도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가가 형사 시리즈를 읽고 그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정말 독자들이 좋아할 만 한 포인트를 콕 집어내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풀어 쓰는 것 같아요. 확실히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점은 가가 형사가 등장하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도 마찬가지로) 용의자들이 중심으로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범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그러면서 (독자들은 셋 중 누군가의 입장에서)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또한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도 밝혀야 되죠. 암튼 이런 식의 구성 재미있어요. 과연 나는(내가 선택한) 범인일까? 그렇지 않다면 증거는? 범인에게 속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범인을 잡을 수는 있을까? 추리소설의 원초적인 재미를 정말 잘 살린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유쾌한 추리극,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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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7-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가 형사 시리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에 [둘 중 누군가~]는 어떤 형식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꽤 충격적이었어요.^^ 이 책은 앞에 [둘 중 누군가~]를 읽어서 덜 충격적이었지만요. 뒤에 3명의 용의자가 서로 대화하는 부분도 꽤 재미있지요.
 
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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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반전에 이르는 마지막 한 문장의 충격"

  마지막 한 단어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그런데 사실 그 단어 너무 귀엽습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앙증맞더군요), 사실 충격적인 반전을 담고 있는 마지막 장이 없더라도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문』은 충분히 재미있고, 또 내용이 알찬 소설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장 때문에 사이코 서스펜스로서의 장르적인 완성도와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물론 깜짝 반전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는 있습니다. 바둑에서 복기하듯이 내용 복기하는 것을 무지 귀찮아하는 저도 다시 앞부분을 확인했을 정도이니 제 역할은 확실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스터리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작가가 숟가락으로 밥을 먹여주는 그런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합니다. 삶이 고달프거든요. 미스터리소설 읽는데 머리 쓰는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이코 서스펜스 소설로 충분히 흥미로운데 마지막의 진범과 그것을 뒤집는 반전은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는 유머 미스터리라고 해야 할까요? 암튼 소소한 웃음을 주는 그런 소설을 많이 발표했습니다(물론 제가 그런 소설만 읽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특히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와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더군요). 『소문』은 제목 그대로 여기저기 근거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두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사이코 서스펜스 미스터리소설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읽은 기존의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물론 유머가 없으면 오기와라 히로시가 아니죠. 고구레 형사와 시부야 여고생들의 대화라든지 고구레 형사와 딸의 썰렁한 유머 대결(?), 메구로 경찰서의 고구레 형사와 경시청의 나지마(고구레보다 계급이 높습니다. 미모의 여형사이기도 하고요) 수사관 커플의 행동이나 대화 등은 웃깁니다. 반면 사이코 살인마의 광기나 악의적인 소문의 근거지인 광고기획사 컴사이트의 여사장 쓰에무라의 독기는 정말 무섭습니다(이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도 괜찮을 정도로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혼자 "죽어. 죽어. 죽어……." 외쳐 되는 부분에서는 정말 소름 돋더군요. 암튼 소소한 유머와 날카로운 서스펜스, 미스터리적인 재미까지 3박자를 골고루 갖춘 작품입니다(그러니까 부담 없이 주변에 추천하기 좋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실제로도 『소문』은 판매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경찰 세계에 대한 묘사, 시부야 여고생들의 생활 모습 등도 잘 드러나 있어 읽는 재미를 주고요. 무엇보다 악의적인 소문이 유포되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소문이 사회에 미치게 되는 영향 등을 나름대로 지켜보고 유추하는 과정도 재미있고요. 무엇보다 진범은 누구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사고로 추리해보세요. 물론 진범은 있습니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 정도면 미스터리소설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기에 좋습니다. 오랜만에 읽는 재미에 충실한 작품을 만났네요. 오기와라 히로시 확실히 괜찮은 작가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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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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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사립탐정 사와자키가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의 유괴 사건 의뢰를 맡습니다. 아니 의뢰를 맡기보다는 범인들에게 이용을 당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전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서 사와자키를 처음 알게 된 후 '이 아저씨는 알면 알수록 참 궁금해지는 것아.'라고 생각하던 차에 만나게 된 작품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알코올 중독 방랑자 아타나베나 신주쿠 경찰서의 경부 니시고리도 무척 반가웠고요. 사와자키와 아타나베, 사와자키와 니시고리의 관계는 무척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애정과 증오, 그 이상의 뭔가 친밀한 관계가 작품의 우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맛도 있는 것 같고요. 암튼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우울한, 그러나 결코 쉽게 좌절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아저씨들에 모습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와자키 사립탐정의 모습만 봐도, '이 아저씨는 도대체 삶의 낙이 뭘까?'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사무실과 집, 술집 그리고 말썽이 잦은 자가용 블루버드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그럼에도 결코 형사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싸가지가 없을 정도로 놀리기도 하고, 대들기도 합니다. 살아가기 위한 자학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니컬합니다.

"인간이 하는 짓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모두 잘못이지만 적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는 노력은 해야겠죠."(p.458)

  소녀 유괴 사건의 돈을 나르는 역할을 맡게 된 사와자키 탐정은 자신의 실수(?)로 유괴금을 전달도 하지 못한 채, 심지어 소녀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죄책감은 아닌 씁쓸함. 사와자키는 유괴되어 죽은 소녀의 외삼촌(가이 마사요시, 음악대학 교수)으로부터 사건 의뢰를 맡습니다. 바로 가이의 아들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 것. 사실 플롯은 무척 단순합니다. 뭐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작품에 흐르는 분위기를 느끼면서 즐기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죠. 소녀 유괴의 범인을 찾는 것, 단순 명쾌합니다. 범인은 무척 지능적입니다. 형사도 사와자키 탐정도 사건의 중심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겉에서 맴돕니다. 경찰이나 사와자키나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다가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는 사건, 이번 작품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매력뿐만 아니라 유괴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하는 추리적인 재미도 상당한 편입니다. 드러나는 진실도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고요. 전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가 가독성에서 조금 떨어졌던 반면, 이번 작품은 가독성도 무척 좋더군요. 쉽게 잘 읽힙니다. 그리고 설정 자체도 미스터리 스릴러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설정이고요. 범인을 잡아야 하는 탐정이 사건을 수사할수록 점점 범인으로 몰립니다. 대부분의 조건들이 사와자키 범인설을 뒷받침하거든요(고전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출간 년도를 감안하면 이런 설정 나쁘지 않죠). 그리고 캐릭터의 행동들에 대한 소소한 설정(개인적으로 와타나베가 보내는 종이비행기가 무척 좋습니다)도 진한 여운을 남겨, 캐릭터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와자키의 다음 활약도 역시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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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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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의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곱 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단편 모음집으로 충격적인 반전보다는 일생생활 속에서의 소소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습니다. 낯선 여자가 내 침대에서 자고 있거나 모르는 사람이 친구라고 하며 편지를 보내지 않나 암튼 굉장히 일상적이면서도 황당합니다. 따라서 진실을 알고 나면 그 비밀이라는 것이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닌 무척 사소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별 얘기 아닐 수도 있는 사건들을 이렇게 비일상적인 것으로 바꾸어 미스터리하게 만들어 버리는 재주는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특기이자 장기가 아닐까 싶네요. 관찰력과 상상력이 정말 좋은 작가 같아요. 이번 단편집은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관계를 파헤치면서도 적절하게 비밀이나 반전도 숨어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반전의 충격이나 사회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그런 작품들이 아닌 가볍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본격 추리물과 사회파 추리물의 중간 지점, 드라마가 강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가벼운 미스터리 소품집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1994년에 발표)으로 지금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원형인 작품들이 많아서 비교하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자고 있던 여자>는 얼굴도 못생기고 친구도 없는 남자가 회사 남자동료들에게 5천 엔에 방을 빌려줍니다.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화요일은 A, 수요일은 B, 목요일은 C하는 식으로 말이죠(물론 그런 날은 불쌍하게도 자동차에서 잠을 잡니다. 돈을 벌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애인 하나 없어 자동차에서 자는 것을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암튼 그렇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연히 옷을 갈아 입으로(계약 기간은 아침 6시까지입니다) 아침에 집으로 왔는데, 웬 모르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A, B, C는 물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여자가 침대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서 사타구니 부분에 정액도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술이 취해서 누구랑 잤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열쇠도 없이 어떻게 들어 온 것일까요? 그 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재미있고 황당하고 충격적인 그런 이야기를 말이죠. 당연히 비밀과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판정 콜을 다시 한 번!> 역시 재기 넘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구성면에 있어서는 <달콤해야 하는데>와 묶어서 설명할 수 있겠네요. 사실 트릭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 두 작품은 설명하기가 조금 그러네요. 과거의 어두운 기억,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켰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증오, 그런 증오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과 허무감. 개인적으로 마지막의 여운이 인상 깊었던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현재의 미스터리 장편소설에 가장 영향을 미친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죽으면 일도 못해>는 일본의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는 문화를 블랙코미디 식으로 비튼 작품입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웃깁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물론 좋죠. 그런데 그런 자신의 성실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웃지 못 할 해프닝 뒤에 씁쓸함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사실 독자 스스로 추리하기에는 조금 어렵습니다. 상황의 아이러니를 블랙유머와 미스터리로 풀어낸 점이 독특하고 좋았습니다.

<등대에서> 역시 결말이 무척 돋보이는 작품인데, 인간의 나약하지만 잔인한 면을 극대화시킨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분노와 적개심, 증오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잔인한 장난을 다룬 작품입니다. 관계의 역전,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의 허울을 파헤친 작품으로 역시나 재미있습니다.

<결혼 보고>는 <죽으면 일도 못해>와 상황 설정 부분에서 비슷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이 비슷하다고 할까요? 사건의 우연성을 내세운 작품으로 추리 과정 자체보다는 마지막에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주는 황당함이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코스타리카의 비는 차갑다>는 미스터리는 조금 약하고, 정석대로의 추리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밋밋했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작가 지인이 체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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