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이코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5
브렛 이스턴 엘리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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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원작소설이 뒤늦게 국내에 출간이 되었습니다. 영화도 엄청난 문제작으로 알고 있는데, 원작소설은 더 심한 것 같네요(소설에 비하면 영화는 많이 얌전한 편이라고 하네요. 미국에서도 출간 당시 무지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국내에 출간된 것 자체가 그저 신기할 뿐. 잔인한 묘사뿐만 아니라 쉽게 읽히는 소설도 아니거든요).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는 1991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혐오스러운 내용들이 정말 많네요(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됨). 특히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묘사가 많아서(예를 들면, 여성의 자궁에 관을 삽입하고 달콤한 치즈를 넣어서 거대한 쥐를 집어넣는 장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여성들은 특히 혐오감을 많이 느낄 것 같네요. 그러나 이런 묘사는 극히 적습니다. 강도가 조금 세서 그렇지, 그런 장면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도 (상)권 중간이 넘어서야 나옵니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상 P&P의 CEO 팻 베이트먼의 일상생활을 1인칭의 시점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사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부유한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음식점과 술집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신분열증에 강박증과 편집증까지 있어 보이는 제목 그대로 아메리칸 사이코 팻 베이트먼의 시점으로 묘사가 되니 읽는 독자까지 미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 몰립니다. 근래에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편두통에 시달린 적도 처음이네요. 머리가 정말 아팠습니다. 팻 베이트먼은 사람의 내면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옷과 신발, 장신구, 차, 명함, 시계, 가방, 신용카드 등으로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을 평가합니다. 물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돈 많은 집 자식들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명품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친구들이 하고 있는 명품에 대한 묘사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매일 패션이 바뀌니 당연하죠). 주인공은 매일 사람을 만납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묘사가 엄청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도 있는데, 거의 음악평론가 수준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엄청납니다.

"여자는 양모 재킷에 실크 블라우스와 양모 플란넬 바지를 입었는데 모두 아르마니 제품이고 석류석 귀고리에 장갑을 낀 채 손에는 물통을 들었다. 남자는 트위드 스포츠 재킷, 캐시미어 스웨터 조끼, 면 샴브레 셔츠에 넥타이까지 전부 폴 스튜어트 제품으로 빼입고, 아네스 베 면 소재 트렌치코트를 팔에 걸쳤다." (<아메리칸 사이코>(하) p.349)

그렇다면 과연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미친 주인공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독자들도 미치라고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혐오감을 느끼라고 하는 것일까요? 구토를 유발하려는 악의를 가지고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한 것일까요? 아마 이 소설을 조금 읽다가 짜증과 혐오감에 책을 집어던진 분들도 굉장히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정신분열증에 강박증과 편집증,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인 연쇄살인마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마디로 “미친x”하고 무시하고 싶은 심정이죠. 동정은 당연히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xx”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은 또 들지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앞으로도 저렇게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게 살다가 뒤지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그저 들뿐. 돈 많고, 지위도 있으며, 몸짱 모델들과 데이트도 자주 하는 등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인생을 사는 한 사이코 정신분열증 환자의 불안한 내면 심리를 탐험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기는 하네요. 그런 불안한 심리 묘사는 정말 읽는 독자가 짜증날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조금 더 나가면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팻 베이트먼은 인간을 하나의 물질로 평가를 합니다. 그런 묘사들이 정말 징그럽게 나옵니다)이나 인간관계의 공허함(주인공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이상합니다. 감정이 없다고 할까요? 전혀 인간미가 없습니다. 마치 기계 같더군요) 등도 읽히기도 합니다.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고, 연쇄살인범과 형사(카메오도 아니고)가 등장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공포소설이나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소설이기는 하지만 쉽게 시작하기에는 조금 독한 마음이 필요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덧.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평이 몹시 궁금하더군요. 평이 상당히 엇갈리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작임에는 확실합니다. 읽기 몹시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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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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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모치 아사미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도서 미스터리소설로 범인은 바로 후시미입니다.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 여섯 명(+멤버의 여동생 한 명)이 고급 펜션에 모입니다. 이 작품에서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시간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인 후시미가 동아리 멤버들을 얼마나 잘 속이고 설득하느냐? 그리고 멤버들은 후시미의 설득에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느냐?(서로간의 줄다리기가 얼마나 팽팽한가?) 친한 사람들을 속이기는 무척 어렵죠. 사람을 죽인 후에 말투나 행동은 평소의 말투나 행동과 많이 다르니까요.

  그렇다면 무척 긴장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사실 그런 긴장감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후시미가 너무 영리하게 멤버들을 잘 속였다. 둘째, 멤버들이 조금 멍청해서 후시미의 말에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갔다. 만약, 둘째의 경우라면 이 작품은 졸작이죠. 알고 보니 멤버들이 멍청했다?(만약 그렇다면 정말 무책임한 작품이죠. 물론 이 경우는 잘 피해갑니다. 유카라는 캐릭터에 의해서.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후시미는 친구들을 잘 속였다. 개인적으로는 70% 정도의 설득력은 있었습니다. 물론 후시미의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추리하는 레이코의 여동생 유카가 있기는 하지만, 설득력이 조금 약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후시미의 설득에 힘을 실어주는 환경 때문에 후시미의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습니다. 바로 멤버 안도의 형이 운영하는 고급 펜션의 특수성. 고급 펜션의 특수성이 바로 후시미가 이 장소에서 살인을 실행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죠(방문을 부술 수는 없다, 그리고 보조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 도어 스토퍼를 사용하고 있다, 창문에는 경보장치가 달려 있다 등등).

  여기까지는 사실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멤버들 사이에 보이지는 않는 심리전도 나름 괜찮고요. 물론 주로 후시미와 유카의 심리전이기는 하지만요. 밀실살인 트릭은 조금 평범하기는 하지만, 밀실트릭이 그렇게 중요한 추리소설도 아니고요. 후시미의 완전 범죄는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왜 후미시는 사건 장소를 밀실로 만들면서까지 멤버들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문은 계속 닫혀있어야 합니다. 왜? 바로 후시미의 살인 동기 부분인데, 동기에 대해서는 유독 말이 많은 작품이죠. 살인의 동기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죠(그런데 이 작품 전체에서는 이 동기가 무척 중요합니다. 바로 그 동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후시미의 살인 동기는 그 동기가 밝혀지기까지의 긴장감과 스릴에 비해서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충분히 납득하기 힘든 동기이기도 하고요.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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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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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첫 소설 데뷔작. 1996년 <ISOLA>로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에 선정. 가작의 아쉬움도 잠시 다음 해에 <검은 집>으로 당당하게 대상을 수상합니다. 사실 기시 유스케의 <13번째 인격 - ISOLA>라는 작품은 기시 유스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무척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 프로필에서는 매번 보는 작품임에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을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 장르는 호러소설입니다. 워낙 다양한 장르에 재능이 많은 작가이지만 역시나 기시 유스케하면 호러장르가 최고인 것 같아요.

<13번째 인격 - ISOLA>에는 1995년 6,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한신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으로 인해 괴물 같은 ISOLA라는 인격이 탄생합니다. ‘엠파시’라 불리는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을 가진 유카리는 한신대지진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하다 우연히 이 괴물 같은 인격체 ISOLA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고등학생 소녀 치히로의 열 세 번째 인격체인거죠. 이제 다중 인격(해리성 장애)은 의학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죠.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요. 보통은 5개 정도만 되어도 무척 많은 인격인데, 13개의 인격이라니 우선 놀라우면서도 믿기 힘듭니다. 그런데 임사체험에다 유체일탈까지 등장합니다. 이거 완전 허구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전 허구의 이야기에서는 (공포소설임에도) 무서움을 느끼기 힘들죠. 비현실적인 상상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죠? 기시 유스케는 치밀한 자료 조사로 유명한 작가죠. 아직까지 임사체험이나 유체일탈은 의학적으로 검증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럴 듯합니다. 의약품을 이용한 유체이탈 과정이 나오는데, 과학적/의학적 지식이 무지해서 그런지 그럴 듯하게 보이더군요. 물론 유체가 이탈을 해서 다른 사람의 인격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상상력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ISOLA가 유체를 이탈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과 유카리 일행이 그 ISOLA를 찾기 위해 어두컴컴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정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한신대지진이라는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괴물 같은 인격체 ISOLA의 원한과 증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냅니다. 왜 한신대지진일까? 한신대지진으로 인해서 ISOLA라는 인격체가 탄생을 하게 됩니다. 탄생의 토양이 바로 한신대지진이라는 악몽이죠. 왜? 고등학생 소녀 치히로는 열 세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을까? 그 이면에는 어떤 상처와 고통이 있을까? 그리고 ISOLA라는 인격체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증오와 복수심을 갖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엠파시)을 가진 주인공 유카리는 왜 그렇게 치히로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신대지진은 인간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재앙이었지만, 유카리, 치히로, ISOLA는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 낸 괴물(물론 나쁜 의미에서의 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은 인간들에 의해서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습니다. 상처 입고 고통 받은 인간들의 영혼을 감싸 안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 작품이 국내에 조금 뒤늦게 소개가 되었지 않나 싶네요. 20세기에 소개가 되었더라면 더 큰 방향을 일으켰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네요(요즘에는 다중인격이라는 소재가 반전의 도구로 너무 전락해서 선입견에 싫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역시나 재미있습니다. 사족으로 <검은 집>에 비해 심리적 압박이나 공포 분위기 조성은 조금 덜 합니다. 뭐 워낙 <검은 집>이 호러장르에서는 뛰어난 작품이기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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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4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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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사리(鬼思里)에서의 악귀와의 싸움이 워밍업에 불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놈들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넘어왔습니다. 《귀신전1》, 《귀신전2》, 《귀신전3》이 각 퇴마사들의 캐릭터 소개, 그리고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의 원한과 증오, 그로 인한 퇴마사들의 귀신 퇴치 활약들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퇴마사와 귀신들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편의 이야기들이 인간과 귀신들의 '악의'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가타부타 설명은 생략하고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집니다. 바로 처절한 살육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 중음.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막강의 강, 레테의 강.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저승에 사는 악귀들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 중음의 세계가 점점 확장되면서 저승에 있는 악귀들이 이승으로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검은 안개(죽음의 그림자)를 동반하고서 말이죠. 전편에서는 악귀로서 ‘귀호’와 ‘사령자’ 정도만 등장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까만 눈구멍(자귀)과 살매(실체가 없는 영적인 존재, 악귀들의 우두머리, 환술을 부림)까지 등장을 합니다. 초반 자귀가 경찰특공대를 처절하게 살육하는 장면은 공포와 액션 쾌감을 모두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그리고 살매가 환술을 부려 퇴마사들의 기억 속을 헤집는 장면(퇴마사들이 살매의 눈동자에 갇혀 버립니다. 보기 싫은 기억과 마주쳐야 하는 극한 상황)도 환상적인 공포를 선사하고요. 그리고 사령자가 등장합니다. 인간의 영혼을 빨아먹는 지독한 악귀죠. 그리고 점점 중음과 이승의 세계가 흐려지면서 귀신들이 설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귀신들이 사령자와 힘을 합쳐 인간들의 영혼을 빨아먹고 몸을 지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고 싶은 욕망, 인간 세계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은 욕망,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런 욕망, 때로는 강한 증오로 인하여 귀신들은 점점 더 악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돈이나 죽음, 배신 등등 워낙 많겠지만, 특정 대상물에 한해서 꼽자면 저는 당연 귀신을 뽑겠습니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귀신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제는 점점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귀신이라는 두려움의 존재를 《귀신전4》는 보기 좋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놓습니다. 단순히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인간을 놀래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말이죠. 우선 퇴마사들의 캐릭터 구성이 우선 좋습니다. 생활형 퇴마사부터 미모의 사이코메트리까지 살아 숨쉬는 캐릭터가 친근합니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싸우는 모험도 즐겁고요. 그리고 모험과 전쟁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간과 귀신들의 숨은 악의도 작품의 무게감을 더해줍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퇴마사와 귀신의 본격적인 전쟁 중간 중간에 끼어드는 퇴마사들의 회상신은 작품의 몰입도와 재미를 조금 반감시킵니다. 그리고 전편에 인간과 귀신의 악의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줄었다는 것(물론 숙희는 열심히 악의를 뿜어 되기는 하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그런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악귀와의 본격적인 전쟁으로 넘어가는데 따른 당혹스러움도 있지만,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사실 귀신과 퇴마사가 싸우는 이야기는 얼핏 잘못 묘사하면 굉장히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런 유치함을 보기 좋게 비껴갑니다. 더운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는 딱 좋은 공포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진지한 듯 하면서 가볍고, 무서운 듯 하면서 웃기는, 재미와 유머, 공포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 가볍게 읽기에 좋은 공포소설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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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4
이종호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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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죽어줄게. 이제 만족해?"

<배심원> 중에서


검은색의 귀여운 고양이가 '야옹' 하면서 공포소설 독자 분들을 어둠의 세계로 초대를 하고 있네요. 표지가 귀엽다고요? 귀여운 야옹이 표지에 절대 속지 마세요. 이번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에 실린 단편들 섬뜩합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상당히 잔인하고 소름 돋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공포소설의 묘미를 정말 제대로 살린, 그리고 제대로 뽑아낸 명불허전의 단편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1-2편 정도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거나 (제) 취향에 안 맞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번 단편선에서는 10편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좀비,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장르와의 혼용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정통 호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단편선에서는 사회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이 많더군요. 장은호의 <첫 출근>에서는 거대 조직 사회의 익명성이 가져 오는 폐해, 황태환의 <폭주>에서는 혼란 상태에서의 집단 폭력, 김종일의 <도둑놈의 갈고리>에서는 몰카, 김유라의 <배심원>에서는 인터넷 마녀 사냥, 전건우의 <배수관은 알고 있다>에서는 기러기 아빠 등 현대 한국 사회의 사회적인 문제들에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댑니다. 꽤 깊숙이 말이죠. 즐겁습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에서의 충격 효과를 제외한다면, 이번 단편선이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가장 훌륭하지 않을까 싶어요.

<첫 출근>SF 공포 스릴러로 미래 조직 사회 시스템에 이용당하는 개개인의 희생과 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화로 모든 명령을 전달하는 사회로 "왜?"가 절대 용납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합니다. 마치 한 편의 SF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몰입감이 상당히 높습니다. 긴장감도 훌륭하고요. 미래 조직 사회의 전화 명령 시스템은 사실 까뒤집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회사 조직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작은 기계의 부품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옳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돈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전화를 통해 움직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다양한 명령들을 보노라면 정말 소름 돋습니다. 개인적인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아 있는 명령들.

<도둑놈의 갈고리>는 김종일 씨의 작품입니다. 이제는 검증된 국내 대표적인 공포소설 작가죠. 사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읽었습니다. <도둑놈의 갈고리>는 몰카를 다룬 작품입니다. 몰카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여성 연예인들 정말 많죠. 사실 조금 뜨끔했습니다. 그런 몰카가 이슈화되고, 한 개인을 매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침묵한 채 조용히 몰카를 훔쳐보았던 대다수의 네티즌들이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무척 사실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여자를 꼬시고, 그 여자를 이용하고, 놀이의 대상으로 삼으며, 마음에 안 들면 짓이기고, 꺾어 버리는 인간의 잔인성이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익명성 뒤에 숨은 다수의 폭력을 피해자 입장에서 정말 처절하게 그리고 있어 굉장히 죄책감을 느낀 소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관계의 역전도 좋았고요. 공포소설의 묘미는 바로 이런 건 아니겠습니까?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플루토의 후예>는 고양이에 얽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 단편선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에 가장 충실한 작품입니다. 사실 고양이에 얽힌 이런저런 무서운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 할머니를 통해서 들은 경험 때문인지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더군요. 고양이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됩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폭주>인류 종말 예고 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집단 히스테리와 폭력, 살인이 넘치는 지옥도를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으로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인데, 상상력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류 종말을 다룬 공포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제 기준에서는) 새로움이 많지는 않더군요. 청소년의 나약함(아이)과 강해지고 싶은 바람(어른) 사이의 위태로운 폭력은 나름 신선했습니다.

<불귀(不歸)>라는 작품은 이번 단편선에서 가장 한국적인 공포를 그렸습니다. 태생의 비천함으로 인한 나쁜 시어머니와 갈등(고부갈등), 그리고 착한 남편의 급사, 시어버니의 위급한 병으로 인한 고향 방문. 그 후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 시어머니는 죽어도 죽지를 않고, 딸은 점점 이상해지며, 동네 사람들은 그들 모녀를 이상하게 쳐다보면 피합니다. 새벽에 들리는 마루 위를 사뿐히 걷는 듯한 발자국 소리. 그리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동네 주민들.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딸.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난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귀신 이야기에 식은땀을 흘리거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경험이 있는 30대 이상의 독자들이 무척 공감할만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 저는 이 이야기가 참 무서웠습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도축장에 와서 도축을 해야만 하는 한 남자의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유선형.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에는 처음 얼굴을 들이민 작가입니다. 우선 신선합니다. 그리고 재미있습니다. 이런 설정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죠.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느낌과 조금 비슷했습니다, 저는. 고딕호러의 느낌이 물씬 풍기더군요. 정통 호러에 미스터리를 결합한 독특한 느낌의 소설로, 마지막 마무리도 좋았습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무척 돋보였던 작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더블(Double)>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SF 호러소설로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의 갈등과 긴장감, 두려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란 존재를 '나'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나를 무서워해야 하는 상황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도플갱어를 소재로 하거나 아니면 살짝 비튼 영화나 소설이 많아서 기존의 작품들과의 차별성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 점은 조금 아쉽더군요.

<배심원>은 사실 내용 면에서 새롭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인터넷 마녀사냥을 다루고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을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습니다. 물론 그 믿음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것이어야만 하고요. 사실 국내소설을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사회 문제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못 본 것 같아요. 사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인데도 말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소설은 독자를 무척 괴롭히는 그런 소설입니다. 읽으면서 내내 속으로 ‘개XX들’, ‘그냥 죽여 버려’를 중얼거렸습니다. 평범한 가면 뒤에 숨은 평범한 인간들의 잔인성. 그리고 그 잔인성이 내게도 있다는 것.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김유라 씨의 작품인데, 이분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에서는 처음 보는 작가더군요. 앞으로의 작품들 기대됩니다.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좀비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좀비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큰 의미에서는 좀비과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좀비의 특징은 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나 닥치는 대로 죽여 먹습니다. 부모도 물어버리는 것이 좀비이니 할 말 없죠. 사실 개인적으로 좀비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좀비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가족이죠. 좀비 장르의 소설에 붙인 제목은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좀비영화와의 차이점은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좀비(전염이 되고, 인육을 먹으며, 뇌가 조금 떨어지는 종족)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신선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더군요. 흡입력은 좋았습니다.

<배수관은 알고 있다>미스터리와 호러가 섞인 작품으로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합니다. 기러기 아빠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가족 해체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배수관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이한 현상, 기억을 잃어버린 하루, 그리고 위층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녀. 뭐가 뭔지 점점 알 수 없는 사건들. 밝혀지는 충격적인 비밀과 반전. 사실 무척 많은 것들을 담고 있음에도 따로 노는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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