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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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첫 소설 데뷔작. 1996년 <ISOLA>로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에 선정. 가작의 아쉬움도 잠시 다음 해에 <검은 집>으로 당당하게 대상을 수상합니다. 사실 기시 유스케의 <13번째 인격 - ISOLA>라는 작품은 기시 유스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무척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 프로필에서는 매번 보는 작품임에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을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 장르는 호러소설입니다. 워낙 다양한 장르에 재능이 많은 작가이지만 역시나 기시 유스케하면 호러장르가 최고인 것 같아요.

<13번째 인격 - ISOLA>에는 1995년 6,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한신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으로 인해 괴물 같은 ISOLA라는 인격이 탄생합니다. ‘엠파시’라 불리는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을 가진 유카리는 한신대지진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하다 우연히 이 괴물 같은 인격체 ISOLA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고등학생 소녀 치히로의 열 세 번째 인격체인거죠. 이제 다중 인격(해리성 장애)은 의학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죠.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요. 보통은 5개 정도만 되어도 무척 많은 인격인데, 13개의 인격이라니 우선 놀라우면서도 믿기 힘듭니다. 그런데 임사체험에다 유체일탈까지 등장합니다. 이거 완전 허구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전 허구의 이야기에서는 (공포소설임에도) 무서움을 느끼기 힘들죠. 비현실적인 상상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죠? 기시 유스케는 치밀한 자료 조사로 유명한 작가죠. 아직까지 임사체험이나 유체일탈은 의학적으로 검증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럴 듯합니다. 의약품을 이용한 유체이탈 과정이 나오는데, 과학적/의학적 지식이 무지해서 그런지 그럴 듯하게 보이더군요. 물론 유체가 이탈을 해서 다른 사람의 인격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상상력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ISOLA가 유체를 이탈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과 유카리 일행이 그 ISOLA를 찾기 위해 어두컴컴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정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한신대지진이라는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괴물 같은 인격체 ISOLA의 원한과 증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냅니다. 왜 한신대지진일까? 한신대지진으로 인해서 ISOLA라는 인격체가 탄생을 하게 됩니다. 탄생의 토양이 바로 한신대지진이라는 악몽이죠. 왜? 고등학생 소녀 치히로는 열 세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을까? 그 이면에는 어떤 상처와 고통이 있을까? 그리고 ISOLA라는 인격체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증오와 복수심을 갖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엠파시)을 가진 주인공 유카리는 왜 그렇게 치히로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신대지진은 인간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재앙이었지만, 유카리, 치히로, ISOLA는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 낸 괴물(물론 나쁜 의미에서의 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은 인간들에 의해서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습니다. 상처 입고 고통 받은 인간들의 영혼을 감싸 안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 작품이 국내에 조금 뒤늦게 소개가 되었지 않나 싶네요. 20세기에 소개가 되었더라면 더 큰 방향을 일으켰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네요(요즘에는 다중인격이라는 소재가 반전의 도구로 너무 전락해서 선입견에 싫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역시나 재미있습니다. 사족으로 <검은 집>에 비해 심리적 압박이나 공포 분위기 조성은 조금 덜 합니다. 뭐 워낙 <검은 집>이 호러장르에서는 뛰어난 작품이기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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