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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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적인 시리즈이자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켄지&제나로」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신성한 관계>에서는 매혹적인 악녀, 팜므파탈이 등장합니다(그녀의 눈만 쳐다봐도 모든 남자들이 반할 정도로 엄청난 매력을 지닌 여성입니다). 전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를 먼저 읽고 읽으니 스토리나 켄지와 제나로의 심리상태 등의 연결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무척 좋더군요(「켄지&제나로」시리즈는 역시나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거대 기업들을 소유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재력가의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전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사이코 연쇄살인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지친 상태의 켄지와 제나로는 부정에 이끌려 힘든 시기에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위는 아래고, 흑은 백’이라는 뒤바뀐 거짓과 위선 앞에 겨우 추슬렀던 켄지와 제나로의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위험과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돈’과 ‘순수 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돈(재력)을 위해서라면 어린 아이의 목숨조차도 우습고, 생명의 존엄성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보다 못 하다는 것. 그러나 돈을 중시하는 사회의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배경으로 등장할 뿐, 이야기의 중심은 켄지와 제나로 자신들의 소중한 친구들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에 대한 복수와 돈이라면 인간적인 감정조차도 버려버린 인간들의 악랄한 속임수와 탐욕, 그리고 파멸을 그리고 있습니다. 「켄지&제나로」시리즈와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점에서는 조금 이질적인 느낌도 들더군요.

  역시나 이번 작품에도 켄지나 제나로와 친한 친구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켄지와 제나로는 엄청나게 다치기도 하고요. 그러나 부바가 초반 활약을 제외하고는 거의 활약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네요(교도소에 들어갑니다). 사이비 종교문제, 재력가의 탐욕과 권력 등으로 인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무게감은 조금 약하다는 것(실종사건의 추적, 진실과 거짓, 음모, 반전의 반전 등 오락적인 요소는 오히려 더 강합니다. 가볍게 읽기에 좋다고 할까요). 전 시리즈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매혹적인 악녀, 팜므파탈의 등장은 다른 시리즈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네요. 사건을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점점 궁지에 몰린다는 점에서는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의 분위이가 조금 풍기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나로의 전남편 필립의 죽음 이후, 켄지오 제나로의 사랑이 점점 진지하게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도 이번 작품의 특징이 되겠네요.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 등의 작품에서는 엄청난 살인마들이 등장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건의 잔인함이나 작품의 무게감이 앞의 언급한 작품들에 비해 조금 덜합니다(사실 오히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악’이 지독하다면 더 지독할 수도 있는데). 조금 쉬어가는 의미로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물론 켄지와 제나로는 이번 작품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하지만요. 사족입니다. <신성한 관계>를 이제야 읽었는데, 다음 시리즈 <가라, 아이야, 가라>를 다시 읽는다면 처음에 읽었을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를 것 같네요(<가라, 아이야, 가라>를 가장 처음에 읽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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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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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 국립공원(작품 속에서는 ‘화성의 미궁’이라고도 불리고, 「화성의 미궁」이라는 게임 북이 있기도 합니다)이라는 낯선 곳에 9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바이벌 생존게임에 참가합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8명을 죽여야 합니다(제로섬게임). 그래야 살아남을 뿐 아니라 거금의 상금도 차지할 수 있거든요.

  기시 유스케의 <크림슨의 미궁>은 1998년에 발표된 초기 작품입니다. 서바이벌 생존게임은 이제는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너무나 식상한 소재죠(기발한 그 무엇이 없는 이상은. 얼마 전에 개봉한 국내영화 『10억』은 그래서 보기 좋게 망했죠. 서바이벌 생존을 다룬 영화나 소설도 많고, 그것을 응용하여 충격적인 반전을 그린 작품들도 많고요. 갇힌 공간에서 힘들게 살아남았으나 결말은 더욱 비극적이고 충격적이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혹성탈출』, 『배틀 로얄』, 『쏘우』, 『트루먼쇼』, 『큐브』 등이 있죠. 약간의 응용과 변주만 있을 뿐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따라서 고전(?)이다 보니 현 시점에서는 신선한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반전과 충격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서바이벌 생존게임을 기시 유스케가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런 궁금증에 식상한 소재임에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크림슨의 미궁>은 RPG게임의 스토리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9명의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지략, 체력, 기술 등 뭐 캐릭터마다 특색이 있겠죠), CP(체크포인트)에서는 정보와 간단한 아이템을 얻습니다(보통 RPG게임에서 유저들이 모이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식량, 서바이벌, 무기, 정보 등의 아이템을 선택하여 스토리를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생존게임이 시작됩니다(정말 RPG게임을 하는 것 같더군요). 물론 이야기에 좀 더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기 위해 약간의 설정들(식시귀, 화성의 미궁이라는 게임 북, 아홉 명의 사람들이 가진 게임기, 게임을 설명해주는 캐릭터 등등)이 추가됩니다. 암튼 소소한 설정들은 이야기를 더욱 더 구성지고 맛깔스럽게 만들기는 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들(<신세계에서>, <검은집>, <천사의 속삭임> 등)처럼 자료 조사는 정말 꼼꼼한 것 같더군요(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 국립공원에 대해서는 정말 제대로 공부한 듯). 그러나 아직은 초기 작품이라서 그런지 기시 유스케 작품만의 특색(작품의 무게감이나 구성의 치밀함 등)은 아직 잘 보이지 않더군요(물론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 1998년 출간 당시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아마도 감탄을 했을 텐데, 너무 뒤늦게 소개가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주제 의식도 조금 약하고 평범한 것 같고요. 장르는 호러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확실히 미스터리나 SF보다는 호러가 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덧.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Bungle Bungles) 국립공원은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이름도 조금 웃기고, 그 곳의 배경이 너무 낯설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실재하는 곳이더군요. 아름다운 세계 자연유산으로 책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로 포장된 도로가 없어 오직 4WD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크림슨의 미궁처럼 정말 미로 같고 사암으로 이루어진 구조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곤충, 식물들도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에 비교했을 때(자료 조사에 무척 치밀한 작가죠) 정확한 사실이지 않을까 싶네요(물론 세부적인 것까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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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밀리언셀러 클럽 105
J.L 본 지음, 김지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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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러운 살아 있는 시체, 좀비가 활보하는 세계를 그린 텍스트를 원서가 아닌 번역본으로 당당하게 대형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에 대해 감개가 무량합니다. 사실 ‘좀비’는 꽤 오래 전부터 영화나 소설 속에서 살아 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더군요. 공포영화의 악당으로 귀신이나 뱀파이어, 크리처, 유령, 늑대인간 등은 알아도 좀비는 왠지 낯설어 하고요. 삼류, 비주류, 마이너, B급 등으로 인식되어 오던 좀비가 당당하게 주류로 메이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장르문학 중에서도 저열한 싸구려 좀비문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오다니 그저 놀랍고 기쁠 뿐입니다(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서서히 소개되는 장르이고, 베스트셀러가 되기에도 무척 힘든 환경이지만요). <세계대전 Z>는 아마존에서 50주간 전쟁 부문 1위를 기록했고,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도 아마존 호러부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고 하네요. 또한 작가 J. L 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Z. A. 렉트의 <죽은 자들의 전염병>이라는 작품도 나오고, 암튼 좀비문학 풍년입니다.

  사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좀비영화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소설이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좀비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그나마) 많지만, 좀비소설은 사실 조금 생소했거든요. 역시나 처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세계대전 Z>와 조금 비교하자면(두 작품 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좀비소설입니다), <세계대전 Z>가 좀비에 의한 인류 멸망을 거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미시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세계는 멸망의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대전 Z>가 전 세계를 돌며 좀비에 의한 세계의 혼란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미 해군 현역 장교인 '나'를 중심으로 무조건 좀비에게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나'의 일기형식으로 서술되는 작품이거든요. 실제 책도 그런 일기 모양을 흉내 내서 삐뚤어진 글자나 그림도 보이고, 지저분한 흔적들도 보입니다. 소설 자체가 좀비에 의한 세상의 종말로부터 살아남은(?) 인간의 일기인지라 무척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소설의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시도 자체가 높이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오메가 맨』(리메이크 작 <나는 전설이다>),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3부작』과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개인적으로는 조지 A.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백화점을 터는 장면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이 묘사되어 있더군요. 상황은 최악이지만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상황은 중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보고 품었던 저의 철없던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좀비에 의한 세상의 멸망을 매일 기도를 했죠. 저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일기에 적고 있었거든요. 옛날 생각나네요).

  공포영화 중에서도 좀비영화를 좋아했던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기는 하나 새로움 면에서는(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는 것이 조금 아닐 수도 있지만) 조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플롯의 구조는 무척 간단합니다. 도망가고 살아남고, 도망가고 살아남고……. 내용면에서는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네요(사실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아닌데, 좀비소설에 이런 일기형식을 가지고 오니 무척 리얼하게 느껴지더군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정말 지독하고 힘드신 분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좀비에 의한 세상의 종말을 함께 겪으면서 사기 충전을 하심이 어떨까 싶네요. 과연 하루하루가 종말인 이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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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에의 제물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0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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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虛無)에의 제물(祭物, 희생물), 제목부터 마음에 듭니다(원제도 저런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역 제목은 무척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사실 처음에는 <허무에의 공물>로 알려졌었죠. 개인적으로는 <허무에의 제물>이라는 제목이 더 소설의 내용과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물론 제물이나 공물이나 모두 소설의 내용과 연관은 있는데 어떤 한자를 쓰느냐에 따라 소설의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허무에의 제물>은 일본 본격탐정소설 3대 기서이자 안티(반)미스터리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안티미스터리’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지만 소설을 다 읽고나니 기존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이나 공식을 깨는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설명이 조금 애매한데, 기존 유명 본격 추리소설의 작가들의 밀실트릭을 깨는데서 출발한다고 할까요? 우선 녹스 10계와 반다인 20법칙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존 딕슨 카,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가스통 르루 등 본격 추리소설계의 이름 있는 작가들의 트릭도 당연히 피해야 합니다.   


 안티미스터리라고 해서 밀실트릭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밀실트릭이 아닌 밀실트릭을 (말장난일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 저의 이런 말장난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해체해야 합니다. 추리소설을 비판한다는 자체가 재미있잖아요? 그럼에도 독자는 머리를 싸매고 추리를 해야 합니다. 기존의 추리소설의 규칙이나 공식이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해야 하니 머리가 정말 아픕니다. 이 소설 읽는데 정말 머리가 아팠습니다. 추리소설을 비판하는 추리소설로 4개의 밀실살인을 자칭 잘난 명탐정들과 함께 해결을 해야 합니다. ‘히누마 집안 살인사건’이 바로 그 사건인데, 사건의 배경이나 실제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살인 사건 자체가 아트(예술)입니다. 정말 이런 복잡하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에 놀랍더군요(작가가 실제로 10년간 도야마루 사건을 취재/집필하여 완성했다고 하네요). 사람이 밀실에서 죽었는데도, 주변 인물들은 한가하게 추리게임을 펼칩니다(사실 살인범보다 이들이 더 미친 것 같아요). 안티미스터리에 4개의 밀실살인사건, 게다가 아이누 전설과 5색 부동명왕까지 암튼 별별 잡다한 내용들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독자를 아주 헷갈리게 그리고 힘들게 합니다. 논리적인 추리를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비논리적인 추리를 해야 하는 거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명탐정들의 사건 추리는 독자를 더욱 더 미궁 속으로 빠뜨립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한자, 암합(暗合). 암합보다는 우합(偶合, 우연히 맞음)이라는 한자가 좀더 이해하기 쉬울 듯. 그런데 암합의 잦은 등장은 요즘 추리소설에서는 조금 불공정한 트릭(?)으로 알고 있는데(작품 속에 명탐정들도 사실 인정하기는 합니다. 암합이 무엇인지 추리하는 것조차 이 작품에서는 힘듭니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또한 수학 싫어하는 독자들을 기죽이기 위해 복잡한 수학공식도 대놓고 등장시킵니다(수학 공식의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이해가 쉽지 않더군요). 
 

  한 마디로 느낌을 정리하자면 (좋은 의미에서의) “뭐 이런 작품이 다 있나?”였습니다.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보셔야 할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추리소설의 공식과 규칙을 벗어난 안티미스터리, 참으로 매혹적인 세계입니다. 이런 작품의 시작이 누구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나카이 히데오가 그 시작이라면 이 작가는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추리게임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 그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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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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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倒錯)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도착(倒錯)’이라는 한자의 뜻을 찾아보면 무척 재미있는데, 정말 소설의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나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에는 말이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순간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되어버리거든요. 도착 증상을 보이는 소설 속 캐릭터들도 이 작품의 본질(의미)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고요. 암튼 기발한 착상과 재미있는 플롯, 그리고 서술트릭이 무척 잘 어우러진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단 서술트릭 자체는 오래 전에 발표된 소설이라 그런지(1989년쯤에 발표가 되었더군요), 현 시점에서는 조금 식상해 보이기는 합니다. 정말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런 반전의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관음증(성적 도착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추리소설 번역가가 주인공입니다. 노총각에 큰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루저’이죠. 집에서 추리소설을 번역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그보다는 건너편 연립주택 2층(201호)에 거주하는 여성의 행동을 훔쳐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그런 한심한 인간입니다(다락방에 8배율 쌍안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사각지대라 아주 마음 편히 노골적으로 훔쳐볼 수가 있죠). 그 후 그는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여자가 죽은 201호실에 또 다른 여자가 들어오면서 사건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번역가 남자의 수기, 201호실에 거주하는 여자의 수기,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이자 좀도둑인 한 사내, 마지막으로 201호실 여자 어머니의 시점이 교차로 진행됩니다. 사실 서술트릭이라는 홍보문구에도 불구하고 그런 트릭을 추측할 만 한 거창한 사건(연쇄적인 범죄는 일어나지만 독자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이겠죠). 직장 상사와 불륜에 빠진 여자와 훔쳐보기를 즐기는 한 남자의 그냥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수기형식으로 기록되었을 뿐,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종장의 반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사실 서술트릭을 제외하더라도 이 소설은 관음증에 빠진 알코올 중독자인 추리소설 번역가의 서서히 망가지는 모습을 (독자 역시)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누구에게나 관음증은 있으니까요. 번역가는 201호실의 여자를 훔쳐보고, 좀도둑은 201호실의 여자와 번역가의 생활을 관찰하고 훔쳐봅니다. 독자 역시 이들의 내밀한 비밀과 욕망을 훔쳐보고요. 서로가 서로를 훔쳐보면서 뭐 그냥 망가지는 소설입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이상한가요?). 일그러진 이야기라고 할까요? 뭔가가 이상합니다,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그러나 정체를 알고 나서도 역시나 이상합니다. 결코 그들은 작가의 펜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거든요. 부분이 아닌 전체를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서술트릭의 핵심은 결국 대부분 거짓말이라는 거잖아요. 알면서도 속는 것이 바로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이잖아요. 서술트릭 자체는 조금 약하지만, 이상심리에 초점을 두고 읽는다면 충분한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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