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 국립공원(작품 속에서는 ‘화성의 미궁’이라고도 불리고, 「화성의 미궁」이라는 게임 북이 있기도 합니다)이라는 낯선 곳에 9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바이벌 생존게임에 참가합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8명을 죽여야 합니다(제로섬게임). 그래야 살아남을 뿐 아니라 거금의 상금도 차지할 수 있거든요.

  기시 유스케의 <크림슨의 미궁>은 1998년에 발표된 초기 작품입니다. 서바이벌 생존게임은 이제는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너무나 식상한 소재죠(기발한 그 무엇이 없는 이상은. 얼마 전에 개봉한 국내영화 『10억』은 그래서 보기 좋게 망했죠. 서바이벌 생존을 다룬 영화나 소설도 많고, 그것을 응용하여 충격적인 반전을 그린 작품들도 많고요. 갇힌 공간에서 힘들게 살아남았으나 결말은 더욱 비극적이고 충격적이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혹성탈출』, 『배틀 로얄』, 『쏘우』, 『트루먼쇼』, 『큐브』 등이 있죠. 약간의 응용과 변주만 있을 뿐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따라서 고전(?)이다 보니 현 시점에서는 신선한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반전과 충격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서바이벌 생존게임을 기시 유스케가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런 궁금증에 식상한 소재임에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크림슨의 미궁>은 RPG게임의 스토리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9명의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지략, 체력, 기술 등 뭐 캐릭터마다 특색이 있겠죠), CP(체크포인트)에서는 정보와 간단한 아이템을 얻습니다(보통 RPG게임에서 유저들이 모이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식량, 서바이벌, 무기, 정보 등의 아이템을 선택하여 스토리를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생존게임이 시작됩니다(정말 RPG게임을 하는 것 같더군요). 물론 이야기에 좀 더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기 위해 약간의 설정들(식시귀, 화성의 미궁이라는 게임 북, 아홉 명의 사람들이 가진 게임기, 게임을 설명해주는 캐릭터 등등)이 추가됩니다. 암튼 소소한 설정들은 이야기를 더욱 더 구성지고 맛깔스럽게 만들기는 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들(<신세계에서>, <검은집>, <천사의 속삭임> 등)처럼 자료 조사는 정말 꼼꼼한 것 같더군요(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 국립공원에 대해서는 정말 제대로 공부한 듯). 그러나 아직은 초기 작품이라서 그런지 기시 유스케 작품만의 특색(작품의 무게감이나 구성의 치밀함 등)은 아직 잘 보이지 않더군요(물론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 1998년 출간 당시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아마도 감탄을 했을 텐데, 너무 뒤늦게 소개가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주제 의식도 조금 약하고 평범한 것 같고요. 장르는 호러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확실히 미스터리나 SF보다는 호러가 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덧.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Bungle Bungles) 국립공원은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이름도 조금 웃기고, 그 곳의 배경이 너무 낯설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실재하는 곳이더군요. 아름다운 세계 자연유산으로 책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로 포장된 도로가 없어 오직 4WD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크림슨의 미궁처럼 정말 미로 같고 사암으로 이루어진 구조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곤충, 식물들도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에 비교했을 때(자료 조사에 무척 치밀한 작가죠) 정확한 사실이지 않을까 싶네요(물론 세부적인 것까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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