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밀리언셀러 클럽 105
J.L 본 지음, 김지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러운 살아 있는 시체, 좀비가 활보하는 세계를 그린 텍스트를 원서가 아닌 번역본으로 당당하게 대형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에 대해 감개가 무량합니다. 사실 ‘좀비’는 꽤 오래 전부터 영화나 소설 속에서 살아 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더군요. 공포영화의 악당으로 귀신이나 뱀파이어, 크리처, 유령, 늑대인간 등은 알아도 좀비는 왠지 낯설어 하고요. 삼류, 비주류, 마이너, B급 등으로 인식되어 오던 좀비가 당당하게 주류로 메이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장르문학 중에서도 저열한 싸구려 좀비문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오다니 그저 놀랍고 기쁠 뿐입니다(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서서히 소개되는 장르이고, 베스트셀러가 되기에도 무척 힘든 환경이지만요). <세계대전 Z>는 아마존에서 50주간 전쟁 부문 1위를 기록했고,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도 아마존 호러부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고 하네요. 또한 작가 J. L 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Z. A. 렉트의 <죽은 자들의 전염병>이라는 작품도 나오고, 암튼 좀비문학 풍년입니다.

  사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좀비영화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소설이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좀비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그나마) 많지만, 좀비소설은 사실 조금 생소했거든요. 역시나 처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세계대전 Z>와 조금 비교하자면(두 작품 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좀비소설입니다), <세계대전 Z>가 좀비에 의한 인류 멸망을 거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미시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세계는 멸망의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대전 Z>가 전 세계를 돌며 좀비에 의한 세계의 혼란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은 미 해군 현역 장교인 '나'를 중심으로 무조건 좀비에게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나'의 일기형식으로 서술되는 작품이거든요. 실제 책도 그런 일기 모양을 흉내 내서 삐뚤어진 글자나 그림도 보이고, 지저분한 흔적들도 보입니다. 소설 자체가 좀비에 의한 세상의 종말로부터 살아남은(?) 인간의 일기인지라 무척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소설의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시도 자체가 높이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오메가 맨』(리메이크 작 <나는 전설이다>),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3부작』과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개인적으로는 조지 A.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백화점을 터는 장면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이 묘사되어 있더군요. 상황은 최악이지만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상황은 중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보고 품었던 저의 철없던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좀비에 의한 세상의 멸망을 매일 기도를 했죠. 저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일기에 적고 있었거든요. 옛날 생각나네요).

  공포영화 중에서도 좀비영화를 좋아했던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기는 하나 새로움 면에서는(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는 것이 조금 아닐 수도 있지만) 조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플롯의 구조는 무척 간단합니다. 도망가고 살아남고, 도망가고 살아남고……. 내용면에서는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네요(사실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아닌데, 좀비소설에 이런 일기형식을 가지고 오니 무척 리얼하게 느껴지더군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정말 지독하고 힘드신 분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좀비에 의한 세상의 종말을 함께 겪으면서 사기 충전을 하심이 어떨까 싶네요. 과연 하루하루가 종말인 이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