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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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작가가 1967년에 쓴 타임리프를 소재로 한 고전 SF소설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SF소설에서는 정말 빠지지 않는 내용이죠. 이 소설은 내용이 무겁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SF소설입니다. 사실 장르는 SF이지만, 10대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하이틴로맨스소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습니다. 마코토(소설에서는 가즈코로 나오죠)라는 소녀가 너무 사랑스럽게 그려졌고, 무엇보다 화면이 너무 예뻐서 요즘도 DVD로 가끔 돌려보곤 합니다(아이들에게 정말 보여주기 딱 좋은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애니메이션에 비해 소설은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들더군요(애니메이션이 스토리가 좀 더 풍부합니다. 소설에서는 마코토의 타임리프능력의 비밀을 밝혀주는 이모가 등장하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가즈오(영화에서는 치아키)와의 사랑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치아키의 비밀을 아는 순간 소설은 끝나더군요.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차 장면이 소설에는 없더군요. 개인적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소설보다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물론 소설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표제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 외에 죄의식, 기억상실, 악몽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공포소설 「악몽」과 다원우주와 동시존재를 소재로 한 SF소설 「The other world」라는 단편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악몽」은 한 소녀가 너무 끔찍해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미스터리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동생이 느끼는 공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이야기의 완결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과연 소녀가 느끼는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이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10대 소녀의 감성이 잘 전달되어져서 다 읽고 나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누나나 동생이나 큰 악몽을 겪지만, 그 악몽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부쩍 성장하게 됩니다. 「The other world」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봤음직한 그런 상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세계에 나와 똑같은 내가 있다면? 그리고 수학을 정말 싫어하는데 수학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을까? 바로 눈앞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세계를 동경하게 되죠. 그런데 정말 그런 세계가 온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무척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도망가고 숨기보다는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져라!! 젊은이여!! 뭐 이런 느낌. 여담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악몽」, 「The other world」 모두 귀여운 10대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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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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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귀족(주인)과 메이드(하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집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무서운 사건들을 다룬 연작 단편집입니다(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밀스러운 독서모임 ‘바벨의 모임’ 회원인데, 주인공들은 서로 마주치지도 않고, 실제 바벨의 모임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바벨의 모임 구경이라도 해 봤으면…….). 사실 홍보문구인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은 별 의미가 없어요. 기존의 관계나 의미들이 완전 뒤바뀌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반전이 아닌 예상 가능한 반전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반전을 미리 알고 모르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무척 현실적인 듯 하면서도(인간 사이의 관계는 무지 현실적) 환상적이며(몇몇 소품들이 그렇습니다), 뭐랄까 암튼 묘합니다. 암흑 동화라고 할까요? 사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재미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뭐라 말하기 힘드네요.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나 뭐 암튼 이런 것들이 기존의 (제가 읽은) 일본 미스터리와는 조금 다르더군요. 분위기는 『아시야 가의 전설』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렇습니다. 몇몇 기존 미스터리 선배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보이네요(마지막에 실린 「덧없는 양들의 만찬」은 아예 그 작품을 언급하기도 하죠). 그냥 가볍게 읽기에 좋은 작품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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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와정 살인사건 2 - 시마다 소지의 팔묘촌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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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쇼와 13년) 5월 21일 밤, 일본 오카야마 현 도마타 군에서 실제 일어난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사건을 시마다 소지 식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 비교가 되는데 『팔묘촌』이 픽션의 성격이 강한 추리소설인 반면, 시마다 소지의 『용와정 살인사건』은 다큐멘터리 성격이 짙은 작품입니다(물론 두 작품 모두 픽션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저렇다는 것입니다. 『용와정 살인사건』은 츠야마 사건 59년 이후보다 츠야마 사건 자체를 더 비중 있게 다룬 것 같더군요. 그래서 독자를 조금 지치게 합니다. 연속적으로 계속 잔인한 사건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일본의 전통 현악기 고토의 형상을 그대로 재연한 “용와정”이라는 여관에서의 밀실살인과 실제 쇼와 7년(과 11년)에 일어났던 엽기적인 사건을 묘사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듭니다(묘사와 설명이 구체적이고 친절하며, 분량에 비해 극적인 사건은 적습니다. 물론 마지막의 반전의 충격도 그다지 크지 않고요). 고로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단연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에 손을 들어 주고 싶으나, 불쾌한 감정을 유발시키고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점(변태적이고 엽기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재를 흥미 위주로만 다루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 이면도 넌지시 들어다 봅니다.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더군요)에서는 시마다 소지의 『용와정 살인사건』에 손을 들어 주고 싶네요.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읽고 생각할 거리들은 많습니다. 또한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아베 사다 사건, 다마노이 토막살안시건, 나오갸의 마스부치 사건 등 일본의 유명 사건들도 자세히 알 수 있고요.

  밀실트릭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자면, 용와정에서는 3개의 밀실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완전밀실, 불완전밀실, 변종밀실이 그것인데, 명탐정 미타라이가 아닌 추리작가 이시오카가 그 트릭들을 풉니다(불완전밀실과 변종밀실의 트릭은 시마다 소지의 다른 작품에서 등장했던 어떤 트릭이 조금 연상 되더군요 트릭 재활용?^^). 트릭 자체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무츠오 유령으로 한껏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마지막 트릭과 반전 효과에 매우 극적이었습니다. 분량이 조금 많기는 한데(1,100페이지 정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으시면 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조금 불쾌하고, 기분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상 속 허구가 아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라 불쾌하고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에도가와 란퍼와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두 거장의 분위기도 조금 풍겨서 더더욱 (저는) 재미있게 읽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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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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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의 ‘the romantic warrior’라는 재즈음악을 듣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무엇보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the romantic warrior’라는 노래입니다. 소설 속 점성술사 탐정 미타라이와 그를 창조한 시마다 소지가 극찬했던 바로 그 노래, 그래서 들었습니다. 소설의 분위기와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더군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젊은 날의 회한과 추억이 생각나는 로맨틱한 곡입니다. 초반부터 너무 감상적이네요.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감성적이기는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점성술사 탐정 미타라이와 추리작가 이시오카의 첫 만남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기도 하고요. 왜 이 소설이 뒤늦게 소개가 되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점성술 살인사건』보다 오히려 이 작품이 더 좋네요. 소외된 청춘들의 고독과 슬픔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가 좋더군요. 이시오카에게 그런 면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네요. 아마도 이시오카는 그 시기 작가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미타라이는 그가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이거나 혹은 스스로 되고 싶은 이상향이 아닐까 싶고요).

  『이방의 기사』를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사내가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나는 끔찍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리며 현재의 행복한 삶을 유지할 것인지, 과거의 나를 찾아야 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도 재즈와 커피를 즐기는 점성술사 미타라이를 만나게 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삶의 실타래들이 풀리게 됩니다(책의 각 장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그림이 있는데, 그런 복잡한 실타래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국내 번역본에만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센스가 정말 좋더군요). 『점성술 살인사건』처럼 치열한 두뇌싸움을 펼치는 본격 미스터리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나름 치열한 두뇌싸움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스토리 텔링 위주의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환호할 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스토리 텔링 위주의 본격 추리소설이라서 사실 감상평을 적기가 무척 힘드네요. 스토리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요.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나 『점성술 살인사건』만큼 고도의 두뇌싸움을 요구하는 추리소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기억이 사라진 부분을 짜 맞추는 재미는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거든요. 단, 초반이 조금 늘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한 사내의 기억 찾기 과정이 조금 길어서 중반까지는 다소 지루했습니다(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청춘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습니다. 청춘은 원래, 물론 지나고 나면 그렇지 않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20여 년 전 작가의 실질적인 데뷔작임에도 트릭이나 스토리 구성이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미타라이 시리즈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야 할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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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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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가 배를 다 채 가리지 못해 두꺼운 살집이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텔레비전 쇼를 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그의 거대한 뱃살이 출렁거렸다. ‘휴, 여전히 가관이로군. 냄비에 코를 박고 닭죽을 퍼먹는 그의 모습을 보자 나는 벌써 마음이 심란해졌다.’ (p.19)

  이 형편없는 사내가 바로 52세의 전과 5범인 주인공 인모의 형이다. 주인공 인모 역시 한 때(10년 전) 영화감독이었으나 지금은 알코올중독자 신세로 전락한 형편없는 48세의 실업자이다. 그들이 70대의 노모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다(여동생도 마지막으로 이 콩가루 가족에 합류한다). 전작 『고래』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은 초반의 이런 가족 구성원만 보고는 ‘이번에도 작가의 골 때리는 구라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기대감은 보기 좋게 배반을 당한다(나쁜 의미는 아니니 팬 분들은 성급하게 저를 나무라지 마시길).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지금 가족이라는, 그것도 고령화라는 노골적인 유치 싸구려 제목이라니 순간 걱정을 했으나 그 걱정은 역시나 기우였다. 작가의 구라는 여전했고, 오히려 구라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

  콩가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유치 막장의 삼류 드라마이다. 나이 먹어서 가족의 비밀을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비밀의 존재조차 모른 채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가족의 숨겨진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삼류에로영화나 주말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막장 스토리로 치닫는다. 막장이 나쁘지는 않다. 가난한 자들은 그런 막장을 보면서 웃고 울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또 힘을 얻는 거니까. 막장은 솔직하고 적나라하고 거침이 없어서 좋다. 최대한 교묘하게 숨기거나 남을 속이지는 않으니까. 막장에는 진실이 있다(물론 오버다).

  씁쓸한 웃음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울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니까. 억지로 웃기거나 억지로 울리지 않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이야기는 그래서 재미있다. 최소한 나 역시도 이 순간은 솔직해 지니까.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은 이런 씁쓸한 웃음이 넘치는 가족소설이자 주인공 인모(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소설이다. 또한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이야기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비참한 내 삶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든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p.286-287)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으면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만 쫒게 되는, 그러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헛된 망상을 갖고 불행하게 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공하지 못한 내 삶, 점점 초라해지는 내 삶. 그래도 나 역시 헤밍웨이처럼, 그리고 소설 속 인모의 갖고 있는 생각처럼 자살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이 소설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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