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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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가 배를 다 채 가리지 못해 두꺼운 살집이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텔레비전 쇼를 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그의 거대한 뱃살이 출렁거렸다. ‘휴, 여전히 가관이로군. 냄비에 코를 박고 닭죽을 퍼먹는 그의 모습을 보자 나는 벌써 마음이 심란해졌다.’ (p.19)

  이 형편없는 사내가 바로 52세의 전과 5범인 주인공 인모의 형이다. 주인공 인모 역시 한 때(10년 전) 영화감독이었으나 지금은 알코올중독자 신세로 전락한 형편없는 48세의 실업자이다. 그들이 70대의 노모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다(여동생도 마지막으로 이 콩가루 가족에 합류한다). 전작 『고래』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은 초반의 이런 가족 구성원만 보고는 ‘이번에도 작가의 골 때리는 구라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기대감은 보기 좋게 배반을 당한다(나쁜 의미는 아니니 팬 분들은 성급하게 저를 나무라지 마시길).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지금 가족이라는, 그것도 고령화라는 노골적인 유치 싸구려 제목이라니 순간 걱정을 했으나 그 걱정은 역시나 기우였다. 작가의 구라는 여전했고, 오히려 구라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

  콩가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유치 막장의 삼류 드라마이다. 나이 먹어서 가족의 비밀을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비밀의 존재조차 모른 채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가족의 숨겨진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삼류에로영화나 주말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막장 스토리로 치닫는다. 막장이 나쁘지는 않다. 가난한 자들은 그런 막장을 보면서 웃고 울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또 힘을 얻는 거니까. 막장은 솔직하고 적나라하고 거침이 없어서 좋다. 최대한 교묘하게 숨기거나 남을 속이지는 않으니까. 막장에는 진실이 있다(물론 오버다).

  씁쓸한 웃음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울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니까. 억지로 웃기거나 억지로 울리지 않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이야기는 그래서 재미있다. 최소한 나 역시도 이 순간은 솔직해 지니까.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은 이런 씁쓸한 웃음이 넘치는 가족소설이자 주인공 인모(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소설이다. 또한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이야기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비참한 내 삶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든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p.286-287)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으면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만 쫒게 되는, 그러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헛된 망상을 갖고 불행하게 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공하지 못한 내 삶, 점점 초라해지는 내 삶. 그래도 나 역시 헤밍웨이처럼, 그리고 소설 속 인모의 갖고 있는 생각처럼 자살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이 소설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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