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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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시크릿 청춘소설(10대 청소년의 비밀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요), 상큼 발랄한 청춘 미스터리라는 제 취향에 맞지도 않은 소설을 읽은 이유는 오로지 저 위의 문구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두 소녀가 담임선생님의 죽음과 죽은 사람을 보았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접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과연 두 소녀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게 될까요? 아쓰코는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노인요양센터에서 일하고, 유키는 소아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합니다.

  소설은 유서로 이야기를 열고, 유서의 속편으로 이야기의 문을 닫습니다. 처음의 유서에서는 친구의 자살을 이해 못하는 소녀가 등장하고, 속편에서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동일한) 소녀의 유서로 끝을 맺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왕따와 집요한 괴롭힘으로 자살을 선택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여고생들은 그런 죽음을 함부로 다루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쓰코와 유키는 왜 죽음의 순간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것일까요? 처음에는 죽는 순간을 지켜본 친구의 ‘그러니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라는 자랑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합니다. 마치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의 흉내를 내는 어린 아이의 행동처럼 말이죠. 암튼 미나토 가나에의 《소녀》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자살과 죽음이 아닐까 싶어요. 여고생이 등장하는 발랄한 청춘소설만은 아닙니다.

  《고백》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이루어진 문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소녀》도 문체가 깔끔하고 문장에 군더더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는 그런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조금 불필요해 보이는 문장이 늘어난 느낌입니다. 아마 작가의 기존 소설과는 차별을 보이려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조금 지루한 느낌도 살짝 듭니다. ‘곳곳에 숨겨진 복선, 그리고 복선이 빚어낸 후반부의 반전 등 미스터리한 요소’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 글은 조금 오버의 느낌이 듭니다. 물론 복선, 반전, 미스터리가 있기는 하지만, 가볍고 소소합니다. ‘소녀들의 적나라하고 리얼한 속내’ 이 부분도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청춘소설이라면 익히 보았던 모습이기도 하고요. 뭔가 더 적나라한 것을 기대했는데, (청춘소설에 있어서는) 조금 평범하네요. 사실 기대 이상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소소한 재미는 선사하지만, 데뷔작 《고백》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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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필로, 철학이 젊음에 답하다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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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원리로 유명한 데카르트와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모든 것은 신이다.’라는 범신론의 사상을 역설한 스피노자의 철학들을 <매트릭스>나 <엑스맨>, <블레이드러너> 등의 재미있는 영화를 통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철학서입니다. 주로 알랭의 《관념》과 스피노자의 《에티카》 철학서를 영화와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나 철학 이론들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어려운 것은 어렵네요. 그래도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이나 주요 장면들을 바탕으로 철학을 설명하는 부분은 그래도 쉽더군요.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영화의 숨겨진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할까요?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올리비에 푸리올은 프랑스 파리 고등사범학교 철학교수자격 소지자로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입니다. 굉장히 젊은 철학가인데, 철학을 쉽게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더군요. 이 책은 파리 13구역의 영화관 MK2에서 진행된 철학강의가 인기를 얻어 TV 《스튜디오 필로》라는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내용 중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철학을 다룬 시즌1을 모아 출간한 것입니다. 아마 인기를 얻으면(철학책이 인기를 얻기는 힘들겠지만) 시즌2, 시즌3의 다른 철학자들의 철학 이론들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철학(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는 요즘 시기에 왜 나는 철학책을 읽을까? 사실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철학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깊게 생각(사고)하지 않을 뿐, 이미 철학은 우리의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 의지, 정념, 고매함, 모방, 의식, 상상력 등등 이미 다 알고 있는 단어이자 철학 개념들 아닙니까? 익히 들어오고 이미 사용하고 행동하고 있음에도 역시나 깊게 생각하지는 않죠. 돈에 직접적인 관계를 주지 않는 이상 그냥 흘려버리죠. 그런데 데카르트나 스피노자는 이성이나 의식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 줍니다. 사실 알고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개념인데 말이죠.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올리비에 푸리올은 적절한 영화를 예로 들어 쉽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일독이 아닌 정독, 재독이 필요한 책입니다.

  <매트릭스>나 <엑스맨>, <블레이드러너> 등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사실 영화를 통해 철학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철학 자체(개념에 대해서)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도 많습니다. 사실 철학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어렵습니다. 역시나 영화를 예로, 함께 설명하지 않으면 철학 개념은 어렵더군요.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통해 설명한 철학 개념이 재미있을까요? 대부분 영화를 통해 다룬 철학 개념은 쉽고 재미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책의 전체에 걸쳐 다양한 철학 개념으로 등장하는 <매트릭스>,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럴>을 통해 데카르트의 방법론의 원칙을 설명하는 부분(<콜래트럴>의 스토리가 아닌 촬영기법으로 설명한 부분이 독특하더군요), 의지/정념/고매함을 설명한 <아메리칸 뷰티>, 의지/욕망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치는 <파이트클럽> 등등 무수한 영화들에서 철학적 개념들을 찾아내어 영화를 통해서 철학하는 방법을, 철학을 통해서 영화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외에 다른 철학자들과 그 철학자들이 주장한 철학 개념을 설명한 다른 영화들도 읽고 보고 싶네요. 다른 영화들에는 또 어떤 철학자들의 어떤 위대한 철학들이 숨겨져 있는지 말이죠. 그리고 이 철학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들도 생겼습니다(좀 덜 알려진 영화중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특근>은 추천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이런 영화를? 스토리텔링이 정말 끝내줍니다). 끌로드 사브롤의 <지옥(1994)>, 프랑소와 트뤼포의 <이웃집 여인(1981)>은 이 책을 읽고 난 뒤 급 관심이 가더군요. 기회가 되면 꼭 봐야겠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작가주의 영화는 극히 드뭅니다. <하이랜더>, <포레스트 검프>, <트푸먼쇼>, <빌리지>, <브레이브 하트> 등 대중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스피노자를 읽는 것은 마녀의 빗자루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용기를 내어서 한번 도전해 보심이 어떨까 싶네요. 속물적으로 말하자면 성공적인 CEO가 꿈인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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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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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멍청이, 벌레 등으로 불리는 범용한 소시민 주인공 ‘나’가 자칭 명탐정 에노키즈 때문에 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사람과 돈을 부른다는 고양이 인형 미네키네코를 둘러싼 사건 <오덕묘>, 영감(靈感) 탐정 간나즈키와 에노키즈의 대결(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방적 당함)을 그린 <운외경>, 저주의 가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면령기> 이렇게 세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교고쿠 나쓰히코의 요괴, 괴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괴담에서 미스터리를 뽑아내어서 엮어내는 솜씨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건 해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에 비해서는 조금 덜하네요. 역시나 제 취향에는 에노키즈보다는 교고쿠도, 유머보다는 음침함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돈이나 복을 준다는 고양이 인형,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울, 저주를 부른다는 가면 등 모두 기이하면서 믿을 수 없는 괴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깨비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현대인에게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 이면에는 역시나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이용하려는 마음이 바로 괴담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역전현상이 나타나죠. 괴담을 이용하는 인간들. 암튼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없지만, 세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품(고양이 인형, 거울, 가면)에 대한 역사는 등장합니다. 일본의 가면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그리고 에노키즈의 막무가내식 수사 해결도 유쾌함은 있으나 뭔가가 허전합니다. 교고쿠도가 마지막에 나름 활약을 해 주기는 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쾌함이라 이야기가 무겁지가 않고 밝습니다. 물론 밝은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유쾌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기공사 회사 직원 모토시마(소설의 화자)가 스스로 자학하거나 에노키즈나 교고쿠도에게 당하는 장면은 너무나 유쾌합니다.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에노키즈에게 원숭이로 불리는 소설가 세키쿠치에 맞먹을 정도의 마조히시트가 아닌가 싶어요. 교고쿠도가 그렇게 에노키즈에게서 멀어지라고 하는데도 계속 엮입니다. 에노즈키는 그렇다 쳐도 교고쿠도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이상한 짓을 하라고 시킵니다. 도대체 평범한 소시민이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모릅니다. 정말 바보입니다. 그런데 은근 에노키즈와 교고쿠도가 주변 인물들을 바로로 만드는 것 같아요. 에노키즈는 노골적으로 그러지만, 교고쿠도는 음침합니다. 안 그러는 척 하면서 바보로 만들죠.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마스다라는 경찰 출신의 에노키즈의 조수도 마지막 이야기 <면령기>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데, 이 자는 바보에다 울보입니다(변장의 천재이기도 하고요. 이건 물론 놀리는 것입니다. 독자임에도 마스다나 모토시마는 놀리고 괴롭히고 싶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암튼 찌질 한 자들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것 같아요. 사실 비참한 현실인데, 이상하게도 웃깁니다. 교고쿠도 시리즈에 비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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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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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황하는 사람들, 그대들의 방황은 정년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가 살아 있는 그 시기 안에서 부디 방황을 멈추라. 아픈 기억이 아무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 해도, 부모에 대한 불효만은 할 게 아니다. (‘노희경이 쓴 엄마 이야기’ 중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은 부디 방황을 멈추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길고도 슬픈 이야기를 쓴 게 아닐까 싶네요. 아주 오래 전에 어머니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도대체 무슨 책일까? 궁금했지만, 상투적인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책장에 그냥 처박아 두고만 있었죠. 아니 이 작가가 마니아 드라마 신드롬의 중심인 《거짓말》을 쓰리라고는 그 시절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혀 듣보잡 작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김정현의 「아버지」를 재미있게 읽은 어머니가 다음에 선택한 책이 바로 노희경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한 감동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중간 중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제할 수가 없더군요. 상투적인 이야기라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그 상투성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북로그컴퍼니에서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사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1996년 MBC 창사 특집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단막극을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인 한미사라는 곳에서 1997년 박숙정이라는 분에 의해서 소설로 각색이 됩니다(노희경 장편소설이라고 되어는 있지만 실제는 박숙정이라는 분이 각색을 했다고 하네요. 집에 1997년에 한민사에서 출간된 책도 있는데, 구석에 있어서 비교는 힘듭니다. 아마도 작가가 새롭게 소설로 각색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각색을 하는 게 마음 편치는 않았겠죠). 그리고 이번에 노희경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다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됩니다.

  가족 이야기입니다. 암을 선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는 어머니, 의사임에도 그런 아내를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아버지, 유부남을 사랑하는 딸과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해 삼수까지 하는 아들, 그리고 암 투병을 하는 어머니가 돌보는 치매 걸린 할머니.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희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암 투병 이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가족들은 엄마의 존재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는 무척 투박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멋들어진 대사나 상황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진정성은 느껴집니다. 엄마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사랑이 전달되어 흐뭇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쪽팔리게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지하철에서 읽었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상투적이고 뻔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 살아생전 방황을 끝내십시오. 그리고 효도하세요.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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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주술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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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심 샤탕의 <악의 영혼>과 <악의 심연>에 이은 《악의 3부작》의 완결판입니다. 사립탐정 조슈아 브롤린과 여탐정 애너벨 오도넬이 이번에는 거미와 마주하게 됩니다. 물가 근처에서 속이 텅 빈 채(마치 무언가에 내장을 모두 빨아 먹힌 듯) 거미고치에 싸여 있는 시체가 연속적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연쇄살인범은 보통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방화와 관련이 있는데, 이번 연쇄살인범은 물과 관련이 깊고,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도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FBI 프로파일러 출신의 뛰어난 사립탐정 조슈아 브롤린도 그래서 계속 헤맵니다. 과연 이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뭘까요? 그리고 이렇게 거미의 독을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이번에도 조슈아 브롤린은 범인의 머릿속으로, 악의 심연 속으로, 어둠 속으로, 고통을 느끼면서 들어갑니다.

  막심 샤탕을 장 크리스토퍼 그랑제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조금 있는데, <가이아 이론>이나 <악의 유희>는 몰라도 《악의 3부작》은 정말 장 크리스토퍼 그랑제 작품에 필적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사건의 잔인성이나 반전의 반전, 극도의 긴장감이나 스릴을 제외하고도 조슈아 브롤린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악의 심연 속에서 깊게 웅크리고 있는 악의 영혼의 내면에 점점 동화되어 들어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정말 악의 심연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소름이 끼칩니다. 조슈아 브롤린의 독특한 수사방식은 마주치기 싫은 절대 악의 내면으로 자꾸 독자들을 인도합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하고, 보기 싫은 진실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두렵고 무섭습니다.

  이번에는 거미입니다. 유령(<악의 영혼>, 광신도(<악의 심연>)에 이은 거미(거미고치). 개인적으로 지네나 거미류의 절지동물을 무척 싫어합니다. 집에 사는 거미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해도 집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 거미가 제 몸을 기어 다니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는데 정말 닭살이 돋더군요. 거미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공포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들을 살해하는 장면은 꽤 잔인합니다. 그냥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몸 안에 있는 장기들을 모두 녹여서 제거하고 빼내 버립니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냥 죽여주면 좋을 텐데 또 죽이지는 않습니다. 의식은 멀쩡히 깨어 있는 상태이고요. 살인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피해자에게 극한의 고통을 줍니다. 그렇다면 왜 연쇄살인범은 이런 미친 짓을 할까요? 그냥 정말 미쳐서? 《악의 3부작》의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은 나름대로의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차별 살인은 아닙니다. 나름대로의 동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죽입니다.

  잡담이 길어졌네요. 정리하겠습니다. 막심 샤탕의 <악의 주술>이 재미있는 이유는 범죄의 잔혹성입니다. 소설 속 사건을 상상해 보세요. 정말 소름 끼칩니다. 그리고 묘사가 무척 사실적이어서 비유가 약하면 토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범인 찾기.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쉽게 범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거듭되는 반전은 미스터리의 재미를 충분히 보장합니다. 극도의 긴장감이나 스릴은 보너스입니다.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범인이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살해 동기가 되겠죠). 그냥 아무나 죽인 것이 아닙니다. 사건의 개연성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적인 묘사. 연쇄살인범이 마치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잡아먹듯이, 희생자를 처리하는 장면은 명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잔인한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세요. 또한 살해 동기가 특정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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