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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바보, 멍청이, 벌레 등으로 불리는 범용한 소시민 주인공 ‘나’가 자칭 명탐정 에노키즈 때문에 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사람과 돈을 부른다는 고양이 인형 미네키네코를 둘러싼 사건 <오덕묘>, 영감(靈感) 탐정 간나즈키와 에노키즈의 대결(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방적 당함)을 그린 <운외경>, 저주의 가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면령기> 이렇게 세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교고쿠 나쓰히코의 요괴, 괴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괴담에서 미스터리를 뽑아내어서 엮어내는 솜씨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건 해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에 비해서는 조금 덜하네요. 역시나 제 취향에는 에노키즈보다는 교고쿠도, 유머보다는 음침함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돈이나 복을 준다는 고양이 인형,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울, 저주를 부른다는 가면 등 모두 기이하면서 믿을 수 없는 괴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깨비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현대인에게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 이면에는 역시나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이용하려는 마음이 바로 괴담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역전현상이 나타나죠. 괴담을 이용하는 인간들. 암튼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없지만, 세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품(고양이 인형, 거울, 가면)에 대한 역사는 등장합니다. 일본의 가면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그리고 에노키즈의 막무가내식 수사 해결도 유쾌함은 있으나 뭔가가 허전합니다. 교고쿠도가 마지막에 나름 활약을 해 주기는 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쾌함이라 이야기가 무겁지가 않고 밝습니다. 물론 밝은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유쾌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기공사 회사 직원 모토시마(소설의 화자)가 스스로 자학하거나 에노키즈나 교고쿠도에게 당하는 장면은 너무나 유쾌합니다.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에노키즈에게 원숭이로 불리는 소설가 세키쿠치에 맞먹을 정도의 마조히시트가 아닌가 싶어요. 교고쿠도가 그렇게 에노키즈에게서 멀어지라고 하는데도 계속 엮입니다. 에노즈키는 그렇다 쳐도 교고쿠도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이상한 짓을 하라고 시킵니다. 도대체 평범한 소시민이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모릅니다. 정말 바보입니다. 그런데 은근 에노키즈와 교고쿠도가 주변 인물들을 바로로 만드는 것 같아요. 에노키즈는 노골적으로 그러지만, 교고쿠도는 음침합니다. 안 그러는 척 하면서 바보로 만들죠.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마스다라는 경찰 출신의 에노키즈의 조수도 마지막 이야기 <면령기>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데, 이 자는 바보에다 울보입니다(변장의 천재이기도 하고요. 이건 물론 놀리는 것입니다. 독자임에도 마스다나 모토시마는 놀리고 괴롭히고 싶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암튼 찌질 한 자들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것 같아요. 사실 비참한 현실인데, 이상하게도 웃깁니다. 교고쿠도 시리즈에 비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것 같아요.